|
대구시립희망원에 지원된 지자체 보조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대구시립희망원 전 총괄원장 배임표 신부가 구속됐다. 사회복지시설 운영 비리로 현직 신부가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지법 오영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9시경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과 업무상 과실치사, 감금, 정신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희망원 전 총괄원장 배임표 신부를 구속했다.
오영두 판사는 “주요 혐의에 관해 범죄소명이 있고,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 도주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업무상 과실치사와 감금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희망원 임 모 사무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증거가 이미 확보됐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배 신부는 희망원 원장 재직 당시 대구시가 생활인의 복지를 위해 지원한 보조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14년 희망원 비자금 자료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배 신부에게 1억2천만 원을 뜯어낸 희망원 전 직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해 왔다.
앞서 18일 대구지검 강력부는 희망원 비리 등과 관련해 배 신부와 임 사무국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배 신부는 검찰의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후 유치장에 입감되기 전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인권유린및비리척결대책위원회’(이하 희망원대책위)는 20일 성명서를 내고 “배 신부의 구속은 개인 비리가 아니라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희망원에서 이뤄진 조직적 범죄임이 입증된 것”이라며 “천주교 대구대교구 게이트 수사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
희망원대책위는 검찰이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이사장인 조환길 대주교를 소환해 조사할 것을 촉구하며 “조환길 대주교 명의의 차명계좌를 포함해 모든 비자금이 낱낱이 파헤쳐 져야 한다. 희망원 비리와 관련해 한 줌의 의혹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도주와 증거인멸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법원이 임 사무국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며 검찰에 구속영장 재청구를 요구했다.
대책위는 “임 사무국장은 30년 가까이 희망원에 근무하면서 각종 인권유린과 비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인물이다. 특히 희망원 사건에서 증거인멸과 진술 조작 등을 주도한 인물이다”라며 “임 사무국장의 구속 여부는 새로운 희망원 건설에 중요한 척도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배 신부가 원장신부로 근무했던 대구정신병원도 희망원 납품 비리와 연루된 업체가 같은 방식으로 납품을 담당했다며 비리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배 신부는 2011년 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희망원 원장 겸 대구정신병원 원장신부로 근무했고 이후 안식년을 지냈다.
그러나 희망원 사건 당시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사무국장을 맡으며 교구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했던 이 모 신부는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이 신부가 발령받은 본당은 지난해 9월 보건복지위 국정감사 당시 성직자를 증인으로 세우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여당 의원이 소속된 본당이다.
희망원 비자금 자료를 근거로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검찰이 배 신부의 구속에 앞서 교구 공식기관인 ‘사목공제회’를 압수수색한 만큼, 교구 공식 사회복지 담당기관인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교회는 신자들의 작은 잘못도 찾아내고 고백하기를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잘못을 부정하고 숨기다가 결국 조금씩 드러나면 축소하기 바빴다.
대구대교구가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 36년간 운영해온 희망원은 지난해부터 생활인 관리소홀로 인한 과다 사망자 발생과 생활인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과 강제노역, 폭행 등의 인권유린 문제 등으로 논란이 돼왔다.
교구는 ‘환자를 지켜야 하는 사명’을 이유로 운영권 반납을 거부하다가 비자금 조성 등 희망원을 둘러싼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의 잇따른 의혹 제기로 정상운영이 힘들다’며 지난해 11월 7일 대구시에 운영권 반납 의사를 밝혔다. 현재 희망원은 대구시가 새 위탁법인을 선정할 때까지 교구가 위탁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임성무 전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은 “교회는 신자들의 작은 잘못도 찾아내고 고백하기를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잘못을 부정하고 숨기다가 결국 조금씩 드러나면 축소하기 바빴다”고 일갈했다.
그는 “교구장에게 책임을 지우고, 배임표 신부를 마치 순교자인 것처럼 꾸며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죄를 낱낱이 밝히고 참회의 기도와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유린과 비자금 혐의가 드러난 희망원 관련 사건에서 대구지방검찰청은 천주교대구대교구가 관련성이 없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검찰이 꼬리자르기 축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규탄하며, 천주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대구지검은 9일 오후 2시 대구지검 중회의실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한 대구시립희망원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희망원에 대한 인권유린과 횡령 사실 등을 확인해, 전 대구시립희망원장 배 모 신부를 비롯해 회계과장 여 모 수녀 등 전·현직 임직원 18명과 달성군 공무원 2명 등 25명을 입건, 이 가운데 7명을 구속기소, 16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희망원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식자재 납품 업체들에 과다하게 대금을 지급하고 이후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식으로 7억 8,000만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억 원은 희망원 운영에, 나머지 5억 8,000만 원은 배 모 신부가 횡령했다고 밝혔다.
