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일을 설명하는 말은 많습니다. 금식, 회개, 심판, 용서, 대제사장, 지성소, 두 염소, 흰 세마포, 향연, 쇼파르..., 그러나 이 모든 낱말을 하나의 긴 문장으로 이어 주는 세 개의 중심 이미지가 있습니다. 피와 문과 생명책입니다. 첫째, 피는 죄의 값이 가볍지 않다는 사실과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대신한다는 속죄의 엄중함을 말합니다. 둘째, 문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인간의 충동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중보와 은혜로 열린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셋째, 생명책은 속죄가 과거의 종교 의식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기억되고 판단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룰 속죄일 이야기의 세 가지 제목은 피와 문과 생명책입니다. 피만 말하면 속죄가 잔혹한 제의의 기억으로 축소될 수 있고, 문만 말하면 구원이 막연한 종교적 통로처럼 들릴 수 있으며, 생명책만 말하면 신앙이 두려운 판결을 기다리는 인간의 불안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이미지를 함께 놓으면 속죄일의 복음적 윤곽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죄의 값은 생명으로 치러졌고, 그 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이 열렸으며, 그 열린 길을 믿음으로 걷는 사람에게 정죄를 넘어선 생명의 소망이 주어집니다. 제목의 세 명사는 서로 떨어진 장식이 아니라 한 구원의 사건을 세 방향에서 비추는 창입니다.
이 이야기의 대주제는 야밈 노라임이 아니라 대속죄일입니다. 야밈 노라임(יָמִים נוֹרָאִים, Yamim Nora’im, "경외의 날들")은 속죄일을 둘러싼 회개의 시간적·정서적 배경의 관점으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로쉬 하샤나의 쇼파르 소리가 잠든 양심을 깨우고 아세레트 예메이 테슈바(עֲשֶׂרֶת יְמֵי תְּשׁוּבָה, Aseret Yemei Teshuvah, "회개의 열흘")가 사람을 고백과 배상과 화해로 이끈다면, 그 흐름은 마침내 티쉬리월 열흘의 욤 키푸르(יוֹם כִּפּוּר, Yom Kippur, "속죄일")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배경은 넓지만 초점은 한 날이며, 관습은 다양하지만 중심 질문은 하나입니다. 죄인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1. 일곱 걸음이 따라갈 하나의 길
첫째 장은 이름과 날짜와 토라의 명령을 살펴 속죄일의 기초를 놓습니다. 둘째 장은 야밈 노라임과 회개의 열흘을 통하여 하나님께 범한 죄와 사람에게 범한 죄, 고백과 배상과 용서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셋째 장은 약 스물다섯 시간의 금식, 다섯 가지 자기 낮춤, 다섯 차례의 회당 예배를 따라 몸과 영혼이 함께 드리는 회개의 언어를 읽습니다. 넷째 장은 흰 세마포를 입은 대제사장의 하루를 새벽부터 저녁까지 순서대로 복원하여, 지성소의 향과 피와 고백이 어떻게 백성과 성소를 정결하게 했는지 보여 줍니다. 다섯째 장에서는 광야로 보내진 아사셀 염소를 둘러싼 여러 해석을 출처와 함께 검토합니다. 여섯째 장은 주후 70년 성전 파괴 이후 랍비 유대교가 회개와 기도와 자선과 선행을 중심으로 속죄의 언어를 재구성한 과정과 그 성경적 한계를 공정하게 따져 봅니다. 일곱째 장에서는 이 모든 길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아의 단번의 속죄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밝히고, 그 은혜를 받은 교회가 유대인과 열방과 고통받는 이웃과 가정을 위하여 어떻게 중보하고 살아야 하는지 묻고 대답하는 과정으로 정리될 것입니다.
2. 정직한 대화와 분명한 신앙고백
이 글은 유대교를 희화화하거나 유대인을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성전 없이 신앙을 이어 온 유대 공동체의 역사적 고투, 회개와 배상과 화해를 진지하게 가르친 랍비 전승,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금식보다 치료를 우선하게 한 지혜를 사실대로 소개할 것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 문서로서 신약 성경의 고백을 흐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회개와 선행은 귀하지만 속죄의 값을 지불하는 제물과 동일하지 않으며, 성전의 반복되는 제사가 가리킨 완전한 속죄는 예수아의 피로 단번에 이루어졌다는 복음의 주장을 분명히 진술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제가 나누는 속죄일 이야기를 단순한 유대 절기 안내서로만 치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속죄일은 남의 종교를 관찰하는 창문이기 전에 우리의 양심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대제사장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누구의 공로를 의지하는지 되묻게 될 것이고, 광야로 사라지는 염소를 바라보면서 아직 움켜쥔 죄와 원한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며, 네일라(נְעִילָה, Ne’ilah, "닫힘의 기도")의 문이 닫히는 순간을 생각하면서 오늘 화해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찢어진 휘장 너머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중보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아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샬롬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