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길 4구간, 신륵사와 영릉을 걷다
1. 일자: 2023. 1. 20(금)
2. 장소: 여강길 4구간
3. 행로와 시간
[신륵사(10:40~11:35) ~ 여주대교(11:53) ~ 대노서원(12:25) ~ (점심) ~ 세종대왕릉(13:35~56) ~ 효종대왕릉(14:05~20) / 10.0km]
세종대왕께서 계신 여주 영릉에 가 보고 싶었다. 오랜 바람이었다.
여주에는 여강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있고, 마침 4코스가 신륵사에서 시작되어 영릉을 거쳐 세종대왕역까지 이어진다. 신륵사와 영릉을 엮으면 훌륭한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 진다.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판교역에서 경강선 전철을 타면 40분 남짓한 시간에 여주에 닿을 수 있다.
이런 저런 마음의 핑계를 떨쳐내고 길을 나선다.
< 신륵사 >
지난 여름에 오가는 길에 잠시 들렸던 신륵사 경내에 들어선다. 우리네 절집 중 드물게 강변에 위치한 곳이다. 바람 부는 강가에 서서 강 건너를 바라본다. 나룻터에 황포돛대의 모습이 선명하다.
정자와 석탑이 있는 바위 언덕을 먼저 찾는다. 이곳은 풍광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홀로 주변을 독차지하며 탑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놀이에 빠져든다. 정자와 모전탑 위에서 바라보는 강가 풍경도 근사하다.
모든 절은 바람이 지었다 한다. 어떤 바람이 이 강가에 절을 짓게 했는지 궁금했다.
신륵사 경내를 살핀다. 극락보전 위에서 바라본 풍경에는 석탑과 누마루와 강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근사하다. 이곳 역시 나 뿐이다. 고즈넉하다는 말의 실체를 경험한다. 절 뒤편을 서성이다 풍경 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가 우렁찬 소리를 낸다. 고요를 깨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참 맑다.
천천히 신륵사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나온다. 무엇보다, 마음이 차분해져 좋았다.
< 신륵사에서 영릉 가는 길 >
영릉으로 향하는 길, 본격적인 여강길 트레킹에 나선다. 여강길 전체를 안내하는 큰 지도를 사진에 담아둔다. 훗날 필요할 때가 있을 게다.
강변을 따라 걷다 여주대교를 건넌다. 다리 위에서 본 강과 주변 풍경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강가와 그 위 도로를 번갈아 가면 걷는다. 바람이 꽤 차다. 한참을 걷다 점심을 먹으러 시장 근처로 이동하다, 웬 한옥이 있길래 들어갔더니 우암 송시열을 기리는 서원이 있었다. 잠시 둘러 보았다. 꽤 규모가 컸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덜컹 스파게티을 주문했다. 딸려 나온 갓 구운 빵이 입맛을 돋운다. 사진을 정리한다. 늘 그렇듯 사진은 내 지난 여정을 가감없이 설명한다.
스파게티 맛은 특별히 좋지 않았지만 카페 분위기는 꽤 근사했다.
먹고 나니 추위는 덜 느껴졌지만 갈 길은 멀었다.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 강가를 버리고 읍내 도로변을 걷는다. 현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걷기에 지겨운 도로를 한참 걸어 커다란 영릉 앞 광장에 선다. 휑한 느낌이다.
< 영릉 >
먼저 세종대왕릉으로 향한다. 현대식 건물로 정비된 능 초입은 키 큰 소나무와 건축미가 느껴지는 건물, 그리고 너른 잔디 마당 등 갖출 건 다 있지만 왠지 낯설다. 기대했던 옛스러움이 없어서 인가 보다.
존경하는 세종께서 잠들어 계신 능은 하나의 산이었다. 높다란 언덕 위 석출물들이 보인다. 왕께서는 더 가까이 백성들과 접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멀리서 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문화재를 보존하면서도 보다 친근하게 보는 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터인데, 모든 왕릉은 똑같이 거리를 두려 한다. 관행과 시비에 휩싸이는 것이 두려워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진다.
세종대왕능과 효종대왕능을 연결하는 길에 선다. 오래된 굽은 소나무가 장관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기대했단 왕릉의 풍경이었다.
효종대왕능 앞에 선다. 이곳도 이름이 영릉이다. 능의 크기가 세종 영릉보다 작았지만 능의 봉분까지 볼 수 있어 훨씬 더 좋았다. 능을 내려오며 맞은,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좋았다. 특히 커다란 나무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