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3 16:05 / 예강 칼럼/박형상(변호사)
1. “이청준과 목포행(1971)”
그 시절엔 대덕 출신이었다. 당시 대덕동교를 마치고, 광주를 거쳐 ‘잔인한 도시’ 서울에서 계속 활동하는 중에 지역차별의 강박감을 체감했던 것일까? 여러 글을 남겼다.
그렇다 해도 이른바 정치소설가는 아니었다. <목포행>은 <월간중앙, 1971년 8월호>에 발표되었는데, 1971년경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직후 무렵에 해당한다.
“일제시대 6.25전란, 4.19 의거 등 사회적 고초를 겪을 때마다 매번 죽었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불사조처럼 살아난 불패자, 육촌 외종형을 찾아보라!”는 모친의 간곡한 당부를 받고서 소설의 ‘나’는 ‘목포행’ 기차를 탄다. ‘나’는 목포가 고향도 아니며, 목포와 여수의 중간에 있는 ‘J읍’ 출신이다. 그 종점 목포역에 드디어 도착하면서 “아니, 그보다는 저 목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어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바다는 ‘재생ㆍ부활ㆍ탈출’을 은유할 수 있다. ‘나’는 제주도로 통할 만한 탈출구 ‘바다’를 발견했지만 외종형은 찾지 못했다.
이청준은 소설 <목포행>에서 ‘엇비슷한 심정의 동향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토로한 셈인지 모른다. <소매치기 연작 2편>에 해당된 <목포행>은 ‘나 소설가 + 나 소매치기’ 분신의 독백과 방백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 목록 한쪽은 고향찾기와 고향앓기 이야기가 차지한다. 그 귀향길 초기에는 교통편 때문에도 늘 ‘야행길’이었고, 바로 새벽길에 떠났다. 주변에서 인정할 만한 세속적 출세에 못 미친 처지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부친과 큰형의 연달은 죽음과 더불어, 6.25 전란기에 외갓집 참화로 초래된 고통과 빈궁이 심각했기에 서울 거주를 하면서 그가 남끝 고향을 찾아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눈길(1977)>이 널리 알려진 후부터 그 고향길이 조금은 더 수월해졌을 것이다. 그의 ‘장흥행’은 ‘목포행 호남선 영산포역’에서 ‘장흥읍’을 거쳐 ‘대덕, 회진’에 이르는 완행버스길이었다. 그는 그 외로운 길의 남끝 고향, 진목리 야산에 묻혔다. ( 소설 <목포행>에 ‘김대중’ 이름이나, 여타 정치적 사건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2. “한강, 여수의 사랑(2018)”
‘한강(1970~)은 이청준(1939~2008)보다 한 세대 아래이다.
‘고향(故鄕)’ 체험부터 서로 다를 수 있다. <여수의 사랑>은 ‘고향’이 낯설고, 사람들 상처가 깊은 도시의 음지에 사는 두 젊은 여성의 ‘고향찾기 분투기’로 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여수행’ 열차에서 시작한다. 객실 차창에 여러 줄기의 빗금들이 그어지던 날에 ‘나’는 ‘여수행 서울발’ 기차를 타게 되고 ‘나’의 회상은 시작된다.
주인공 화자(話者) ‘정선’ - 여수 출생. 아버지한테 두 자매가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혼자 살아남았다. 같은 셋방의 동료 ‘자훈’, ‘여수발 서울행, 통일호’ 기차간에서 두살배기 아이로 발견된 처지라서, 여수 출생자로 짐작되었다. ‘자훈’이 말한다. “어느 곳 하나 고향이 아니었어요”, “살아 본 도시들 중에 서울이 제일 정머리가 없어요.” 그녀들에게 이른바 고향 여수보다 타지에서 훨씬 오래 살았음에도 한 번 붙여진 고향 딱지는 변치 않았다는 것. “그렇다고 어떻게 고향이 바뀔 수 있어요?”라고 ‘자훈’이 반문한다.
돌이켜 주인공 ‘정선’의 결벽증과 구역질 역시 고향과 가족 친지 없이 홀로 사는 데서 생긴 문제일 수 있다.
더 돌이켜 아버지가 3부녀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여수항 선창사고 때문일 수 있다. 그 지옥에서 ‘나’ 홀로 살아남았다.
한편 셋방신세를 이제는 청산하기로 결정한 ‘자훈’은 여수를 혼자 다녀왔으며, 그 고향의 양지(陽地)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에 주인공 ‘정선’도 그간 타향으로 여겨지던 고향을 다시 찾는 심정으로 ‘여수행’ 열차를 탔다. 일곱살 때 떠난 이래 처음 타보는 ‘여수행’ 기차길,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고향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제 ‘여수의 사랑’을 위하여, ‘여수’를 찾아간다. 열차는 종점 여수역에 드디어 도착했다. 객실 차창에 큰바람이 후려치고 굵은 빗발들이 내려치고 있다.
