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弓裔, 857?~918, 재위901~918)는 진골의 집안에서 태어나 ‘나라를 망칠 놈’이라는 예언과 함께 모진 인생역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타고난 힘과 재주로 사람을 모아 드디어 후고구려를 세우는 왕이 되었다. 그는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했으며,관심법(觀心法)이라는 특유의 술책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그것이 지나쳤을까, 포악한 성격으로 주변의 인심을 잃고, 드디어 부하인 왕건에 의해 내몰려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를 이어 중생을 구하러 세상에 올 것이다. 석가모니 열반 후 56억 7천만 년이 되는 때이다. 사람들을 저 위의 세상으로 데리고 올라갈 때, 그는 미륵불이 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미륵 상생신앙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미륵 하생신앙이 있다.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도탄에 빠진 중생이 56억 7천만 년을 기다릴 수 없어지면, 미륵보살더러 어서 오라 탄원한다. 미륵보살은 그 간청을 저버리지 못하고 이 세상으로 내려온다. 혼란한 시기, 스스로 미륵이라 부르며 나타나는 이들은 대체로 이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 역사상 미륵을 자처한 두드러진 예로 궁예를 들 수 있다. 901년에 개성에서 후고구려를 연 바로 그이다. (고운기 |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자료 인용) 궁예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것이 관심법(觀心法)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다. 이 신통력이 그의 말년에 갈수록 포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 데 쓰였으니, 그가 애써 이룬 공업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도 이 관심법이었다. 915년, 궁예의 부인 강씨가, 왕이 옳지 못한 일을 많이 한다 하여 충언을 올렸다. 그러자 궁예는 부인더러, “네가 다른 사람과 간통하니 웬일이냐?”라고 응수하였다. 부인이 어처구니없어 하자, “나는 신통력으로 보고 있다.”라며 뜨거운 불로 쇠공이를 달구어 음부를 쑤셔 죽였다. 미치광이 같은 이런 짓으로 그는 두 아이의 목숨마저 빼앗았다. 미륵이 아니라 패륜의 극치이다. 심지어 궁예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왕건(王建)에게도 예의 관심법을 들이댔다. 반역을 모의하였다고 다짜고짜 윽박지르며, “관심법으로 이 일을 말하겠다.”라고 하였다. 왕건을 아끼던 최응이라는 사람이 귓속말로 불복하면 위태롭다고 일러주었다. 그때야 분위기를 알아챈 왕건이 반역을 꾀했다고 하며 무릎 꿇었다. 궁예는 크게 웃으며 정직하다고 칭찬하며, 금은으로 장식한 안장과 고삐까지 내려 주는 것이었다. 눈치 빠른 왕건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미륵으로 자처하며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궁예의 최후는 이 뒤에 바로 이어 온다. 악행의 끝은 민심의 이반을 불렀지만, 기왕 악행을 일삼자면 왕건 또한 살려두어서는 안 되었다. 궁예는 바로 그 왕건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궁예가 애꾸눈이 된 사연: 궁예의 아버지는 신라 제47대 헌안왕이고,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후궁이었다. 삼국사기에서 48대 경문왕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록은 47대 헌안왕이 48대 경문왕에게 완전이 호구 잡혀 꼭두각시 왕만 하다가 왕위를 48대 경문왕에게 그냥 물려줬기 때문이다. 궁예의 탄생은 삼국사기에서 5월 5일에 외가에서 출생하였다고 기술해 놨다. 탄생 설화에 나타나 있는 이 때의 상황을 시나리오로 꾸며 보겠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140여년전 5월5일 단오날이었습니다. 일관(日官)이라고 하는 나랏일에 대해 점(占)보는 일을 맡아보는 벼슬을 가진 놈이 신라 왕실에 허겁지겁 뛰어 옵니다. 그리고 후에 48대 왕이 되는 예비 경문왕에게 아룁니다 日官 : (뛰어 와 허리를 굽히고 숨을 헐떡이며...) 전하!!~~ 큰일 났습니다. 王 : 호들갑 떨지 말고 자세히 아뢰어라! 日官 : 아이구 숨차~ 전하! 기이한 점괘가 나왔습니다. 王 : (놀라며) 무슨 점괘냐? 日官 : (건너편 왕궁을 가리키며) 저쪽 47대 헌안왕 세칸드 침소에서 왕자가 한명 탄생했습니다. 王 : 무어라? 아들 하나 낳은게 뭔 큰일이라고 호들갑이냐? 내가 그깟 아들 하나를 무서워하겠냐? 日官 : 아닙니다. 전하!~ 47대 헌안왕의 아들이 탄생하면서부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王 : 어떻게 예사롭지가 않다는 것이냐? 궁둥이에 뿔이라도 있느냐? 日官 : 이 왕자 쎄끼가 나면서부터 이빨이 나고, 얼굴에는 이상한 瑞光이 비취고 아이큐가 무지 좋아 벌써부터 또렷또렷 한 게 큰 인물이 될 것 같습니다 . 王 : (놀라며) 그래? 앞으로 내가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말이지? 日官 : 넵! 그렇게 사료 되옵니다. 王 : (벌떡 일어서며 화낸 목소리로) 여봐라!~~ 이거이 않되 겠다. 그 애새끼 죽여버려!!~~ (호위병들이 급하게 뛰어 나간다) (장소가 바뀌어 47대 헌안왕의 세칸드 침실) (호위병들이 침입하는 소리가 들린다) (위기에 처한 왕후가 아들을 강보에 싸서 부랴부랴 안고 방안의 숨을 곳인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군사들이 방문을 박차고 쳐들어온다) (다급해진 왕후가 다락문을 열고 밖에 있는 유모에게 아이를 던진다) (유모가 아래에서 아이를 받는데, 이때 유모가 잘못하여 손가락이 아이의 눈을 찌른다) (눈에서 피가 나는 아이를 안고 허겁지겁 도망을 친다)
▲명성산(922m). 이정표(궁예봉(약물계곡), 삼각봉0.45km, 용화저수지(등산로입 구)3.1km)와 위치표시'제6지점'푯말, 높이가 923m로 표기된 정상석과 삼각점(갈말24/1983 재설)이 있다.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명성산 갈림길로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하지만 여우봉을 거쳐 여우고개까지 가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힘이 달려 오늘은 이곳에서 우측 용화저수지 3.1km 방향으로 탈출하기로 한다.
▲용화저수지로 가는 등로는 뚜렷하고 바위 위험구간에는 로프가 매여져 있고 간간이 전망 바위도 있어 조망을 즐길수 있어 좋았다. 계속 내림길이고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어 길 잃을 염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