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5 .7일 일요일
산행 장소 ;소요산 경유 한탄강에서 점심식사후 통일 전망대 관람
회장 최순하 010 5672 4210
승차 시간표
둔포신협앞 | 06;00 | 성환읍사무소 | 06;30 |
정원주유소 | 06;10 | 삼풍아파트 | 06;35 |
성환훼미리마트 | 06;12 | 성환부영아파트 | 06;40 |
천안 연암대 | 06;20 | 직산사거리 | 06;50 |
대흥 초교 | 06;25 | 천안 농협앞 | 07;10 |
충남 주유소 | 06;28 |
소요산
소요산은 535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수도권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한 가벼운 주말 나들이 장소로 알맞은 산은 작은 품으로 아기자기한 경관을 간직한다. ‘경기의 소금강’이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화담 서경덕, 양사언, 매월당 김시습 등 수많은 문인들이 이 산을 찾아 유람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자들이 소요하는 산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원효폭포와 옥류폭포의 깔끔한 경관을 지나 신라 원효대사가 수행하며 지었다는 작은 암자인 자재암을 찾아가는 1시간 정도의 등산로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알맞은 한나절의 등산로가 된다.
작은 암자에서 샘솟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돌아오기에 알맞다. 소요산의 깊은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면 단단한 준비를 갖추고 4시간 정도의 완주 산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다. 자재암을 지나 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을 거쳐 다시 자재암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이용한다.
스마트폰 에서 빈칸을 클릭하면 화면이 보입니다
강원도 평강의 추가령곡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연천을 거쳐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한탄강, 민족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가로질러 흐르기에 이름조차 한탄일까? 그러나 한탄(漢灘)이란 ‘한여울’ 곧 큰 여울을 뜻하는 말이다. 고유어로 불러 주어야 할 이름을 굳이 한역하다 보니 그만 한숨 쉬며 탄식한다는 한탄(恨歎)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한탄강은 우리나라 어느 강보다도 변화무쌍하고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이 강은 발원지에서 임진강의 합류점까지 현무암으로 된 용암지대를 관류하기 때문에 곳곳에 수직절벽과 협곡이 형성되어 절경을 이룬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대개 절경에는 슬픈 전설이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더구나 이 강은 분단의 장벽과 연결됨으로써 더욱 그런 인식을 굳게 한 것 같다.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서 물살이 급한 개울을 ‘여울’이라 한다. 한자어로 쓴다면 천탄(淺灘)이 되겠으나 어울리지 않게 고유어 ‘한’을 섞어 한탄이 되었다. 지명어가 주는 주술성 때문인지 이 강은 오늘에 와서 한민족 비극의 대명사가 된 느낌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두고 왜 그와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하는지, 그래서 탄식 서린 비극의 강이 되어야 하는지 바로 그 점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한탄강 주변의 지명은 대개 여울〔灘〕이나 시내〔川〕와 같은, 물과 연관된 이름이 대부분이다. 한탄은 물론 차탄, 신탄, 포천, 회천, 연천, 동두천, 운천 등이 그러한데 이와 같은 거센소리 지명들은 한결같이 슬픈 전설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히 폐허가 된 옛 철원벌은 이 슬픈 전설의 증거품이라고나 할까.
괴물처럼 웅크리고 선 옛 노동당사, 격전의 현장이라는 백마고지, 녹슨 열차의 철골만 덩그렇게 남은 월정역사 등등 이들은 한결같이 망각의 피안에 버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한탄강의 협곡 사이로 위태롭게 걸려 있는 승일교(昇日橋)란 다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마치 영화 속 ‘콰이 강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이 아치형 다리는 광복 직후 김일성 치하에서 시공되어 휴전 직후 이승만 치하에서 완공되었다고 한다. 승일교란 이름은 이 다리를 건설한 박승일(朴承日)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것인데, 항간에는 이승만과 김일성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남북 합작품 다리로서 둘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 다름아닌 통일의 염원을 담은 또 하나의 전설이라고 할까.
절벽을 타고 다리 밑으로 내려와 멀리서 보면 분명 다리의 구조가 절반을 경계로 하여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남북 분단이 낳은 비극의 산물, 훗날 한반도가 하나가 되었을 때 이 승일교도 지난날의 아픔을 증언하는 유물이 될 것이다.
