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조강지처를 말할 때 "육례를 갖추고 귀밑머리 함께 푼 사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육례"란 혼인의 절차이지 정신은 아니다.
요사이 복고풍조가 일어나면서 전통혼례를 치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나 역시 절차에만 치중해 정신은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전통혼례를 한다면서 나귀가 가마를 타고 없는 상투를 만들어 붙이는 등의 일은 연극이지 뜻깊은 혼인예식이랄 수 없는 것이다. 겉모양이나 절차는 시대의 조류나 생활여건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어도 혼인의 정신은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1) 삼서정신(三誓精神)
때문에 혼인의 정신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냥 "육례"라고 하지 않고 '三誓六禮' 라고 말한다.
1) 서부모(誓父母) : 신랑과 신부가 혼인예식을 거행하기 전에 부모에게 서약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있게 하신 조상과 부모에게 은혜의 무거움을 기리며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요사이 혼인하는 남녀들이 부모의 의사를 무시한다거나, 혼인예식에 조상과 부모에 대한 절차가 전혀 없어서 조상과 부모가 없이 저희들만 혼인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 빚어져 가정과 부부에 대한 가치관이 허물어지고 마침내 문제가정의 양산이라는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2) 서천지(誓天地) : 혼인이 천지의 음양이치, 즉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므로 음양의 상징이며 창조의 절대자인 초능력자, 하늘과 땅에 대해 서약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천애지(敬天愛地) 사상과도 직결되며 초능력자인 하늘과 땅을 두고 부부의 무궁하고 불변하는 사랑과 천지의 이치에 따르겠음을 서약하는 정신이다.
3) 서배우(誓配偶) : 서로가 배우자에게 서약하는 것이다
이상 삼서 정신은 고례의 친영례(親迎禮) 절차 속에서 행해진다. 뿐만 아니라 모든 절차를 행함에 있어 조상과 부모가 깊이 개입됨으로써 가정과 조상이 있는 혼인예식이 되게 한다.
(2) 평등정신(平等精神)
전통혼례에 의하면 "혼인이란 남녀가 몸을 합하는 데 참뜻이 있는데 남녀가 몸을 합쳐 부부가 되면 남편이 높으면 아내도 높고 남편이 낮으면 아내도 낮다(婚姻則 男女合體之義 男女合體則 男尊則女尊 男卑則女卑)"고 해서 부부는 완전 동권 평등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 존중해 공경하는 말씨로 대화하며, 호칭도 대인칭이 아닌 거처칭(居處稱)이고, 남편이 출세하면 아내도 함께 작위(爵位)가 올랐고, 부인을 대우하기 위해 부인과 첩은 차별이 있고, 부정(不貞)을 막기 위해 혼인 외 출생자의 출세의 길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남녀가 친구로 사귈 때는 존중하다가도 사랑하는 사이가 되거나 부부가 되면 말씨부터 남존여비가 되어버리고, 남편이 아무리 출세하더라도 부인은 내조의 공을 인정받는 제도가 없으며, 기타 전통체제가 무너진 면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혼인의 정신에서 부부 평등정신을 되찾아 부부동권의 부부상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전통 혼례의 절차 |
혼인 예식도 유교 사상의 전래에 따라 가례(家禮)의 하나로 중요시되었는데 서로 혼인 의사를 묻는 의혼(議婚), 혼인 날짜를 정하는 납채(納采), 예물을 보내는 납폐(納幣), 혼례를 올리는 大禮(대례)의 네 가지로 이루어지는 4례설(四禮說)이 있다. 4례설의 과정은 아래와 같다.
議婚(의혼) |
--> |
納采(납채) |
--> |
納幣(납폐) |
--> |
大禮(대례) |
중 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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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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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서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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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례 초녀례 |
청혼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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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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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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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안 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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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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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수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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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배 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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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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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보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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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근 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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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맞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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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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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구고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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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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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친
| |
1) 의혼(議婚)
신랑집과 신부집이 서로 혼사(婚事)를 의논하는 절차이다. 양가(兩家)에서 중매인을 세워 상대의 인물, 학식, 인품 등을 조사하고 신랑 신부의 궁합을 본 다음 두 집안이 합의가 되면 허혼하는 것으로 면약(面約)이라고도 한다. 대개 신랑집의 청혼 편지에 신부집이 허혼 편지를 보냄으로써 의혼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양가 부모들만이 신랑, 신부의 선을 보고 당사자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1) 중매(中媒)
혼인을 의논할 때 양가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양가를 왕래하면서 혼사의 성립을 위하여 양가를 소개하고, 혼사를 주선하는 행위를 중매라고 한다.
양가는 중매인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조절하고, 대례를 거행하기까지의 모든 절차를 의논하게 되며, 혼사에 따른 여러 가지 일들을 결정하게 되므로, 중매인은 인격이 구비되고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2) 청혼(請婚)
고례에 의하면 신랑의 아버지(할아버지)가 중매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누구의 집과 사돈을 맺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이것은 직접 여자의 아버지에게 청혼을 했다가 호의적인 반응이 없으면 서로가 거북할 것이므로 중간에 사람을 넣는 것이니 참으로 깊은 뜻이라 하겠다.
請婚 片紙 : 新郞쪽 婚主가 新婦쪽 婚主에게 婚姻을 要請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便紙를 보낸다.
<청혼서(請婚書)>
간 이 폭 반 간 오 폭 원
間 二 幅 半 間 五 幅 元
|
後후
人인
○
○
○
拜배
上상 |
○
○
○
○年년
○月월
○日일 |
使사
結결
秦진
晉진
之지
誼의
如여
何하
餘여
不불
備비
禮례
謹근
拜배
上상
狀장
|
能능
其기
勸권
誘유
處처
近근
聞문
○
○
洞동
○
氏씨
家가
閨규
養양
淑숙
哲철
云운
|
尙상
無무
指지
合합
|
尊존
年연
及급
加가
冠관
萬만
重중
仰앙
素소
區구
區구
之지
至지
弟제
家가
兒아
親친
事사
|
體체
候후
以이
時시
|
伏복
惟유
新신
正정
|
|
·伏惟(복유) …………………………삼가 생각하건대.
·尊體(존체) …………………………편지에서 상대를 높이는 말.
·萬重(만중) …………………………평안하다.
·仰素(앙소) ……… ………………우러러 돌이켜 보건대.
·弟(제) ………… …………………자기를 낮추는 말(여기서는 신랑측 혼주).
·親事(친사) ……… ………………혼인.
·加冠(가관) ………… ……………관례(冠禮)를 치르어 갓을 씀. 즉 성인이 되었다는 뜻
·尙無指合處(상무지합처) …………아직 마땅한 혼처가 없음.
·閨養(규양) ………………………규수.
·淑哲云(숙철운)……………………착하고 지혜롭다 하니.
·使結(사결) ………………………맺게 하여. 즉 혼인을 성사하여.
·秦晉之誼(진진지의) ………………혼인을 하여 두 집 사이에 정의가 두터워짐.
·餘不備禮(여불비례) ……………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라는 뜻으로 편지 뒤에 쓰는말
·謹拜(근배) ………………………'삼가 절합니다.'라는 뜻으로 편지 끝에 쓰는 말.
·上狀(상장) ………………………공경한는 뜻으로 나타내어 올리는 편지.
·拜上(배상) ………………………'절하고 올립니다.'라는 뜻으로 편지 끝의 자기 이름 밑에 씀.
<역 해>
오랫동안 우러러 사모 하였사 옵는데,
안녕 하시옵는지요. 저는 별고 없이 지내고 있사옵니다.
제 자식이 이미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아옵니다만,
아직 적합한 혼처가 없어 결혼시키기 못하고 있었아옵니다.
그런데 듣자니, 댁의 규수가 현숙하다 하옵는바, 삼가 청혼하오니,
귀하의 따님과 제자식을 배필로 맺어 주심이 어떠하올는지요.
