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치科 Pristigasteridae
○ 준치 : Ilisha elongata (Bennett) - 준어, 왕눈이
외국명 : (영) Slender shad, Chinese
herring, (일) Hira (ヒラ), (말레이시아) Ikan
Beliak Mata
형
태 : 전장 50~60㎝ 정도이다. 몸은 측편되어 밴댕이와 비슷하나 몸집이 크다. 몸 빛깔은 동쪽은 짙은 청색, 옆구리에서 배쪽은 은백색을 띠고 있으며, 주둥이 부근과 등꼬리지느러미는
황색을 띤 연한 녹색이다. 입이 크고 위를 향하고 있으며, 아래턱이 위턱보다 나와있고, 양턱에는 이빨이 없다. 배지느러미는 작고, 뒷지느러미가 대단히 길다. 뒷지느러미는 등지느러미 뒤끝부분에서 시작하고, 배지느러미는 작고 등지느러미보다 앞쪽에 위치한다. 몸은 엷은 둥근비늘로
덮여 있으며, 옆줄은 없다. 배지느러미로부터 앞쪽의 능린(모비늘) 수는 23~27개, 뒤쪽으로는 10~14개의
능린(모비늘)이 있으며, 체장은
머리 길이의 4.6~4.9배, 체고의 3.5~3.7배, 머 리 길이는 주둥이 길이의 4배, 눈의 지름의 3.4배이고, 살에
가시가 많다.
설 명 : 사니저인 얕은 바다의
중층에서 살며, 소형어류, 두족류, 갯지렁이류, 갑각류(새우류나 게류)등을 포식한다. 우리나 라에 회유해 오는 무리는 겨울철에
제주도 서남 해역에서 월동하다가 봄이 되면 북쪽으로 이동하여 강 하구나 기수역에서 4~7월에 산란하고
그 후 서해안 및 남해안에 흩어져 서식하다가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이동하여 월동한다. 산란기는 남쪽일수록
빠르고, 북쪽으로 갈수록 늦으며, 산란장은 바닥이 모래나
펄질인 수심 12m 이내의 염분이 낮은 해역 또는 강하구 부근이다. 산란성기에는
강 입구에서 상류쪽으로 15km까지 산란장이 형성되며, 이때의
투명도는 거의 0에 가깝고 수온은 24~25℃ 정도이다. 체장 40cm 전후이면 포란수는 약 14만~17만개이다.
저층트롤로 어획하며 상업적 가치가 높은 어종이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맛이 좋은 생선으로 우리나라의 주요 어종이다. 사실 준치는 조직이 단단해서 내부는 오래도록 안상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만큼 다른 생선에 비해서 장시간 선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며, 정말 썩어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로 여름의 준치는 잘 상하는데, 5℃ 가량에서도
잘 번식하는 저온세균이 있어 냉장고에서도 부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준치는 사오는 즉시 요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일본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쪄서 먹는다.
주로 구워먹지만 옛날 요리중엔 살만 따로 발라 만드는 준치만두라는
것도 있다. 그리고 전어와 마찬가지로 생선회로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먹을 때 가시가 보통 성가신게 아니다. 비위 좋은 사람은 잔뼈까지 씹어먹 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먹는데 상당히 고생하는 생선이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는 뼈도 별로 없는 생선이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마구 잡아먹어 멸종 위기에 놓이자 용왕이
다른 물고기들을 시켜 자신들의 뼈를 하나씩 이식시키라
했다고 한다. 이때 너무 아파한 준치가 도망가지만 그래도 물고기들이 따라가며 하나씩 친절하게 꽂아주었기
때문에 준치는 꼬리로 갈수록 뼈가 많은 것이라고 한다.
분 포 : 한국(서남 해안) 및 일본(남부)에서 많이 나고, 중국, 대만, Cochin China, 필리핀, 동인도 제도, 피낭, 말레이반도, 싱가폴, 인도 등지에도 분포한다.
비 고 : 강준치(Erythroculter erythropterus)는 준치 중류가 아니다. 잉어目 물고기로 준치와 모양이 비슷해
이름이 붙었는데, 이 쪽은 50cm까지 자라서 민물고기치곤
대형종이며, 준치와는 크기 자체가 달라서 별로 비슷하지 않다. 토종이고, 크기 덕분에 손맛이 좋아 낚시 어종으로 인기가 있다. 다만 잔 가시가
많고 맛도 그리 좋지 않아서 잘 먹지는 않는다. 흔한 물고기는 아니다.
서울 근처라면 여주 다리 은모래 여울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면 꽤 잡혔는데, 사대강 사업
이후 보가 생기고 물 흐름이 바뀌어 안 잡힌다고 한다. 하지만 육식성 대형어종으로 사대강으로 썩은 낙동강에서
버티는 몇 안 되는 어종이 되었다고 한다.
※ 준치 이야기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많이 분포한다.
6, 7월경에 큰 강의 하류나 하구 부근에 내유(來遊)하여
산란한다. 준치는 시어(鰣魚)라고도 하고 진어(眞魚)라고도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진어가 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경기도, 평안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여러 지방에서 진어가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준치는 조선시대 초기에 이미 많이 어획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준치를 시어라 하고,
그 속명(俗名)을 준치어(蠢峙魚)라고 하였다.
