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 직업군의 자화상
―이오장 시집 『99인의 자화상』론
조 명 제
𝟏
솟아나는 샘물처럼 쉼 없이 시를 써 내는 이오장 시인이 연작시집 『99인의 자화상』(시문학사, 7월 15일刊)을 출간하였다. 김제 출신의 이오장 시인은 지금까지 14권의 시집과 2권의 동시집을 펴냈는데, 한 권 분량의 연작시도 여러 편을 썼으며, 지금도 연재 중이다. 『왕릉 토우』(2007), 『꽃의 단상』 (2008/시문학사), 『날개』(2009/시문학사), 『아버지 아버지』(2010/ 시문학사), 『인간학 개론』(2013/ 엔크), 『고라실의 안과 밖』(2014/ 시문학사), 『천관녀의 달』(2016/ 국보), 『노랑리본』(연작 서사시집 : 2017/ 엔크) 등이 이미 출간된 연작시집들이고,「시 부수기」(2017. 3.~ 12. 연재/ 시문학), 「99인의 자화상」(2017. 10.~2018. 10./ 시문학) 연재 이후 「짧은 시」(2019. 2.부터 연재 / 시문학)를 1회에 15편 정도의 편수로 연재 중이다. 특기할 사항은 그렇듯 잇달아 연작시를 써 내는데도 일정한 균형의 편편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 시문학사에서 시집 『99인의 자화상』 출간을 진행하는 사이에도 그는 정치인 139명을 각각 3행의 단시로 꼬집은 연작시를 써서 시집 『꽃구름 탔더니 먹구름, 나룻배 탔더니 조각배』(스타북스, 7월 25일刊)를, 현실 정치계의 성찰을 촉구하려는 취지로 독립지사 101위의 구국 애족 정신을 형상한 시집 『이게 나라냐』(스타북스, 10월 15일刊)를 잇달아 내놓아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99인의 자화상」은 우선 연작시 제목으로서 의문점을 던져 준다. 그림으로든 시로든 타인 99명의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인 까닭이다. 시를 몇 편이라도 읽어 보아야 비로소 제목의 궁금증이 조금 풀리기 시작한다. 저자 자신을 포함한 보편적 인간의 ‘자화상’을 비롯해서, 농부, 어부, 목수, 이발사, 엿장수, 낚시꾼, 버스기사, 참전용사, 기관사, 승려, 장판설치공, 대장장이, 조각가, 목욕관리사, 바리스타, 꽃차소믈리에, 카지노딜러, 컴퓨터기사 등등 우리 사회의 직업 군상(群像)을 주제로 쓴 작품집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99종의 직업인을 그린 것인데, 우리가 상식선에서 생각할 땐 100여 종의 직업군을 선정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직종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터라, 그 가짓수가 500종 1,000여 종 하더니, 근래에는 1만 종 3만여 종이라는 통계도 있다. 사실상 직종을 다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한 가지 더 의문이 가는 점은 각종 직업인을 다루어 그리되, 그것을 ‘초상화’라 하지 않고 왜 죄다 ‘자화상’이라고 하였느냐는 것이다. 타인이든 타자이든 객관적 대상으로서 직종인의 형상 작업은 사실 ‘초상화’라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굳이 ‘자화상’이라고 한 것은 그 직업군의 특성과 심정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관점과 삶의 철학을 내면화함으로써 실감을 극대화하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는 그 많은 직종의 사람을 표상화하여, 직종과 직종인의 핵심적 특성을 깊이 천착하고 얽어 표현한 사실이 주목되는 것이다.
𝟐
이오장 시인은 연작시집 『99인의 자화상』의 머리의 작품으로 「자화상」을 내세운다. 자화상이면서 이 시집의 ‘서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숲속의 검은 짐승을 곰이라 하고
얼룩무늬 맹수에 호랑이라 이름 붙인
얼굴 큰 사람이
이 땅에 나라 세웠지만
그때를 알지 못한다
어머니 아버지의 길 따라갈 뿐이다
조선이란 이름으로 커진 나라
대륙의 입김으로 밀려났다 밀쳐 오르고
새로운 얼굴들이 태어났어도
흥망성쇠를 겪어보지 않았다
-「자화상」 전반부
「자화상」은 전반부에서 거시적 안목의 존재사적 의미를 짚어 낸다. 민족의 시원인 단군신화에서부터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거치고, 외적(外敵)을 물리쳐 온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한 자신의 시대적 위상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한민족 반만년 격랑의 역사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화자는 아버지 어머니의 길을 따라갈 뿐 “새로운 얼굴들이 태어났어도/ 흥망성쇠를 겪어 보지 않은” 보통의 인간상을 통해 드러낸다.
램브란트, 고흐, 고갱, 피카소, 장욱진, 이중섭, 변종하 등의 자화상이 증명해 주듯, 모름지기 화가의 탁월한 역량은 ‘자화상’으로 결판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듯 그림의 방법적 기법을 원용하여 쓴 연작시 『99인의 자화상』의 서시격인 ‘자화상’은 화자 자신의 자화상인 동시에 평범한 직종인상(職種人像)의 개관이기도 한 것이다.