글로써 예를 다 갖추지 못하와, 엎드려 절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년 월 일
0000 배상 |
<청혼서 봉투>
(四) |
|
(三) |
|
(二) |
|
(一) |
|
年년
月월
日일
封 謹 |
外외
封봉
後후
面면
|
李
生
員
宅
入
納 |
良
洞
皇
南
金
生
|
外외
封봉
前전
面면
|
|
請청
婚혼
書서
內내
封봉
後후
面면
|
李
生
員
下
執
事
謹
拜
上
狀 |
○
請청
婚혼
書서
內내
封봉
前전
面면
|
(백지 반장)
後
面
에
는
上
記
圖
表
三
四
와
같
이
記
錄
한
다 |
끝
가
는
面
에
年
月
日
과
謹
封
을
쓰
고
|
|
|
청
혼
서
싸
는
법
|
|
|
|
|
(3) 허혼(許婚)
중매를 통해서든 직접이든 정중한 청혼서를 받았고,
동봉된 호적등본이나 건강진단서에도 특별한 흠이 없으면 이미 마음을 정했던 대로 허혼서를 보낸다.
허혼서는 여자의 아버지(할아버지)가 청혼서를 보낸 남자측에 직접 보낸다.
許婚 片紙 : 新婦쪽에 婚主가 新郞쪽 婚主에게 婚姻을 許諾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便紙를 보낸다.
<허혼서(許婚書)>
|
0
0
後후
人인
○
○
○
拜배
上상 |
○
○
年년
○
月월
○
日일 |
尊존
照조
謹근
拜배
上상
狀장
|
餘여
是시
不불
備비
伏복
惟유
不불
聽청
從종
|
如여
勤근
權권
敢감
|
尊존
弟제
女여
兒아
親친
事사
重중
不불
鄙비
寒한
陋루
區구
之지
至지
|
體체
動동
止지
候후
萬만
仰앙
慰위
區구
|
伏복
惟유
春춘
元원
|
|
·春元(춘원) ………………… 봄철.
·動止(동지) ………………… 행동거지의 준말. 몸으로 움직이는 모든 일.
·候(후) ……………… …… 안부를 물음.
·候萬重(후만중) …………… '편안하신지 안부를 묻습니다.'라는 뜻.
·女兒(여아) …………………자기 딸을 낮추어 하는 말
·不鄙寒陋(불비한루) ……… 못 미치고 가난하고 천하다. 즉 자기 가문을 낮추는 겸손의 말
·如是(여시) …………………이와 같이
·勤權(근권) ………………… 부지런히 권하다.
·敢不聽從(감불청종) ………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
·尊照(존조) ………………… 편지 끝에 상대방에게 '보십시오.'라는 뜻으로 쓰는 말.
<역 해>
따뜻한 봄철에 안녕 하시온지요.
저 역시 귀하를 사모하던 터에 그와 같은 글을 받자오니 참으로 영광이나이다. 저의 부족한 딸을 구애치 않으시고 청혼해 주시니,
제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나이까. 글로써 인사를 다 갖추지 못하며,
삼가 엎드려 이 글을 올리나이다.
년 월 일
○○ ○ ○ ○ 배상 |
<봉투>
金
生
員
宅
回
納
|
皇
南
洞
良
洞
李
生
0
0 |
外외
封봉
後후
面면
|
午
二
月
十
二
日
庚 謹 封 |
外외
封봉
前전
面면
|
봉
하
지
말
고
젖
혀
놓
을
것
|
許허
婚혼
書서
內내
封봉
後후
面면
|
金
生
員
下
執
事
謹 |
謹
拜
謝
狀
封 |
許허
婚혼
書서
內내
封봉
前전
面면
|
(백지 반장)
봉
하
는
식
은
청
혼
서
와
같
음 |
|
|
허
혼
서
싸
는
법
|
|
|
|
(3) 불허(不許)
서로 교제할 때는 몰랐으나 청혼서를 받고서 그 혼인이 합당치 못함을 알아 불허할 요량이면 청혼서를 정중히 보내는 것으로 불허의 의사를 표한다.
신랑 측에서도 신부 측의 허혼서를 받고 호적등본이나 건강진단서에 혼인이 불가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이 있어 그 혼인을 하지 않을 마음이면 허혼서를 정중히 되돌려 보냄으로써 그 의사를 표시한다.
허혼서를 되돌려 받은 여자 측에서는 즉시 청혼서를 정중히 되돌려 보냄으로써 그 혼담은 없었던 것으로 한다.
|
2) 납채(納采)
혼약이 이루어져 사주(四柱=四星)를 보내고 연길(涓吉:擇日)을 정하는 절차이다. 신부집에서 허혼 편지나 전갈이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납채문을 써서 홍색보자기에 싸 보낸다. 신부집에서는 사주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 보고 결혼 날짜를 택하여 신랑 측에 통지한다. 이것을 연길(涓吉)이라 한다.
(1) 사주
사주는 사성(四星), 주단(柱單), 단자(單子)라고도 하는데, 신랑의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를 기록한 문서이다.
사주단자(四柱單子)의 작성법은 다음과 같다.
길이 40cm(1자 3치), 나비 28cm(9치) 정도의 한지(韓紙)를 다섯 칸으로 접어 그 한가운데에 간지(干支)로서 생년월일과 출생시간을 쓴다. 이것을 흰 봉투에 넣은 다음, 뒤를 풀로 봉하지 않은 채 뚜껑을 접는다.
사주 봉투는 봉투 길이보다 아래위로 각각 1cm가량 길게 잘라 그 가운데를 쪼갠 수수깡이나 싸리나무 가지 사이에 끼우고 청실·홍실의 타래실로 위쪽에서부터 매듭지지 않게 옭아 묶는다.
이것을 납채문(納采文)과 함께 사주보에 싼 뒤 '근봉(謹封)'이라는 띠를 두른다. 사주보는 겉은 홍색, 안은 청색인 네모난 비단 보자기인데, 네 귀퉁이에는 금전지를 다는 것이 보통이다.
<납채서(納采書)>
|
後후
人인
○
○
○
拜배
上상
|
○
○
○
○
年년
○
月월
○
日일 |
尊존
照조
謹근
拜배
上상
狀장
|
涓연
吉길
回회
示시
如여
何하
錄녹
餘여
不불
備비
伏복
惟유
|
寒한
門문
慶경
幸행
采채
單단
呈정
|
弟제
家가
兒아
親친
事사
重중
旣기
蒙몽
契계
許허
區구
之지
至지
|
尊존
體체
候후
以이
時시
萬만
仰앙
素소
區구
|
伏복
惟유
新신
正정
|
|
·候以時(후이시) ………… 이때에 이르러 안부를 묻사옵니다.
·仰素(앙소) ……………… 우러러 돌이켜 보건대.
·家兒(가아) ……………… 아들놈.
·旣蒙契許(기몽계허) …… 이미 허락의 약속을 받다.
·寒門(한문) ……………… 구차하고 문벌 없는 집안. 즉 자기 집안을 낮추어 하는말.
·采單(채단) ……………… 혼인 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청홍색 비단.
·錄呈(녹정) ……………… 기록하여 드림.
·回示(회시) ……………… 회답을 하여 줌.
<역 해>
새해를 맞이하여 존체 만중하십니까?
저의 자식 혼사는 이미 허락하심을 받아서 저의 가문의 경사입니다.
여기 사주단자를 보내오니 혼인 날짜를 정하여 회신하여 주심이 어떠하나이까?
드리는 말씀 예를 갖추지 못하고 이만 줄이옵니다.
년 월 일
○○후인 ○○○올림 |
<사주 쓰는법>
|
庚
午
正
月
二
十
日 |
癸
卯
三
月
十
五
日
辰
時
生 |
慶
州
金
(사인) |
|
○
四사
星성
書서
式식
|
|
(보내
는 날) |
(신랑
생년
월일) |
(혼주
성씨
밑에
싸인) |
|
|
<사주 봉투 쓰는법>
30cm |
|
봉
하
지
말
고
윗
부
분
을
젖
혀
놓
을
것 |
四
星
內
封
後
面
|
|
四
星
謹封 |
四
星
內
封
前
面
|
|
7.5cm |
|
|
|
|
|
(2) 연길(涓吉)
납채를 함으로써 정혼이 되었다.
