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로새서 3장 20-21절. 부모순종과 자녀양육
1. 골로새서 3장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가운데서, 먼저 <교회 생활>을 서로 용서와 사랑으로써 아름다운 교회 생활을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생활의 연장으로서, 아름다운 <가정생활>을 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부부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가정생활을 말씀드렸으나, 오늘은 ‘친자간’의 아름다운 가정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 오늘 설교의 제목은 <친자간의 아름다운 가정생활>입니다.
3. 오늘 본문은 두 구절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20절은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21절은 부모에게 자녀를 격노케 말고, 주의 말씀으로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자녀들에게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Children, be obedient to your parents in all things, for this is well-pleasing to the Lord.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Τὰ τέκνα, ὑπακούετε τοῖς γονεῦσιν κατὰ πάντα,
The children, obey the parents in all things
‘순종하라’(ὑπακούετ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obey) 항상 순종하면서 살아라는 뜻입니다.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τοῦτο γὰρ εὐάρεστόν ἐστιν ἐν Κυρίῳ.
this for pleasing is in Lord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것은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시대는 갈수록 부모를 거역하는 시대로 악해져 갈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부모를 거역하며—무정하며, 사나우며, 조급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갈수록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의정부의 김 모 씨는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따라 죽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효도는 아니지만, 부모님에게 대한 애정이 사라진 시대에 하나의 충격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2. “모든 일에”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에 이해가 가는 일에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에나 일단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잘 길러주셨던 부모든지, 나를 버린 부모라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유교적 풍습 따라서 아버지에게만 효도하고, 어머니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엄마는 늘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피부로 느끼게 보살펴주시기 때문에, 엄마는 사랑하고, 직장에서 고생하여 돈을 벌어다 주는 아버지와는 대화하려고도 않는 자녀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잠언 23장 22절에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3. [예화 1] 어려서 천*숙 집사님은 아들 셋을 기를 때, 그 부모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도록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커서 다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은 고등법원장으로 재직중이고, 장로님이십니다.
그런데, 높은 관직에 있는 자녀들이 어머니 앞에서 지금도 무릎을 꿇고, 무슨 말씀이든지 절대복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집에 심방 가서 그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집사님 자녀들을 어떻게 길렀길래 이렇게 지금도 절대 순종합니까?
그랬더니, 그 집사님 말씀에, 어려서부터 “갑주야” 하고 부르면, “네” 대답하고 달려오도록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일이나, 어느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지 모든 것을 어머니와 상의해서 하도록 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아들이 아무리 고등법원장이라도, 대법관이 될 때까지, 절대 어머니와 상의하고, 모든 일을 어머님의 지도를 받으며, 해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성경은 모든 일에 주 안에서 부모님에게 순종하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4. [예화 2]
과거에 독일에서 한 번에 8명을 죽이고 사형 판결을 받았던 흉악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홀어머니에게서 자랐습니다.
홀어머니는 귀한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하도록 귀하게 길렀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살인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던 날, 최후의 소원이 무엇이냐는 진술을 받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뵙고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판사는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 하고 죽는 것을 후회하는 줄 알고, 어머니를 보고 사형집행을 하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끔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흉악범은 어머니를 뵈면서, “어머니가 나를 한 번도 꾸짖지 않고, 무엇이나 하도록 방임했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사형을 받게 되었다”고 원망하더랍니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마지막 작별 키스를 한다고 하면서, 어머니의 혀를 깨물어 버렸다고 합니다.
너무도 잔인한 사건이라서, 저도 처음 들을 때,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5. [예화 3] 어느 교회의 지도자님께 들은 실화입니다.
섬에서 아들을 공부시키느라고 서울로 유학을 보냈는데,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 시골 생활을 다 포기하고 서울에 갔답니다.
당시에 서울에서 마땅히 돈벌이가 없었는데, 오물을 치우는 일이 수입이 괜찮아서, 오물 푸는 일을 해서 아들을 서울대 공부를 시켰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아버지가 오물을 리어카에 싣고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남산 쪽에서 아들이 친구랑 내려오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반가운 마음에 아들 이름은 불렀답니다.
그래도 아들이 모른 체해서, 아버지가 더욱 큰 소리로 부르니까, 그 아들이 모른 체하면서, 친구에게 우리집 머슴이라고 하면서 지나가더랍니다.