만년을 떠받쳐 태풍 이겨냈고
돌칼에서 청동칼로, 청동칼에서 쇠칼로
외적 물리치며 지켜왔는데
이름 없이 살다간 사람이 나 하나일까
한 시대를 질타하고 간 인물
초야에 묻혀 욕심 없이 살다간 민초들
빠지지 않고 이름 부른다면
떳떳하게 불릴 내 이름 낄 자리가 없다
-「자화상」 부분
시인은, 역사의 중심에 서서 구국(救國)의 길을 간 영웅적 인물들과는 달리, 범속한 민초로 살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는 인간의 예사로움을 노래한다. 물론 평범한 인간상에 있어서도 “한 시대를 질타하고 간 인물”이나 “초야에 묻혀 욕심 없이 살다 간 민초들”이라는 의미 있는 진술이 없지는 않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한 시대의 불의와 타락을 질타하고 간 기개 높은 이들이 있고, 초야에 묻혀 허욕을 물리치고 청빈하게 살다 간, 고결한 이들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본다면 “떳떳하게 불릴 내 이름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이 자평적 자화상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 우리들 이웃의 평범하거나 하찮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범속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이루고,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범속한 삶을 살지라도 ‘어딘가에는 나를 그려 넣어야 한다’는 본능적 욕구가 인간에게는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고 자취를 새기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범속한 사람들의 이름은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곧바로 지워져 버릴 것을 알면서/ 부끄러운 얼굴 들고 그 길을” 찾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꿈이다. 그 꿈은 높고 낮음을 떠나 생명적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꿈 한번 꾸지 않았다
천 년 은행나무 그늘 저만치 콩을 심고
갯버들 날리는 냇가에 서서 햇볕 모았을 뿐
꿈은 씨앗 속에 든 빈 주머니
움트는 새싹 보며 하늘 담았다
-「농부」앞부분
「자화상」 다음의 작품은 바로 ‘농부’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농부’는 인류 역사상 수렵시대의 사냥꾼 다음으로 오래된, 가장 전통적 원인(遠因)을 가진 직업인이라 할 것이다. 사냥이나 산과(山果) 채취 등의 수렵시대를 지나 정착 농경사회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어부와 함께 가장 질기고 오랜 전통의 직종인이다.
이 작품의 끝 부분에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하였듯, 예부터 농사야말로 천하의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되어 왔다. 옛날 신분사회에서 왕족 이외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귀족[사대부] 다음으로 농부는 존중히 여겨졌다. 농업과 농부의 중요성은 17세기 산업혁명 때까지는 물론, 실제로는 20세기 중반까지, 국가에 따라서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생산업이고 생산직이었다. 주식(主食)에서 곡물이 퇴조하고 육류와 가공식품이 큰 비중으로 식단을 점유하게 되면서 농부와 농민은 직업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사회적으로 심대한 이농현상을 불러 왔다. 디지털문명 시대에 전자산업이나 소비사회의 대량 유통업과 그에 종사하는 직종의 사람들이 현 시대의 천하지대본이 된 듯이 보인다.
이러한 시대의 마지막 농부는 꿈꿀 일이 없다. 이른바 꿈 없이 사는 법을 스스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꿈은 씨앗 속에 든 빈 주머니”일 뿐, 정직하게 움트는 작물의 새 싹을 보며 하늘의 뜻을 담고, 하늘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이 보람의 전부이다. 경작의 일이란 육체적 노동의 전부요 고생의 교과서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우습게 여기는 것이 볍씨 한 톨 밥풀 하나이지만, “한 톨의 볍씨가 백삼십 알의 쌀이 되고/ 조 한 알이 천 개의 좁쌀로 맺는 걸 보며” 노작과 햇살[하늘]의 가치, 그 기적을 실감한다.
생명줄 생산업에 종사하면서도 기층민으로 전락한 농부는 언제나 가난의 대명사처럼 되어 왔기에 자신을 비롯한 가족의 “밥그릇은 작아야 했다”는 말이다.
어깨에 지게자국 황혼빛으로 새겨지고
굽혀진 허리가 땅을 짚을 때
명아주 붙잡은 손아귀 저절로 풀어져
세월의 똬리는 헛짚은 자리에 수북이 고였다
이제 어느 곳을 바라봐야 할까
-「농부」부분
농부의 일생은, 황혼빛으로 새겨진 지게자국과 명아주 지팡이에 기댄 굽은 허리가 ‘땅을 짚을 때’ “세월의 똬리는 헛짚은 자리에 수북이” 고여 있음으로 요약된다. 농부는 논밭 일구어 고생스럽게 수확한 곡식으로 스스로의 배를 채우지 못하고,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고생과 가난과 희생의 상징처럼 보이는 농부는, “신분과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평등사회의 직업윤리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일생의 몫을 다 부려 놓은 농부의 귓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쟁쟁하게 울린다.
