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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설레는 이런 벼농사도 있다!
1, 왜 나는 이 글을 쓰나?
전라남도에 사는 농부라고 했다. 그가 책 한 권을 내게 보냈다. 그가 쓴 책이었다. 읽어보니 벼농사에 생을 건 사람 같았다. 그만큼 사랑이 깊었다. 책과 함께 온 편지에, 나중에는 전화로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거절했다. 왜? 무엇보다도 나는 하는 짓이 아직 글이나 말을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만나면 틀림없이 실망이 클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었다. 지난 3월 15일, 그와 나는 우리 논 논둑에 앉아 우엉차를 앞에 놓고 네 시간이나 벼농사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대화에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은 그전에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녹색평론 171호(2020년 3-4월호)에 천규석이 우포늪을 살리기 위해 쓴 글인 ‘논을 살려야 늪도 산다’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는 천규석이 소개한 우렁이농법보다 더 놓은 농법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왜? 그쪽이 우포늪에도 더 이로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나는 한국의 농부들을 비롯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그 벼농사의 세계를 소개하고 싶었다.
천규석은 녹색평론 171호에서 우포늪의 따오기 복원 사업을 소개한 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따오기의 먹거리는 늪이 아니라 논이나 개울 등 얕은 물에 사는 어패류나 습한 땅에 사는 개구리, 지렁이 등이다. 왜 이 따오기 먹거리가 사라졌거나 오염됐나?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논은 제초제를 비롯한 비료와 농약으로 오염되고, 개울과 강물은 그 논물에다 공장폐수와 생활하수까지 더 오염시켜 이 어패류 등을 거의 멸종시켰기 때문이다. 따오기의 복원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논물, 개울물, 강물부터 먼저 살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따오기뿐 아니라 다른 날짐승들도 오지 말래도 스스로 날아 찾아올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농경지가 오염으로 죽어가는데 우포 주변의 일부 농지만 늪지화하고 관광시설화한다고 따오기를 결코 불러올 수 없다. 최소한 창녕군 일원이 농경지를 따오기 시절의 잉어, 붕어 새끼와 우렁이가 득시글거리는 논으로 되돌린 뒤에야 청정 이미지의 상품화와 따오기 복원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우포늪이라는 생태적 이미지를 상표로 써도 떳떳한 쌀을 생산하려면, 그리고 철새 따오기뿐 아니라 수많은 텃새들과 사람이 지속적으로 공존하는 그런 생태적 세상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천규석은 그 글에서 창녕군 전체를 유기농단지화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그림이었다. 그것이 길이었다. 달리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유기농단지화보다는 자연농단지화로 한 발 더 나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천규석은 그 글 뒤에서 KBS 다큐멘터리 ‘따오기, 우포를 날다’에 나오는 성공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거기에도 나온다. 농업 환경을 바꾸며 따오기 370여 마리를 야생으로 돌려보낸 일본 사도섬의 시도가.
그 다큐멘터리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가 아는 한, 사도섬의 시도는, 이런저런 좌충우돌이 있었지만 자연농단지화였다. 구체적으로는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冬期湛水不耕起移植栽培에 기반한 단지화였다. 유기농은 땅을 갈지만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는 갈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다.
사도섬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 비와코, 그리고 거대한 습지 가부쿠리누마의 사례도 소개하기로 한다. 아울러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법의 골자와 차례도 누구나 바로 자기 논에서 실천해 볼 수 있도록 될수록 자세히 적기로 한다.
2 새로운 벼농사의 길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법을 개발한 이는 이와사와 노부오岩澤信夫다. 1932년에 태어나 80세를 일기로 2012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다이지만 농사를 짓는 한편 독학으로 농업기술 개발자로 성장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책도 읽고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 날들이 쌓이니 실력이 생겼다. 처음에는 수박이었다. 그가 사는 치바 현은 수박 산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아오모리 현의 농부들이 불렀다. 먼 곳이어서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 비행기에서 봤다. 가을이었다. 길이 보이고 황금빛의 논이 보였다. 논이 끝나면 산이었고, 산을 넘으면 다시 논이었고, 그 뒤에도 산을 넘으면 다시 논이었다. 논이 중심이었다. 그것을 보며 농사라면 역시 벼농사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 뒤로 그는 연구의 중심을 벼농사로 바꿨다. 40대 후반이었던 1980년부터는 농업 연구소를 세우고 치바 현, 이라바키 현, 야마카타 현, 아키타 현 등에서 벼농사의 저 비용 증수 기술의 연구와 보급을 시작했다.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은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책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통해서였다. 거기서 무경운의 세계를 처음 접했다. 무릎을 쳤다. 땅을 갈지 않다니! 상식을 깨는 말이었지만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후쿠오카의 벼농사 방법으로는 농사를 지어, 다시 말해 전업농가로 살 수 없었다. 그 방식으로는 자급이라면 몰라도 넓은 면적 재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잠깐! 사람들은 왜 땅을 가는 것일까? 그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땅을 갈면 작물의 씨앗을 뿌리거나 모를 심기 좋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풀을 한꺼번에,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 뒤에는 그늘도 적지 않다.