한탄강
한탄강은 곳곳에 수직으로 된 절벽과 협곡이 형성되어 절경을 이루는, 우리나라 어느 강보다 변화무쌍하고 풍광이 수려하기로 이름 있는 강이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광복 직후 김일성 치하에서 시공되었다가 휴전 직후 이승만 치하에서 완공되었다는, 남북 합작의 아치형 다리 승일교(昇日橋)가 남북 분단이 낳은 비극의 산물로 자리잡고 있다.
승일교 부근에 고석정(孤石亭)이란 작은 바위섬이 있다. 몇 그루 소나무를 머리에 이고 강 가운데 우뚝 선 이 바위섬이 한탄강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 섬을 보기 위해, 신라의 진평왕이 다녀갔으며 고려의 충숙왕도 다녀갔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그 어떤 왕보다도 한 시대의 영웅 임꺽정의 은신처였다는 전설을 마음속에 더 깊이 새기는 듯하다.
양주 땅에서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임꺽정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눕힐 정도의 장사였다고 하고, 또 인정이 많고 의리가 두터운 사람이라고 했다. 의적이라 불리던 그가 재령 땅에서 관군에 붙잡혀 만고의 역적으로 참수 당하기까지 이곳 외돌괴 바위 틈에 자란 소나무 밑동에 밧줄을 걸고 오르내리며 고석정을 농민봉기의 근거지로 삼았다고 한다.
임꺽정의 이야기를 두고 어떤 이는 창조되는 전설이라고도 했다. 그의 산채가 있었기에 임꺽정 기념관이라도 세웠어야 할, 그 자리에 6·25 때 철의 삼각지전투를 기념하는 거대한 전적관만이 들어서 있다. 고석정 부근에서 그의 족적을 찾을 수 있는 흔적이라고는 ‘임꺽정 가든’이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식당 간판이 고작이다. 그 대신 유엔군 사령관이 명명했다는 ‘철의 삼각지’란 군사용어만이 ‘임꺽정 산채’를 장식하고 있다.
연천(漣川)이라는 지명의 앞글자 ‘연(漣)’이 눈물 흘린다는 뜻이어서 그럴까. 차탄천이 끝나는 군남면 남계리에 눈물과 관련된 삼형제바위가 있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옛날 세 아들을 키우던 홀어머니가 아들들을 모두 차탄천 급류에 잃었다고 한다. 아들을 잃은 어미는 매일 이 냇가에 나와 울다가 자신도 세 아들의 뒤를 따르고 만다. 그래서인가 최근 수년간 이 지역에 홍수가 나서 많은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이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연천읍 고문리의 재인폭포에 얽힌 이야기도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재인(才人)이란 재주 부리는 광대를 일컫는다. 옛날 외줄타기를 장기로 하는 어떤 재인이 예쁜 아내와 함께 이 고을에 살았다. 그런데 재인 아내의 미모를 탐낸 이 고을 수령이 재인으로 하여금 폭포 위에서 줄을 타게 하고 그 줄을 끊어 떨어져 죽게 하였다.
재인이 죽은 후 수령은 재인의 아내에게 다가가 욕심을 채우고자 하였으나 그 일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용모 못지않게 행실과 절개도 곧았던 모양이다. 겁탈하러 덤비는 수령의 코를 깨물어 저항하고 스스로 혀를 깨물어 자살하고 만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이 폭포에 재인의 한이 서렸다 하여 재인폭포라 이름하고, 그 마을 역시 수령의 코를 깨문 여인이 살았다 하여 ‘코문리’ 즉 고문리(古文里)라 부르게 되었다.
이 고을 수령이 재인의 아내를 취하고자 재인으로 하여금 이 폭포에서 줄을 타게 하고 줄을 끊어 그를 죽게했다. 아직도 광대(재인)의 한이 풀리지 않았는지 물빛은 여전히 푸르다.
