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에게 부침 신유(1801, 순조 1년, 선생 40세) 3월 2일 하담(荷潭)에 도착하여 보낸 편지임.
이별할 때의 회포는 말할 것이 없거니와, 어느 날에 너희 어머니를 모시고 동쪽으로 돌아갈 것이냐. 될 수 있으면 즉시 돌아가서 조용히 있기를 바란다. 나는 길을 떠나오면서 몸이 날로 건강해져서 그믐날은 죽산(竹山)에서 유숙하였고 초하룻날은 가흥(嘉興)에서 유숙하였으며, 오늘은 금방 친산(親山)을 찾아 뵙고 떠나왔으니, 어느 곳에 간들 성은의 미침이 아니겠느냐. 감축할 뿐이다. 너희 어머니의 안색을 보면 위험하니, 영양 있는 음식으로 보하고 약을 써서 다스리도록 유의하여라. 이만 줄인다. 9일 장기(長鬐)에 도착하였음.
몹시 기다리던 중에 편지가 오니, 매우 마음에 위로된다. 무(武)의 병세는 아직도 여증(餘症)이 있으며 어린 딸도 점차 잔약해진다 하니, 민망하고 염려된다. 나의 건강은 약을 복용한 뒤로는 대체적으로 좋아져서 가슴이 답답하고 몸을 곧게 펼 수 없는 증세는 완쾌되었으나 왼 팔만은 아직도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러나 이것도 차차 나아질 것이다. 다만 이달을 당하여 공사(公私)의 애통한 일로 하여 밤낮으로 통곡하고 있으니 이 어떤 사람의 신세가 이러한지 모르겠다. 더 이상 적지 않는다. 6월 17일
날짜를 헤아려보니, 82일 만에 너의 편지를 받았구나. 그 사이에 내 턱의 수염이 희어진 것이 7~8개나 된다. 너희 어머니에게 병이 발생했을 것은 나도 짐작하고 있었거니와, 백부(伯婦)도 이질을 앓고 난 뒤라서 모습이 더욱 초췌해졌을 것이니, 생각하면 견디기 어렵구나. 그러나 신주(薪洲)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 반년 동안이나 소식이 막혔었으니 이러고도 한 세상에 함께 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나는 평지(平地 육지)에 앉아 있는데도 고생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신주에서는 어떠했겠느냐. 형수씨의 사정 또한 측은하니 너는 어머니 섬기듯이 해야 할 것이며, 육가(六哥)도 친형제처럼 대하여 마음을 다해 무휼해 주도록 하여라. 내가 밤낮으로 축원하는 바는 오직 문아(文兒)가 독서하는 것뿐이다. 문아가 선비되기를 염두에 둔다면 내가 다시 무엇을 한하겠느냐. 주야를 가리지 말고 부지런히 글을 읽어서 이 고심(苦心)을 저버리지 말라. 팔이 저려서 이만 줄인다. 9월 3일
너희들은 도(道)가 완성되고 덕이 성립되었다고 하여 다시 책을 읽지 않는 것이냐? 금년 겨울에는 모름지기 《상서(尙書)》와 《예기(禮記)》 중에 일찍이 읽지 않은 것을 읽는 것이 좋겠다. 또한 반드시 사서(四書)와 《사기(史記)》도 익숙히 읽어야 할 것이다. 사론(史論)은 그 동안 몇 편이나 지었느냐? 근본을 두터이 배양하고 소소한 광채 따위는 드러내지 말기를 지극히 바란다. 내가 저술(著述)에 전념하는 것은 단지 눈앞의 근심만을 잊으려는 것뿐이 아니다. 부형이 되어서 이토록 누를 끼쳐 준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이로써 속죄하고자 해서이니, 그 뜻이 어찌 심각하다고 하지 않겠느냐. 예설(禮說)에 뜻을 두지 않아서는 안 되겠으니, 《독례통고(讀禮通考)》 4갑(匣)을 학손(鶴孫) 편에 보내라.
[주1] 공사(公私)의 …… 하여 : 지난해 6월에 정조(正祖)가 승하하였는데 이 편지를 쓴 달이 그 첫 주기(週忌)였으며, 이해에 다산의 셋째 형인 정약종(丁若鍾)이 옥사(獄死)하였고, 중형인 약전(若銓)이 유배지인 흑산도(黑山島)에서 죽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2] 신주(薪洲)의 일 : 신주는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에 있는 신지도(薪智島), 정약전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했으므로 그를 가리킨 것이다.
[주3] 육가(六哥) : 정약전의 아들인 봉륙(封六)을 가리킴. 여러 종형제(從兄弟) 중 여섯 번째였으므로 칭한 것인데 뒤에 학진(學進)으로 개명하였음.
寄二兒 辛酉三月初二日到荷潭書
別懷不須言。何日奉汝慈東還耶。須卽還去。屏伏祝手也。吾在道身氣逐日有勝。晦日宿竹山。初一宿嘉興。今方一哭親山而去。何往非聖恩攸及也。感祝感祝。汝慈顏色極危。食補藥治留意也。不具。初九日到長鬐。
書來正及苦企中。慰意良深。武病尙有餘祟。幼女漸成殘敗。是用悶慮。吾狀服藥後。大抵稍勝。怔忡及身不直樹等症快可。惟左臂未及如常。然當次次向減耳。第當此月。公私痛隕。日夕攀慕。此何人斯。不多及。六月十七日
計日至八十有二日。而得來書。其間吾之頤下髮如鰣鯁者七八根矣。汝慈之病發。固所料量。伯婦痁後。形容尤當消鑠無餘。想念難堪。然薪洲事。言之臆塞。半載阻信。尙可曰生在一世乎。吾坐平地。苦況已如此。況薪洲乎。嫂氏情境。又惻然。汝其事之如母。六哥視猶同氣。極意撫恤可也。吾之日夕所祝願。惟文兒之讀書而已。使文兒能爲儒者心肚。吾復何恨。晨夕勤讀。無負此苦心也。臂酸不具言。九月三日
汝則道成德立。不復讀書耶。今冬須更讀尙書及禮記之未曾讀者爲好。亦須習見四書及史記可也。史論間作幾許篇耶。厚培根基。而韜瑣瑣之光稜。至望至望。吾之專意著述。非但目下消憂而已。所愧爲人父兄。而貽累至此。欲以此贖愆。其意豈不深哉。禮說不可不留意。讀禮通考四匣。付之鶴孫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