남자측의 납채서에 혼인날짜를 청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여자측에서 기일을 정해
남자측에 보내는 절차이다.
고례에는 남자위주이기 때문에 납기가 없었으나
청기(請期)가 있음을 미루어 당연히 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혼인예식의 날짜를 잡아 정중한 납기서와 함께 남자측에 보내야 한다.
<연길 편지>
|
後후
人인
0
○
○
拜배
上상 |
○
○
○
○
年년
○
月월
○
日일 |
尊존
照조
謹근
拜배
上상
狀장
|
涓연
吉길
錄녹
呈정
不불
備비
伏복
惟유
|
旣기
承승
柱주
單단
寒한
門문
慶경
事사
|
尊존
體체
候후
萬만
重중
仰앙
慰위
區구
區구
之지
至지
弟제
女여
兒아
親친
事사 |
感감
荷하
無무
量량
謹근
未미
審심
玆자
時시
|
伏복
承승
華화
翰한
|
|
·伏承(복승) …………………… 엎드려 받드오니.
·華翰(화한) ………………… 편지를 높이는 말.
·感荷(감하) ………………… 입은 은혜를 고맙게 여김.
·謹未審玆時(근미심자시) …… 삼가 아직 살피지 못한 이때.
·仰慰(앙위) ………………… 우러러 문안드림
·旣承柱單(기승주단) ……… 이미 사주단자를 받다.
<역해>
보내 주신 서한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존체 만중하시고 만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혼사에 있어서는 이미 사주 단자를 받았사옵기,
실로 부끄러운 바이오나 좋은 날이 정해진 대로
이에 따라 빨리 성례를 올림이 어떠하시겠습니까.
미흡한 점 용서바라며 삼가 글을 올립니다.
년 월 일
○○후인 ○○○배상 |
<연길(涓吉) 서식1>
|
뒷
면
|
涓
吉
신
부
金
海
后
人
金
玉
順 |
신
랑
全
州
后
人
李
容
九 |
◎
봉
투
앞
면
| |
|
庚
午
二
月
十
二
日 |
奠
棧
庚
午
三
月
二
十
五
日
乙
卯 |
慶
州
李
|
|
봉
투
내
면
|
<연길 서식2>
|
뒷
면
|
涓
吉
신
부
金
海
后
人
金
玉
順 |
신 랑
全
州
后
人
李
容
九 |
◎
봉
투
앞
면
|
|
양
력
서
기
一
九
八
八
년
二
월
二
三 |
곳
○
○
소
재
○
○
예
식
장
○
실
|
때
단
군
기
원
四
三
二
一
년
一
五
월
일
十
二
시 |
신
부
金
海
后
人
金
玉
順
|
신
랑
全
州
后
人
李
容
九
|
납폐를 하시려면
전날신부의 집에서 하십시요 | |
3) 납폐(納幣 또는 納徵)
전통혼례에서는 혼인의 납폐란 신부집에 대하여 혼인을 허락한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신부용 혼수와 혼서(예장),물목(物目)을 함에 넣어 보내는 절차로 봉채(封采=봉치) 또는 함(含)이라고 한다.
함은 혼인전날 또는 며칠 전에 보내거나 당일 신랑과 같이 보내기도 하는데 지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보통 물목(物目)과 함께 치마저고리 두 벌 정도와 혼서지, 집안과 지방에 따라 상징되는 물건 또는 패물, 옷감 등을 보냈다.
혼서지는 혼인문서로 혼수감이 갈 때 가지고 가서 죽을 때 관에 넣어 주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황낭에 고추·수수·목화씨·향·팥·노랑 콩등을 넣어 액을 물리치고 부귀다복·다남(多男)·길(吉)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 혼서=예장지
납폐만 보내면 여자측에서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모를 것이다. 그르므로 누가 누구에게 왜 보내는 예물인가를 정중하게 글로 써서 함께 보내야 한다. 그것을 혼서(장가들때에 드리는 글)라 한다. 혼서는 신부 측에서 함을 받기 전에 먼저 받아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함 속에 함께 넣으면 안 되고 따로 상자에 넣어 붉은 보로 싸거나 아니면 그냥 붉은 보로 싼다.
<혼서(婚書), 예장지(禮狀紙)>
|
·
근
봉
지
|
全
州
后
人
李
吉
純
再
拜 |
·
봉
투
뒷
면 |
金
海
金
交
長
敬
倍
尊
宅
下
執
事 |
上
狀
|
·
봉
투앞
면 |
檀君
記
元
四
千
三
百
二
十
一
年
十
月
五
日 |
尊
照
謹
拜
上
狀 |
존
조
근
배
상
장 |
不
備
伏
唯 |
불
비
복
유 |
玆
有
先
人
之
禮
謹
行
納
弊
儀 |
자
유
선
인
지
례
근
행
납
폐
지
의
之
|
尊
玆
許
以
令
愛
序
次
玉
順
孃
황
室
況
貼
|
존
자
허
이
영
애
서
차
옥
순
양
항
실
황
첨 |
未
有
伉
儷
伏
蒙 |
미
유
항
려
복
몽 |
尊
體
百
福
僕
之
長
子
容
九
年
旣
長
成 |
존
체
백
복
복
지
장
자
용
구
연
기
장
성 |
時
維
孟
冬 |
시
유
맹
동
|
全
州
后
人
李
吉
純
再
拜 |
전
주
후
인
이
길
순
재
배 |
金
海
金
校
長
敬
倍
尊
座
下 |
김
해
김
교
장
경
배
존
좌
하 |
·
내
용 |
謹
封 |
|
謹
封 |
|
謹
封 |
|
<역해>
김해 김경배 교장선생님께 아뢰나이다.
때는 초겨울이온데 선생님께서 기력 안녕하옵십니까?
저의 큰아들 용구는 나이가 들었으나 아직 배필이 없더니
선생님께서 둘째 따님 옥순 양을 아내로 허락해 주심을 받자왔습니다.
이에 옛어른들의 정하신 바 예에 따라 삼가 납폐의 의식을 행하옵니다.
다 갖추지 못하였사오나 다만 엎드려서 선생님께서 굽어살피시기를 바라오며
삼가 절하면서 글월을 올리나이다.
단군기원 4335년 1 월 1 일
전주후인 이 길 순 올림 |
<봉투>
근
봉
셋
을
달
리
쓰
는
세
속
말
|
艸
主 |
謹
封 |
|
謹
封 |
|
李
生
員
下
執
事 |
謹
再
拜
上
狀
|
○
禮(예)
狀(장)
紙(지)
皮(피)
封(봉)
|
|
|
|
生
員 |
上
狀 |
|
甘
土 |
謹
封 |
|
謹
封 |
|
|
|
|
下
執
事 |
|
|
八
大 |
謹
封 |
|
謹
封 |
|
<물목 쓰는법>
物
目
|
○
納(납)
幣(폐)
皮(피)
封(봉)
|
庚(경)
午(오)
二(이)
月(월)
二(이)
十(십)
五(오)
日(일) |
際(제)
|
훈(훈)
壹(일)
段(단) |
玄(현)
壹(일)
段(단) |
慶(경)
州(주)
金(김)
싸인 |
○
納(납)
幣(폐)
|
全
州
后
人
李
吉
純
再
拜
|
뒷
면
|
納
幣
物
目
|
앞
면
|
全
州
后
人
李
吉
純
再
拜 |
年
月
日 |
훈(훈)
壹(일)
段(단)
紅(홍)
段(단) |
一(일)
玄(현)
壹(일)
段(단)
靑(청)
段(단) |
納
幣
物
目
|
○
納(납)
幣(폐)
|
(1) 함 봉하는 순서
- 화문석을 깔고 예탁이나 상위에 홍색보를 깔고 그 위에 함을 올려놓는다.
- 함속 맨 밑에 한지나 속보자기를 펴고 그 위해 황낭 주머니를 놓는다.