이 슬픈 정황이 현실로서 우리를 역습해 올지도 모른다. 가공식품이나 인공양식(人工糧食)에 의해, 혹은 대량생산과 저가 공세의 침략에 의해 벼농사 같은 주식의 곡물 생산이 급감, 폐농화 현상을 불러일으킬 때, 식량은 가공할 무기로 대두될 것이다. 생존법칙에서 식량만큼 무서운 무기는 있을 수 없다. 쌀 소비가 크게 줄어 비축량이 넘쳐나도 우리가 벼농사를 폐지할 수 없는 것은 그 같은 전략적인 속사정 때문이다. 아마도 극한의 상황에서는 ‘농자천하지대본’이 최대의 진리로 이해될 것이다.
고깃배 타고 첫 그물질 나가던 날
끌어올린 고기 바닥에 깔아놓고
그물코에 꿰어 바다를 떠나지 못했다
손바닥 갈라져 마디에 옹이 박혀도
보듬어 안고 모래 위에 서서 기댄 바다
엮은 그물코보다 많이 잡힌 고기가
내 이름 부르며 파도를 탄다
-「어부」 후반부
농경시대에서 21세기 오늘의 첨단 디지털문명 시대에 이르기까지 허다한 직종이 생겨나고 소멸되어 왔지만, 농부와 더불어 가장 긴 생명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 어부일 것이다. 직업의식이 있을 수 없었던 수렵시대의 천렵(川獵)을 고려하면, 작업(作業)으로서의 역사는 농부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 어부이다. 오늘날은 갖가지 발전된 어로기구의 도움을 받는 직종이지만, 어획상의 그 모험과 고생은 옛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시인은 “파도소리에 묻힌 울음”이라는 첫 행을 통해 어부로서의 운명을 압축해 보여준다. 한 어부의 길은 집안의 내력과 그물코 크기를 외우는 데서부터 결정된 것일 테지만, 결국은 “그물코에 꿰어 바다를 떠나지 못한” 운명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벗겨낸 껍데기가 흩어지지 않게 다듬어라
송판이 되고 기둥이 되고
바르게 세워 지붕을 얹어야
나무도 살고 사람도 살아가는 것
허물어질 집은 짓지 마라
내려놓는 곡자와 대패, 끌과 망치를
누가 이어받지 못해도 서글퍼하지 않으련다
재목 찾아 산을 헤매고 강 건너다녔지만
내가 지은 집이 콘크리트에 치이는 걸
바라봐야 하는 지금
먹줄 잡을 손가락마저 굽어지지 않는구나
-「목수」 후반부
목수 역시 오랜 시원적(始原的) 전통을 지켜 온 직종인의 하나이다. 석기시대의 원시 토굴 생활에서 벗어나,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던 신석기시대 움막을 짓고 살 때부터 목수의 발생적 필연성은 예정된 것이었다. 직업의식이 생겨나고 제도적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농경시대를 지나서도 한참 뒤의 일일 것이다.
직업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예가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40세기경 이미 도시국가를 세운 고대 이집트에서는 거대 건축물인 피라미드를 축조하고, 상형문자를 발명하여 파피루스, 무덤, 기념건축물, 조각, 비석 등에 왕조의 역사부터 사회상까지의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한 기록 중에는 직업에 대한 내용도 있어 주목된다. 중왕조 시기(B.C. 2,100 ~ B.C. 1,700)에 작성된 것으로 고증된 기록에는 여러 직업을 비교하며 묘사하였는데, 풍자적인 진술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에도 직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 군인에 대한 기록을 보면, 마치 당나귀처럼 끊임없이 감시받으며 해가 질 때까지 일한다, 하여 항상 불만이 많은 군인은 사막의 끝자락에서 목숨을 잃어도 그 이름조차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다. 그리고는 ‘군인이라는 직업을 피하고 싶다면 서기(書記)가 되어라.’라는 기록자의 시류적(時流的) 견해까지 적어 놓았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이외로 아주 부정적 평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은데, 당시의 상황과 직업관에서 본다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따가운 태양 아래 사막을 누비며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워야 하니, 귀족이나 관료, 성직자와 같은 선망의 직업군에 속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였는지 모른다.
이런 군인 직업의 저평가에 반해 서기(書記)에 대해 선호하는, 흥미로운 평가가 보인다. “보라, 서기 이외에 상사가 없는 직업은 없다. 서기 자신이 우두머리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글쓰기를 안다면, 세상의 그 어떤 직업보다 좋을 것이다.”라는 대목이 그렇다. 서기는 오늘날로 치면 학자에 해당하는 직업으로 판단된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새, 뱀, 벌레, 도형 등을 본딴, 거의 암호에 가까운 문자였던 터라, 문자를 이해[해독]하고 글쓰기를 제대로 익히려면 수십 년 간의 수련을 감내해야만 했다고 한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는 당시 서기가 되기 위해 연습했던 글의 돌판이 남아 있는데, 심지어 어떤 돌판에는, 서기가 되기 위한 공부가 너무 힘겨워 자신의 머리가 좋지 않음을 한탄하는 기록도 보인다.
