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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5장 1-8절. 남녀노소와 과부 성도에 대한 목회적 지침
1절은 ‘남자 노소’에 대한 대한 목회적 교훈이고, 2절은 ‘여자 노소’에 대한 교훈입니다.
결국 1-2절은 모든 교인에 대한 교훈입니다.
즉 목회자는 성도들을 부형(父兄)과 모매(母妹)처럼 성도들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서 모든 교인들은 영적인 형제와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16-19)
1절.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o not sharply rebuke an older man, but rather appeal to him as a father, to the younger men as brothers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Πρεσβυτέρῳ μὴ ἐπιπλήξῃς,
elder not rebuke
직역하면 ‘늙은이를 꾸짖지 말라’는 뜻입니다.
동사(ἐπιπλήξῃς)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rebuke) 절대 꾸짖지 말라고 아주 단호하게 명령한 것입니다.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ἀλλὰ παρακάλει ὡς πατέρα,
but appeal as father
직역하면 ‘아버지처럼 권하라’는 뜻입니다.
‘권하라’(παρακάλει)는 현재 명령형으로서(appeal) 항상 권면하고 호소하라는 뜻입니다.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νεωτέρους ὡς ἀδελφούς,
younger as brothers
1. ‘늙은이’(πρεσβύτερος)란 교회의 ‘장로’를 가리키기도 한데(딛 1:5),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늙은이’를 뜻합니다.
‘꾸짖다’(ἐπιπλήσσω)란 단어는 ‘위로’( ἐπί)란 접두어와 ‘때리다’(πλήσσω)란 동사의 합성어로서, 원래 ‘상처 입기 쉬운 곳을 때리는 것’(strike in a vulnerable place)을 가리키는데, ‘날카로운 말로 치는 것’( strike someone with sharp, brutal words)을 가리킵니다.
‘아버지에게 하듯 권면하라’는 것은 목사가 교회에서 연장자를 대할 때, 권위를 가지고 책망하지 말고, 아버지에게 하듯이 예의와 공경심을 가지고 권면하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노인에 대한 공손한 태도는 목사 뿐만 아니라, 일반인 모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레위기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2.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라’는 것은 목사가 젊은 남자에게 권위적인 태도로 대하지 말고, 형제처럼 평등하고, 따뜻한 우정으로 대하라는 뜻입니다.
즉 ‘형제’(ἀδελφούς)라는 말에는 평등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Hendriksen)
또한 ‘형제’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교인들끼리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기독교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교회에서 권위적인 자세를 가지고, 교인들을 지배하려는 태도를 갖지 말고, 하나님을 같은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 의식을 기본적인 자세로 가져야 합니다.
2절.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older women as mothers, and the younger women as sisters, in all purity.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πρεσβυτέρας ὡς μητέρας,
female elders as mothers
동사는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νεωτέρας ὡς ἀδελφὰς ἐν πάσῃ ἁγνείᾳ.
younger women as sisters in all purity
동사는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1. ‘늙은 여자’(πρεσβυτέρας)란 ‘늙은이’(πρεσβύτερος)의 여성복수형으로서 역시 여자 장로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늙은 여자들을 가리킵니다.
목회자가 교인들과 친해지면, 흔히 나이 드신 권사나 여자 집사에게 반말을 하기도 하고, 무례하게 대하기 쉬운데, 이런 무례한 태도를 엄히 경계한 말씀입니다.
목사가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교인들과 친밀해지면, 특히 젊은 여성도들에게 반말을 하고 지나친 친밀감을 갖게 되기 쉬운데, 이것은 자칫 마음으로 범죄하고, 특히 간음하기 쉬운 일이므로, 특별히 경각심을 갖도록 교훈한 말씀입니다.
