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리 (NELLY)/
제5회
영어에 한계가 있는
중년의 남자가 캐나다로 이민 와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란 대개 몸으로 때우는 일이 고작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대신 아내는 달랐다. 어찌 된 일인지 비슷한 수준의 일자리는 남자에 비해 여자 할 일이 휠씬 많았다. 너와 내가
수입이 같은 데 내가 왜 꿀리냐는 아내의 생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나는 자꾸 작아지고 아내는 자꾸 커지는
대각선이 마주치는 교차점에서, 말하자면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나의
아킬레스 건은 원고지였고, 나는 끙끙대며 메고 다니던 원고지 뭉치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경쾌하기까지 하게 일렁이며 가볍게 타올랐다. 밥이 나오냐 죽이 나오냐 던 내 원고지가
자살을 당한 셈이었다. 그리고는 아내보다 작아질 내일의 내 초라한 초상을 알기에 통곡하는 심정으로 이혼을
하자고 엄포까지 놓았다. 사실은 그런 소리가 아내에게서 먼저 나올까 봐 발발 떠는 건 나였다.
막말도 서슴지 않으며 큰 소리를 낸 것도 그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없는 줄 알았던
딸아이가 밖에서 울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딸아이는 아빠, 엄마가 떠나가 버리고 자신은 낯 선 거리에 버려진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뭉크의 절규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같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로는 감정의 골이 깊어도 앙금으로만 쌓아 놓을 뿐 부딪치지는
않았다. 원고지를 태워 버린 내 모습은 벼슬이 주저앉아 전의를 상실한 수탉의 몰골과 다를 게 없었다.
딸아이도 이내 그 일은 잊은 듯 했다.
하도 답답해서 추측
가능한 일들을 짚어 보았을 뿐 그런 일이 꼭 딸아이를 탈선시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의 문화적 고충 -나는 6.25때 혼자 월남하여 일가를 이룬 외삼촌의 고생담을 전설처럼 듣고 자랐는데 그 외삼촌에게
편지를 쓰며 이런 표현을 했었다. ‘……그래도 삼촌! 삼촌은 그때 말은 통했었잖아요?’- 못지 않은 상처가 있었는지 모른다. 아이라고 묵살당해서 그렇지 영어를 못해 자기 또래에게도 굽신거리는 아버지, 어머니로 변해 버린 듯한 엄마,
자기보다 현저히 앞서가는 동생의 영어실력, 이런 사람들의 얼굴이 감당하기 힘들게
낯 선 얼굴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한국말도 영어도 잘 해 보였지만, 사실은 둘 다 서툴었는지 모른다.
그럴 즈음, 말썽을 부리던 어느 집 아이가 개를 사줬더니 거기에 정을 붙이며 많이 달라지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솔깃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선배에게까지 답답함을 흘렸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개라도 한 마리 길러볼까 하는 내 넋두리를 선배는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진돗개로 배려해 준 것이다.
병원에 간 식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너 시간 동안 별 검사를 다 했는데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머리나
뱃속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구, 뒤에 다리 두 개가 다쳤대요.
엑스레이를 보여 주는 데 다리 하나는 완전히 부셔졌구, 다른 하나는 관절이 빠져
나왔다구요. 더 자세한 것은 조사가 끝나봐야 안대구……”
아내였다. 음성이 예상보다 활기찼다. 우선은 넬리가 죽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검사 결과가 아내를 그렇게 만든 모양이다.
“애들한테 뭣 좀 먹였소?
하루 종일들 굶었는데.”
“그러잖아두
방금 주스랑 빵 한 조각씩들 먹었어요. 여태까지들 물 한 모금도 못 마시더니.”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잠시
바꿔 준 딸아이의 음성은 심한 감기환자처럼 젖어 있었다. 종일 얼마나 울었는 지가 짐작됐다.
넬리의 입원비는 하룻밤에 정확히 740달러였다. 액수로 보아 사람도 받기 힘들 CT나
MRI등을 모두 받았을 것으로 짐작됐다.
다음날 아침 어수선하게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불면증이 따라다니는지라 수면제 삼아 마신
술이 과하여 깊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날이 채 밝지도 않은 새벽인데 아내와 두 아이는 외출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넬리를 퇴원 시켜, 다시 다른 병원에 입원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병원에 두고 왔기 때문에 한 시간이 더 걸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두르는
품새였다. 내가 잠이 깰까 봐 조용히들 움직였다. 늦잠이 많던 집에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통상대로라면 일찍 일어난 내가 발끝으로 걸음을 옮기며 출근
준비를 하고, 넬리가 그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내 출근 준비는 내 혼자 알아서 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워 졌다. 아침 식사는 물론,
도시락 준비도 습관이 되다 보니 공치사를 할 만큼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쏘시지
조각이라도 던져 주면 날름 받아 먹는 넬리가 옆에 있어 꼭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출근 때도,
퇴근 때도, 넬리만은 언제나 내 앞에 있었다.
여덟 시간 정도의 취침은 잠을 못 잤다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그날 새벽 기상은 확실이 무리였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얼굴이 병자처럼 부석부석했다.
선잠에서
깨어서인지 걸음거리도 불안했다. 그런 아내를 아들과 딸이 옆에서 부축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처음 보듯 낯설었다. 이물질이 끼어 틈이 벌어졌던
사람들이 화해의 악수를 하는 모습 같았다. 아직 미명인데 넬리를 향하여 집을 나서는 식구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가슴으로 뿌듯이 들어 오는 착각이 들었다.
첫댓글 가끔은 가족 간의 갈등의 치료로 내부 구성원의 사고가 효과를 나타낼 때가 있지요.
이런건 어쩌면 가족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구성원에게도 그럴 것 같군요.
국가도 전쟁이 발발하면 국민들이 모든 내부의 싸움을 멈추고
외부의 적을 향해 협력하는 것처럼...
넬리의 사고가 가족원들의 가족애를 찾아 준 경우.
아픈 곳에는 아픈 것만 있지 않다는....
네, 그렇더군요.
무지막지하게도 개는 길러 잡아나 먹는 게 당연지사인 줄로만 알았던 저였기에 개 한 마리로 연작을 세 편을 쓸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아내를 아들과 딸이 옆에서 부축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처음 보듯 낯설었다. 이물질이 끼어 틈이 벌어졌던 사람들이 화해의 악수를 하는 모습 같았다. 아직 미명인데 넬리를 향하여 집을 나서는 식구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가슴으로 뿌듯이 들어 오는 착각이 들었다./
애완견을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이 생생하니 표현되었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 후 러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심성이 약한 청년은 이제 마음을 좀 다스렸는지요?
내심으로는 어린 새끼새의 회복보다는 그냥 편한히 떠나기를 바랐습니다.
바닥에 떠러진 새끼새는 거의가 그날 밤으로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 잡혀 먹히거든요.
성기조 회장님은 반갑게 만나 잘 대접해 드렸습니다.
로빈새는 그날 밤 저희 가라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정원에 내놓았더니 사라졌어요.
어미새가 계속 나무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미새가 데리고 갔을까요? 미스테리로 남았습니다. 자연의 법칙에 맡긴 셈이니 마음의 부담을 덜은 셈인가요? 아들도 이젠 괜찮아졌어요. 감사드려요.
성회장님 일행과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출기 때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