과연 ‘정선’의 ‘여수’의 여정은 어찌 될 것인가? (기실 ‘한강’의 <여수의 사랑>은 이른바 <채식주의자, 전편(前編>에 해당할 수도 있다. 어린 두 딸을 물건처럼 여긴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무모함에서 ‘여수(旅愁/女愁)의 슬픔’이 시작된 것 아닌가?).
3. “이청준”과 “한강”의 차이점에 대하여
1) “장흥 땅” 공감대 - ‘이청준’은 대덕면 진목리에서 태어나서 회진면 진목리 사람으로 묻혔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서 광주에서 중고를 거쳐 서울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평생 거주하였으나 그의 ‘고향 생각’은 늘 ‘장흥 땅’에 내려와서 머물렀다. ‘대덕, 회진, 천관산, 서편제, 해변 아리랑, 회진포 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가볍게 흥분하셨다고 할까?
‘한강’은 그 부친 고향이 되는 장흥 땅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적도 없다. 광주 출생으로 이른바 ‘장흥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장흥 태생의 부모들 인생관과 소명의식 등을 가풍(家風)으로 물려받았을 것, 또한 그 부모 거주지, 장흥 안양 땅을 자주 오갔을 것.
또한 부친 작품을 긍정적 ‘반면(反面)교사’로 삼아 ‘승어부(勝於父)’에 성공한 자식일 수 있다. 굳이 장흥 연고를 찾자면, 비록 장흥 태생은 아니어도 ‘장흥 친정(親庭)’이 여전하니, ‘장흥 사람들의 딸’에 해당할 수 있겠다. 장차 <장흥의 사랑>에 관한 작품도 기대해 본다.
2) 문체 및 서술 방법 - 이청준’은 ‘우회적, 은유적, 중의적, 설득형’ 문장이다. ‘사회적 진실여부’가 관건이며,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강조한다. ‘신화와 설화, 동화’의 교훈을 차용한다. 언뜻 지루한 경우도 있으나 엉성한 듯하면서도 주밀하게 짜여진 구조 속에 반전(反轉), 알레고리 효과, 아이러니를 계산한다.
‘한강’은 ‘직설적이면서 은유적, 담판형’ 문장이다. 함축적인 단문형 어구를 통하여 이른바 ‘시적 산문’을 구사한다. 특정 이미지를 간단명료하게 그려내면서 주제 의식을 집요하게 고양한다.
3) 비교되는 작품 사례 - 제주 4.3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청준’은 1980년경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하여 <비화밀교, 1985>를 제주4-3사태에 관련하여 <신화를 삼킨 섬,2003>을 썼다. ‘한강’은 광주민주화운동에<소년이 온다, 2014>를 제주4-3사태에 <작별하지 않는다, 2021>를 썼다.
위 같은 사건에 대하여 두 작가가 드러낸 접근 태도 및 방법은 퍽 상이하다. 한편 이청준에게는 <시집>이 없고 <판소리 동화집> 등이 있는 반면에 한강에게는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2013>가 있다.
4) 상징적 사물을 처리하는 관점 - 예컨대 ‘새와 나무’의 상호관계를 보자. ‘이청준’은 ‘홀로 유랑하거나 사연이 있는 새, 빗속에 떠도는 새’를 제시하면서 그 맞은 편에 ‘새를 포용하는 어머니, 나무, 숲 또는 고향’을 배치해 둔다.
‘한강’은 ‘자유로운 새, 홀로 날아야 할 새, 피를 흘리는 새’를 전제하고서 그 주변에 ‘어둡고 무거운, 또는 저항하는 나무들, 숲’을 베치하는 식이다. 만약 ‘이청준’의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를 ‘한강’이 쓰게 된다면 <채식주의자 유소작씨의 분투기> 정도로 변형될지도 모르겠다. (‘이청준, 한강’에 있어 ‘흰색, 붉은색’의 상징성은 다음 기회로 넘긴다.)
5) 두 작가의 공통점- 사회적 억압과 물리적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혐오, 부끄러움과 원죄의식, 사회적 약자와 연대의식 등은 그 강약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되겠다. 사회적 통념과 습속적 잣대를 비판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2007>는 ‘가해자, 피해자’를 대비시키는 이청준의 ‘사회적 비판소설’ 유형과도 상통할 것이다.
▼<주>
1. ‘이청준, 목포행’- <2023년 5월호, 월간 천관>에 게재하였다.
2, 회진포 항구 - ‘서쪽 목포행 / 동쪽 여수행’으로 분기되었던 뱃길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목포’는 호남선 상경, ‘여수’는 전라선 상경으로 연결되었다.
3,‘한강, 채식주의자’,‘이청준 문학관’ - “ 한강은 그 작품성도 물론이려니와 장차에는 (2016년도 맨부커상보다) 더 평가받을 작가라 감히 여겨본다”라고 <장흥신문, 2019.12.27자. 예강칼럼>에서 말씀 드린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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