2. ‘온전히 깨끗함으로’(ἐν πάσῃ ἁγνείᾳ: in all purity)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마음에 이미 간음했느니라’(마태복음 5:27-28)는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깨끗함’(ἁγνείᾳ)이란 단어는 성적 순결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디모데가 훌륭하게 훈련되고 성장한 목사라고 해도, 누구도 예외없이 남자가 젊은 여자를 대하면, 성적인 좋은 감정과 호감을 자연적으로 느끼기 마련이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 목사에게 ‘온전히 깨끗함으로 젊은 여자를 대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목사들이야말로, 교회에서 젊은 여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마음과 몸으로 삼가 조심해야 할지, 항상 깊이 명심해야 할 교훈의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의 여자 문제는 초대교회 당시에도 있었고(Fee. Marshall), 오늘날이야말로 얼마나 사회적인 큰 문제인지 모릅니다.
특히 목사가 여성도들을 정신적으로 오랫동안 예속하는 종이 되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글루밍(glooming) 성범죄를 철저히 막아야 하겠습니다.
3절.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onor widows who are widows indeed;
Χήρας τίμα, τὰς ὄντως χήρας
widows honor, who truly widows
‘존대하라’(τίμα)는 현재 명령형으로서(honor), 항상 존대하라는 뜻입니다.
1. ‘과부’는 남편이 죽고 혼자된 여자와 당시 일부다처제가 성행해서 남편에게 버려진 과부를 가리키는데, ‘참과부’란 60세가 넘고, 돌보는 자녀나 친척이 없고, 교회에서나 사회적으로 선한 일을 한 과부를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에도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말씀이 많고(신명기 10:18, 24:17, 시 68:5, 이사야 1:7 등), 초대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된 동기도 교회에서 과부를 구제하는 문제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 6:1-6).
출애굽기 22:22-24.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신명기 14:28-29.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런 과부들은 교회에서 전적으로 봉사하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과부’라는 명칭은 교회의 한 직분처럼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Debelius)
그런데 때로는 과부를 돕는 일로 인해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해서, 교회가 진정으로 도와야 할 참 과부에 대한 규정이 필요했습니다.
2. ‘존대하라’(τίμα)는 말은 존경하고, 공손히 대하라는 뜻인데, 이 단어의 명사형(τιμή)은 ‘공경하는 값’(valuing price)을 의미합니다.
즉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이나 선생님에게 갈 때는 반드시 공경하는 의미로 돈이나 선물을 드리게 되는데, 그 때 공경하는 값을 ‘티메’(τιμή)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참 과부에게 드리는 공경값은 일종의 국가에서 노인에게 주는 연금(pension)처럼, 매달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주었던 것입니다. (Scott)
그래서 과부 성도들은 교회에서 지급하는 연금을 받아서 생활했고, 그래서 또한 과부들이 교회 봉사를 많이 했고, 일종의 직분처럼 여겨졌습니다.
4절.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any widow has children or grandchildren, they must first learn to practice piety in regard to their own family and to make some return to their parents; for this is acceptable in the sight of God.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εἰ δέ τις χήρα, τέκνα ἢ ἔκγονα ἔχει,
if however any widow, children or grandchildren has
직역하면 ‘그러나 만일 어떤 과부가 자녀나 손자들을 가지고 있다면’이란 뜻입니다.
‘가지고 있다면’(ἔχει)은 현재형으로서(has)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μανθανέτωσαν πρῶτον τὸν ἴδιον οἶκον εὐσεβεῖν,
let them learn first to the own household to practice piety
직역하면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공경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는 뜻입니다.
‘공경하는 것을’(εὐσεβεῖ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practice piety) 항상 공경하는 것을 가리키며, ‘배우게 하라’(μανθανέτωσαν)는 현재 명령형으로서(let them learn) 항상 배우게 하라는 뜻입니다.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καὶ ἀμοιβὰς ἀποδιδόναι τοῖς προγόνοις·
and recompense to give back to parents
직역하면 ‘부모에게 보상을 되돌려 주는 것을’ (배우게 하라)는 뜻입니다.