- 다섯 개의 황낭 주머니에는 고추·수수·목화씨·향·팥·노란콩 등을 7개 또는 9개씩 담아 넣는다.
- 청옷감은 홍색 한지에 싸서 청색 비단실로 동심결을 해서 넣고 홍옷감은 청색 한지에 싸서 홍색 비단실로 동심결을 해서 넣는다.
- 쌍가락지, 노리개 등 패물은 작은 청홍 겹보자기에 싸서 넣는다.
- 사주와 물목표를 넣는다.(약혼식 때 또는 미리 사주를 보낸 경우에는 물목만 넣는다.)
- 함 뚜껑을 덮고 홍색의 함보에 싸서 보자기의 네 귀퉁이를 모아 묶지 않고 근봉(謹封)이라 쓴 띠를 끼운다.
- 홍보자기로 싼 후 흰 광목 한 필로 함을 질 끈을 만들어 석자는 뒤에 끌리게 하고 나머지는 매듭이지지 않도록 고리를 만든다.
- 혼서지(예장지)는 네 귀퉁이에 금전지를 단 검은보에 싼다. - 신랑집 후행(상객)이 들고 갔으나 요즘 신랑 친구가 들고 간다.
물목표, 사주 |
황낭주머니 |
쌍가락지·패물(작은 청,홍보자기에 쌈)
황낭 주머니
홍단(청자로 싸 동심결)
청단(홍지로 싸 동심결)
--------한지또는보자기----------- |
녹차씨(일부종사)
목화씨(자손번창)
향(냄새제거)
노란콩(며느리심성부드럽게)
붉은 팥(잡귀) |
(2) 함 보내는 방법
함을 보낼 때는 남자 집에서도 찹쌀 팥 시루떡을 두켠 하는데, 이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을 의미하였다. 상위에 떡시루를 올려놓고 함진아비는 신랑부모에게 절을 한 후 함을 지고 신부집으로 간다.
- 조상에 고한 다음 근친의 한사람이 집사(執事)가 되어 혼서를 받들고, 다른 사람이 함진아비가 되어 함을 지고 가는데 모두 성장(盛裝)한다.
- 집사가 신랑의 어른에게 절하고, 주의사항 등 교훈을 받고 떠난다.
- 신부집에 이른 두 사람은 예의를 갖추어 경건 엄숙하게 거행한다.
- 이웃이 알도록 시끄럽게 하거나 신부 측을 곤혼스럽게 해서는 아니 된다.
- 신부측에서 준비한 함을 놓을 자리에 함을 놓는 일까지는 신랑측의 일이므로 일체의 행패나 장난은 삼가야 한다.
- 신랑감은 가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다른 사람이 집을 모를 수도 있으므로 길과 집만 가르쳐주고 돌아온다.
(3) 함 받는 장소
신부 측에서는 함 받을 장소를 마련하고
상위에는 떡시루를 올려놓고 붉은 보를 덮어 놓는다.
<납폐 받는 장소 배치도>
(北)
(西) 주인의 자리 (東)
신랑측 집사 떡시루 신부측 집사
함진아비
(南)
(4) 함 받는 절차
함을 받는 절차는 전통이나 현대 비슷한데 다음과 같다.
신부는 노랑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가족들도 예를 갖춰 단정한 옷차림을 한다.
- 신랑측의 일행이 도착하면서 신부의 아버지가 병풍 앞에서 상을 향해 서 있다.
- 신부측 집사가 도착하면 신랑측 일행을 인도해 신랑측 집사는 상의 서쪽에서 동향해 서고 함진아비는 집사의 오른쪽 뒷편에서 동향해 선다. 신부측 집사는 동쪽에서 서향해 선다.
- 신랑측 집사가 신부측 집사에게 혼서함을 두 손으로 준다.
- 신부측 집사는 혼서 함을 받아, 끌러서 혼서 봉투를 신부의 아버지에게 받들어 올린다.
- 신부의 아버지는 혼서를 봉투에서 꺼내 읽은 다음, 다시 봉투에 넣어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본래 대로 혼서함을 묶는다.
- 신부의 아버지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납폐를 받겠습니다"라고 말한다.
- 신부측 집사가 서쪽으로 와서 신랑측 집사와 협력해서 함진아비에게서 함을 벗겨 상위의 떡시루 위에 올려놓는다.
- 이때 함진아비가 함을 벗지 않으려고 승강이를 부리는 풍속이 전해져 오고 있기도 하다.
- 양측 집사와 함진아비가 상의 남쪽으로 옮겨 북향해 선다.
- 신부의 아버지가 상의 동쪽 자리 위로 옮겨 상을 향해 두 번 절한다.
- 신부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고 들어가 일가친척들에게 물목·혼서지·채단을 두루 보여 주고 다시 함 속에 넣는다.
- 일행에게 후하게 음식을 대접해 주고 신부집의 여건에 따라 다소의 노자를 주어 노고를 위로하였다.
- 떡은 신부의 주발 뚜껑으로 밤 대추와 함께 떠서 먹이는데 이것은 아들 낳기를 원하는 의미에서였다. 그리고 함떡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 와서 먹게 하였다.
함속에 넣은 예물은 지방마다 달랐는데 사례편람에는 두 가지 이상을 하되, 열 가지를 넘어서는 안된다하여 지나친 사치를 방지하는 한편 정성으로 예물을 보내야 함을 뜻한다. 요즘 함값으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은 현대사회에 이웃과 신부집에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하는 방법이 필요하며, 신부도 함받을 때 옷차림을 단정히 한 후 맞이하도록 한다.
현대에는 약혼식에 사주를 보내지 않는 경우 혼인전 며칠 또는 하루 전에 함 보낼 때 채단과 함께 보낸다. 내용물은 전통혼례의 형식과 비슷하나, 시부모나 당사자들 희망에 따라 자유로이 가감한다.
옛날에는 사주함을 사용했지만 현대에는 트렁크나 큰 가방을 이용하기도 한다. 함보에 싸서 함띠로 매어 신부집에 메고 가는데 그 절차가 많이 간소화되었다. 함꾼들의 무례로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신랑 신부가 미리 조정하여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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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혼인예식(婚姻禮式) 친영(親迎)
혼담, 납채, 납기, 납폐는 혼인예식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고, 실제적인 혼인은 이 혼인예식에서 이루어진다.
고례에서는 이 부분을 '친영(親迎)'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다가 신랑의 집에서 혼인예식을 거행한 데에 연유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전통관습 혼인례는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그 곳에서 혼인예식을 거행했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친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혼인예식'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요사이 신식 혼인예식도 사실상 이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근래 복고풍조가 일어 전통혼례를 하는 경우도 이 부분을 거행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혼례'라고 말하면, 그 전부가 여기에서 다루려는 '혼인예식'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혼인예식은 그만큼 중요한 의식으로서 ① 서부모(誓父母), 초자·초녀례(醮子·醮女禮), ② 전안례(奠雁禮), ③ 교배례(交拜禮), ④ 근배례(?杯禮), ⑤ 합궁례(合宮隷)가 혼인예식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1) 초자례(醮子禮)
초자례는 초녀례와 더불어 혼인 당사자가 조상과 부모의 은덕을 기리며 혼임함에 있어서 서약하는 서부모례(誓父母禮)를 신랑이 장가들기 위해 자기의 집을 떠나기 전에 조상에게 고하고 부모의 교훈을 받으며 또한 부모에게 떳떳한 장부로서 지아비의 역할을 다할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자식을 낳고 키워 짝을 지워주는 날인데 부모로서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그런데 요사이의 실정은 부모의 교훈을 받고 예를 드림은커녕 목욕탕 가고 이·미용실 가기에 바빠서 서로 만나기조차 어려우니 참으로 한심하다. 마땅히 혼인예식을 거행하는 날 아침에 초자례와 초녀례를 행함으로써 부모의 도리와 자식의 도리가 함께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례에도 혼인예식에서만은 비록 벼슬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벼슬아치의 옷을 입는 것이 양해되었으니 그것은 인륜대사(人倫大事)에 임하는 신랑을 호사시키는 방법이며 예우(禮遇)였다.
