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임금의 사제문(賜祭文) [구봉서(具鳳瑞)]
숭정(崇禎) 6년 세차(歲次) 계유(1633, 인조11) 8월 경신 삭(庚申朔) 24일 계미에 국왕께서 신(臣) 예조 좌랑(禮曹佐郞) 이도(李禂)를 보내어 이미 졸한 행(行) 부호군(副護軍) 정경세(鄭經世)의 영전(靈前)에 제사 지내게 하셨습니다.
남쪽이라 영남 지방 바라다보니 睠彼南紀 권피남기
산악이라 강물이라 아름답구나 維嶽維瀆 유악유독
아름다운 기운 뭉쳐 서려 있어서 淑氣磅礴 숙기방박
그 기운이 인걸 탄생 시키었도다 挺生人傑 정생인걸
이에 도가 실추되지 아니하여서 道不墜地 도불추지
큰 선비들 줄을 이어 계속 나왔네 鴻儒接躅 홍유접탁
혼령께선 그 가운데 더욱 빼어나 靈惟拔萃 영유발췌
일찍부터 경전 공부 몰두하였네 早事經籍 조사경적
천부적인 자질 아주 순수하였고 天資秀粹 천자수수
지닌 기도 깊숙하고 드넓었었네 器度淵弘 기도연홍
맘 차분히 가라앉혀 정학하였고 潛心正學 잠심정학
고정 훈계 가슴 깊이 새기었다네 服膺考亭 복응고정
사우들과 절차탁마 공부하면서 切琢師友 절탁사우
몸소 실천하는 데에 맘 독실했네 踐履斯篤 천리사독
지닌 학문 문장으로 표현이 되면 發於文章 발어문장
보불처럼 아름답게 펼치어졌네 爲黼爲黻 위보위불
생각건대 지난 선대 조정에서는 粤在先朝 월재선조
아름다운 명예 자주 드러내었네 荐延名譽 천연명예
고포 같은 처지에서 발신하여서 拔跡菰蒲 발적고포
형구에서 아름다운 풍모 날렸네 振儀亨衢 진의형구
운각에서 국서 짓는 붓을 잡고는 芸閣秉筆 운각병필
나라 실록 편찬하는 데 참여했네 甚文於史 심문어사
임금 모신 자리에서 강론을 하매 氈席講義 모석강의
우하의 시대 아주 가까웠었네 虞夏孔邇 우하공이
만년 들어 어지러운 세상 만나서 晩遭昏亂 만조혼란
전원으로 돌아가서 은거하였네 乃遯于荒 내둔우황
잘못 진망 걸려들어 위태로웠고 身危秦網 신위진강
품은 재주 숨겼으나 더욱 빛났네 雖晦猶光 수회유광
험난한 길 두루두루 다 거치면서 歷盡險道 역진험도
금석같이 굳은 마음 더 굳어졌네 金石益剛 금석익강
긴긴 해에 시골에서 숨어 지내며 日長丘園 일장구원
좌우에는 도서 잔뜩 쌓아 놓았네 左書右圖 좌서우도
세상 아예 잊은 거는 아니었으나 非果忘世 비과망세
함 속에 옥 감추고서 팔지 않았네 韞櫝不沽 온독불고
내 일찍이 공의 풍모 소문 듣고서 予有夙聞 여유숙문
은연중에 풍운 만남 기약하였네 暗契風期 암계풍기
내가 임금된 첫 해에 불러들여서 初年側席 초년측석
가장 먼저 경악에다 앉히었다네 首置經帷 수치경유
아침저녁 법연에서 강론할 적에 法筵朝夕 법연조석
어짐 펴서 정사하란 잠언 올렸네 以仁爲箴 이인위잠
《노론》 한 질 나에게 강론하면서 一部魯論 일부노론
나의 마음 틔워 주고 깨우쳐 줬네 啓心沃心 계심옥심
세자 맡아 가르침을 내리면서는 訓誨元嗣 훈회원사
의리와 덕 강명하며 가르치었네 以義以德 이의이덕
두 차례나 자급 높이 올라간 것은 再峻其秩 재준기질
옛날의 도 강구하여 밝혀서였네 稽古之力 계고지력
임금 보도하는 데에 정성 다하여 匡輔乃誠 광보내성
종시토록 게으르게 하지 않았네 不怠終始 불태종시
상대를 맡아서는 법 지키면서 霜臺握憲 상대악헌
바른 도에 근거하여 일을 논했네 據經論事 거경논사
예조에서 판서 직책 맡았을 때엔 春官作長 춘관작장
올바른 예 아니면 말 아니하였네 非禮不言 비례불신
산공처럼 감식안이 뛰어났기에 山公澈鑑 산공철감
어진 선비 문정으로 모여들었네 賢士在門 현사재문
맹주되어 문단 모임 주관을 하매 主盟文壇 주맹문단
아름다운 명성 울연 피어올랐네 蔚然徽聲 울연휘성
다스림의 방도 자주 물었거니와 詢咨治理 순자치리
함께 나라 다스림에 마땅했는데 庶幾共貞 서기공정
물러가서 쉬겠다는 상소 올리곤 引章告休 인장고휴
갑작스레 고향 땅을 향해 떠났네 遄返桑鄕 천반상향
한 사람의 유신 거취 동향에 따라 儒臣去就 유신거취
실로 나라 흥망성쇠 달려 있기에 實係興衰 실계흥쇠
유시하는 교서 계속 내리어서는 諭書聯翩 유서련편
어서 빨리 올라오라 유시하였네 公來勿遲 공래물지
그런 차에 뜻밖에도 몸이 병들어 不圖一疾 불도일질
갑작스레 황천 향해 떠나갔다네 奄忽重泉 엄물중천
어쩜 그리 빠르게 공 앗아갔는가 奪我何速 탈아하속
저 푸른 하늘 향해 내 물어보네 問彼蒼天 문피창천
사림들은 모두들 다 슬픔에 젖고 悲纏士林 비전사림
조신들은 애통한 맘속에 맺혔네 痛結薦紳 통결천신
이리저리 조야를 다 둘러보아도 環顧朝野 환고조야
어느 누굴 내가 믿고 의지하리오 倚毗何人 기비하인
대궐 섬돌 향해 귀를 쫑끗 세워도 側耳殿陛 측이전폐
공이 오는 소리 없어 적막만 하네 履聲寂寞 리성적막
남쪽 향해 바라보며 그리워하나 南望興懷 남망흥회
애도하는 나의 마음 전할 길 없네 嗟悼靡及 차탁마급
