僻地벽지 / 신경림(1936-2024)
살얼음이 언 냇물
행길 건너 술집
그날 밤에는 첫눈이 내렸다
교정에 깔리던 벽지의
좌절
숙직실에 모여
묵을 시켜 먹고
십릿길을 걸어
장터까지 가도
가난하고 어두운 밤은
아직도 멀어
서울을 얘기하고 그
더러운 허영과 부정
결식 아동 삼십 프로
연필도 공책도 없는 이
소외된 교실
잊어버리자 우리의
통곡
귀로에 깔리던
벽지의 절망
그날 밤에는 첫눈이 내렸다
(1971 ‧ 創作과批評)
시인이 시를 발표한 연도를 보니 1971년이다. 《창작과비평사》는 시선 첫 번째 시집으로 『농무』를 내놓으면서 ‘민중의 삶에 의탁한 현실성(reality)’에 닿아 있는 작품, ‘리얼리즘의 감동’이라고 발간의도를 밝혔다. 리얼리즘을 표방하며 시선집詩選集을 꾸리기 시작한 시대, 글쓴이의 마음에 남은 70년대는 ‘지독至毒’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자리한 시대이다.
글쓴이가 「벽지」를 읽는 것은 초등학교시절, 그 때를 읽는 것이다. 상황은 달라졌어도 ‘벽지僻地’라는 공간은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 하여도 현실성에 닿아 있는 작품은 이렇듯 ‘마땅한 문학’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시를 읽는다.
50년이 훨씬 지난 요 며칠 전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담요를 뒤집어쓴 채 눈 부릅뜨고 응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눈이 내려 얼어터진 아스팔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새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저 “허영과 부정”의 복판에서 목 놓아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절망”을 절망하지 않는 청년들이 밝히고 있던 불빛, 아! 저 너머에 참으로 지독한 시대가 있었다.
내를 건너면 술집이 있고, 교정이 있는 두메산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보통 초임으로 부임하던 선생님들의 발령지이기도 하다. 변변한 사택도 없는 곳이어서 농가에 딸린 빈방으로 하숙을 전전하던 열악한 70년대다, “살얼음이 언” 초겨울 “첫눈”은 낭만을 헤치고 “좌절”로 내리고 있다. 어디 마음 풀 곳 없는 선생님들은 “숙직실에 모여” 조촐히 “묵을 시켜 먹”는다. 시집에는 ‘화투’에 대한 여러 장면이 자주 언급되는 데 내기 화투를 쳤는지 모르겠다.
명색이 “첫눈” 내리는 날, 십리를 걸어서 “장터까지” “가난하고 어두운 밤” 가도 가도 벽지일 뿐이다. 밥을 굶는 아이들이 “삼십 프로”나 되고 “연필도 공책도 없는”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소외된 교실”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고 능력 밖의 현실에 선 화자는 “통곡”하기에 이른다. 눈 내리는 어두운 밤, 그냥 빠져 나가고 싶은 좌절의 밤이지만 발길을 돌리는 내내 누군가 흥건히 취했을 “술집”에 내리는 첫눈, “벽지의 절망” 속으로 돌아오는 선생님의 발길에도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그렇게 가난한 아이들은 교정을 드나들었고, 선생님들은 벽지 것들을 가르쳐 오늘의 이 나라가 세워졌다. 또한 현실에 타협하고 안주하는 것이 ‘현실성’이 아니라 직시하고 함께 하는 것이 참다운 ‘현실성’이라는 것을 아로새기셨다. 아! 선생님의 “잊어버리자”는 마음자리에 또렷이 지문처럼 내리던 “첫눈”, 이는 그리움의 상실이 아니라 ‘유신’이라는 지독한 땅에 내리던 기억이다.
민중들로 빼앗겼던 봄이 있었듯이 절망보다 더 깊은 잠은 역사를 잊고 사는 노릇일 것이다. 그러기에 청년들이 “허영과 부정” 앞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한데 잠을 마다하지 않았다. 청년들이여! 첫눈처럼 새 민주주의로 이 나라를 다 덮을 때까지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저 외진 곳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통곡하던 지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