배 모 신부 횡령 확인 그러나 교구와 비자금 관계는 확인된 사실 없다?
이날 브리핑에서 이주형 대구지검 2차장검사는 급식비와 기초생활수급비 외에 다른 비자금 조성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희망원으로 지급되는 대구시 운영 보조금 내역을 확인한 결과 그 외의 비자금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주형 검사는 천주교대구대교구 관련 의혹에 대해 “교구와 비자금 관계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교구 사목공제회를 압수수색한 이유에 대해서는 “배 모 씨의 자금이 사목공제회로 흘러들어 간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주교 측의 압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 검사는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한 내용 중 상당 부분 수사가 됐다고 판단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라며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추가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책위, “사전 조율한 것처럼 보일 정도”
그러나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원회(이하 희망원 대책위)는 이 같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천주교대구대교구유지재단(이사장 조환길 대주교)이 희망원의 인사권과 운영권을 쥐고 36년 동안 운영을 했는데, 관련 혐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서승엽 희망원대책위 공동대표는 이날 검찰의 발표 직후 “가장 우려했던 수사 결과가 나왔다”라며 “다른 복지재단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복지재단이 해체되고 재단 책임자가 구속된다. 그런데 희망원을 운영한 천주교재단은 책임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신부 한 명을 구속하고선 꼬리를 자르는 수사를 검찰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이날 긴급성명서를 통해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는 사전에 대구대교구와 조율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꼬리자르기 축소 수사다. 천주교 재단에 면죄부를 준 봐주기”라며 “천주교도 법 앞에 평등하다. 대구대교구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희망원대책위) 활동가 30여 명은 3월 22일 오후 6시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교황 선출기념미사’에서 대구시립희망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습시위를 했다.
이들은 기념미사가 봉헌되던 중 성당 가운데 통로에서 ‘천주교는 대구시립희망원 사건 해결에 나서라’, ‘천주교 운영 시설에서 2년간 129명 사망,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치며 사과와 진상규명, 그리고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의 사퇴 등을 촉구했다.
그러나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과 성당 관계자, 신부들은 활동가들의 기습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들은 현수막을 뺏고 신체를 제압하며 활동가들을 성당 바깥으로 몰았다. 한 여성 활동가는 신자들에게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혔으며 다른 활동가는 청바지가 무릎 아래까지 찢겼다. 이날 미사는 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 중에 봉헌되었으며 제대에는 각 교구 주교들이 서 있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미소 활동가는 “희망원에서 사람이 죽고 인권침해와 비리가 일어났는데, 정작 천주교 추기경님과 주교님들은 이 사건을 모르는 것 같아서 이를 알리기 위해 시위를 진행했다”며 “미사를 망칠 수 있다는 죄송함에도 불구하고 약자를 위한다는 천주교이기 때문에 시위를 했는데, 이렇게 절망적일 줄 몰랐다”고 말했다.
생명과 존엄을 이야기 하는 종교에서 사람을 이렇게 대할 줄은…
미소 활동가는 당시 상황에 대해 “시위를 진행하자 1분여 만에 진압 당했다. 나는 뺨을 맞고 머리채가 잡혀 끌려 나왔다. 신자들은 눈에 살기를 띠고 우리를 끌어냈다”라며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이야기하는 종교에서 이렇게 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천주교를 대표해서 주교회의에 참석한 추기경과 주교들은 사회적인 현안을 신경도 안 쓰는가. 희망원을 잘못 운영한 책임이 딴 곳에 있는가
활동가는 “천주교는 희망원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조차 없는 종교인가. 희망원 사태는 사회에서도 그 심각성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인데, 정작 천주교는 이 문제를 한 교구의 문제라며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날 우리가 들은 이야기는 ‘대구교구 문제다’와 ‘어떻게 신성한 미사에서 이럴 수 있느냐’ 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그는 “신부의 묵인 아래 인권유린이 일어났고 수녀가 비리를 저질러 구속이 됐다. 대구교구는 겉으론 모른 척하면서 뒤로는 대형 로펌으로 이들을 지원한다. 천주교(다른 교구)는 대구교구 일이라며 남의 일 보듯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위를 하니, 신자들은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는다”라며 “천주교가 사회문제에서는 연대하며 해결에 힘을 쏟는데, 정작 자기 문제는 이렇게 대처 한다”라고 일갈했다.