그리고 준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크기는 2, 3자이고, 몸은 좁고 높다. 비늘이 크고 가시[鯁]가 많으며, 등은 푸르다. 맛이 좋고 산뜻하다. 곡우가 지난 뒤에 우이도(牛耳島)에서 잡히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점차 북상하여 6월 중에 해서에 이르기 시작한다. 어부는
이를 쫓아 잡는데 늦은 것은 이른 것만 못하다. 작은 것은 크기가
3, 4치[寸]이며 맛이 매우 박하다.”준치는 맛이 있는 물고기이기는 하나 살에 가시가 많은 것이 흠으로 지적되어 왔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전어(箭魚)의
맛은 상품(上品)이나 날카로운 뼈가 많아 방심하고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그 뼈를 추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서유구(徐有榘)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준치를 시(鰣)라 하고 한글로 ‘준치’라고
기재하고 있고, 그것이 내유하는 시기가 있어 항상 4, 5월에
내유하므로 시(時)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통속적으로 이르는 진어가 그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준치 어업은
조선시대에 이미 상당히 성하여서,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 제1집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준치를 기식(嗜食)하여 그 수요가 많으므로 이를 많이 어획하고, 중국인도 평안도 근해에 내어(來漁)하여
이를 잡아간다고 하였다.
어구는 건망(建網)과 연승(延繩) 및 유망(流網)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총어획량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의 기록이 1928년의 2,685M/T이고, 광복 이후에는
1976년의 7,177M/T이 최고기록이었다. 1986년에는 4,722M/T이 어획되었다.
“썩어도
준치요, 썩어도 도미”라는 말이 있다.
준치와 도미가 너무나 맛이 있어 썩어도 값어치가 나간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썩어도 준치는 우리나라 속담이고, 썩어도 도미는
일본 속담이다. 도미는 일본에서 모든 물고기의 제왕이라고 떠받드는 생선이니 다른 물고기와는 품격 자체를
달리한다. 반면 우리는 도미 대신 준치를 최고로 여겼는데 준치의 한자 이름을 보면 준치가 얼마나 맛있는
생선인지를 알 수 있다.
준치의 한자 이름은 여럿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진짜 생선이라는
뜻의 진어(眞魚)다. 글자
그대로 준치와 비교하면 다른 물고기들은 모두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맛으로 보면 준치만이 진짜
생선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은 시어(鰣魚)다. 물고기 어(魚) 변에 때 시(時) 자를
쓰는데 제철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졌다 이듬해가 되어야 다시 나타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시어는 살이 통통하여 맛은 좋으나 가시가 많다고 했다.
맛이 좋은 데다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선이니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시어를 고대의 산해진미인 팔진미 중 하나로 꼽았다. 산해진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곰 발바닥, 낙타 등, 사슴 꼬리,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 시어를 꼽았다.
중국에서는 시어를 미녀에 빗대어 비유하기도 했다. 중국의 4대 미인은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을 꼽는데 시어가 얼마나 맛있는지 서시에 비유해 ‘물속의
서시’라고도 한 것이다. 생김새가 아닌 맛을 기준으로 꼽은 것인데 황하에서 잡히는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그리고
양자강의 시어다. 하지만 팔진미에 포함되는 양자강의 시어는 지금은 멸종됐다고 하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준치와는 약간 다른 종자였던 모양이다.
중국에서는 양자강의 시어를 최고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강의
시어를 가장 맛있다고 했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웅어가 바로 시어인 준치라고 했는데, 사실 웅어와 준치는 같은 생선이 아니라 사촌쯤 된다.
양자강의 시어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청나라 때는 살아 있는 채로
시어를 운송하기 위해 백성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우리가 양자강이라고 부르는 남쪽의 장강에서 황제가
사는 북경의 자금성까지는 거리가 약 1,300킬로미터로 3,000리가
넘는데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이틀 안에 살아 있는 시어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그런데 시어를 운송하는 과정이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올라가는 길목 15킬로미터마다 대형 수족관을 만들어놓은 후 낮에는
깃발을 꽂고 밤에는 불을 피워 위치를 알려가며 시어를 날랐다. 이때 동원된 말만 3,000마리가 넘었고, 사람도 수천 명을 동원해 시어를 날랐으니
도중에 수많은 사람과 말이 죽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북경까지 수송한 시어는 운송 도중에 죽거나
신선도가 떨어져 실제로 황제가 먹을 수 있는 생선은 1,000마리 중에서 불과 서너 마리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가 하사한 신선하지 않은 시어를 맛본 청나라 관리가 강소성을 여행하면서 진짜 신선한
생선을 맛보고는 “이것은 시어가 아니다”라고 우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준치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올려졌는데, 명나라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한 후에도 예전처럼 준치를 올리려다 보니 강남 지역에서 잡아 북경으로 운송하는 동안 대부분 상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나마 멀쩡한 것만 골라서 제사상에 올리고 나머지는 신하들에게 하사했는데 강남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생선 맛이
원래 이런 줄 알고 상한 걸 그대로 먹으며 맛있다고 극찬했지만 강남 출신 신하들은 잘 알기에 먹지 않고 몰래 버렸다. 그래서 한 때는 팔진요리로도 꼽힌 적이 있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언급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장강의
시어가 우리가 먹는 준치와 똑같은 생선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어쨌든 여러 문헌을 종합해보면 준치 종류의 생선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예쁜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것처럼 썩어도 맛있다는 생선인 준치는
맛은 좋지만 잔가시가 많아서 잘못 먹으면 목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시어다골(鰣魚多骨)이다. 권력이나
명예, 재물을 탐내면 불행이 닥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인데 요즘도 유효한 교훈이다.
예전에는 초여름이 준치회, 준치찜, 준치만두의 제철이었다. 지금은 준치가 흔치 않아 준치회나 준치찜을
먹으려면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녀야 하지만,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어쩌다 한번쯤은 썩어도 맛있다는 생선을
맛보며 인생을 즐기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