- 혼인예식날 아침에 조상에 고한다.
- 사당을 모신 가정에서는 사당에 모신 조상 모두에게 고하지만 현대는 사당을 모시지 않으므로 임시로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고한다. 이때의 조상의 위패는 납채할 때와 같이 종이에 쓴다.(납채의 '?조상에게 고한다'참조)
- 조상에게 고하는 장소의 설치와 모든 제수차림, 절차 등도 납채 때와 같이 하되 축문식만 다음과 같이 한다.
- 만일 신식 혼인예식으로 혼인하거나 전통혼인례를 하더라도 예식장이 멀어서 예복을 입고 갈 수 없으면 초자례의 신랑복장을 통상복으로 해도 좋다.
▶ 초자례 축문서식(한글 현대식 양력)
이제
단군기원 4321년 11월 23일에 후손 길순은
선조할아버님 여러신위와
선조할머님 여러 신위 앞에 감히 아뢰나이다.
길순의 큰아들 용구는
오늘 김해 김경배의 둘째 딸과 혼인예식을 올리려 하나이다.
조상을 기리는 정성에 감개가 무량하나이다.
삼가 술과 과실을 차려 공경을 다해 아뢰나이다. |
▶ 초자례 장소의 설치
(北)
(西) |
|
신랑 |
|
(東) |
|
|
(상) |
|
기러기 |
어머니 |
|
|
|
아버지 |
여자
가족 |
|
(南) 문 |
|
남자
가족 |
- 북쪽의 상위에는 술이 담긴 주전자, 전대에 받친 술잔을 각 한 개씩 차리고, 상 앞에는 모사를 준비한다.
- 남자가족과 여자가족은 모두 북쪽을 상석으로 해 차례대로 선다.
- 기러기 상에는 붉은 보에 싼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머리가 서쪽을 가게 올려놓는다.
▶ 초자례의 절차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한 자리에 앉는다.
고례에는 어머니와 여자가 참석하지 않았으나, 현대는 당연히 참석해야 할 것이다.
- 성장한 신랑인 아들이 정한 자라의 북쪽에서 남향해 선다.
- 미리 정한 집사가 잔에 술을 따라 두 손으로 들고 서서 신랑에게 준다.
- 신랑이 남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자리 위로 올라가 술잔을 받고, 남향해 앉는다.
- 신랑이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술잔을 집어 모사에 세 번을 조금씩 지워 좨주 한다.
- 신랑이 일어나 자리의 서쪽 끝에 가서 서쪽을 향해 꿇어앉아서 남은 술을 마신다.
- 신랑이 일어나 자리의 서쪽으로 내려서서 술잔을 집사에게 준다.
- 신랑이 다시 남쪽을 향해 두 번 절한다.
- 신랑이 상의 남쪽으로 와서 남쪽을 향해 꿇어앉는다.
- 아버지가 교훈을 내린다.
"네가 이제 너의 짝을 맞으러 감은 우리 가통을 잊기(사람의 도리를 다하기)위함이다. 아내와 사랑하고 화합하기를 공경으로 부지런히 할지니라. 네가 그렇게만 한다면 모든 일이 합당할 것이니라.
왕영이상 승아종 (가) 사 면수이경 약즉유상
(往迎爾相 承我宗 (家) 事 勉帥以敬 若則有常)
- 신랑이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치심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만 감히 명하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낙 유공불감 불감망명 (諾 惟恐不堪 不敢忘命)"
- 어머니가 교훈을 내린다. "오직 무겁게 하고 오직 사랑해서 밤낮으로 장부의 도리를 어기지 말지니라. 유증유애 숙야무위 장부지도 (惟重惟愛 夙夜無違 丈夫之道)"
- 신랑이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사랑하시는 가르치심을 행할 수 있을지 오직 두렵습니다만 밤낮으로 부지런히 행하겠습니다. 낙유 공자훈 숙야근면 (諾惟 恐慈訓 夙夜勤勉)"
- 신랑이 일어나서 남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나간다.
- 아버지는 기러기를 들고 갈 안부(鴈夫)에게 머리가 왼쪽으로 가게 기러기를 안겨준다.
- 어머니는 아들을 따라 나가면 옷매무새를 쓰다듬는다.
(2) 초녀례(醮女禮)
초녀례의 취지는 초자례의 취지와 같다.
▶ 초녀례 축문식(한글 현대식 양력)
이제
단군기원 4321년 11월 23일에 후손경배는
선조할아버님 여러 신위와
선조할머님 여러 신위 앞에 감히 아뢰나이다.
경배의 둘째 딸 옥순은
오늘 전주 이길순의 큰아들과 혼인예식을 올리려 하나이다.
조상을 기리는 정성에 감개가 무량 하나이다.
삼가 술과 과실을 차려 공경을 다해 삼가 아뢰나이다. |
- 초녀례 장소의 설치와 절차는 신랑의 경우와 같다. 다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훈이 다르다.
- 아버지가 교훈을 내린다. "공경하고 경계해서 밤낮으로 시부님의 명을 어기지 말지니라. 경지계지 숙야무위 구고지명 (敬之戒之 夙夜無違 舅姑之命)"
- 어머니가 교훈을 내린다. "부지런하고 공경해서 밤낮으로 아낙의 예(禮)를 어기지 말지니라. 면지경지 숙야무위 규문지예 (勉之敬之 夙夜無違 閨門之禮)"
- 고모, 올케들이 옷매무새를 어루만지며 당부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삼가 명심해서 밤낮으로 꺼림이 없이하라. 근청부모지언 숙야무건 (謹聽父母之言 夙夜無愆)"
(3) 초례(醮禮)와 초례청
초례란 혼례에서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전안례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즉 교배례(交拜禮와) 합근례(合巹禮)를 합쳐서 초례라고 한다. 이 예식은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대면하여 백년 해로를 서약하는 것이다. 대청이나 뜰에 동서로 좌석을 마련하고 병풍을 남북으로 치고 교배상을 한가운데 놓는다. 상위에는 촛대 한 쌍을 켜 놓고 송죽을 꽂은 화병 한 쌍과 백미 두 그릇과 닭 한 자웅을 남북으로 갈라놓는다. 그리고 세숫대야에 물 두 그릇을 준비하고 술상 두 상을 준비하여 둔다.
초례상의 진설은 지방에 따라 다르며 가풍에 따라 다르므로 풍속대로 하는 것이 좋다. 초례청은 초례상을 진설해 놓은 곳으로서 요즘의 결혼식장과 같은 것이다. 대례청(大禮廳) 또는 전안청(奠鴈廳)이라고도 한다.
(4) 전안례(奠鴈禮)
전안례(奠鴈禮)의 유례는 천상(天上) 북두구진(北斗九辰) 중에 자미성군(紫微聖君)이 인간의 수복(壽福)을 맡은 천관(天官)이므로 혼인도 자미성군이 마련한 것으로 믿고 기러기를 선물로 먼저 예를 드리고(옛날에는 산 기러기를 드리고 예를 행하였으나 근래에 와서는 나무로 만들어 대용으로 사용한다) 백년해로(百年偕老)를 맹세하며 수복과 자손의 번영을 비는 의식이라 한다.
전안례는 신랑을 맞아 대례를 치루는 제일 처음의 절차로 신랑을 신부집에서 맞아들이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신부집에서 예의에 밝은 이가 문전에서 신랑을 맞아 세 번 읍하는데 이때 신랑도 따라서 세 번을 읍해야 한다. 이때 신랑은 안고 있던 목안(木鴈)을 안고 들어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안상(鴈床)에 놓는다. 신랑이 목안을 들지 않고 안부(鴈夫)가 들고 들어가 안상에 놓는 경우도 있다. 목안을 안상에 놓으면 신랑은 탁자앞에 꿇어앉아 분향을 한 다음 하늘을 우러러 두 번 절을 한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신부집에서 가족을 대표하여 한 여인이 나와서 안상에 놓여있는 목안을 안아다가 신부 앞에 놓는데 이것이 바로 전안(奠鴈)의 의식 절차이다.
