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으로 잣나무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간다.
▲통나무 쉼터가 있는 삼봉 509.3m봉에서 우측으로 꺾어간다.
▲노곡마을 등산안내를 알리는 등산안내판(1코스하산로, 호랑이굴2코스하산로. 등산로없음), 좌측으로 2코스하산로 호랑이굴도 있다는데 거리표시가 없어 그냥 패스하고 지나간다.
▲참나무가 빽빽한 능선을 완만하게
▲(일신역으로 탈출지역)마을회관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수리봉 갈림길부터 안내해 오던 이정표와 헤어져 직진으로 고도를 낮추어 내려간다. 이제 더 이상 마을회관을 알리는 이정표는 더 이상 없다. 탈출지역 우측 마을회관 방향으로 내려가면 양평군 지평면 일신1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일신역이 있다.
▲21번 송전탑 지나고 약간의 싸리나무 관목들이 등로에 자리 잡고 있다.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완만하게 올라간다.
▲가야할 444.4m봉이 보인다.
▲무명봉444.4m봉, 약간의 바위지대를 지난다. 아무표시도 없고 산패도 없다.
▲펑퍼짐하고 능선이 불분명한 곳이 나타나는 이곳 밑동에 가지가 많이 벋은 소나무가 하나 있는 이곳에서 우측(2시 방향)으로 진행한다.
▲호젓한 지맥길 잡목들이 자라고 있고 바닥에는 낙엽이 너무 많이 쌓여 걷기가 힘든다.
▲잡목도 없고 낙엽도 쌓이지 않고 길이 좋아 걷기가 편하다. 갈림길에서는 시그널들이 많아 헤맬 염려도 없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고 길은 좋다.
▲구둔치(九屯峙)는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와 양동면 매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했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울진까지 이어지는 옛 관동대로였던 큰 길목이었다. 구둔은 우리말의"구질" 또는 구즌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고개 정상 부근에 있는 습지의 자연환경적 특성의 반영한 것이다. 시대에 따른 구둔치의 명칭은 조선중기 구질(仇叱) 또는 구존(九存) 1907년경 구즌 1911년 이후 구둔으로 변화되었다.
▲구둔치는 소로의 고갯마루로서 경기도 양평군의 동남부 양동면 매월리 달웅개에서 지평면 일신리 구둔을 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며 예전에 이 고개에 군대가 주둔하며 전투가 계속되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는데 예전 관동대로라 불렸던 도로의 첫 번째 고개로도 유명한 고갯마루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지평현에 구질현이 현 동쪽 1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해동지도 지평현 도엽에 구존봉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광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건지산 서쪽에서 구존치가 확인된다. 조선지지자료에 하동면 구둔리에 위치한 구둔치로 기록되어 있고 일신초등학교 남쪽을 구둔이라고 한다. 구둔교와 구둔역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구둔치는 조선시대 관동대로의 첫번째 고갯마루로서 지금도 제법 사람들의 왕래가 있어 보이지만 예전처럼 한양(서울)을 가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산행이나 임산물 채취를 위한 목적이 대부분일 것이다. 관동대로는 조선시대 서울 도성에서 망우리를 거쳐 양평(당시는 양근, 지평)에서 원주, 안흥(횡성 강림면), 방림(평창), 진부(평창), 횡계(평창), 대관령, 강릉, 삼척, 울진,월송진(울진)을 거쳐 평해까지 이르는 도로이고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9개 대로 가운데 하나였으며 총 거리는 서울에서부터 885리였다. 조선 전기는 주로 농업을 위주로 하는 현물 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수도와 극히 일부의 지방 행정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도시가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고 국가의 무본억말(농업을 장려하고 상공업을 억제함) 정책은 상공업 발달을 저해하였다. 이에 따라서 당시의 교통과 통신 체제는 사회와 경제 의미보다 주로 군사와 행정상의 의미가 컸으며 철저한 중앙집권화 경향으로 수도 한성부를 중심으로 전국의 도로망을 개편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서 제1로는 경성에서 고양, 파주, 장단, 개성 등지를 거쳐 황해도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평안도 의주에까지 이르는 노선을 말하고 제2로는 경성에서 동북쪽으로 나아가 강원도 김화와 금성을 거쳐 함경도 경흥의 서수라에까지 이르는 노선이며 제3로는 경성에서 양평, 원주, 강릉, 삼척, 울진, 평해로 연결되는 노선을 말한다. 제4로는 경성에서 한강을 건너 용인, 충주, 문경, 대구, 밀양, 양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노선을 말하고 제5로는 경성에서 함창, 상주, 성주, 함안, 진해, 고성을 거쳐 통영에 이르는 노선을 제6로는 경성에서 동작진을 건너 과천, 천안, 공주, 여산, 전주, 남원, 함양, 진주, 사천, 고성을 거쳐 통영에 이르는 노선을 말하며 제7로는 경성에서 삼례역에 이르고 여기에서 태인, 정읍, 장성, 나주, 해남을 거쳐 제주에 이르는 노선이며 제8 로는 경성에서 평택을 거쳐 충청 수영에 이르는 노선을 제9로는 경성에서 양화도를 거쳐 김포, 통진, 갑곶진을 거쳐 강화에 이르는 노선으로 각각 편제하여 기록하였다.이 가운데 제3로 경성(서울)으로부터 강원도 평해에 이르는 도로망이 이른바 관동대로인데 거리는 총 885리였으며 구간별로 보면 서울에서 원주까지는 235리, 원주에서 강릉까지는 290리, 강릉에서 삼척까지는 120리, 삼척에서평해까지는 230리였다.
▲구둔치를 뒤돌아보고
▲ 뒤돌아 본 지나온 444m봉 너머의 509m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