“수백 명이 죽어간 사건, 웃음이 나올까”
활동가들은 성당 밖으로 끌려 나온 다음에도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와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 있는 답변을 천주교 측에 요구했지만, 성당 관계자는 ‘성스러운 미사 중이다. 끝나고 이야기하라’며 이들을 저지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난 후에도 교회는 이들의 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1일에도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집회를 열며 희망원 사태와 관련해 면담요청서를 전달코자 했지만, 성당 측은 경찰에 시설 보호를 요청하며 이들의 진입을 막았다. 당시에도 면담요청서는 관계자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한 채, 성당 앞 관리소 유리창에 붙여졌었다.
미사가 끝나고 면담요청서를 받아달라고 신부님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이냐’라며 야단쳤다. 김희중 대주교가 주교회의 의장이라고 해서 교구 주차장까지 따라다니며 면담요청서를 받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신부들이 에워싸고 막았다.
또한 “10여 분간 실랑이 끝에 한 신부가 나와서 면담요청서를 받아갔다. ‘언제 답변을 받을 수 있느냐’, ‘신부님 성함이 어떻게 되나’를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요청서를 받아갔다”라며 “나중에 다른 신부님을 통해 그 신부가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신부라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특히 “상황이 이런데도 주교는 우리를 보고 웃으며 도망쳤다. 수백 명의 사람이 종교 시설에서 죽어간 심각한 일인데, 그 종교의 지도자가 어떻게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라며 “도망치면서 웃고 있는 주교를 보자, 너무 절망적이었다. 희망원 사태를 모르는 것 같아서 알리러 온 것인데,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천주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명동성당과 서울대교구 홍보국 등에 문의했으나, 관련 내용을 모른다거나 담당자가 휴가 중 이라는 등의 이유로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기념한다면서 머리채 잡는 종교”
임성무 전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즉위를 기념하며 봉헌하는 미사에서 사람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리고 끌어낸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라며 “앞서 정중하게 면담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원 문제를 대구교구의 문제라고 피하던 교황대사관이나 주교회의가 이번 사건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사 중에 일어난 항의는 한국 교회사 초유의 사건이다. 복음에 서지 않고, 하느님을 속이며 세상의 권력을 이용해 적당히 덮고 가려던 교회의 못된 행태에 하느님이 경종을 울린 일이다. 활동가들은 도구로 쓰였을 뿐, 이 사건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일이라고 생각한다. 충격적이고 눈물 나는 복음 사건이며, 앞으로도 논의될 신학적 연구 과제다.
임 사무국장은 “활동가들은 바티칸으로 가는 것 말고 모든 최고의 수단을 다 사용했다”라며 “조환길 대주교는 (희망원 사건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덮고 가려다가 결국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이제는 스스로 사퇴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도”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23일 천주교 측에 희망원 사태에 대한 사과와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천주교대구대교구 조환길 대주교의 사퇴 등을 요구하는 공문을 주교회의에 발송할 예정이다. 또한, 25일에는 희망원에서 죽어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30일부터 31일까지 양일간은 대구시청 앞에서 희망원 사태와 관련한 전국집중결의대회를 한다.
대구시립희망원은 1980년 대구대교구가 대구시로부터 수탁 받아 37년간 운영해온 노숙인·장애인 집단 거주시설이다. 희망원은 지난해부터 다수의 생활인 사망과 인권유린, 성직자 횡령 등 시설운영 전반에 걸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지만, 검찰은 희망원 사건을 혐의자 개인의 일탈로 규정했다.
대구대교구는 사건 초기 조환길 대주교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각종 감사에 대한 협조,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희망원 측의 증거인멸 논란과 감사 후 보고서 작성 강요, 그리고 비리 성직자들에 대한 교구의 대형 로펌 지원 등의 정황이 시민단체들을 통해 드러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자프로필
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