서기는 대개 가문의 업으로 이어져 내려온 만큼, 글쓰기는 자기 친자식이 아니면 가르쳐 주지 않을 정도의 극비스러운 영역이었다. 오늘날의 학자처럼 당시의 서기 직업도 어떤 지시나 감시 없이 일하고, 지식을 독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선망의 직종이었던 것 같다. 이렇듯 기원전 2,000년경에 직업에 관한 의식이 이처럼 뚜렷했던 걸 보면, 직업이나 직업의식이 생겨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였을 것이므로, 그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오륙천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농부와 어부, 그리고 목수는 인간의 의식주(衣食住)라는 가장 원초적인 생존 방식의 토대를 이루는 직종인으로 그 발생학적 연원은 멀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수의 아들이었던 사실은 문명사의 핵심이 건축술에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시인은 목수의 대목(大木)과 소목(小木) 중에서도 집을 짓는 대목을 주제로 삼아 초상(肖像)하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대목은 목조주택을 짓는 목수이다. 아직도 목조주택은 그 명맥을 잇고 있는데, 특히 힐링이 유행처럼 강조되며 신개념의 목조주택이 건축되기도 하지만, 목수는 아무래도 시대를 압도하는 철근콘크리트 건물 건축사들의 위세에 치이며 ‘먹줄 잡을 손가락’의 맥이 풀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을 것이다.
의식주와 관련된, 가장 전통적인 직종인을 살펴보았지만, 기술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새로운 직종은 수없이 늘어났다. 우리에게 이제 중요한 일상이 되어버린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의 컴퓨터기사 같은 직업인이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종목
시작된 역사는 아무도 셈하지 못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모든 것을
한곳에 모을 수 있고
우주의 이치와 결과를 꿰뚫을 수 있다면
살아갈 가치는 충분한 것
과거는 흘러간 시간이 아니고
지금도 붙잡힌 시간이 아니다
-「컴퓨터기사」 부분
컴퓨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정보의 교환과 수집일 것이다. 제3의 물결로 지칭된 정보화 시대의 컴퓨터의 기능은 간단없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새로운 정보의 축적과 그 용량을 늘여 가고 있다. 초기 컴퓨터의 정보를 검색, 활용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정보의 초기화 작업을 누가 얼마나, 그리고 어느 결에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진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단순한 소견이었다. 어처구니없이 부지런한 사람들 덕에 예상보다 단기간에 웬만한 정보는 컴퓨터의 정보망에 등재, 저장되어 갔다. 물론 지금도 아주 전문적이거나 학술적인 것 등의 정보는 충분하게 등재되어 있지는 못하고, 앞으로도 다 감당해 낼 수 없는 어떤 한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의 세계는 “머릿속에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얼마인가”하고 시인이 허두에서 드러낸 표현 속에 그 놀라운 기능의 확대를 실감할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하여 정보의 종목은 늘어나고 그 천착은 우주를 관통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이 경이의 집적물과 그 애러의 발생에 대처할 전문 기능사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거의 “전부를 모아 놓은 컴퓨터 알고부터/ 지구가 왜 둥글어야 하고/ 우주는 왜 끝 모르게 넓어 가는지”를 이해한다. 그와 동시에 기계가 사람의 상전이 된 전복(顚覆) 현상을 체감하고, 생각하는 갈대라던 인간은 이제 “컴퓨터 앞에서 뽑기 놀이하는 바윗돌”에 지나지 않는 인간 소외의 우울을 경험한다.
𝟑
2001년도 직업사전에 따르면, 미국에는 약 30,000여 종, 일본에는 25,000 종류의 직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총 12,306종에 달하는 직업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런 가운데 직종인 선택에서 이오장 시인은 아무렇게나 판단한 게 아니고, 전통적인 직종인, 하찮게 여겨지거나 천대받던 직종인, 우리의 추억어린 정서를 자극하는 직종인, 새 시대의 새로운 생활 영역의 확대로 말미암아 파생된 직종인 등을 주로 선정하여 그려내었다. 그는 여러 직종인의 타자성으로 자신을 투사하여 그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다양한 직종인들의 외상(外相)보다는 그 내면으로 잠입하여 인간적 동질성을 발견하고, 삶의 철학적 국면을 표상화한다.
생. 년. 월. 일이 같은 사람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똑같은 길을 함께 가는 것이 인생이다
얼굴색을 보면 건강이 짐작되고
목소리에 성격이 가늠되며
하소연 따라 현실이 보이는데
무엇을 물어 어느 길로 가려는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사람 속에 사람 길 있다는 것과
슬픔 위로받고 두려움 잊기를 원하며
만인이 간 길 짚어 따라가기를 권할 뿐이다
-「운명철학가」 부분
운명철학가의 자화상이니 다분히 인생철학조로 화두를 풀어 간다 짐작할 수 있지만, 화자는 운명 철학에 기대려는 사람들을 경계하며, 운명철학가는 통계적 관상이나 고객이 스스로 풀어 놓는 하소연으로 그 운명을 점쳐 보여줄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운명을 개척하거나 바뀌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슬픔 위로받고 두려움 잊기를 원하며/ 만인이 간 길 짚어 따라가기를 권할 뿐”이라는 것이다. 운명철학가의 운명이 이미 인생철학이고, 그의 관상과 상담의 기술이 철학적이지만, 그의 점괘와 위로의 말씀으로 위안을 받고 긍정적 인생관을 얻어, 나은 삶으로 가고 말고는 고객 각자의 몫이다.