이 절차를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신랑이 문전에 들어서면 원칙적으로 신부측의 주혼자가 나와서 정중하게 맞이해야 하는데 요즈음에는 시누 측의 오빠들이나 친척중의 젊은이 중에서 나와서 맞이한다. 그리고 초래상(醮禮床) 앞에다가 전안상(奠鴈床)을 놓는데 그 위치는 신부가 있는 방문 앞마당에다가 병풍을 치고 놓는 것이 좋다.
주혼자나 신부측 친척중의 한 사람이 신랑을 맞이하여 신랑의 앞을 서고 신랑은 인도하는 사람의 오른편 뒤를 따른다. 이때 신부의 부친이나 그 외 어른은 신랑을 읍하여 맞이해야 하며 신랑은 목안의 머리가 왼쪽으로 향하게 안고 전안석에 들어간다.
신랑은 전안석에 들어가 북쪽을 향해 꿇어앉아야 하며 목안을 전안사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는 꾸부리고 일어서서 뒤로 약간 물러나 재배를 한다. 그 다음에 신부측에서 한 여인이 나와서 목안을 안아다가 신부앞에 갖다 놓으면 된다.
옛날에는 대사당일(大事當日)에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전안례(奠雁鴈禮)만 하고 신부와 같이 신랑집에 와서 교배례 및 합근례를 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 홍색 보자기에 싸인 나무 기러기를 안은 기럭아비가 앞에 서고 신랑이 뒤따라 신부집으로 간다.
- 신부집에 도착하면 신랑은 기러기의 머리가 왼쪽으로 가게 하여 기럭아비로부터 기러기를 받는다.
- 문밖에 이르러 소반 위에 기러기를 가만히 올려놓는.
- 신랑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신부의 어머니에게 절을 두 번 한다.
- 신부의 어머니는 기러기를 상째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고례에는 신부의 어머니가 직접 받지 않고 신부집의 하인이 받아 가지고 들어갔다.
(5) 교배례(交拜禮)
이 의식은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상면하여 예를 교환하는 의식이다. 과거에는 생면부지의 남녀가 중매를 통해 청혼이 되면 이 교배례의 의식에서 상대방을 첫 상면하게 되므로 이 교배례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귀중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신랑이 초례청 동쪽 자리에 들어서면 족두리를 쓰고 연지를 찍고 낭자를 한 후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신부를 신부의 시자(侍者)가 부축하여 바닥에 깔린 백포(白布)를 밝고 나온다.
신랑은 동편에, 신부는 서편에서 초례상을 중앙에 두고 마주 선다. 신랑은 남쪽에 준비되어 있는 대야에서 손을 씻고, 신부는 북쪽에 준비되어 있는 대야에서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다.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면 신랑이 한 번 답례하고, 신부가 두 번 절하면 신랑이 다시 한 번 절한다.
-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은 초례청 동쪽 자리로 들어선다.
- 신부는 수모(手母)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바닥에 깔린 백포를 밝고 초례청 서쪽으로 들어선다.
- 신랑은 신부를 초례청으로 안내한다.
- 신부의 수모가 신랑쪽 자리를 편다.
- 신랑의 시반이 신부쪽으로 자리를 편다.
- 신랑과 신부가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선다. 처음으로 서로 대면하는 순간이다.
- 상견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세숫대야에 있는 물로 손을 씻는다.
- 신부는 수모의 도움을 받으며 신랑에게 두 번 절한다.
- 신부에 대한 답례로서 신랑은 신부에게 한 번 절한다.
- 신부가 신랑에게 다시 두 번 절한다. 또한 신랑은 신부에게 한 번 절한다.
- 신랑이 신부에게 읍하고 신랑과 신부는 각각 꿇어앉는다.
(6) 근배례(巹杯禮)
교배례의 의식이 끝났으면 이어서 합근례의 의식으로 들어간다. 대례를 진행하는 집사자가 합근분치서부지전(合巹分置婿婦之前)하고 말하면 신랑과 신부를 시중 드는 사람들이 표주박과 같은 술잔을 신랑과 신부 앞에 갖다 놓는다. 이 때 또다시 집사자가 시자침주(侍者斟酎)라고 말하면 시중드는 사람은 신랑과 신부 앞에 놓여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른다.
시자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권하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술잔을 조금 기울여 땅에 부은 뒤에 마시고 안주도 먹는다. 다음에 또 술을 따르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나서 마시는데 이번에는 땅에 표주박을 들어 서로 바꾸는데, 신랑의 잔을 위로 신부의 잔을 밑으로 해서 바꾼다. 이렇게 바꾼 표주박을 마시되 땅에 기울여 쏟지도 않고, 또 안주도 들지 않는다. 이렇게 초례가 끝나면 혼례식이 끝나게 된다.
- 신랑 왼쪽의 시반이 신랑의 잔을 들고 신랑 오른쪽의 시반이 술을 따른다.
-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나서 시반이 들고 있던 잔을 받아 술을 마신다.
- 신부 오른쪽의 수모는 왼쪽 수모가 들고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른다.
- 신부 왼쪽의 수모가 잔을 들어 신부의 입에 살짝 갖다 댄후 내려놓는다.
- 신부 왼쪽의 수모가 표주박을 들고 있으면 오른쪽의 수모가 술을 따른다.
- 신부의 수모가 신랑에게 표주박 술을 갖다 주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표주박의 술을 마신다.
- 신랑 왼쪽의 시반이 표주박을 들면 오른쪽의 시반이 술을 따른다.
- 신랑의 시반이 신부의 입에 표주박을 갖다 대면 신부는 마시는 표정만 짓는다.
- 합근례가 끝나고 나면 혼례식의 절차가 끝나는 것이다. 신랑과 신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가의 친척과 여러 하객들에게 큰절로 인사를 한다. 그러나 고례에는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기 전에는 누구에게든 큰절을 하지 않았다.
전통혼례 홀기(笏記) |
홀기는 혼례식을 진행하는 순서이다. 이때 식순을 알리기 위해 글 많이 배운 노인이 홀기(笏記)를 부른 일이 많았다. 그 순서는 지방 풍속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다음과 같으며 한국 전례원에서 혼인례 시연에 부르는 홀기는 초자례부터 상면제친까지 시연하는 홀기도 소개한다.
<혼인 홀기(婚姻笏記)의 예(例)>
- 주인영서우문외(主人迎婿于門外) - 주인이 문밖에 나아가 신랑을 맞아 들인다.
- 서읍양이입(婿揖讓以入) - 신랑이 읍하고 들어온다.
- 시자집안이종(侍者執鴈以從) - 시자(侍者)가 기러기를 안고 신랑을 자리로 안내한다.
- 서취석(婿就席) - 신랑이 자기 자리로 들어선다.
- 포안우좌기수(抱鴈于左其手) - 신랑이 기러기의 머리를 왼쪽으로 가도록 안는다.
- 북향괴(北向괴) - 북쪽, 정청(正廳)쪽을 향하여 꿇어 앉는다.
- 치안우지(置鴈于地) - 기러기를 소반위에 올려 놓는다.
- 면,복,흥(俛,伏,興) - 허리를 구부린채 일어 난다.
- 소퇴재배(小退再拜) - 약간 뒤로 물러서서 두 번 절한다.
-이상이 전안례(奠雁禮)-
- 서지석말(婿至席末) - 신랑이 초례청(醮禮廳) 동편 자리에 들어선다.
- 무도부출(拇導婦出) - 신랑의 시자(侍者)가 신부를 부축하여 나온다. (백포(白布)를 깔고 그 위를 밟고 나온다.)
- 서동부서(婿東婦西) - 신랑은 동편에 신부는 서편에서 초례상을 중앙에 두고 마주선다.
- 진관지세서관우남부관우북(進盥進洗婿于南婦盥于北) -신랑이 손 씻을 물은 남쪽에 신부가 손 씻을 물은 북쪽에 놓는다.