1) 무엇보다 경운은 생태계를 파괴한다. 갈면 그 땅은 대규모 공습을 받은 것과 같다. 거대한 살상이 경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생물들의 땅속 마을이 고스란히 부서지고, 동시에 수많은 생물이 죽는다.
2) 병충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경운에 따른 파괴로 생태계의 균형이, 다시 말해 건강이 깨지기 때문이다. 땅을 가는 방식으로는 농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러 친환경 농법이 앞에서는 무농약이라 하면서 뒤에서는 친환경 농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3) 갈면 빗물과 바람을 따라 많은 양의 거름이 유실된다. 경운하는 논밭은 이런 까닭에 화학비료든 퇴비든 주지 않으면 안 된다.
4) 벌거벗은 땅이 빗물과 바람을 따라 흐르고 흩날리며 하늘과 하천을 오염시킨다.
5) 많은 양의 탄소를 땅속에서 끄집어내는 것도 문제다.
이런 조망 위에서 이와사와 노부오는 그의 나이 쉰이었던 1983년부터 무경운 재배 실험에 착수했고, 그로부터 두 해 뒤인 1985년부터는 확신을 가지고 보급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본 무경운재배 보급회’를 세우고 이끌었다. 예순둘이었던 1994년에는 겨울철 물대기, 곧 동기 담수에 눈뜨며 ‘무경운이식재배’에서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로 한발 더 나아갔다. 농부들의 참여가 늘어난 것은 무경운 이앙기가 개발된 1997년부터였다.
무경운에 눈 뜨기로부터 동기 담수, 그리고 전용 이앙기 개발까지 14,5년이 걸린 셈이고, 그결과가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다. 그런 긴 세월의 연구와 결실을 인정받아 이와사와 노부오는 그의 나이 일흔여섯이었던 2008년에 소설 ‘미야모토무사시’ 등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일본의 국민작가 요시카와에이지吉川英治를 기려 만들어진 ‘요시카와에이지 문화상’을 수상했다.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를 통해 자연환경 개선에 기여했고, 농업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한 공적이 크다’는 게 수상 이유였다.
‘새로운 무경운 벼농사’ ‘무경운으로 되살아나다’ ‘궁극의 논’ ‘생물로 풍요로운 자연경自然耕’과 같은 책을 썼다. 이 가운데 ‘궁극의 논’은 ‘기적의 논’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소개됐다.
3. 기적과 같은 벼농사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 풀어 말하면 ‘겨울철 담수에 논 갈지 않고 모내기를 하는 논농사’라 할 수 있는데, 이 재배법의 중심 기술은 세 가지다. 첫째는 겨울에는 물은 떼는 다른 논과 달리 겨울에도 물을 댄다. 둘째는 논을 갈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직파가 아니다. 모를 길러 모를 낸다. 달리 말하면 못자리에서 모를 길러 갈지 않은 논에 모내기를 하고, 농사철만이 아니라 농한기인 겨울철에도 논에 물을 대어놓는 방식이다.
무경운, 곧 갈지 않은 논에 모내기는 어떻게 하나? 이앙기로 한다. 갈지 않은 논에도 모를 심을 수 있는 소위 ‘무경운 이앙기’로 한다. 수확은 콤바인으로 한다. 그러므로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는 무경운이지만 넓은 면적 재배도 가능하다. 전업 농부로 살 수 있는 재배법인 것이다.