한탄강이 긴 탄식을 그치고 임진강의 품에 안기는 전곡 쪽으로 나가면 차탄리(車灘里)란 냇가 마을에 이르게 된다. 냇물이 수레바퀴처럼 빙빙 돈다 하여 ‘수레여울’ 곧 차탄리라 부르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 고을 원님이 수레를 타고 민정을 살피다가 태봉 앞 넓은 여울에서 수레와 함께 빠져 죽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선정을 베풀던 원님의 덕을 기려 고을 이름조차 차탄리라 불렀다는 또 다른 설도 있다. 어떻든 이 고을 주민들은 인정이 많은 탓인지 울기를 잘했던 모양이다. 고을 원님이 순직했을 때도 여울가에 나와 울었고, 조선시대 마지막 임금인 고종과 순종이 승하했을 때도 마을 뒷산에 올라 한양을 향하여 목놓아 울었으니 그 산 이름마저 망곡산(望哭山)이라 한다. 지금은 체육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이 산등성이에 오르면 그 당시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차탄리
냇물이 수레바퀴처럼 빙빙 돈다 하여 ‘수레여울’ 곧 차탄리(車灘里)라 부르는 이 마을은 옛날 이 고을 원님이 수레를 타고 민정을 살피다가 여울에서 수레와 함께 빠져 죽었는데, 선정을 베푼 원님을 기리기 위해 고을 이름을 차탄리라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마지막 임금인 고종과 순종이 승하했을 때도 사람들이 마을 뒷산에 올라 목놓아 울었다고 하여 산이름도 망곡산(望哭山)이라 한다.
차탄리 북쪽 신탄리(新灘里)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통곡이 있다. 더 이상 달려갈 수 없는 철도 중단점, 이번에는 인간의 울음이 아니라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수레바퀴의 울음이다. 남방한계선 철책 앞, 예로부터 ‘달우물’이라 일컫던 월정리역(月井里驛)에도 똑같은 구호가 적혀 있다. 그것은 단순한 철마의 통곡이 아니라 민족의 염원을 대변한 절규일 것이다.
그런데 한탄강 줄기 따라 이어진 그 슬픈 전설도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둘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최근 금강산 산행길이 열리고 양측 정상이 만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끊어진 철로를 다시 이을 계획까지 마련하고 있으니 철마도 이제 울음을 그치고 힘차게 기적을 토할 준비를 해야겠다. 바야흐로 한탄이란 이름이 ‘찬탄’이란 이름으로 뒤바뀌는 계기를 맞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분단의 탄식이 흐르는 한탄강 (물의 전설, 2000. 10. 30., 도서출
서울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자유로와 연결됩니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자유로를 30여 분 정도 달리면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날씨 쾌청한 날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육안으로도 북녘땅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망대에 비치된 망원경을 통해서 보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꿈틀대는 요즈음 이곳으로 봄나들이 한 번 떠나 보시면 어떨까요? 드라이브 코스로도 최고~ 맛집들도 최고입니다. 지금부터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 파주 오두산 통일 전망대를 소개하겠습니다.
북녘땅을 조망하는 전망대입니다. 현재 휴전선 일대에는 10여 곳이 넘는 전망대가 있습니다만 북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전망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곳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김포 애기봉 전망대, 그리고 강화도 평화 전망대뿐입니다.
그중에서도 이곳 파주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서 가장 큰 마을과 주민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전망대 입구에서부터 차례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오두산 통일전망 매표소입니다. 이곳까지 평일에는 자가용을 이용해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주말, 공휴일에는 주차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통일공원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입장료: 어른 3,000원 / 군, 경 초, 중, 고생은 1,6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도 이곳에 있습니다. 북녘땅을 뒤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곳 망원경으로도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고요.
전망대 1층 로비입니다. 이렇게 꾸며졌군요. 심플하게 새 단장을 했습니다.
1층에 있는 이 전시실은 지난해까지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통일 사료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요. 주제는'기록으로 보는 통일 이야기'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소극장이 있습니다. 북한의 실상을 상영하고 있고 상영되는 내용은 수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면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해설을 들을 수 있는데요.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 시간별로 번갈아 가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요커들의 발길이 줄어든 만큼 이 관람객들은 모두가 내국인들입니다. 동남아를 비롯한 중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데 말입니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인근 지형도입니다. 왼쪽 표시된 곳이 이곳 전망대로써 북한과의 거리는 2.1km이고 오른쪽 강폭이 좁아지는 곳은 불과 460m라고 합니다. 460m 거리는 육성으로도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할 거리입니다.