아들에게 그런 수모를 당한 아버지는 그 날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희생적인 조상의 공덕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천하기 짝이 없이 고생하면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겸손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자녀를 기를 때,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기르는 것과 불순종하게 내버려 두는 것의 결과는 이렇게 성공과 비극의 결과로 갈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주 안에서’란 먼저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씀입니다.
(1) 과거에 우리나라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효도를 평가했습니다.
유교가 이조 500년 동안을 지배해왔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유교적 효도 개념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유교적 효도의 개념은 부모를 우상시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사하는 관습”입니다.
(2) 그러나, 기독교적 효도는 하나님을 절대자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효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적 효도는 부모를 우상시하지도 않지만, 비록 부모가 잘못하신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효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선행되지 않는 효도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효도가 되지 못하고, 외식적인 억지 효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웃 사랑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가족인 부부와 부모님과 자녀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의 윤리적 교훈의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부터 3장 11절까지는 하나님께서 거저 인간을 용서하시고,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장 12-17절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먼저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18-21절은 부부와 부자간에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2절부터 4장 1절은 행복한 가정생활의 연장으로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아름다운 교회 생활이나, 행복한 가정생활이나, 즐거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3) 또, ‘주 안에서’란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부모를 우상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유교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부모를 우상시해서, 부모를 신처럼 제사 지내는 것이 참다운 효도인 양 강조를 합니다.
그러나, 유교의 가르침에도 부모님 살아생전에 잘 모셔라고 했고, 공자님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고, 제사 음식을 차려놓아도 찾아와서 먹는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까?
그것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영혼이 귀신이 된다고 잘못 생각해서, 부모 귀신에게 복을 달라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사람은 죽으면 천국 가든지 지옥 가든지 하고, 이 세상에 떠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단지 원래 마귀 귀신이 부모 흉내를 내면서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은 비록 예수님을 안 믿고 돌아가셔서 고통스러운 가운데 계시더라도, 세상에서 사실 때와 똑같이 가족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예수 믿고 천국 가고, 지옥에 오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28)
그러므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예수님 잘 믿고,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살아생전에 부모님을 사랑하고, 형제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효도입니다.
3.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1) 성경은 효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에 효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는 효도를 가르칠 때에는, 부모님이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많은 고생을 하셨으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르치는 윤리 도덕입니다.
(2) 그러나, 성경은 부모가 죽을 고생하면서 날 낳아주고, 고생하시면서 길러주셨기 때문에 효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효도란 부모가 날 낳아서 버렸거나, 학교 공부를 못 시켰어도, 효도는 하나님이 창조해놓으신 올바른 이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학대하고, 나에게 잘못을 많이 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신 사랑을 생각하면서, 부모를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효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 사실 어린 자식에게 부모가 못 할 짓을 해서, 평생 마음이 병들어 사는 자녀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국민의 약 15%는 어릴 때 부모에게 상처받아서, 성인이 되어서도 알게 모르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나를 용서하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부모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효도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부모에게도 효도하면, 상급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4)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잘 되지 않습니다.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은 어느 집단에서도 성공적인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에게 무서운 저주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잠언 30장 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즉, 불효자식은 저주스러운 죽음을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5) 사람은 가정에서도 부모에게 매 맞아가면서 올바로 성장을 해야 하고, 학교에 가서 다시 선생님에게 매 맞아가면서 올바른 사람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군대에 가서 상관에게 매 맞아가면서 복종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직장에 가서 상사에게 호되게 책망을 받으면서 직위가 높아져 가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매 맞아보지도 않고, 꾸지람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매 맞아보지 못한 사람이나, 군대에서 호된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나, 직장에서 상사에게 일을 배우면서 호되게 책망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겸손을 모르고, 이웃 존경도 모르고, 진정 하나님 섬기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6) 이처럼, 부모 공경을 잘하는 사람은 땅에서 잘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체에서 면접시험을 볼 때, 제일 첫째로 가정생활을 잘하는지, 특히 부모님과 형제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물어본답니다.
둘째로, 자녀를 잘 교육하라는 말씀입니다.