‘되돌려 주는 것을’(ἀποδιδόναι)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ive back) 항상 되돌려 주는 것을 가리키고, 이 동사는 앞의 ‘배우게 하라’(μανθανέτωσαν: let them learn)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τοῦτο γάρ ἐστιν ἀπόδεκτον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this for is pleasing before to the God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1. 본 절은 과부로서 자녀나 손자가 있는 과부는 교회에서 연금을 주기보다는 자녀나 손자가 부모나 조부모에게 보상금(ἀμοιβὰς:recompense)을 드려서, 교회의 부담을 덜어드리게 하라는 뜻입니다.
즉 교회에서 과부에게 드리는 것은 연금(τιμή: pension)이고, 가정에서 자녀손이 과부 모친이나 조모에게 드리는 것은 자기를 길러주신 데 대한 보상금(ἀμοιβὰς:recompense)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국가에서도 가난한 노인들에게 노령 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교회에서도 할 수 있는 대로, 가난한 과부들이나 노인들에게 노령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2. ‘효를 행하여’라는 말은(εὐσεβεῖν) 원래 ‘공경함을 실천하여’(to practice piety)란 뜻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생활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20).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부모님께 드려야 할 부양비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서, 부모님께 부양비를 드리지 않는 불효를 행하여, 예수님께 큰 책망을 들었습니다. (마가 7:10-13)
마가복음 7:10-13.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3.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는 말은 부모에게 부양비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헌금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받으실 만한 것’이란 제사와 제물이란 뜻인데, 요즘 말로 헌금을 뜻합니다.
구약성경에서 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는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서 드리라고 했는데( 신명기 26:12), 이런 취지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부양비도 일종의 십일조라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26:12.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왜냐하면, 교회에서 과부에게 연금을 드린 것을 그 자녀가 부양비를 드림으로써, 교회에서 드리는 연금이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있어도 부모에게 부양비를 드리지 않는다면, 교회에서는 재정적 손실이 있더라도, 가난한 과부에게 연금((τιμή: pension)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본 절은 <부모 부양비가 헌금 성격>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5절.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she who is a widow indeed and who has been left alone, has fixed her hope on God and continues in entreaties and prayers night and day.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ἡ δὲ ὄντως χήρα, καὶ μεμονωμένη, ἤλπικεν ἐπὶ Θεὸν
she now indeed widow, and having been left alone, has haven hope in the God
직역하면 ‘참 과부인 여자는 홀로 남겨져 있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뜻입니다.
‘홀론 남겨져 있어서’(μεμονωμένη)는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left alone) 과거부터 현재도 홀로 남겨져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소망을 두어’(ἤλπικεν)는 완료형으로서( has haven)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καὶ προσμένει ταῖς δεήσεσιν, καὶ ταῖς προσευχαῖς νυκτὸς καὶ ἡμέρας·
and she continues in the supplications, and prayers night and day
직역하면 ‘주야로 간구들과 기도들을 계속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계속하고 있다’(προσμέν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continues) 항상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참 과부’란 돌봐줄 남편이나 자녀가 없는 과부를 가리킵니다.
남편과 자녀가 없는 과부가 물론 참 과부이지만, 자녀손이 있더라도 돌봐주지 않는 과부도 참 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손들에게 부양비를 받지 못하는 과부는 교회에서 연금을 주어야 할 과부이기 때문입니다.
2. ‘외로운 자’(μεμονωμένη)란 정서적으로 외로운 자를 가리키지 않고, 홀로 남겨져서고 돌봐줄 사람이 없는 자(having been left alone)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돌봐줄 가족이 없는 참 과부를 교회가 책임지고 연금을 지급하면, 아 과부는 자녀들을 돌봐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늘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기도에 전념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초대교회에서 교회를 통해 연금을 지급받은 과부들이 늘 교회 일에 봉사하고 기도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과부들은 마치 교희에서 장로에 버금가는 여성 직분자로 인식되었습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남편처럼 자신을 돌봐줄 분으로 여긴다는 뜻이 있고, 하나님의 일 즉 교회 일을 자녀를 돌보는 일처럼 여겨서, 교인들을 심방하고, 교회 식당에서 봉사하고, 여러 성도들과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치 구약의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받으면서 성전 제사와 봉사에 전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상 이것은 신약 교회에서 사도들이나 목사들이 교회의 일을 하고, 교인들에게 사례비를 받는 것과 같이, 과부들도 교회에서 연금을 받고, 교회 봉사를 한다는 뜻입니다.
