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싫다고 모른척 할 순 없잖아?"..독일 극우정당 덕분에 만점 광고 효과
김귀수 입력 2021. 08. 21. 10:05
독일의 한 음료회사가 최근 출시한 제품. 유력 정당의 이름과 공약이 적혀 있다. (출처=트루프루츠트 홈페이지)
다음달 23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독일에서 한 음료업체가 출시한 제품이 소비자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트루 프루츠'라는 회사가 현재 독일 원내에 진출한 6개 정당의 이름과 각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내놓은 공약이 적힌 과일 음료를 내놓은 겁니다.
제품 판매 전략이 '신박'하다, 또는 정치를 대하는 게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이 제품이 논란이 된 건 뜻밖에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때문입니다.
■마트 진열대에서 치워진 'AfD 맛'
'트루 프루츠'는 이 제품에 각 당의 대표 공약 9개를 적었는데, 이 가운데 2개는 가짜 공약이었습니다. 음료를 사는 소비자가 어떤게 가짜 공약인지 맞춰보라는 의미입니다. 맛은 기존의 과일 음료와 다를 게 없을 테고, 선거철을 맞아 내놓은 참신한 판매 전략 정도였습니다. '진실 또는 거짓 게임'이라는 이름 붙여진 이번 행사 제품에 각 정당의 지지자들의 소비가 늘 수도 있으니까요.
논란이 시작된 건 유통업체 '에데카'가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프린팅된 제품을 매대에서 치우면서부터입니다.
AfD는 잘 알려진대로 독일의 대표적인 극우 성향 정당입니다. 2015년 난민 사태 때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시키며 세력을 키웠고, 이 당의 하부 조직들은 극단적인 인종차별 발언 등으로 독일 헌법수호청의 조사를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에데카는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는 AfD를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선반에는 빈자리가 없습니다"는 글을 포스팅해 AfD가 프린팅된 제품을 진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에데카가 ‘AfD’ 제품을 매대에서 치우자 트루 프루츠는 즉각 ‘우리(에데카)의 선반에는 정치 교육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을 글을 SNS에 올려 반박했다. (출처=트루 프루트 인스타그램)
■"싫어도 모른척 해선 안 돼"…결과적으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광고 효과
트루 프루츠 측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우리 선반에는 정치 교육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에데카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트루 프루츠)도 AfD가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육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에데카가 AfD를 치운 것을 ' 당황스러운 사회적 신호'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싫다고 모른 척하기보다는 제대로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외면하는 게 사회적으로 더 좋지 않다는 비판이기도 하고요.
SNS 등에서는 '마땅한 일을 했다'며 에데카의 조치를 옹호하는 반응과 함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 언론들은 "SNS에서 '엄청난 폭풍'이 일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논란으로 트루 프루츠가 엄청난 광고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도발적인 광고로 주목을 끌기 원했고 대성공을 거뒀다는 겁니다.
“이슬람? 우리 부엌에는 어울리지 않아.” 무슬림을 비하하며 독일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2017년 총선 당시 독일 대안당 선거 포스터
■인종 차별, 혐오, 나치시대 물타기까지…그래도 이번 총선에서 10% 이상 득표 예상
위에서 언급했지만 '독일을 위한 대안(AfD)'는 극우 성향 정당입니다. 최근엔 뜸하지만 인종 차별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당입니다.
당 대변인이라는 자가 사석이지만 "난민이 독일에 들어오면 사회가 어지러워질 것이고,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 수월해진다. 그 후 난민들을 가스로 처리하거나 총으로 죽이면 된다"는 무시무시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나치 시대에 대한 '죄책감 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문명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2017년 총선에서 무려 94명의 의원을 원내에 진입시켰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0% 안팎의 지지율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이번 총선에서도 100명 안팎의 의원을 배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AfD가 기업들의 광고 논란에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독일도 '정치의 계절'이 왔다는 것과 함께 AfD가 독일 사회의 '뜨거운 감자'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김귀수 기자 (seowoo1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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