21절.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athers, do not exasperate your children, so that they will not lose heart.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Οἱ πατέρες, μὴ ἐρεθίζετε τὰ τέκνα ὑμῶν,
the fathers, not do provoke the children of you
‘격노케 하지 말지니’에서 동사(ἐρεθίζετ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do provoke), 격노케 하는 언행을 언제나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낙심할까 함이라
ἵνα μὴ ἀθυμῶσιν.
that not they might become discouraged
직역하면 ‘낙심하지 않도록’ (격노케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동사(ἀθυμῶσιν)는 현재 가정법 동사입니다(they might become discouraged).
에베소서 6장 4절에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1. 성경에는 아이들도 본성이 타락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반 사회의 심리학에서는 “아이들의 천성이 원래 하얀 백지처럼 착하다”( tabla rasa: 타블라 라싸: 깨끗한 서판)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천성대로 그대로 잘 키우고, 어른들이 나쁜 영향만 주지 않으면, 착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린아이라도 천성이 타락해 있고, 미련한 것이 얽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의 교양으로 가르쳐야 하고, 훈계로 꾸짖고, 엄히 징계하고 초달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 그러나,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1) 자녀들은 부모 때문에 좌절감과 열등감을 갖습니다.
어렸을 때 한 번 형성된 열등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주서택)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서 ‘내적 치유’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 이 책에 보면, 어떤 어머니가 심한 열등감에 두려워 떨면서, 자식들을 학대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반성을 하고, 다짐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을 해도 용서를 못하고, 심하게 학대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적 치유 프로그램에 가서 기도 중에 자신의 내적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골방에 갇혀서 두려워 떨면서 울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정어머니를 찾아가서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릴 때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바로 얼마 안 되었을 때에, 아버지가 딸로 태어났다고 해서 죽어버리라고 작은 골방에 집어넣고 죽게 버려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도 목숨이 길어서 안 죽길래, 다시 데려다 길렀다는 슬픈 사연을 말해주었습니다.
이 사건이 어린 아기에게는 기억과 의식 속에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잠재 의식 속에는 늘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에는 어두운 골방에 갇혀서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러고 싶지 않아도, 무의식 중에 우울함고 분노와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들이 조금만 잘못을 해도, 죽일 듯이 미워하고, 무섭게 학대를 했던 것입니다.
이 자매는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통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부모로 인해 자녀가 받는 분노와 상처가 얼마나 일생을 크게 불행하게 만드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3. 이처럼, 자녀를 격노하여 낙심케 말고, 에베소서 6장 4절에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1) 그러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인간의 본능적 사랑만 가지고는 자식을 올바로 양육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담 이후로 죄로 인해서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본능적 사랑만으로써는 자식을 망치고, 부모에게도 불행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이러한 “무절제한 사랑”을 영어로는 “indulgent love"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식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그 자식은 반드시 망하고, 부모와 원수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엄히 징계한다고 했습니다.
잠언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징계란 가르친 교훈대로 살지 못했을 때, 말로나 채찍으로 벌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할려면, 반드시 먼저 올바른 가르침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경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2)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것
잠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교훈들이 나와 있습니다.
1장 7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
1장 8절. 부모에게 순종하라.
1장 10절. 악한 친구를 사귀지 말라.
3장. 성경 말씀을 읽고 지혜를 얻으라. 지혜가 제일이라.
5장. 결혼한 사람은 가정을 잘 지켜라.
6장. 보증을 서지 말라.
7장. 부자가 되었을 때, 음행에 빠지지 말라.
19장. 부자 되었을 때에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줄 알아라.
20장. 술과 향락의 종이 되지 말라.
22장. 재물보다 명예를 더 중시하라.
(2) 훈계로 양육하는 것
먼저 교양으로 가르쳐주었는데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훈계를 해야 합니다.
말로 책망하고, 그래도 안 들을 때는 채찍으로 때려야 합니다.
4. 또한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려면,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모니카(Monica, 333-387)의 기도를 보신 암브로우스(Ambrosius, 340~397년) 목사님이 이렇게 위로해주셨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
누가복음 23장 2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위해서 울지 말고,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서 울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악한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간섭해주시도록 눈물로 간절히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부모님께 주안에서 모든 일에 순종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간의 혈기로 격노케 하여 낙심시키지 않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부모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정에 행복이 넘치고, 자손들이 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