- 서부종자옥지(婿婦從者沃之) - 신랑 신부는 각각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다.
- 부선재배(婦先再拜) -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한다.
- 서답일배(婿答一拜) - 답례로 신랑이 한번 절한다.
- 부우재배(婦又再拜) - 신부가 다시 두 번 절한다.
- 서우답일배(婿又答一拜) - 신랑이 답례로 다시 한번 절한다.
-이상이 교배례(交拜禮)-
- 서읍부각궤좌(婿揖婦各跪坐) -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각각 꿇어 앉는다.
- 시자진찬(侍者進饌) - 시자가 술잔을 신랑 신부에게 각각 준다.
- 시작각짐주(侍者各斟酒) - 시자가 술잔을 신랑 신부에게 각각 준다.
- 서읍부제주거효(婿揖婦祭酒擧肴) - 신랑은 읍하고 술을 땅에 조금 붓고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상위에 놓는다.
- 우짐주(又斟酒) - 시자가 술잔에 다시 술을 붓는다.
- 서읍부거음불제무효(婿揖婦擧飮不祭無肴) - 신랑은 읍하고 술을 마시되 안주는 들지 않는다.
- 우취근서부지전(又取巹婿婦之前) - 표주박과 같은 술잔을 신랑 신부 앞에 놓아 준다.
- 시자각짐주(侍者各斟酒) - 시자가 표주박과 같은 술잔에 각각 술을 붓는다.
- 거배상호서상부하(擧盃相互婿上婦下) - 신랑 신부는 표주박과 같은 술잔을 서로 바꾼다.
- 각거음(各擧飮) - 신랑 신부는 각기 술을 마신다.
- 예필철상(禮畢撤床) - 예를 끝내고 상을 치운다.
- 각종기소(各從其所) - 신랑 신부는 각각 처소로 돌아간다.
대례 후의 예의범절 |
대례가 끝나면 신부가 병풍을 쳐 놓은 안방에 먼저 들어가고, 신랑은 후에 들어가거나 다른 방으로 가기도 한다. 이 때 신랑은 '관대벗김'이라 하여 사모관대를 벗고 신부 집에서 만든 옷으로 갈아 입는다. 이어 신랑은 간단한 요기상을 받고 이것을 물리고 난 뒤, 상객과 함께 별도의 큰상을 받는다. 여기 올린 갖가지 음식은 후에 신랑 집으로 보내진다. 상객은 사돈댁 어른과 인사를 나눈 뒤 보통 혼례일에 돌아간다. 신부가 혼례를 치른 그날로 신랑과 함께 시가로 가는 일도 있는데 이를 당일우귀라 하고 삼일신방을 치르고 가는 것을 삼일우귀(三日于歸)라 한다.
신랑과 신부가 첫날 밤을 보내기 위해 신방에 들면 '주안상'이라는 간단한 술상이 들어간다. 신랑 신부는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신랑이 신부의 족두리와 예복을 벗기고 잠자리에 드는데, 이 때 '신방 엿보기'라 하여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들이 신방의 창문을 뚫어 구경한다. 이튿날 신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죽이나 떡국을 신랑에게 대접한다. 아침 식사 후 신랑은 신부의 부모와 가까운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오후에는 신부측 젊은이들이 '신랑 다루기' 또는 '동상례'를 한다.
(1) 합궁례(合宮禮 : 신방차리기)
신랑과 신부가 한방에서 처음으로 함께 지내는 방을 신방이라 하고 그날 밤을 첫날밤이라고 한다. 밤이 되면 신랑의 자리는 동편, 신부의 자리는 서편에 편다. 신랑의 자리는 신부의 하녀가, 신부의 자리는 신랑의 하인이 펴고, 신랑이 벗은 옷은 신부의 하녀가 받고 신부의 옷은 신랑의 하인이 받는다. 촛불을 끄고 부부가 자리에 들면 하녀만이 문밖에서 신방 지키기를 한다. 우리 나라의 특유한 혼인 풍속의 하나로 결혼 첫날밤에 신랑 신부가 취침하기 전후하여 신부집의 친지들이 신방의 창호지를 뚫고 방안을 엿본다. 이 풍습은 옛날 조혼(早婚)으로 인하여 여가(女家)에서 신부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2) 상수와 사돈지
신부집에서는 혼례가 끝난 뒤 식에 사용했던 여러 가지 음식을 신랑집으로 보낸다. 이 음식을 가리켜 상수라 한다. 상수를 보낼 때는 상수송서장 (床需送書狀)이란 편지와 보내는 음식의 품목을 적은 물목(物木)을 함께 보낸다. 물목은 육(肉), 어(漁), 주(酒), 과(果), 포(脯)의 순서로 기입한다. 그리고 신부의 어머니가 신랑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동봉하는데 이를 사돈지라 한다. 문안인사와 아울러 부족한 딸을 아껴주고 잘 가르쳐 달라는 사연을 적은 편지이다.
<상수송서장 한문식>
査
弟
○
○
○
拜
上
|
年
○
月
○
日
|
惟유
待대
恕서
罪죄
耳이
라
餘여
不불
備비
伏복
惟유
鑑감
察찰
하
소
서 |
自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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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승
喜희
悅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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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연
이
나
所소
謂위
禮예
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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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미
免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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羊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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愧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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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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看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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益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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覺각
積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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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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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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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소
敎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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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실
過과
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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査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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郞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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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청
儀의
美미
範범
이 |
謹근
未미
審심
漢한
回회
에
返반
碣패
利이
稅세
仁인
而이
庇비
鴻홍
休휴
否부
아
區구
區구
所소
祝축
不불
非비
尋심
常상
이
라
|
醮초
筵연
奉봉
晤오
暖난
如여
春춘
風풍
而이
遺유
香향
이
尙상
留유
塵진
榻탑
하
니
不불
能능
채채
焉언
이
라 |
<역 해>
초례 의식을 베풀던 날의 온화하고 향기로운 분위기는 아직도 그윽합니다.
이 때를 맞이하여 귀댁의 영광을 바라는 바이옵니다.
새 사위는 거동이 깔끔하고 얼굴이 비범하여 볼수록 기특하였으니,
이런 모든 것이 덕을 쌓아 깨달은 결과일 것이며,
지체 있는 가문의 가르침의 소치라 할 것입니다.
실로 기대를 훨씬 넘은 일이라 스스로 즐겁고 기쁜 마음 가누기 어렵사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것이 너무나 볼품이 없으니 부끄러운 땀을 멈추지 못하겠사오며,
오직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랄 따름입니다.
년 월 일
사제 0 0 0 배상 |
(3) 우귀와 현구례
우귀란 신행(新行)이라고도 하며 신부가 정식으로 신랑집에 입주하는 것이다. 현구례는 신부가 시부모와 시댁 친척들에게 처음으로 절을 올리는 예로서, 우귀일 혹은 다음날 아침에 행한다. 신랑의 직계 존속에게는 폐백을 올리면서 사배(四拜)를 행하고, 나머지 친척들에게는 한 번 절한다. 오늘날에는 결혼식 당일에 예식장에서 폐백실을 이용하여 폐백을 올림으로써 대행한다. 이로써 신부는 명실상부하게 시댁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고례에서는 현구례까지가 친영례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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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백 |
혼례식을 끝내고 신랑집에서 행하는 의식으로 신부가 신랑의 가족을 정식으로 처음 대면할때 드리는 예물 즉 음식을 폐백이라 한다. 폐백에는 대추와 꿩을 쓰는데 대추는 시부에게, 꿩은 시모에게 드리는 것이다. 시부만 계시면 대추만, 시모만 계시면 꿩만 쓴다. 시부모가 안 계시면 폐백을 드리지 않는다.