옥상 전망대입니다. 이곳에서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날씨 맑은 날은 육안으로도 개성의 송악산이 보입니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 모두가 호기심으로 북한 지역을 관찰하곤 합니다.
전망대 아래는 두 줄기의 큰 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입니다. 왼쪽은 김포시 하성면이고 강 건너 멀리 보이는 곳이 모두 북한 땅입니다. 강을 설명하자면 왼쪽에서 한강이... 오른쪽에서 임진강이... 합류해서 10시 방향으로 흘러 서해로 갑니다.
400mm 렌즈로 최대한 당겨서 찍은 북한 지역입니다.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왼쪽에 흰색으로 보이는 탑이 김일성 사적관이고 가운데 큰 건물이 인민문화회관, 오른쪽으로 긴 건물은 임한소학교 입니다.
화각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찍은 것입니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건설되고부터 들어선 북한의 농촌 주택들인데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있는 일명 선전용 주택이라고 합니다. 남쪽을 향해서 보여주기식으로 지었다고 하더군요.
화각을 왼쪽으로 돌려 봤습니다. 이 방향으로도 선전용 주택이 보입니다. 하나같이 이곳 전망대에서 잘 보이는 곳에만 지었습니다.
좀 더 왼쪽으로 옮겨서 찍어 봤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모든 산들이 민둥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연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인데요. 우리 쪽의 우거진 산과는 대조를 보입니다.
북한의 이 지형들은 자유로를 달리다가도 볼 수 있습니다. 밤에 강 건너를 바라보면 불빛 하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는 민둥산을 볼 수 있고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측과 비교가 됩니다.
400mm 렌즈로 찍은 사진을 크롭 해서 더 확대해 봤습니다. 왼쪽 탑이 있는 곳이 김일성 사적관, 오른쪽 큰 건물이 인민문화회관이랍니다. 농번기 때는 들판에서 일하는 주민도 보이고 소달구지도 보이곤 합니다. 강화지역에 가뭄이 심했던 작년 봄에는 모내기를 못하고 있는 모습도 관측되곤 했지요. 사진 왼쪽에서 1/3 지점 들판 끝나는 곳에 북한 주민 두 사람이 보입니다.
태극기가 선명한 오두산 통일전망대.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 내내 관람할 수가 있는데요. 관람 팁은 청명한 날이 좋겠습니다만 오후보다는 오전이 좋습니다. 오후에는 북한 지역이 역사광을 받으므로 그만큼 조망이 좋지 않으니까요.
옥상 전망대서 북한 땅을 조망해 보고 전시실로 내려오면 됩니다. 이 전시실은 작년까지는 다른 내용이었는데 지금은 통일을 염원하는 그림 그리기 대회에 출품된 작품들을 모자이크로 붙여 놓았습니다. 버튼을 눌러서 그림 찾기를 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 층을 더 내려가면 3D 고화질 상영관으로 새롭게 꾸며졌더군요. 북한의 관광명소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상영되고 있습니다.
전에는 메모지에 적어서 꽂아 넣곤 했습니다만 이제는 디지털화가 되어 자판으로 쳐서 입력하도록 하고 있더군요.
북한 상품들을 진열하던 공간입니다. 모두 철거하고 이렇게 심플한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남과 북의 비교는 물론 통일을 염원하는 소리들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더군요.
역대 대통령들과 북한 정권과의 회담 등 자료들이 붙어 있고 사진 아래는 그때마다 북한이 저질러 온 도발들을 연도별로 낱낱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등이 기록되어 있네요.
포토존으로 꾸며진 통일열차입니다. 앞 부부만 모형이고 그 뒷부분은 그림. 감쪽같지요...? 서울 - 평양 - 파리로 적혀 있습니다. 열차를 타고 파리까지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관광을 겸한 안보교육의 장이기도 하고 근대 역사교육의 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더 많이 관람을 할 정도로 한국인들에게는 어딘가 소외시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임진각까지 힘차게 뻗어나간 자유로...! 수도권에서 드라이브 코스로 이 길처럼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곳에서 임진각까지는 15분 거리입니다. 서울과 개성의 중간지점이고요.
