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초구〉와 〈상육〉효의 뜻
갑오년(1594, 선조27)〔易初九上六爻義 甲午〕
근래에 민응기(閔應祺)1) - 사부(師傅) - 가 서울에서 와서 말하기를 “상이 하문하기를 ‘《주역》 여러 괘(卦)의 다른 효(爻)는 〈구이(九二)〉, 〈구삼(九三)〉이라 하면서 유독 처음 효와 상효(上爻)는 〈초구(初九)〉, 〈상육(上六)〉이라 하는데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성인의 말이 어찌 그 이치가 없겠는가.’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삼가 성상의 하교를 들은 이후로 감격하고 고무되어 어리석음을 헤아리지 않고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감히 저의 뜻을 진술하여 우러러 전하를 번거롭게 합니다.
위대하도다, 왕의 말씀이여! 지극하도다, 왕의 말씀이여! 실로 후대 임금으로 여기에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특별히 이런 질문을 내시니 이는 진실로 중흥의 근본이며 백성의 복입니다. 신이 비록 아는 것이 없으나 감히 어리석은 자의 한 가지 지식을 올리고 보잘것없는 정성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신이 삼가 살피건대 〈건괘(乾卦) 초구(初九)〉 전(傳)에 “한 괘(卦)의 아래에 있어 사물을 시작하는 단서가 된다.”라고 하였고, 〈건괘(乾卦) 상구(上九)〉 본의(本義)에 “양(陽)이 위에서 지극하여 움직이면 반드시 뉘우침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곤괘(坤卦) 초육(初六)〉 전에 “성인(聖人)은 음(陰)이 처음 생겨날 때에 그것이 장차 자라날 것을 경계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설로 보건대, 두 효가 삼감이 있고 경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합괘(噬嗑卦) 초구〉 전에 “초(初)와 종(終)의 뜻이 크다.”라고 하였고, 〈임괘(臨卦) 초구〉 전에 “초(初)와 종(終)의 뜻이 중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설을 상고해 보면 초효(初爻)는 음양의 시작이고 일의 단서이며, 상효(上爻)는 음양의 극이고 일의 끝입니다. 두 효가 이미 중하고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효를 배치하여 명명할 때에 음양(陰陽)이 소장(消長)하는 도를 중하게 여기고 초와 상이 시종(始終)하는 변화를 크게 여겨 육효(六爻) 가운데 유독 초(初)와 상(上) 두 효에 대해서 글을 바꾸고 말을 분별하여 시종의 중대함을 보이고 후세에 경계를 전하였으니, 긴요하게 사람들을 배려한 뜻이 어찌 깊고 원대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만약 성인의 말 밖에 있은 뜻을 알아서 처음을 살피고 끝마침을 삼가며 깊은 못에 서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한다면 우리나라가 중흥하는 바탕을 여기에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초(初)를 만나 두려워할 줄 모르면 서리를 밟고서 굳은 얼음을 밟는데 이를 것이고, 상(上)을 만나 경계할 줄 모른다면 반드시 항룡(亢龍)의 뉘우침2)과 현황(玄黃)의 싸움3)이 있을 것입니다.
아, 성인이 전한 교훈은 말이 지극히 평범하지만 위아래가 모두 통하고, 위아래 한 글자가 관계되는 뜻이 적지 않기 때문에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사람이 시원찮다고 하여 그 사람의 말까지 버리지 마시고 유념해 주소서.
.
[주1] 민응기(閔應祺) :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백향(伯嚮), 호는 우수(尤叟) 또는 경퇴재(景退齋)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5년(명종20) 왕자의 사부(師傅)가 되어, 선조 연간에도 그 직에 머물렀다. 1610년(광해군2) 당상관으로 증직하라는 전교가 있어 좌승지로 추증되었다.
[주2] 항룡의 뉘우침 : 《주역》 〈건괘 상구(乾卦上九)〉의 효사에 “끝까지 올라간 용이니, 뉘우침이 있으리라.[亢龍, 有悔.]”라고 하였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겸퇴할 줄 모르면 패망한다는 뜻이다.
[주3] 현황(玄黃)의 싸움 : 《주역》 〈곤괘 상육(坤卦上六)〉의 효사에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도다.[龍戰于野, 其血玄黃.]”라고 하였다. 군웅(群雄)이 일어나 천하를 쟁탈(爭奪)한다는 뜻이다.
易初九上六爻義 甲午
近因閔應祺 師傅 來自日下。言自上垂問易諸卦他爻則曰九二,六三。而獨初與上爻則曰初九,上六。其義安在。聖人之言。豈無其理乎。臣伏聞聖敎以來。感激皷舞。不量愚分。思不得不出於位。敢陳鄙懷。仰瀆天聽。大哉王言。至哉王言。實後世人主之疑不及此。而至於今日。特發詢此。此誠中興之本。生民之福。臣雖無知識。敢不效一得之愚。以獻芹曝之誠乎。臣謹按乾之初九。傳曰。在一卦之下。爲始物之端。上九。本義曰。陽極於上。動必有悔。坤初六。傳曰。聖人於陰之始生。以其將長。則爲之戒。觀此三說。則兩爻之有愼有戒。可知。噬嗑初九。傳曰。初終之義爲大。臨之初九。傳曰。初終之義爲重。稽此二說。則初爻。陰陽之始。事之端也。上爻。陰陽之極。事之終也。兩爻之旣重且大。亦可見矣。故聖人設爻命名之時。重陰陽消長之道。大初上始終之變。六爻之中。獨於初上二爻。變其文。別其辭。以見其始終之重大。而垂戒於後世。其喫緊爲人之意。豈不深且遠哉。今若知聖人言外之旨。而審始愼終。臨深履薄。則我國家再造之基。斯可卜矣。若遇初而不知懼。則履霜而堅氷將至矣。遇上而不知戒。則必有亢龍之悔。玄黃之戰矣。嗚呼。聖人垂訓。言雖至近。上下皆通。一字上下。所係不細。不可不察。伏願聖明。不以人廢言而留念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