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욱(顓頊)과 제곡(帝嚳) 김붕래 1. 이제릉(二帝陵)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黃帝) 헌원씨 다음의 제왕은 전욱과 제곡입니다. 이 두 임금은 부자 관계도 아니고 형제 사이도 아닌데 이상하게 같은 곳에 능을 모시고 '이제릉(二帝陵)'이라 부릅니다. 두 분의 능은 하남성의 상구(商丘)시에도 있고 안양(安養)시에도 모셔졌는데 저는 하남성 안양시의 능을 보고 왔습니다. 5천년도 더 되는 옛 이야기지만 그래도 최초의 역사서로 꼽히는 사마천 <사기>의 '오제 본기'에는 역대 제왕의 연대기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황제는 현효(玄囂)와 창의(昌意) 등 25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황제 다음의 임금 전욱은, 차남 창의의 아들입니다. 황제의 장남 현효는 아들 교극(蟜極)을 낳았는데 세 번째 임금 제곡은 바로 이 교극의 아들입니다. 즉 전욱은 황제의 손자이고, 제곡은 황제의 증손으로 전욱과 제곡은 5촌(당숙)입니다. 하남성 안양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갑골문자로 유명한 '은허 유적지(殷墟遺蹟地)'이겠지만 그 밖에도 살펴볼 역사 유산이 꽤 많습니다. 안양 시가지 남쪽 탕양현(湯陽縣)에는 주 문왕이 연금되어 팔괘를 연구했다는 유리성(羑里城)이 있습니다. 그 근처 멀지 않은 곳에는 남송의 애국자 악비(岳飛) 장군 사당도 있습니다. 악비는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 같이 중국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만고 충신인데 이곳이 그의 고향입니다. 안양의 '이제릉'은 시가지의 남동쪽 내황현(內黃縣)에 있습니다. 안양에서 버스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입니다. 복양시에 있는 것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내황현과 복양시의 경계가 붙어 있어서 과거 행정구역이 복양에 속했던데 기인한 것 같습니다. 2. 전욱 고양(顓頊高陽) 전욱이 다스렸던 곳은 하남성 제구(帝丘- 현재 복양(濮陽))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고양(高陽) 지방을 다스렸다 해서 고양씨라고 불렸습니다. 이 고양은 현재의 하남성 상구시 근처라고 하고, 하북성 보정시 고양현이라고도 하지만 모두 안양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지도책을 뒤적이며 과거 역사의 행적을 더듬는 것도 재미있고, 20시간씩 기차에 실려 현장을 찾는 감격도 여행의 재미를 더해 줍니다. 전욱에 대한 유명한 일화는 그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길을 차단(絶地通天)했다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신화에 나오는 반고(盤古)가 땅과 하늘의 사이를 9만리로 충분히 늘려 놓았지만 전욱이 다스리던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이 쉽게 하늘에 오르고 신이 쉽게 땅에 내려와 전욱의 통치를 방해했다고 합니다. 전욱은 염황 연맹(炎黃聯盟)의 대표로 치우(蚩尤)나 공공(共工) 같은 이민족과 수없는 전투를 했는데 이들이 신과 내통을 하는 바람에 여러 번 낭패를 보고나서 하늘의 길을 차단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는 이 막힌 통로를 연결하는 유일한 인간이 바로 무당밖에 없었습니다. 무(巫)라는 글자는 하늘과 땅이 있고 그 사이에 사람인이 있는데 이런 사정을 설명하는 글자입니다. 중국의 지형을 보면 서북쪽이 높고 모든 강은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도 전욱과 관계 있는 일이라 합니다. 물의 신인 공공(共工)과 전욱이 왕의 자리를 놓고 싸웠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동방에서 서방으로 오가며 싸우다가 서북쪽의 부주산(不周山)에까지 가서 싸웠다고 합니다. 부주산은 적황갈색 암석층의 험준하고 높은 산으로 당시에 하늘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이었는데 싸움에 진 공공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 산을 들이받았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기둥이 두 동강이 나자 하늘은 버팀목이 없어져 서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해와 달과 별들이 모두 서쪽으로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동남쪽의 대지는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깊은 구덩이가 생겼는데, 이로부터 크고 작은 강물들의 흐름도 모두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채 바다로 흘러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구멍난 하늘은 인류의 어머니 여와(女媧)가 오색돌로 때우고, 커다란 거북의 발을 잘라 하늘을 떠 받쳤다는 후일담도 전합니다. 전욱은 음악을 좋아해 바람에 불리는 각종 소리를 본따서 <승운지가(承雲之歌)>를 제작하여 연주하기도 했는데 78년간 재위하고 98세까지 살았습니다. 그의 자손으로는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彭祖)가 유명합니다. 안양의 '이제릉' 기념관에는 <중국고제혈통개략표>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욱의 후손으로는 순임금과 하나라 우임금이 표시되어 있고 제곡의 후손으로는 요임금, 은 탕왕, 주 문왕의 이름이 보입니다. 3. 