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맹설〔愚氓說〕
작년에 산재(山齋)에서 피서할 때에 함께 간 사람은 재종제(再從弟) 현도(現道)와 벗 김내량(金乃良)이었다. 지역이 외진 곳이라 손님이 드물어 아침저녁으로 마음껏 담소를 나누었는데, 말하던 중에 내가 내량을 ‘어리석은 백성[愚氓]’이라고 기롱하니, 대개 이는 농담으로 해본 말이었다. 내량은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평소에 제가 자호(自號)를 찾았으나 적합한 것을 얻지 못했는데 이제야 얻게 되었습니다. 우맹(愚氓)이란 호칭이 저에게 잘 어울립니다.”
라고 하니, 나는 말하기를,
“안 되네. ‘우(愚)’란 가려진 바가 있다는 명칭이니, 우리들 중에 누가 가려진 바가 없겠는가. 그래서 그대나 나나 서로 어리석다고 나무라면 둘 다 잘 맞겠지만, 이것을 자호로 삼는다면 지나쳐서 안 되네. 왜 그러한가. 사람은 자신의 속눈썹을 볼 수 없으니, 어리석으면서 스스로 그 어리석음을 안다면 마땅히 중지(中知)로 논해야 하는데, 그대가 어찌 거기에 미칠 수 있겠는가. 오직 스스로 어리석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바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네. 그대가 자호로 삼고 싶으면 ‘불우(不愚)’라고 칭하는 것이 합당하네.”
라고 하였다. 내량은 내가 농담에 농담을 더한 것을 알고 한참 있다가 완곡한 말로 대답하기를,
“저의 어리석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하니, 현도는 시종일관 킥킥 웃을 뿐이었다. 이윽고 해는 달려서 남쪽으로 가고 별은 흘러서 서쪽으로 가니, 세 사람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올해도 홀연히 작년의 그때가 되었는데, 이때 뜻밖에 내량이 〈우맹자서(愚氓自序)〉 한 통을 나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제가 저의 호를 갖게 된 것은 오로지 선생님 덕분이니, 원컨대 짧은 글을 지어주어 길이 새기게 해 주십시오.”
하니, 나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말하기를,
“한때 농담 삼아 웃으려고 했던 말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대야말로 참으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마땅히 ‘중지(中知)’라는 높은 호를 두 번 절하고 드리겠네. 어찌 감히 다시 그대에게 농담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다만 당시에 나누었던 말의 근원을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친구들이 듣고 알지 못할 것이기에 마침내 자초지종을 차례로 기술하여 〈우맹설(愚氓說)〉을 지어 그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眞愚]’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주1] 현도(現道) : 기봉진(奇鳳鎭, 1809~1886)의 자(字)이다. 호는 만포(晩圃)이며 진사에 합격하였다. 기재선(奇在善)의 아들이요, 성재(省齋) 기삼연(奇參衍)의 부친이다.
[주2] 김내량(金乃良) : 김원룡(金元龍, 1807~1880)으로,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내량, 호는 우수(愚叟), 기정진의 문인이다.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우수김공행장(愚叟金公行狀)〉에는 자를 내량(乃亮)이라고 하였다. 월봉(月峯) 김광원(金光遠)의 후손으로, 장흥군 금곡(金谷)에서 태어났다. 관수재(觀修齋)를 지어 독서하는 곳으로 삼았고, 병인양요에 궁포(弓砲)와 재곡(財穀)을 모아 출정하려고 한 바 있다.
[주3] 사람은 …… 없으니 : 자신을 알지 못하는 데 비유한 말이다. 전국 시대 초 장왕(楚莊王)이 월(越)을 치려고 하자, 두자(杜子)가 간하기를 “어리석은 신은 지혜가 눈과 같을까 염려됩니다. 사람의 눈이란 백보 밖은 잘 보면서도 자신의 속눈썹은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臣愚患智之如目也. 能見百步之外. 而不能自見其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非子 喩老》
[주4] 해는 …… 가니 : 가을이 되었다는 말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면 해도 남쪽으로 향하고 동지(冬至)에는 해가 남쪽 끝에 있게 된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5년 기사에 “태양이 남에 이르렀다.[日南至.]”라는 말이 나오는데, 두예(杜預)의 주(註)에 “동짓날에는 태양이 남쪽 끝에 있게 된다.[冬至之日, 日南極.]”라고 하였다. 또 화성(火星)은 심성(心星)으로 28수(宿)의 하나인데, 음력 6월에는 초저녁에 지평선 남쪽에 보이다가 7월이 되면 더 아래로 내려가 서쪽으로 옮겨간다. 그러므로 《시경》 〈칠월(七月)〉에 “7월에는 화성이 흘러간다.[七月流火.]”라고 하였다.
愚氓說
昨年避暑山齋。與之偕者。再從弟現道及金友乃良也。境僻人客罕。晨夕劇談靡不到。語次余譏乃良以愚氓。蓋自附於善謔也。乃良不以爲忤。反以爲喜曰。平常吾覓自號。而不獲適可。乃今獲之。愚氓之稱。於我協矣。余曰不可。愚者有蔽之名。我輩人孰無所蔽。故卿我相誚以愚。未嘗不兩皆著題。若以自號則濫而不可爲也。何也。人不能自見其睫。愚而自知其愚。 則便當以中知論。卿安能及。惟自謂不愚者。乃眞愚也。卿欲自號。合稱不愚耳。乃良知吾謔上之謔。無已時緩辭答之曰。吾之愚乃至是乎。現道終始局局而已。旣而日奔而南。星流而西。三人各歸其家。今年忽又昨年。此時不意乃良以愚氓自序一通示余曰。吾有吾號。職子是賴。願有小述。以銘永永。余不覺愕然曰。一時戲笑之言。奚至於是卿無乃眞知自家之愚者耶。若是則吾當以中知巍號。再拜而獻之。安敢復向卿謔也。但當時話言根。由非吾言之。朋友莫聞知。遂次其首尾。爲愚氓說。以自證其眞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