전망대 건너편 아래로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이 보입니다. 사진 위는 이북 5도민을 위해서 조성된 동화경모공원입니다.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도 이곳에 있습니다. 북녘땅을 뒤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곳 망원경으로도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고요.
전망대 1층 로비입니다. 이렇게 꾸며졌군요. 심플하게 새 단장을 했습니다.
1층에 있는 이 전시실은 지난해까지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통일 사료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요. 주제는'기록으로 보는 통일 이야기'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소극장이 있습니다. 북한의 실상을 상영하고 있고 상영되는 내용은 수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면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해설을 들을 수 있는데요.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 시간별로 번갈아 가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요커들의 발길이 줄어든 만큼 이 관람객들은 모두가 내국인들입니다. 동남아를 비롯한 중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데 말입니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인근 지형도입니다. 왼쪽 표시된 곳이 이곳 전망대로써 북한과의 거리는 2.1km이고 오른쪽 강폭이 좁아지는 곳은 불과 460m라고 합니다. 460m 거리는 육성으로도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할 거리입니다.
옥상 전망대입니다. 이곳에서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날씨 맑은 날은 육안으로도 개성의 송악산이 보입니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 모두가 호기심으로 북한 지역을 관찰하곤 합니다.
전망대 아래는 두 줄기의 큰 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입니다. 왼쪽은 김포시 하성면이고 강 건너 멀리 보이는 곳이 모두 북한 땅입니다. 강을 설명하자면 왼쪽에서 한강이... 오른쪽에서 임진강이... 합류해서 10시 방향으로 흘러 서해로 갑니다.
400mm 렌즈로 최대한 당겨서 찍은 북한 지역입니다.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왼쪽에 흰색으로 보이는 탑이 김일성 사적관이고 가운데 큰 건물이 인민문화회관, 오른쪽으로 긴 건물은 임한소학교 입니다.
화각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찍은 것입니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건설되고부터 들어선 북한의 농촌 주택들인데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있는 일명 선전용 주택이라고 합니다. 남쪽을 향해서 보여주기식으로 지었다고 하더군요.
화각을 왼쪽으로 돌려 봤습니다. 이 방향으로도 선전용 주택이 보입니다. 하나같이 이곳 전망대에서 잘 보이는 곳에만 지었습니다.
좀 더 왼쪽으로 옮겨서 찍어 봤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모든 산들이 민둥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연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인데요. 우리 쪽의 우거진 산과는 대조를 보입니다.
북한의 이 지형들은 자유로를 달리다가도 볼 수 있습니다. 밤에 강 건너를 바라보면 불빛 하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는 민둥산을 볼 수 있고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측과 비교가 됩니다.
400mm 렌즈로 찍은 사진을 크롭 해서 더 확대해 봤습니다. 왼쪽 탑이 있는 곳이 김일성 사적관, 오른쪽 큰 건물이 인민문화회관이랍니다. 농번기 때는 들판에서 일하는 주민도 보이고 소달구지도 보이곤 합니다. 강화지역에 가뭄이 심했던 작년 봄에는 모내기를 못하고 있는 모습도 관측되곤 했지요. 사진 왼쪽에서 1/3 지점 들판 끝나는 곳에 북한 주민 두 사람이 보입니다.
태극기가 선명한 오두산 통일전망대.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 내내 관람할 수가 있는데요. 관람 팁은 청명한 날이 좋겠습니다만 오후보다는 오전이 좋습니다. 오후에는 북한 지역이 역사광을 받으므로 그만큼 조망이 좋지 않으니까요.
옥상 전망대서 북한 땅을 조망해 보고 전시실로 내려오면 됩니다. 이 전시실은 작년까지는 다른 내용이었는데 지금은 통일을 염원하는 그림 그리기 대회에 출품된 작품들을 모자이크로 붙여 놓았습니다. 버튼을 눌러서 그림 찾기를 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 층을 더 내려가면 3D 고화질 상영관으로 새롭게 꾸며졌더군요. 북한의 관광명소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상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