제곡 고신(帝嚳高辛) 삼황오제 중 세 번째 임금은 제곡(帝嚳) 고신씨(高辛)입니다. 15세 때 전욱을 보좌하여 신(辛)이란 곳에 봉해져 '고신씨'가 되고. 30세에 박(亳)에서 부락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지명을 검색하니 '박'은 3곳이 있는데 하남성 낙양시 언사현(偃師縣)과 상구시 북쪽도 박이라는 지명으로 불린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까닭으로 이제릉이 안양에도 있고 상구에서도 이제를 모셨던 것 같습니다. 상구는 제곡이 태어난 곳이라고도 합니다. <사기>에 의하면 그는 나면서부터 신령스러워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고 합니다. 널리 은덕을 베풀기를 대지에 물을 대주는 것처럼 하여 해와 달이 비치는 곳 어디나, 비바람부는 온 세상이 다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봄 여름에는 용을, 가을 겨울에는 말을 타고 다니며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 때마다 봉조(鳳鳥)와 천적(天翟)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제곡의 아내들은 모두 태양을 먹을 때마다(일설에는 태양을 삼키는 꿈을 꿀 때마다) 아들을 한명씩 낳았다는 신기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많은 자식을 두었는데 모두 훌륭한 일가를 일으켰습니다. 첫째 아내 강원(姜嫄)은 주족(周族)의 시조가 된 기(棄 -후직,后稷)를 낳았고, 둘째 아내 간(簡)은 상족(商族)의 시조가 된 설(契)을 낳았으며, 셋째 아내 경도(慶都)는 요(堯)를 낳고, 넷째 아내 상의(常儀)는 지(摯)를 낳았습니다. 처음에는 큰 아들 지가(摯) 왕위를 이었으나 불초하여 쫓겨나고 그 아우 방훈(放勛)이 왕위를 이었으니 이가 바로 요임금입니다. 특히 후직의 출생담은 우리 주몽신화와 같은 계열의 '기아(棄兒)'유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 제곡은 불화가 심한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 알백(閼伯)은 동쪽 상구(商丘)로 보내 상성(商星)을 모시게 했고 작은 아들 실침(實沈)은 서쪽 대하(大夏)로 보내 삼성(參星)을 모시게 하여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 두 별은 이별의 대명사로 쓰입니다. 두보의 시에 <살면서 서로 만나기 쉽지 않으니 삼성과 상성이 따로 노니는 것 같네> (人生不相見, 動如參與商)라는 구절은 이별을 노래한 백미라 합니다. 지금도 하남성 상구시에는 천문대라 하여 알백대가 남아 있습니다. 4. 소호 금천(少昊金天氏)씨 산동성 곡부시에 가서 삼공(공묘, 공부, 공림)만 보고 말면 여행이 너무 단출해집니다. '논어 비림'이나 '공자육예지성' 같은 곳을 보고 시가지 동북쪽 십리쯤에 자리 잡은 소호릉(少昊陵)을 찾으면 삼황오제에서 잊혀진 또 한 분의 임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삼황오제를 이야기 할 때 조금 애매한 임금이 바로 <소호 금천씨(少昊金天氏)>입니다. 소호라는 이름은 <사기>에는 안 나오지만, <십팔사략>이나 <제왕세기> 같은 기록에는 오제의 으뜸으로 나옵니다. 태양의 신 백제(白帝, 혹은 태백의 정령인 백제의 아들)와 황아가 궁상(窮桑)의 뜰에서 사랑을 속삭이다가 소호를 잉태했는데, 그가 태어날 때 오색 봉황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소호의 나라는 새 토템인 셈입니다. 사당 전각에 모셔진 소호 위패 위로는 청 건륭제의 친필 '금덕이상(金德貽祥)'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貽-남길 이) 기념관에 기록된 제왕 연대표에는 황제를 복희 신농과 함께 삼황으로 올리고, 소호 금천씨를 오제의 첫머리에 놓았습니다. 소호 금천은 황제의 아들(또는 현효(玄嚣)의 아들)입니다. 그는 전욱의 숙부로 어린 조카 전욱을 무척 사랑해 금과 슬(琴 瑟)을 만들어 주었다고 <산해경>는 전해집니다. 전욱이 그것을 가지고 놀다 바다에 빠트려 지금도 바다 속에서는 거문고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소호릉은 특이한 장묘 문화를 보여줍니다. 전각이나 석패방, 무덤 등은 대동소이한데 그 앞에 '만석산萬石山'이란 2662개의 바위로 된 30여 m의 돌무덤은 꼭 피라미드처럼 우뚝했습니다. 송나라 때 지었는데 중수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 듯 상태는 양호했습니다. 정상에는 작은 사당이 있고 그 안에는 옥으로 조각한 소호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2007년 10월)는 능 주변 사방이 목화밭이어서 하얀 목화송이가 주렁주렁했던 것이 아직도 신선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이 소호 금천씨의 후예라는 기록을 보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호는 우리나라 김씨의 시조라는 말도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요 순 임금을 찾아 산서성으로 갈 차례입니다. 후직(棄)..........무왕(周) - 태백 ..........오왕 부차 현호 - 교극 - 제곡 - 설(契)..............탕왕(商) 요(堯) 황제 - (소호 금천) 창의 - 전욱 ............ 순(舜) ............. 곤(鯤) - 우왕(夏) - 소강 ..........월왕 구천 | <오제(五帝)와 하상주 삼대 계통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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