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부림 / 박남숙 1
1) 무조건 한 문단씩이라도 쓰고자 작정한다. 그것이 서툴든 말든 일단은 괘념치 말기로 한다.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이 표출되기까지는 무형이다. 무형의 사고 속에 쌓은 탑은 언제든 무너진다. 하루에도 수십 번 글을 짓고 부순다. 건물의 잔해처럼 단어들과 문장이 남긴 엉성한 벽돌들이 나뒹군다. 머리와 손의 간극이 멀어지고 손과 마음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고뇌만 쌓인다. 묵직해진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의 우물을 파내려 가고, 진정한 사유의 공간을 막아버린다.
2) 글을 쓰다보면 오금이 저릴 때가 빈번하다. 써야 할 이야깃거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만날 때가 그렇다. 마음과 달리 손은 느리다 못해 오타를 연발하는데, 이야깃거리는 저 혼자 글 한 편을 뚝딱 마무리 짓고 저만치로 비켜 서 있다. 곧장 쫓아가 보지만 커서는 자꾸 뒤로 달려간다. 그러다 자판 위를 서성이는 헛손질뿐인 열 손가락만 보인다. 쓰고자 하던 이야기는 종잡을 수가 없고 슬슬 겨드랑이에 쥐가 나면서 오금이 저리고 엉덩이는 좀이 쑤신다. 글쓰기는 과거의 기억을 붙잡는 대신 책상머리를 떠나고픈 마음을 붙잡아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다.
3) 글을 쓸 때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많다. 자리에 앉았지만, 막상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을 때가 그렇다. 깜박깜박, 빈 화면 위의 커서는 뭐라도 써보라고 재촉한다. 띠리링~ 어서 건너라고 숨 가쁜 신호음을 내며 보행자를 재촉하는 초록 점멸등처럼 압박을 가한다. 아리아리다힐 마하수리 아ㅣ다ᄃᆞ니지…… 아무거나 대는 대로 자판을 친다. 에라이~ 손가락을 펼쳐 관절을 꺾어 넘긴다. 양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휴~ 새어 나오는 한숨, 휴대폰 화면이 밝아졌다 꺼진다. 몇 개의 문자를 확인하고 카톡을 연다. 지인이 남긴 글을 읽다 우스개 답변을 보낸다. 주거니 받거니 답글들은 단톡방을 가득히 채우고 이모티콘들이 범람한다. 유튜브에 뜬 쇼츠 영상을 보다가…… 글쓰기는 수면 아래로 잠긴 채, 외계어가 들어찬 한글 파일에 상념이 넘실거린다.
4) 늘 무수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들끓었다. 그것들은 구렁이가 담을 타 넘듯 형체도 없이 달아나다가, 얽히고설켜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아무런 맥락도 없이 시공간을 초월하다 모든 것을 죄다 덮어버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쓸모없는 것들로 정돈되지 않은 내면은 걱정과 근심이 자리했다. 열쇠 구멍만 한 틈이라도 있다면 쉽사리 찾아든다던 근심은 제집인 양 마음 한구석에 눌러앉았다. 그런 나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을까. 인생을 계획치 않고 산 탓일까. 참으로 허무맹랑한 길에 들어섰다. 감히 글을 빚어내 보려는 처절한 고뇌의 한 가운데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한 발씩 디뎌본 세월이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5) 마음 따로 글 따로인 시간을 살고 있다. 어수선한 마음은 그대로 글에 드러나고, 삶의 모양새에도 영향을 끼쳤다. 글이란 것만 붙잡으면 하소연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지지리 궁상이 따로 없다. 과잉 감정은 눈꼴이 시릴 지경이다. 객관적인 나를 바라보기는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결실도 없는 허깨비를 품은 마음이 헛헛해지고 심술만 는, 나이만 든 나를 마주한다. 어차피 계획치도 않은 궤도에 떨어진 나가 아니던가, 계획을 했던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란 것이 아니냐.
6) 다시 심기일전한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듯이 생각이란 것을 드러나게 옮겨 적는 글쓰기를 통해 파편들이라도 흩뿌려 놓는 작업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막막하고 막연한 것은 머리로 구상을 다 해놓고 손으로 옮기기만 하는 그런 신공을 부리려니, 나 같은 초보 글쓰기 입문자에겐 더욱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제와 대상과 시의성까지 파악하라는 고차원적인 말에 휘둘려 작정하고 책상에 앉아본들, 그것은 이론일 뿐 머리에서 손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지름길이 어디메인지 모를뿐더러,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방향조차 알 길이 없다. 그것에서 무슨 감동과 교화 거리가 될지는 지금의 나에겐 이상향일 뿐이다. 다만, 쓸 뿐이다. 한 문단이라도 토해낼 뿐이다.
7) 글을 쓰다보면 달리기의 지긋한 몰입의 경지인 러너스 하이를 간혹 느낄 때도 있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그런 일이지만, 몰입이 주는 강렬함을 맛본 적이 있다. 공을 들인 시간을 견뎌낼수록 글은 정갈해진다. 글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부침도 한결 가지런해진다. 헤밍웨이가 말했던가,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하지만 내 것은 수건 같이 보인다, 더러 얼룩이 보이지만 수건 같아 보인다. 글쓰기 실력은 더디지만, 잘 쓴 글을 알아보는 감을 덤으로 얻은 결과로 착각이란 것을 금세 알아챈다. 글부림 몇 년째 느는 것이라곤 착각의 골짜기를 빨리 인정하는 것이다. 빠른 인정이야말로 다음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걸레든 수건이든 거기에 공들인 시간이 머물렀다는 것은 틀림없다. 서툴든 말든 일단 괘념치 않고 무조건 한 문단이라도 쓰고자 한다.
첫댓글 한 문단이라도 매일 쓰기로 약속을 수없이 하고도 그 실천을 못하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 운전하는 동안 저는 머리로 글을 짓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릴 글을 수없이 쓰면서 꼭 기억하고 지면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운전대에서 내리는 순간 없었던 일이 되어버립니다. 머리속으로 구상한 것을 막상 쓰려면 글이 중구난방 갈피를 못잡고 넋두리만 늘어놓게 됩니다.
대봉도서관에서 공부하셨던 분이라 글이 다르네요.
수필문학관에 이 글에 공감하는 분들이 아마 많이 않을까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렇겠지요. 글쓰는 마음은 다 같을테니까요.
글부림에 몸살기입지 않으시도록요^^
홧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