“눈 감고 눈 뜬 너머 바라보지만/ 나를 보지 못하는 눈뜬 봉사”로 지칭된 ‘무속인’은 한 술 더 뜨는 속성의 직종인이다. “댓가지 끝에 매달린 인생/ 흔들리지 않아도 저 혼자 벌벌거리는” 나약한 사람들, 무속인은 알고 있다. “작두에 올라 힘차게 굴러도 질긴 이승의 끈/ 점괘의 대답은/ 작두날에서 풀어지는 게 아니라/ 네 가슴 절망과 원망 속에 있다”는 것을.
신은 간절히 원하는 자의 눈에만 보인다고
찾는 걸음마다 거짓의 허울 썼구나
씻김굿 옥양목에 살풀림 바란다면
웃음 속에 감춰진 허물 벗어
장대 끝에 나부끼는 흰 깃발 앞에
두 손 모아라
-「무속인」 부분
무속인은 고객의 심저를 꿰뚫어 보며 그들의 삶의 양식에 대한 사뭇 철학적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내면 심층의 세계를 드러냄에 다름 아닌 것이지만, 자신의 운명조차도 어찌 해 볼 수 없어 “나를 보지 못하는 눈뜬 봉사”라는 말이다.
인생은 아는 만큼 행복하지도
모르는 만큼 어둡지 않더라
본다는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
넘치면 고뇌의 시작이다
다 봤다고 모두 자신의 것인가
별의 숫자와 달 크기를 알고 있다고
어느 빛에 비교하여 그리겠는가
소리 속에 모양이 섞이고
크기에 소리가 들렸다
-「안마사」 부분
흙과 짚으로 반죽하는 것은
음양의 조합
흙받이로 떠올린 진흙이
쇠손에서 퍼져갈 때
손목이 받는 힘은
지구의 반쪽을 드는 일이다
삼 대가 살아도 끄떡없다
배움이 모자라 미장일하는 것도
기술이 뛰어나 바쁜 것도 아니다
-「미장공」 부분
사람의 층계는 무엇으로 나누는가
페인트칠 끝난 뒤를 도배공이 따르고
도배 끝난 바닥에 장판 펴는 나를
바닥 인생이라 부르지 마라
층층나무의 층계는 층층나무가 정했으나
내 층계는 내가 정하지 않았다
100층 높이에 사나 지하층에 살아도
인간의 층계는 오직 1층뿐이다
-「장판설치공」 부분
타인의 타자성에 자신을 심층의 세계로 투사하여 그 직종 대상인의 관점과 인생관을 다부진 철학적 인식으로 이끌어 내는 시인의 재치와 통찰력은 놀라운 바가 없지 않다. 예문에서 보듯, 시적 대상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허술함이 없이 경쾌한 언어로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능력은 이오장 시인의 특장(特長)이라고 할 만하다. 그의 다작과 즉시적 작법 기질에 대해서 때로 아슬하게 여기며 염려하는 바가 없지 않지만, 문득문득 이 같은 철학적 사유가 녹아든 표현적 형상력을 만날 때면, 새삼 안도하게도 된다.
앞에서는 환호
뒤에서 듣는 비난은 모래밭에 뱉는다
사람의 크기는 하늘로 솟은 높이가 아니라
땅으로 내려앉은 넓이라는 것을
돈의 크기는 쌓은 높이가 아니라는 것을
반 바퀴 돌면서 읽어 버렸다
-「기수(騎手)」 부분
산다는 건 악과 선 사이의 줄넘기
담장 두께와 망루 높이로 가르지 못한다
안팎 드나들며 어둠과 빛을 익히는 사람들
갇혀 산다고 어둠이 닦일까
담장으로 둘러싸인 여기는
악의 씨앗이 발아하는 곳 아니다
선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악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아닌데
선악의 기준을 무엇으로 구분할까
-「교도관」 부분
기쁨 속에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사람을 가장 두려워한다
색을 구별하는 능력은 가면에서부터 시작되고
그림의 욕망은 욕심에서 왔지만
깊숙이 감춰진 부끄럼은 자랑에서 시작된다
얼굴 가리는 색칠 누가 막을 수 있으며
입술의 색상이 짙고 눈썹의 길이가 길수록
부끄럼은 더 감춰지고 자랑이 늘어난다
-「메이크업아티스트」 부분
하나의 먹거리로 살 수 없는 생명이
찾아낸 것이 혼합이다
맵다 짜다 달다 시다 떫다 쓰다
화덕 앞에 서서 부젓가락질보다
도마 위에 올린 재료의 혼합을 우선 하는 것은
불에 닿는 순간 피어오르는 향기를 위해서다
먹지 못한다는 건 생을 마감하는 것
전쟁의 시발은 먹거리 싸움이고
평화의 시작은 배부른 게으름이다
-「주방장」 부분
직종인의 처지와 심리적 현상을 자아화하여 드러내고, 사상(事象)의 이치와 특성의 정곡을 찔러 결구(結構)해 내는 시법에서 시인의 철학적 사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직업인들에 대한 특성과 그들 심층의 심리적 현상을 날카로운 의식과 감각으로 형상한 연작 「99인의 자화상」은 그런 점에서 인간 사회의 실제적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직업과 직종인에 대한 시인의 야심찬 사회철학의 투영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이오장 시인은 농사와 건축, 유통과 관리, 사무직과 노동 등 예사 사람과는 달리 많은 직업적 체험을 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인간과 사회, 직종과 조직의 특성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언제나 그 실상의 진실을 파악하고 포착하는 데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붓는 스타일의 시인이다. 그러한 그의 유별난 관심사와 세계를 포괄하는 폭 넓은 관점에 그의 역동적 열정이 더해져서, 웬만해선 종잡기 어려운 100여 직종에 대한 시적 형상이 가능했던 것이라 여긴다.