4. ‘참 과부가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한다’는 것은 참 과부는 자손이나 가족이 없기 때문에, 일반 성도들이나 목회자나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간구들과 기도들(δεήσεσιν καὶ προσευχαῖς: supplications, and prayers 복수형)을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목회자도 자녀들과 여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설교 준비와 심방 일정 등으로 인해 여러 사람을 위해서 많이 기도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과 자녀가 없는 참 과부들은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와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절.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she who gives herself to wanton pleasure is dead even while she lives.
ἡ δὲ σπαταλῶσα, ζῶσα τέθνηκεν.
she however living in self-indulgence, living she has been dead
1. ‘향락을 좋아하는’(σπαταλῶσα)은 현재분사로서(living in self-indulgence) 항상 향락을 좋아하는 생활을 가리키며, 원형(σπαταλάω)은 자유분방하고 방탕하게 살다( live prodigally and wastefully)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말은 생계 수단이 없는 과부들이 성매매를 통해서 생계비를 버는 것을 뜻했습니다. (Guthrie)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교회에서 참 과부의 생계비로 연금을 지급하되, 성매매를 통해서 생계비를 버는 과부는 제외하라는 뜻입니다.
2. ‘살았으나 죽었다’(ζῶσα τέθνηκεν)에서 ‘살았으나’(ζῶσα)는 현재분사로서(living) 현재 살아있는 것을 가리키고, ‘죽은 것이라’(τέθνηκεν)는 완료형(she has been dead)으로서 이미 죽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살아 있으면서 이미 죽어 있다’(living, she has been dead)는 뜻이고,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즉 육신은 성매매 대금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성령님이 떠나시고 죽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교회에서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모든 과부가 살기 위해서 모두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연금을 주어서 기도와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밖에 나가서 불신자를 전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여 성매매로 타락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7절.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rescribe these things as well, so that they may be above reproach.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καὶ ταῦτα παράγγελλε,
also these command
직역하면 ‘또한 이것들을 명령하라’는 뜻입니다.
‘명하여’(παράγγελλ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command) 현재 명령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로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라
ἵνα ἀνεπίλημπτοι ὦσιν.
so that above reproach they should be
직역하면 ‘그들이 책망을 받지 않도록’이란 뜻입니다.
동사( ὦσιν)는 현재 가정법으로서(they should be) 책망이 없는 것을 가정한 것을 가리킵니다.
1. ‘이것들’(ταῦτα: these things)이란 참 과부는 교회에서 연금을 지불할 것과, 자손들이 있는 과부는 자손들이 부양비를 드려서 교회가 연금지불에 대한 짐을 지지 않게 하라는 것과, 과부들에게 교회가 연금을 지불하지 않아서 과부들이 성매매로써 생계비를 벌므로 신앙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라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2. ‘책망받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은 교회가 과부들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그리스도인 과부들이 성매매에 종사하게 되면, 주님과 교회의 영광이 먹칠을 당하게 되므로, 사회에서 책망을 받게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가난한 성도들의 생계 문제를 책임지지 않고, 성도들이 거지 노릇을 한다든지, 도적질을 한다든지, 성매매를 하게 되면, 사회에서 교회가 책망을 받게 되고, 주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과부 성도를 돌보지 않으면,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에도 사회가 가난한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 큰 책망을 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이사야 10:2.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에스겔 22:7.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스가랴 7:10-12.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말라기 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anyone does not provide for his own, and especially for those of his household, he has denied the faith and is worse than an unbeliever.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εἰ δέ τις τῶν ἰδίων, καὶ μάλιστα οἰκείων, οὐ προνοεῖ,
if now anyone the own, and especially household, not provide for
‘돌보지 아니하면’에서 ‘돌보다’는 동사(προνοεῖ)는 현재형으로서(provide for) 계속 돌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τὴν πίστιν ἤρνηται, καὶ ἔστιν ἀπίστου χείρων.
the faith he has denied, and he is than unbeliever worse
직역하면, ‘그는 이미 믿음을 배반했고, 그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는 뜻입니다.
