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믿음의 비밀 (살전 1:6-7)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이 시간에 “위대한 믿음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아이가 625때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뿔뿔이 흩어지고 고아가 되어 이 집 저 집 일해주며 살아가다가 부안에 염전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소금을 만들면 살겠다 싶어 그 비법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부안에서 가장 좋은 품질 좋은 소금을 가장 비싼 가격에 판다는 최씨 아저씨 집을 찾아가 갈 곳이 없고 배가 고파 돈 달라는 말하지 않을 테니 밥만 먹여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저씨가 소금 제조의 비밀이 알려질까 우려해 경계심을 풀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이름도 성도 쓰지 못하는 아이인 것을 가장하여 결국은 모든 기술을 배워 훌륭한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다가 잔잔할 때 바다의 윗물이 나트륨 함량이 적다는 것, 혹은 봄철 송화가루 날리는 16-17도에서 가장 좋은 소금이 생산된다는 것 등등 그 비법을 알아내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그 어느 것에도 비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딤전3:9에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듯이 우리 믿음생활도 그 비법이 있습니다. 본문에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거대한 헬라세계 즉 북쪽 마게도냐와 남쪽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본이 되었는데, 거기에는 그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믿음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그 믿음의 비밀은 연단입니다.
6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그 아름다운 믿음은 많은 환란 가운데서 말씀을 받은데 있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환란이 많았습니다. 우리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난과 함께 박해의 고난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행17장을 보면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리스도를 전할 때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일 때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여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고 얼마나 핍박을 가했습니까? 그래서 오래 전도하지 못하고 베뢰아로 떠났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앙생활했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고난은 밀접한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방송이나 신문 등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해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다는 간증을 많이 봅니다. 고난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입니다. 그래서 사48:10에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했고, 잠17:3에서는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바울도 고후12:10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했습니다. 계7:13-14에도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일찍이 러시아의 대문호요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라야 인생의 참 맛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눈물 젖은 빵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의 연단입니다. 믿음에서도 고난이 없으면 참 믿음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불같은 시련이 참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믿음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를 연단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셉도,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 욥도, 사도들도 모두 환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는 본을 보이셨는데 우리에게 왜 연단이 없겠습니까? 인간은 완악하여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환란이 없더라도 옥토 밭과 같이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믿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훈련할 수도 있습니다. 환난의 연단이 큰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2. 그 믿음의 비밀은 성령의 은혜였습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체험한 사람이었고 또 교인들이 환난 속에서 기도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복 있는 교회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요, 성령을 인정하는 교회요, 충만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 같은 성경을 가졌어도 성령에 관한 견해가 다르면 그 믿음은 피어날 수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구태의연한 헌 부대에 담으면 터집니다. 신약의 복음일지라도 형식적인 신앙의 틀에 가두면 불이 꺼지고 맙니다. 율법적 형식적 믿음으로는 줘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한국 초대교회 김익두 목사의 그 위대한 믿음도 성령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황해도 신천의 그 방탕하고 싸움 잘하는 그 형편없던 사람이 말씀을 듣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 회개했습니다. 어느 날은 밤새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하늘에서 달 같은 불덩어리가 가슴속에 들어와 쓰러진 일도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바로 그 후부터 더욱 뜨거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부흥사로 전국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 그리고 가장 위대한 신학자, 그리고 가장 위대한 성경학자, 그리고 가장 큰 일한 하나님의 일군, 그리고 복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 예수님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들라고 한다면 누구일까요? 사도 바울입니다.
금세기 세계적인 역사가 토인비는 “바울을 싣고 가던 배는 유럽을 싣고 가던 배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의 영향력으로 말한다면 유럽만이 아니라 신약성경의 13-14권, 특히 기독교의 교리의 대부분을 썼다는 점에서 참으로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쓰임 받은 것이 고전15:10에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성령의 은혜가 그를 크게 만들었습니다.
믿음만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는 아인슈타인도 본래는 재능이 없고 자폐증에다 수학할 능력도 없어 퇴학까지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26세 때 상대성 원리를 발표하는 등 그렇게 위대한 학자가 된 것은 어떤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영감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 보세요. 하루 만에 핍박과 순교를 기뻐할 만큼 자랐습니다.
3. 그 믿음의 비밀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말로만 믿지 않았습니다. 구주 예수님과 전도자 바울을 본받아 행함으로 믿었습니다. 성경 한 말씀이라도 들으면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에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나를 내려놓고 십자가를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본받는다는 말씀에는 늘 그리스도의 고난이 강조됩니다.
엡5:1-2에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했습니다.
빌3:10에도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말씀하면서 17-18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했습니다. 나를 죽이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데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의 그 큰 믿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감동을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주님을 묵상했든지 몸에 성흔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1224년 9월 14일에 프란시스가 '라 베로나' 산에 있는 기도실에서 기도할 때 두 손과 두 발과 옆구리에 성흔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주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본체시나 낮아져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자를 찾아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배웠듯 예수님의 그 삶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역사는 제자들이 평소 예수님이 하시던 그대로, 배운 그대로 행했을 때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했더니, 예수님처럼 찬송했더니,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목숨 바쳤더니 되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아울러 삶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7절)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첫 열매이신 우리 예수님처럼, 그리고 전도자 바울처럼, 헬라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믿음에 장성하기를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렇게 위대한 믿음을 가진 것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큰 비밀의 믿음을 가지고 우리 삶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앙의 훈련장인 것을 깨닫고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