모든 농부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무경운 벼농사가 이제껏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큰 까닭은 풀이다. 이와사와는 그 문제를 물 깊이 대기로 풀었다. 물을 깊이 대면 풀이 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퇴비나 비료는 어떻게 되나? 주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겨울에도 물을 대면 겨울 동안 물속 미생물과 생물의 생사가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나고 죽고, 먹고 싼다. 그것이 그대로 거름이 된다. 특히 실지렁이가 많이 생긴다고 한다. 그것들이 밤낮없이 먹고 싼 분변토가 3센티에서 5센티까지 쌓인다. 알고보면 논안의 모든 미생물과 생물은 양질의 비료원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사와 노부오는 말한다.
“10아르, 곧 300평에 1000만 마리 이상의 실지렁이가 있으면 무비료 재배가 가능합니다.” 이런 건강한 환경에서는 병충해 피해가 없다. 물론 해충도 있지만 익충도 있기 때문이다. 큰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는 무경운에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로서 자연농법의 4대원칙을 모두 손에 넣고 있다.
한 해 농사는 어떻게 되나? 차례대로 적어본다.
(봄의 일)
-못자리와 모 기르기
치묘稚苗, 곧 어린 모로 기르는 일반 벼농사와 달리 성묘成苗, 곧 어른 모로 기른다. 치묘는 20일쯤 걸리고, 잎은 두세 장이다. 성묘는 40일쯤 걸리고 잎이 대여섯 장이다. 볍씨 고르기, 소독까지는 일반 벼농사와 같다. 다른 것은 다음 네 가지다.
1)모판에 뿌리는 볍씨의 양은 일반농가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모판 전면에 흩어뿌리는 일반농가와 달리 5mm 간격으로 줄뿌리기를 한다. 둘 다 좋은 모를 기르기 위해서다.
2)잎이 두 장이 됐을 때 논으로 옮긴다. 못자리 물은 모판 위로 1cm쯤이 가장 좋다. 그 1cm의 물이 한파로부터 모의 성장점을 보호하고, 동시에 웃자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라 한다.
3)모판에 비닐을 덮지 않는다. 소위 가온을 하지 않는다. 옛날식으로 논에서 비닐 터널 없이 키운다. 저온에서 천천히 키운다.
4)앞에서도 썼듯이, 성묘로 기른다. 40일쯤 걸려서 천천히 잎이 대여섯 장이 되도록 기른다.
-모내기
이앙기로 심는다. 무경운 이앙기를 쓴다. 벼 그루터기와 그루터기 사이에 심는다.
모내기는 시기가 일반 논보다 늦다. 그러므로 5월과 6월은 일반논의 벼보다 뒤떨어져 보인다. 이때를 견뎌야 한다.
(여름의 일)
6월말에서 7월에 접어든 뒤로는 쑥쑥 자라며 마침내는 일반논의 벼를 따라잡는다. 논의 상태, 예를 들어 물빠짐이 심해 물을 깊이 댈 수 없다거나 수평이 안 잡혀 있다거나 하면 잡초가 많이 날 수도 있다. 서너 해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첫해부터 어려움 없이 갈 수도 있다.
물 대기가 중요하다. 5cm 이상 상시 관수가 기본이다. 논물을 늘 5센티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풀이 안 난다. 하지만 사실은 논마다 환경이 다르다. 풀의 종류도 다르고, 물빠짐의 정도도 다르다. 잘 살펴보면서 물 깊이를 조절해야 한다.
(가을의 일)
콤바인으로 거두어들인다. 볏짚은 탈곡과 동시에 논에 돌려주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등겨를 뿌리고 물을 댄다. 이 때 등겨는 300평당 100kg을 뿌린다. 물이 있으면 물속 생물들이 모여든다. 그들이 살며 땅은 부드러워지고, 그들의 분비물, 주검 따위로 논은 비옥해진다.
4. 세 가지 사례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그 가운데 세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첫 사례는, 앞에서도 소개한, 따오기 복원으로 유명한 사도섬의 시도다. 정확히는 사도가시마佐渡島다. 니가타 현에 있다.
따오기는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새였는데,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접어들며 멸종에 가깝게 개체수가 줄어든 새로 알려져 있다. 그 까닭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남획이 그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농약 사용에 따른 먹이 감소였다.