이에 예관 불러서는 명을 내리어 玆令禮官 자령예관
날 대신해 영전에 전 올리게 했네 替奠泂酌 체전형작
어두웁지 않은 혼령 정말 있다면 不昧者存 불매자존
어서 와서 나의 잔에 흠향하시게 惟冀來假 유기래격
지제교(知製敎) 구봉서(具鳳瑞)가 지어 올렸다.
[주1] 고정(考亭) : 송(宋)나라의 대유학자인 주희(朱熹)의 호이다. 주희는 무원(婺源) 사람으로, 자가 원회(元晦)ㆍ중회(仲晦)이고, 호가 회암(晦菴)ㆍ회옹(晦翁)ㆍ고정 등이다. 경학(經學)에 정통하여 송학(宋學)을 대성(大成)하였는데, 그의 학문을 주자학(朱子學)이라고 칭하며, 조선 시대의 유학(儒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2] 절차탁마(切磋琢磨) : 옥석(玉石)을 다듬기 위해 쪼고 갈고 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덕을 쌓고 학문을 이루는 것도 그와 같이 닦고 다듬어야 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붕우 간에 서로 학문을 닦도록 격려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시경(詩經)》 〈기욱(淇奧)〉에, “절단해 놓은 듯하고 다시 간 듯하며, 쪼아 놓은 듯하고 다시 간 듯하다.〔如切如磋 如琢如磨〕” 하였다.
[주3] 보불(黼黻) : 보(黼)와 불(黻)은 모두 옛날에 황제의 예복(禮服)에 수놓았던 무늬인데, 보는 도끼 모양의 무늬이고, 불은 기(己) 자 두 개를 반대로 한 무늬이다. 전하여 문장을 지음에 있어서 화려하고 아름답게 수식하는 것을 말한다.
[주4] 고포(菰蒲) : 물가에서 자라는 줄풀과 부들풀로, 흔히 외로운 처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5] 형구(亨衢) :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넓고 평탄한 길로, 흔히 임금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6] 운각(芸閣) : 교서관(校書館)의 별칭이다. 우복은 선조 29년에 교서관 교리(校書館校理)를 지냈다.
[주7] 우하(虞夏) : 유우씨(有虞氏)가 다스리던 때와 하(夏)나라 때로, 백성들이 살기가 편안했던 상고 시대를 뜻한다.
[주8] 잘못 …… 위태로웠고 : 진망(秦網)은 진(秦)나라의 법망(法網)으로, 억울하게 법망에 걸려 화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우복이 1612년(광해군4)에 일어난 김직재(金直哉)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의금부에 갇혔던 것을 말한다.
[주9] 함 …… 않았네 : 덕을 숨긴 채 시골에 살았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을 경우 이것을 궤 속에 넣어 감추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받고 팔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받고 팔 것이다.” 하였다. 《論語 子罕》
[주10] 풍운(風雲) : 서로 뜻이 맞는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뜻으로, 《주역(周易)》 건괘(乾卦)에서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인데, 흔히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인조반정이 끝난 뒤에 우복을 조정으로 불러들인 것을 말한다.
[주11] 노론(魯論) : 《논어(論語)》를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에는 《노론(魯論)》ㆍ《제론(齊論)》ㆍ《고론(古論)》 등 세 종류의 《논어》가 있었다.
[주12] 상대(霜臺) : 사헌부(司憲府)의 별칭으로, 우복은 선조 때 사헌부 장령을 지냈으며, 인조 2년에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주13] 산공(山公) : 진(晉)나라 산도(山濤)의 별칭이다. 산도가 이부 상서를 맡고 있을 적에 숨어 있는 인재들을 널리 찾아내어 등용하였는데, 그가 등용한 30여 명의 관원들이 모두 재주와 학식이 있어 당시에 조정에서 이름을 드날렸다고 한다. 《晉書 卷43 山濤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