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에도 색연필을 가지고 놀고 싶다
딸을 시집보내고 나니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이해됐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때는 시원했는데 출근하고 혼자가 되니 섭섭한 마음이 새록새록 들었다. 늦잠을 자고 빈둥거리는 것도 처음 한 달 뿐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여든셋이 된 노부인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춘천 사는 딸네 집에 꽃 그림을 그리러 간다는 모습이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자녀 집을 방문할 때 놀러 가거나 손주들 보러 간다고 말하는데 꽃 그림이라니. 저렇게 늙어가고 싶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터라 내게 그림에 대한 소질이 있고 없나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거울을 보고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을 보면서 그냥 늙어감을 방치해 두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서서히 쪼그라들고 늙어 정해진 코스처럼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긴 정말 싫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백화점 문화 센터에 보타니컬아트 강좌 신청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고등학교 미술 수업이 고작이었기에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었다. 나에게 그림은 생소하고 낯설었다. 준비물로 72색 색연필을 샀을 때는 처음 학교를 입학하는 전날 밤처럼 설레어 가슴이 두근댔었다. 줄 긋기를 하고 곡선을 그리며 스케치북에 4B연필로 내 생애 첫 그림 목련을 그렸다. 그리고 똑같은 목련에 색을 입히자 봉긋한 봉오리에서 흰색과 자목련이 피어올라 내게 ‘안녕’하며 말하는 것 같았다.
휴대전화 앨범 속 대부분이 꽃을 찍은 사진이다. 전체적인 꽃을 찍고 만개한 꽃과 봉오리와 암술, 수술을 확대해 찍고 가지나 줄기에 돋아난 가시, 잎사귀의 세밀한 모습을 찍었다. 빛이 비취는 곳과 반대편 그늘이 지는 쪽을 찍으며 세상의 모든 꽃을 그릴 기세였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전문적인 일인지 꽃을 그릴수록 알 수 있었다. 한참 꽃 그림에 빠져 재미있을 무렵 손자가 태어났다. 육아와 더불어 살림까지 도맡게 되었다. 밤낮으로 울어대던 둘째 손녀가 태어나 합가까지 하게 되자 나는 더 이상 꽃을 그릴 여력이 없었다.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손주들. 아이가 주는 기쁨은 늘 힘듦보다 커다랗지만, 밤이 되어 파김치가 되어 잠자리에 들게 될 때면 늘 마음 한편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렇게 십여 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생일선물로 무얼 해 줄까, 묻는 내게 손녀는 오빠처럼 할머니의 그림을 받고 싶다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쿵! 쿵! 소리 내며 뛰기 시작했다는 걸. 나는 가슴을 두 손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림에 손을 놓은 지 십 년이 지나 있었다.
손녀의 말이 마중물 되어 나는 다시 하얀 백지에 꽃을 불러들이고 색색의 옷을 입혀주었다. 꽃들이 늦도록 나를 붙잡아 앉혀 놓고 더 많은 옷을 입혀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손녀에게 청 보라와 핑크, 하얀색의 수국에 투명한 푸른 리본을 두른 수국 부케를 그려 선물로 안겨주었다. 그동안 잊고 살아온 꽃들. 수국 액자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손녀가 꽃이 되어 내게 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나가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청소하고 대개는 식탁에서 그림을 그린다. 라디오를 틀어 놓을 때도 잊지만 멜론에서 클래식과 재즈와 대중가요, 소리를 들으며 색을 칠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우울한 날은 춘향전의 한 대목인 쑥대머리를 틀어 놓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어머니가 생각나는 날은 ‘찔레꼬옷 부울게 피는’ 백난아의 찔레꽃을 들었다. 그러다 보면 힘들었던 일도 어느새 남의 일처럼 잊게 되었다.
모름지기 살면서 집중하고 마음 풀 곳 하나쯤은 있어야 사는 게 수월해진다. 그림이든, 노래든, 고스톱도 좋고 마음 편한 이들과 한바탕 수다로 풀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 더 여유 있고 마음 다칠 일이 줄어 들 것이다. 내 경우 그림과 글쓰기가 그중 하나다. 글을 쓰는 것은 마음과 글이 따로따로 놀아 늘 어렵다. 어려운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과 마음만 앞설 뿐이다. 그래서 글은 내게 밀린 숙제와 같다. 그에 비해 색연필은 가지고 노는 것 같아 그냥 좋다. 결을 따라 수 없이 긋다 보면 어느 사이 꽃들이 피어나고 초록의 잎이 돋아난다. 가족들이 잠든 시간 정적을 깨듯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에 취해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른다. 나이 들어서도, 혼자여도 좋다. 그렇다고 넓은 장소도 필요치 않다. 밝은 등 하나 켜두고, 차 한잔과 음악이 있다면 내일, 모레 일흔인 이 나이에 무얼 더 바라겠는가.
수국을 그릴 때는 불두화 옆에서 웃고 있는 엄마를 만났고 카라를 그리며 먼 이국땅에 사는 오십년지기 친구를 떠올릴 수 있었다. 계절마다 앞다투어 피어나는 수많은 꽃을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며 그 색감과 결의 방향, 수술 하나에도 규칙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향을 떠올린다. 달착지근하고 톡 쏘는, 혹은 순한 향기가 어느새 방안 가득한 느낌이 든다. 나이를 먹은 탓도 있지만 나는 더 많이 웃고 조그마한 일에도 만족할 줄 알게 되었다. 꽃을 그리며 마음을 다스릴 줄 알게 됐다.
할머니가 그림을 그릴 때 많이 웃고 행복해 보여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는 손녀의 말처럼 나는 좀 더 밝고, 선해지고 싶고 그렇게 곱게 나이 든 여자로 늙고 싶다.
꽃, 너로 인해 내 삶은 더 풍요로워졌고 여든이 되어서도 너를 갖고 놀 수만 있다면 그래도 꽃을 닮아가고 있진 않을까. 내 삶의 마지막을 꽃처럼 환하게 피우고 싶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수필가 박정자
Profile
2023년 푸른솔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제2회 남한강보호 주부백일장 산문 은상, 충북여성백일장 참방,
수자원공사 물 백일장 동상 수상
이메일 주소: kddang929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