사도가시마는 일본에서 따오기의 최종 서식지로 유명하다. 그 까닭은 크고 작은 못이 가까이 있는 다락논이 많고, 아울러 늘 물이 고여 있는 고래실논이라고도 하는 습지논이 많은 덕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논에는 따오기의 먹이가 될 생물이 많았다. 미꾸라지, 우렁이, 개구리, 지렁이, 여러 가지 곤충, 민물게, 버들치 등등.
이런 사실을 알고 따오기를 위한 재배법으로 논농사 방식을 바꾸고자 한 농부들이 있었다. ‘따오기 복원센터’가 있는 니이보무라新穂村의 ‘따오기의 논을 지키는 모임’의 일곱 농가가 그들이었는데, 그들이 받아들인 것이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였다. 전체 농가에 견주면 불과 얼마 안 되는 숫자였지만 그런 노력들이 모여 일본의 따오기 복원센터에서는 370수나 되는 따오기를 야생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한국의 성과는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다른 한 사례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 비와코琵琶湖의 예다. 항공 사진 한 장으로 충분했다. 그 사진이 백 마디 말을 하고 있었다. 현대 농업의 실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그것은 모내기철에 경운과 써래질을 한 논의 논물이 호수로 흘러들며 호수를 큰 규모로 오염시키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수질이 나빠지는 비와코를 살리기 위해서는 호수 주변의 논농사 방식 또한 어떻게든 바꿔야 함을 웅변하는 사진이기도 했다.
동기담수무경운재배가 비와코에도 도움이 됐다.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의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 논은 거대한 정수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들어오는 물보다 나가는 물이 더 깨끗하기 때문이다. 논에서 정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속 미생물과 생물들의 활동을 통한 소위 생물 정화다.
나머지 한 사례는 가부쿠리누마蕪栗沼, 곧 가부쿠리 늪의 예다. 가부쿠리누마는 미야기 현에 있는 거대한 습지로, 주변의 논을 1994년부터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로 바꾸며 철새가 늘어난 것으로 알져진 습지다. 특히 겨울에 4만 마리에 이르는 쇠기러기 떼의 도래는 장관이었다 한다. 그 덕분도 있어 가부쿠리누마와 그 주변 지역의 논은 2005년에 람사르 협약(국제습지조약, 특히 물새의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에 등록되는 영예를 얻는다. 논의 경우는 그 논, 타지리쵸田尻町라는 지명을 가진 곳의 논이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5. 그러나 드는 두 가지 의문
벌써부터 이런 의문이 드는 분이 있으리라.
“결국 이앙기, 무경운 이앙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이앙기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맞다. 이앙기가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 무경운 이앙기를 개발한 것은 이세키井関농기계회사인데, 이와사와 노부오는 이세키를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모든 강은 물론 바다를 구하는 길이다. 강만이 아니다. 땅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 세대를 위한 길임은 물론이다. 사명감을 가질만한 일이 아닌가?”
일본에서 이 무경운 이앙기를 개발하는 데 십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만들기 어려운 기계도 아니라고 한다. 이앙기의 식부 장치planting device 앞에 천경기淺耕機, 곧 얇게 갈아주는 기계만을 덧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혹은 V 모양(5cm 폭으로)으로 논을 열어주는 장치를 설치하면 되기 때문이다. 손에 넣기 어려운 기술이 결코 아닌 것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농부는 한 해 농사지어 산다. 자연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가을에 거둘 것이 있어야 한다.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로 바꾸고 싶지만 그런 면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농부의 삶이다.”
당연하다. 그런 것에 대한 보호 장치가 있어야 농부는 새로운 방식의 농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 농부의 고민을 지방 정부가 받아들였다. 사도가시마, 비와코, 가부쿠리누마 세 곳 모두 같았다. 지원 사업은 두 가지였다.
1)무경운 이앙기 구입비의 70% 지원.
2)수확이 줄어든 농가에는 그만큼 보조금 지원.