(1) 폐백음식
- 폐백대추 : 굵은 대추로 골라서 깨끗하게 씻어 건진 것을 양푼에 담아 표면에다 술과 꿀을 뿌려서 따뜻하게 보온하면, 대추가 불어나고 검붉은색으로 부풀어 보기 좋게 된다. 이렇게 손질한 대추에 실백을 아래 위로 박은 다음 다 홍실에 한 줄로 꿴다. 대추를 꿰는 실은 도중에서 끊지 말고 한 줄로 꿰어야하며, 이것을 원형의 쟁반에 소복하게 담는다.
폐백산적 : 쇠고기를 살 부위로 골라 3근이나 5근 또는 7근 등 홀수로 준비한다.
이 것을 곱게 다져서 여러 가지 조미를 하고 반을 짓는다. 가로 20∼25cm, 너비 8∼10cm, 두 를 3∼5cm의 크기로 만들어 햇볕에서 꾸덕꾸덕하게 말린다.
반말림한 것으로 모양을 매만진 다음 실백을 다져서 윗면에 뿌린다. 요즈음은 쇠고기를 얇게 저며 양념하고 바싹 말려 육포(肉)를 만든 다음 이것을 여러 장 포개어서 만들기도 한다
- 폐백닭 : 닭의 배를 가른 다음 목의 부위를 약간 세우는 듯하게 모양을 만들고, 편안하게 앉은 모양으로 손질하여 삼삼하게 간을 하여 찐다. 찌는 도중에 닭의 등 부위에다 알지단, 표고버섯을 곱게 채로 썬 것과 실고추와 실백으로 고명을 얹어 장식한 다음 다시 한 김을 들인다.
(2) 폐백 싸는 법
이렇게 만든 폐백 음식의 허리에다 ' 근봉'(謹封)의 두 자를 쓴 간지로 띠를 둘러 쟁반에 담고, 각각 홍색의 합보(겹보자기)로 싼다. 이때 홍색(紅色) 보자기의 네 구에는 금전지를 단다. 폐백 음식을 쌀 때에는 잡아매지 않고 중심으로 쥔 다음'근봉' 두 자를 쓴 간지(簡紙:3cm 나비정도) 허리를 매듯이 둘러 모아 붙인다. 축하의 뜻과 결연의 뜻이 담긴 음식이므로, 얽매이지 않고 풀기 쉽게 하려는 에서 생긴 풍속이다.
원래 술은 폐백 음식으로 쓰지 않는다. 폐백을 드릴 때 대추를 빠뜨리지 않고 쓰는 것은 대추가 신선(神仙)의 과일로 장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추나 밤을 던져주는 것은 며느리가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뜻에서라고 하는데 이 풍속은 최근에 생긴 것이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므로 예전엔 하지 않았다.
(3) 폐백보
첫 겉보자기는 폐백 상보로 사용하는데 가로 세로가 100cm되는 홍 겉보자기를 만들어 네 귀에 연두빛 금전지를 단다. 속보자기는 폐백마다 각각 따로 싸게 되므로 시부모만 계실 때는 2개 시조부모가 계실 때는 4개를 준비하는데, 각 지방의 풍습에 따라 빛깔도 여러 가지이나 대게 다홍색으로 안팎을 곱게 박아 귀퉁이에 금전지를 달기도 하고 크기는 폐백의 분량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가로 세로의 길이가 70cm정도면 된다.
(4) 근봉 (謹封)
폐백보는 잡아 매지 않고 빳빳한 종이를 아래 위 없이 둥글게 말아서 5cm정도 되도록 자른다. 다음에는 길이로 근봉이라 써서 보자기의 네 귀퉁이를 잡아 모아 근봉으로 끼운다. 근봉 위로 나온 술이 달린 네 귀를 각각 접혀서 늘어지게 하면 위가 연꽃 모양처럼 되어 아름답다.
<현구고례 드리기>
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시부모에게 정식으로 첫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고례(古禮)에 의하면 신부는 우귀(于歸), 즉 요즘말로 신행(新行)을 하여 신랑집에서 첫날밤을 자고 그 이튿날아침 일찍 시부모님께 처음으로 큰절을 올렸었다.
이를 현구례또는 현구고례(見舅姑禮)라 한다. 신부는 이 예를 올리기 위해 시부모에게 드릴 음식을 준비하여 가는데 이를 폐백이라 했다.
- 대청에 자리를 마련하고 병풍을 친다.
- 시아버지는 동쪽에 앉고 시어머니는 서쪽에 앉는다.
- 만약 시조부모(媤祖父母)가 계시더라도 시부모부터 먼저 뵙고 그 다음에 시조부모를 뵙는다.
- 시부모가 없으면 폐백음식은 마련하지 않는다.
- 폐백은 시조부모가 살아 게시면 시조부모께도 폐백을 드려야 한다.
- 현구고례 다음은 촌수와 항렬에 따라 차례대로 인사를 드린다.
- 고례예는 신부만 절을 하고 신랑은 신부가 절할 때 절하지 않는다.
<현구고례절차>
- 신부는 양쪽 수모의 도움을 받으며 시부모에게 각각 네 번 큰절을 올린다.
- 앉을때는 수모가 먼저 앉고, 일어설 때는 신부가 먼저 일어선다.
- 네 번 큰절을 한 뒤에는 반절을 하고 뒤로 물러선다.
- 시부모는 신부의 치마에 대추를 던져 주며 아들을 낳으라는 등의 덕담(德談)을 해준다. 대추는 부귀(富貴)와 다남(多男)을 의미한다.
- 신부가 다시 앉으면 시아버지는 대추를 며느리 치마 앞에 던져 준다. 수모는 그것을 받아 신부 원삼 안에 넣어 주면서 첫아들을 낳으라는 등 잘되기를 비는 덕담(德談)을 한 뒤, 그릇에 옮겨 신부방에 갖다 놓아 밤에 먹도록 한다. 이 때 시어머니는 편포 위를 두드리며 어루만진다. 이것은 신부의 흉허물을 덮어 달라는 것이다.
- 시어머니는 신부에게 대추를 던져 주지 않는다. 만일 시아버지가 없을 때는 사당에 고하여 폐백하여 나온 다음에, 시어머니가 "이것이 너의 시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며 대추 몇 개를 그릇에 담아 며느리에게 준다.
-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고 나면 폐백은 수모가 물리고 빈 상만 놓아두고 다른 친족들에게 예수를 드리게 한다. 시조부모가 계시면 두 분의 폐백도 따로 준비하여, 시부모에게와 똑같이 폐백을 드리게 한다. 친족에게는 폐백이 없고 절만 하게 한다.
- 시삼촌, 시고모 등 항렬이 높은 어른에게는 내외분이 함께 앉게하여 4배를 한다. 같은 항렬은 선후를 따져 손윗분에게 한 번씩(내외가 같이 앉을 때는 두 번)하고, 손아랫분에게 저쪽에서 먼저 절을 하면 답례로 맞절을 한다.
- 이 절차가 끝나면 신부는 신랑의 저쪽으로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신부가 마련한 갖가지 선물을 직계· 친척· 인척 순으로 나눠주고, 신랑측에서도 신부에게 선물이나 축의금을 준다.
(6) 구고향지(舅姑饗之)
폐백이 끝나면 시댁에서는 며느리 교자에 담아 사돈댁으로 보내는 것이다. 사돈이 잘 살면 그 댁에서도 사위상이 마주 오며 여의치 않으면 한쪽에서만 오게 된다.
(7) 조석문안(朝夕問安)
새댁은 사흘을 시댁에서 머물게 되는데 조석으로 원삼과 낭자족두리를 하고 하님이나 유모가 시부모 방에 데리고 가서 문안을 드린다. 이때는 큰절을 하고 섰으면 앉으라고 명한 뒤, 무엇을 물으시면 '예' 하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을 방바닥에 짚는 것으로 답이 되었다 한다.
부모가 진지를 잡수실 때도 다 잡숫도록 내내 서 있는 것이다.
시댁에서 사흘이 지난 뒤 시댁명에 따라 사흘이고 나흘이고 친정에 간다.
새댁은 시가에 때 신랑 옷과 시부모 드릴 것과 장롱, 자기가 평생 입을 것을 이때 가져가는 것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