𝟒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포용적 시선(視線)에는 시인의 비판적 정신이 지렛대처럼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시인의 애정이 쏠리는 쪽은 소박하거나 하찮은 직업을 가진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가장 정직하고 순수하며, 소외된 인간의 가치를 증거해 주고 있는, 사회 구성원의 주체적 존재나 다름없다. '사람의 층계는 무엇으로 나누는가’라고 시인이 「장판설치공」에서 풍자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층의 직종인으로 여기는 그들이 한 사회, 나아가서 전세계의 구성원의 대다수를 이루면서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시인의 시선은 의당 핍박받고 천대받으며 묵묵히 일을 하는, 그리고 이제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라져 가는 그 소외된 직종인들을 향해 열려 있어야 마땅하다.
헌 고무신 한 켤레와 수수빗자루 하나에
엿판에 가위질 몇 번이나 칠 것인지
아무도 정하지 않았다
은수저의 가치는 한 벌로
놋그릇과 괭이목의 무게는 크기로 정하지만
엿가락 길이는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주고받는 것이 정해지지 않았다
산 하나를 넘어와 얻은 것이 헌 고무신 하나
강나루에서 얻어 탄 나룻배에서도
엿가락의 크기는 줄어지지 않았다
해가 지면 처마 밑에 기대어 내일을 꿈꾸고
아침 요기는 우물에서 목축이기로 때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한 걸음에 두 걸음 멀어지는 나의 삶
마음대로 살아온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엿장수」 부분
엿장수는 사라져 가는 직종인의 부류에 속한다. 남아 있다면 시장통 같은 데서나 간혹 볼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의 오륙십대들의 유년기에는 시골의 지게 엿장수는 아이들의 인기인이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 달콤하고 쫀득한 엿을 사 먹는 일은 최고의 별미 간식거리 기회였다. 소금장수, 간고등어장수와 함께 엿장수는 산 넘고 물 건너, 잦으면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정도 오는 게 보통이었다. 돈이 귀하던 그 때에 엿을 맛보려면 헌 물건을 내어다 주고 바꿔 먹는 수밖에 없었다. 껄떡귀신이 들어앉은 어린아이들은 흔히 부모 몰래, 쓰던 양재기, 놋숟가락, 고무신, 빈병, 쇠붙이[연장] 따위를 갖다 주고 엿을 사 먹었다. 나중에 부모로부터 호되게 꾸중을 당하거나 매를 맞는 일이 흔했다. 그런 내막을 알고 있는 엿장수는, 아직 쓸 만한 물건을 받아 주지 않음으로써 일정한 통제를 가하기도 하였다.
가락엿장수, 판엿장수는 특히 아이들에게 언제나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 가끔 어른들이 알아서 엿을 사 줄 때에는 날듯이 잔뜩 고무되어 심부름도 잘하였다. 엿장수가 오가던 시절의 풍경은, 가난하나 실로 소박하고 순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평화로운 풍경의 한 상징처럼 여겨진다. 시인은 그 시절 엿장수의 정처 없는 삶과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의 나그네 인생을 풍속문화의 한 징표처럼 그려낸 것이다.