무엇에 기초하여? 지방 조례에 의거했다 한다. 왜? 사도가시마는 따오기의 복원이, 비와코는 호수의 수질을 되찾는 것이, 가부쿠리누마는 철새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현재나 미래를 열어가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 희망을 느껴지는 미래
동기담수무경운재배는 동기담수, 곧 겨울철 물대기가 중심이다. 가을걷이와 동시에 볏짚을 논에 돌려주고, 등겨를 뿌린 뒤 물을 대면 볏짚과 등겨, 풀 따위를 먹으며 다양한 미생물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조류와 플랑크톤 따위가 번식한다. 그리고 그것을 먹이로 실지렁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수생 곤충이 살아간다. 거머리, 우렁이, 드렁허리, 물벼룩, 패충류, 여러 종류의 새우, 민물가재, 수백 종에 이르는 애벌레, 장구애비, 물벌레, 게아재비, 물자라, 소금쟁이, 물방개, 참방개, 땡땡이, 물진드기, 톡토기, 여러 종류의 거미와 개구리와 뱀. 그리고 버들치, 미꾸라지, 붕어, 메기 등. 그 위에는 새인데, 어떤 새들이 있나? 여러 종류의 오리와 백로, 왜가리, 황로, 재두루미, 쇠기러기, 제비, 참새⋯⋯.
이렇게 수만 수억의 생물이 물속에서 살아간다. 볏짚과 왕겨, 등겨, 논의 풀을 먹으며 살아간다. 사람이 하는 일은 없다. 물을 대고, 볏짚과 등겨, 왕겨를 논에 돌려줄 뿐이다. 그 안에서, 혹은 그 위에서 거대한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는 놀랍다. 비료는 물론 퇴비도, 농약도 필요 없다. 모를 길러 심고, 그리고 거두기만 하면 된다.
이와사와 노부오는 말한다.
“살아 있는 대지, 맑은 하늘, 깨끗한 물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우리가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되찾아야 합니다. 바로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그 방법을 찾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책무입니다.
오지 않는 새가 있다면 그 논은 진짜 논이 아닙니다. 병든 논, 지속 가능하지 않은 논입니다. 우리는 새가 오는, 옛날에 오던 모든 새가 다시 오는 그런 논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는 이어 말한다.
“생물 트러스트 운동이 길이 될 겁니다. 소비자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무경운쌀 10kg을 사서 드시면 실지렁이 1만 마리를 늘리게 된다. 민물게와 논우렁이와 미꾸라지를 몇 마리 늘이게 된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바탕인 물과 공기와 땅도 정화된다고 일러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30대 초반이었던 1988년부터 지금까지 무경운으로 논밭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벼농사는 무경운이식재배다. 갈지 않고, 모를 길러 낸다. 손모를 낸다. 이 방법은 자급 규모로는 더 바랄 게 없지만 전업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이론만 가지고 이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다. 나는 30년이 넘게 이상적인 벼농사의 길을 찾아왔다. 그런 내 30년 경험으로 볼 때, 이와사와 노부오의 길은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길이다.
첫댓글 좋은 글 고맙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이런 걱정을 합니다.
짓는 논은 계곡에서 물을 대는 산골 다랭이 논이구요. 계곡물은 계절과 강수량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토질은 잘 모르지만 물이 잘 빠지구요.
겨울철 부터 물을 계속 대는 것이 어려울 경우. 가을에 보리를 심고 5월에 다음해 종자와 여력이 되는 만큼 수확한 뒤에 베어놓고 물을 계속 대주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하고 일반 이앙기 혹은 포트모 이앙기로 전년도 벼 그루 사이로 지나면서 파종하는 방법으로 시도해볼 수 있을까요?
심을 자리를 만들어주는 무경운이앙기가 없어도-(만들어진다면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또 한가지 걱정은 보리를 벼 수확전 흩어뿌려보니 잘 자라기는 하는데 둑새풀을 제압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경운 논 이야기입니다~).
물을 깊게 담수해서 보릿대 볏짚과 함께 녹여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물을 깊게 담수하는 것이 가능할지 해보지 않아서
로터리 치고 나서도 한동안은 깊게 담수가 되지만 논둑쪽 말고도 자연스레 배수가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라 심수관리가 어려운 논이여서 걱정이 되네요. 아마 로터리 치면 물이 더 안빠진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왠지 물이 자작하니 촉촉하게는 될 것 같은데 한뼘이상 담수가 될지.. 모르겠네요.
제가 고민한 방법보다는 아주 작은 물이라도 겨울철에 졸졸졸 흐르게 해야 하는게 생태계와 무경운벼농사에도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질문을 남겨 봤어요. 고맙습니다!
논방구리님
궁금하신 것에 대한
제 경험과 생각을 써서 바로 전에 이 방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