‘배반한 자요’에서 동사(ἤρνηται)는 완료형으로서(he has denied) 이미 믿음을 배반한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에서 동사(ἔ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현재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는 뜻입니다.
1. ‘누구든지’(τις: anyone)란 표현이 강조적입니다.
실상 앞에서는 자손들이 과부 모친이나 조모에게 부양비를 드려서 교회가 연금을 지불하지 않도록 하라고 교훈했는데, 본 절에서는 그 자손들만이 아니라 ‘누구든지’로 확대해서 엄격히 가족 부양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이 신앙을 앞세워서 부모 부양비를 고르반이라고 하면서 교회에 드렸다고 부모님에게 드리지 않는 악행을 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마가 7:10-13)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친족과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고, 양육비나 부양비를 드리지 않는 것은 믿음을 배반한 가롯 유다 같은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짐승 같은 자라고 엄히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단자들은 신앙을 앞세워서 부모를 배척하고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는 사례가 아주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교회 행사와 직분에만 열심하면서, 부모님을 찾아보지 않거나, 자녀들 양육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교회의 중직자나 목사가 교회 일에만 빠져서 부모를 도외시 하고, 돌아보지 않고, 부양책임을 등한시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믿음을 배반한 가롯 유다 같은 행동이고, 불신자보다도 더 악한 짐승만도 못한 행위입니다.
물론 부모를 우상시해서 부모를 따라 우상 제사에 참여해서는 안 되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겨서 우상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성령님께서 선한 양심을 갖게 하시기 때문에, 부모님께 대한 사랑과 효심을 갖게 하고, 부양비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면, 성령님께서 어린 자녀들도 애틋하게 사랑하고 양육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성령님께서 양심을 회복시켜주시기 때문에, 부모 사랑과 자녀 사랑과 친족 사랑과 이웃을 사랑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칼빈(Calvin)은 “누구나 인간성과 감정을 무시하면, 하나님께 대한 경건도 사라진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짐승보다 못한 불효를 하겠는가. 그러므로 가난한 부모를 못 본 체하고, 부양비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공적인 모독이고,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벵겔(Bengel)은 “믿음은 인간의 본성적 효심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본성적 효심과 자녀 사랑을 완전케 하고, 더욱 강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핑계로 부모에게 불효하고 부양비를 드리지 않거나, 교회 일을 핑계로 자녀 양육을 소홀히 하는 악행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이나 언제든지 교회가 ‘믿음 지상주의’(believialism) 때문에, 반인륜적인 불효나 자녀 학대나 성범죄를 하는 폐해를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령과 성경으로 인한 ‘선한 양심’(καλός συνείδησις: good conscience)을 가지는 것과 ‘선한 분별력’(καλός φρόνησις: good prudence)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자기 친족’(τῶν ἰδίων: the own)은 어디까지인가를 구체적으로 정해주지는 않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민법상 8촌까지를 친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기 가족’(οἰκείων: household)은 부모나 자녀 등 직계 가족을 의미합니다(Guthrie).
3.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은 가난한 부모 부양을 하지 않는 교인은 가롯 유다처럼 믿음을 배반한 자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출교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은 사회법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와 실제적인 효도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간혹 기독교는 유교보다 효를 강조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본 절은 실제적으로 부모에 대한 부양비를 드리지 않는 자녀는 출교 처분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고, 불신 사회에서도 처벌을 받을 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은 부모에게 부양비를 드려야 한다는 엄격한 명령을 교회가 실천해서, 교회에서 불효자를 책벌하고, 기독교 이단들이 부모를 배척하고 가출하는 악한 현상을 단호히 배척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