삶은 닦는다고 빛나지 않는다
지나는 사람들의 감춰진 모습을
구두빛깔로 알아채기까지
혓바닥에 서릿발 돋아났고
침 뱉어 손님 맞는 건 허락된 특권
헝겊 조각보다 손가락 맛이 더 짙어
지문이 닳아 얼굴색을 대신한다
<중 략>
껍데기 벗겨내고 새살 속의 땀 쥐어짜는 일
허투루 따라 하지 마라
빌딩 그늘이나 골목 끝에 앉아 기다리는 것은
돈보다 귀한 삶의 색깔 찾아내기다
색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인생
닦은 구두보다 지나간 시간이 많지만
인간의 색은 모두 달라
각자의 빛깔대로 살아간다
-「구두닦이」 부분
시계수리공과 함께 구두닦이는 도시의 구석 풍경을 대변했다. 시계수리공은 거의 시대의 뒷전으로 사라져 갔지만, 구두닦이는 아직도 더러 남아서 도시의 그리운 여운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인은 구두닦이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의 렌즈로 “색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인생”의 도시적 풍경을 상기시킨다. ‘빌딩 그늘이나 골목 끝에 앉아’ ‘돈보다 귀한 삶의 색깔 찾아내는’ 구두닦이의 존재감은 한 사회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한 시대의 광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쇳물이 굳어 괭이와 호미 낫으로 변하여
농사꾼 손아귀에 잡히는 걸 보며 날을 세웠다
쇠붙이는 쓰는 사람에 따라 숨 쉰다
나무 찍던 도끼가 흉인의 손에서 놀아나는 걸
짐작이나 했겠는가
제자리 찾기 바랬으나
광란의 전쟁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손등에 떨어진 땀방울 질적거리는 소리 들으며
망치와 불길로 보낸 팔십 년
대장간 문짝 흔들어대는데
화덕이 싫다고 도시로 나간 자식에게
불길 진즉 껐다 하고 부젓가락 놓지 못한다
-「대장장이」 부분
대장장이는 엿장수, 소금장수, 땜장이 등과 함께 시골의 마을과 마을을 떠돌며 낫과 괭이, 호미와 삽, 식칼과 도끼 따위를 만들어 팔거나, 무디어진 농기구며 부엌칼 등을 새로 벼러 주고 삯을 받는 장인(匠人)이었다. 고장의 어느 마을에 본거지를 두고 있을 대장장이는 주로 농사철에 마을을 찾아와, 언덕 밑 도랑이 있는 벌판 한 쪽에 간소한 임시 대장간을 만들고 풀무질을 시작했다. 대장장이와 젊은 조수가 손발을 맞추며 쇠붙이 연장을 달구고 망치로 치고, 담금질하고, 벼리는 작업을, 심심하던 차의 마을 아이들도 호기심 많은 구경꾼이 되어 둘러서서 주시(注視)하기 일쑤였다.
스포츠형 머리를 한 50대 대장장이의 흐르는 땀을 닦아 주고 싶던 그 시절 이동 대장간과 대장장이는 사라지고, 읍이나 도시의 어느 구석진 곳에 붙박이 대장간만 간혹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인은 작품에서, 3대째 이어 오는 대장장이의 가난한 대물림과 고된 작업, 그리고 농사가 그의 제조물로 지어지는 보람의 한편에, 때로 그것이 흉기로 둔갑되는 사건의 안타까움 등을, 대장장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제 대장장이도 우리의 곁을 떠나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리운 풍경의 하나이다.
숨결 주고 얻은 삶
원하는 대로의 생김새는 흙이 전부
불붙은 손끝에서 불새가 난다
질그릇에 채우는 것은 전신의 땀
오지그릇 하나에 육신을 담았다
장항아리에 담긴 하늘의 깊이가
푸래독에 빠진 착각의 땅 망가트린다
물레질에 다리가 꼬이고
타렴질에 닳고 닳은 손바닥으로
흙 속에 숨결 불어넣어 다스리는 삶
삼십장 넘는 가마 속은 밝고 밝다
-「옹기장인」 부분
옹기는 항균기능을 가진, 쉼 쉬는 그릇이다. 동남아 일대에도 그들 나름의 옹기류가 있지만, 특히 한국의 옹기는 예술적 감각까지 더해진 지혜로운 그릇으로 인정받고 있다. 장(醬)문화를 가능케 한 생활용기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옹기 역시 지금은 사양산업의 하나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옹기를 수집하는 애호가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전통옹기보존연구회와 한국옹기진흥협회가 결성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을 비롯한 전국의 옹기장인은 이제 손으로 꼽을 만한 숫자에 불과하다. 이오장 시인은 옹기류의 그릇과 옹기장인의 작업과정, 그리고 옹기의 성형 및 소성(燒成[번조煩燥]) 과정을 자세히 알고, 옹기장인의 처지가 되어 “이글거리는 불길 앞에서 이룬 생”과 옹기 제작 과정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이치며 삶의 철학을 표명한다.
시인이 작품에서 쓰고 있는 질그릇, 오지그릇(옹기), 장항아리, 푸래독[푸레독], 물레질, 타렴질 등에는 옹기류의 제작 과정을 알아야 적용할 수 있는 용어들이 섞여 있다. 질그릇은 시유(施釉/ 유약을 입힘)하지 않고 저온에서 번조된 토기 종류의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유약을 입혀 보통 섭시 1,100~1,200도에서 구운 그릇이다. 푸래독은 유약을 입히지 않고 소성할 때 약간의 식염을 투척하여 연기쏘임으로 마무리하며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구운 그릇인데, 유약을 입혀 붉은 빛이 도는 옹기와 달리, 검정 계통의 푸르스름한 색깔을 띤다하여 붙여진 이름의 독이다. 독(항아리) 형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그릇을 지칭할 때에는 ‘푸래도자기’라고 한다. 시유하지 않고 비교적 저온에서 번조한 질그릇은 물을 흡수하는 단점이 있어서 곡식을 담아 보관하거나, 부엌에서 잠깐의 물항아리로 쓰는 정도라서, 장류를 보관하기는 어렵다.
옹기의 물레 성형에서 타렴질은 제일 중요한 과정이고, 그만큼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길다란 흙타래를 어깨에 받쳐 놓고 오른쪽 손으로 꼬는 듯이 하면서 밑으로 늘려 키우는 작업을 바뀜타렴이라 하고, 바뀜타렴의 한 부분을 위고 치키는 작업을 청타렴이라 한다. 바뀜타렴과 청타렴을 반복해 가며 기본을 성형한 후, 수래(그릇의 바깥쪽을 두드려 성형하는 도구. 긴 나무주걱같이 생겼는데, 여기에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함)와 도개(그릇의 안쪽을 맞받아 두드리는 도구)로 두드리면서 기물을 완성하게 된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간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옹기장인의 사상이 녹아든 옹기는 가장 자연적이고 건강한 그릇이다. 사양산업인 옹기제작이 매실, 오미자, 개복숭아, 오디, 돌배, 양파 등속을 주재(主材)로 한 발효산업의 활성화로 그 소용됨이 늘어나는 현상은 무엇보다 고무적인 일이다. 수월한 가스가마 옹기에 밀리면서, 여전히 타렴기법과 수래질에서부터 장작가마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전과정을 수작업으로 오지항아리를 만들어내는 옹기장인은 소수(小數)이지만, 그들과 더불어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𝟓
100여 종에 이르는 직종인의 자화상을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다. 제한된 범위에서 직업과 직종의 특성을 개관하고, 시 텍스트의 몇몇을 선별하여 짚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정치가, 변호사, 목사, 교사, 시인, 소설가 등의 지식계층도 다루고, 화가, 조각가, 작곡가 같은 예술가의 자화상도 빠뜨리지 않고 형상하였다. 타자의 직업과 직업정신, 혹은 그 운명을 천착하면서도 서정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바람 소리 들어봤는가
소리가 있다면 바람이 아니다
막아선 나뭇가지가 제 몸 찢는 소리
감싸주지 못해 울어대는 아픔이다
햇살이 나뭇잎에 내려앉는 한낮의 소리
이팝꽃에 달빛 부서지는 소리
잠 못 든 그리움이 멀리 떠나가는 소리
장미꽃 향기 퍼져가는 소리
형체 없이 들려오는 소리, 소리들
-「작곡가」 부분
바람은 소리가 없다. 바람소리는 바람이 스치는 대상 사물의 마찰음이다. 그 같은 현상의 시적 표현은 일찍이 김춘수(「바람」)와 필자(「竹」)가 전개한 바 있다. 시인은 허두에서 바람소리는 “막아선 나뭇가지가 제 몸 찢는 소리”로 표현하며, 작곡가의 귀들 통해 “감싸 주지 못해 울어대는 아픔”이라는 감각적 인상의 변용을 수행한다. 그리고 여러 사물들과의 추상적 이미지들까지도 ‘소리’로 변용시켜 서정적 형상물로 만들어 보여준다.
쳇바퀴 돌듯 정해진 걸음에
어제와 오늘이 헛발이고
듣는 말과 전하는 말이 다르다
가볍게 전해도
나는 행운을 몰아다 주는 전도사
박씨만 빼놓고
무엇이든 가져다준다
-「집배원」 끝부분
인용 시는 맨 마지막에 편집된 자화상 「집배원」의 끝 부분이다. 집배원, 곧 정겨운 이름의 우체부는 우리들 추억 속의 오랜 친구이다. 농촌과 산촌, 어촌과 섬마을, 도시의 구석과 깊은 산맥 속의 오지 마을 등 길이 이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그들의 발길이 닿았다. 편지와 전보와 소포를 배달하는 우체부는 고맙고 반가운 직종인이다.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을 담아 전하고, 안부를 물으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묻혀 나르기도 했다. 그들은 들판을 지나 고개를 넘고 개울과 강을 건너는 먼 길을 걸어서, 자전거로, 뒷날에는 더러 오토바이로 다니며 소박한 세상의 사랑을 배달했다.
요즘의 우체물 집배원은, 택배물 배달까지 더하여져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고 한다. 개중에는 과도한 업무를 이기지 못하고 과로사하는 일이 연이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와 함께 한 소중한 직종이 사라져 가거나, 업무 과중으로 직종인이 희생되는 사례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직업 혹은 직종은 한 시대 한 사회의 구조적 총체를 이룬다. 각계각층의 직종인이 얽혀 다양한 빛깔의 구성체를 이루는 것이 사회이고 국가이며 국제사회이다. 여러 직종인의 타자성을 찾아 그 초상적(肖像的) 자화상을 시로 표현하는 작업은 인간사회의 구조적 현상에 대한 해석적 통찰이며, 시대의 풍경문화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이다. 탕진을 모르는 시 쓰기의 이오장 시인은 예상 밖의 엉뚱하고 만만찮은 테마를 가지고 그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로 우리 시대 99 직종인의 자화상을 완성하였다. 제재의 특성상 연작이 병렬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만큼, 개개의 작품에서 때로 문구 유형의 반복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권력층과 약자, 지식인과 예술가, 전통적 업종과 첨단적 업종, 당당한 직종과 말단적 직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그리면서, 현실사회의 실체라 할 그들의 삶과 인생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서정성의 토대 위에 구현한 점은 주목된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 소외되거나 사라져 가는 업종과 직종인에 대한 시인의 애정어린 시선이 감동적이거니와, 그들 자화상을 통해 확인되는 추억과 풍속문화의 형상적 기록은 값진 작업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