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봉. 백두대간은 오른쪽으로 꺾어서 진행해야 한다.
백두대간 종주 제 9구간 안내 (신풍령휴게소) 빼재-대봉-지봉-싸리등재-백암봉-동엽령-병곡리- 빙기설마을(도상거리 약 16.5km,
약 17.8Km(이정표거리) (평균소요시간 약 7시간 20분)
빙기설마을에서 동엽령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동엽령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백암봉까지는 약 1시간 정도면 된다. 백암봉에서 진행 방향으로 향적봉이 보이지만 백두대간은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지며 백두대간 표지기가 갈림길 입구에 잘 붙어 있다. 백암봉에서 두 번째 봉우리인 귀봉을 넘어 산불감시초소가 나오며 조금 더 가면 이정표가 있는 송계사 갈림길 싸리등재까지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싸리등재에서 계속 오르막을 오르면 헬기장 바로 위가 지봉 정상으로 약 30분 걸린다. 지봉 정상에서 월음령(달음재) 지나 한참 오르면 지산봉(투구봉) 갈림길이 되는 봉우리에 오르게 되는데 낡은 참호도 있다. 지봉에서 대봉지나 신풍령 휴게소가 있는 빼재까지는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빼재에 도착하면 오른쪽 아래 이동통신 기지국 안테나가 보이고 그 밑으로 산판로 따라 잠시 내려가면 도로 밑으로 신풍령 휴게소가 있으며 휴게소 주차장에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매점과 식당 등이 있다. 산행중 식수는 없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백두대간의 문화유산
덕유산 우리 조상들의 산행기는 별로 많지 않다. 그런데 조선 중기(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 사이)에 쓰여진 세사람의 덕유산 산행기가 전해지고 있다. 갈천 임훈이 쓴 등덕유산 향적봉기, 명제 윤증이 쓴 유광려 산행기, 그리고 허목의 덕유산기가 그것이다. 등덕유산 향적봉기(登德裕山 香積峰記) 갈천(葛川) 임훈(林薰)이 명종 7년 53세 때에 쓴 것으로 「갈천집」에 수록되어 있다. 임훈은 덕유산 남동 기슭의 거창군 위천면 북상사람으로 광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지금의 송계사에서 못봉, 중봉을 지나 향적봉에 올랐고 지리산, 가야산, 속리산, 대덕산, 삼봉산, 적상산, 황석산, 금원산, 금오산, 비슬산 등 덕유산에서 조망되는 산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 기록상 처음으로 구천동을 구천둔(九千屯)으로 쓰면서 "성불고자가 9천 명이나 살았다 하여 9천 인의 둔소"라는 구천동의 유래까지 쓰고 있다. 또 덕유산 주봉을 향적봉이라 했고 향목(주목)이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남덕유산을 황봉(黃峰), 무룡산을 불영봉(佛影峰)이라 했으며 황봉과 불영봉에 오른 사실도 나타나 있다. 옛날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440여 년 전에 높은 산에 올랐으며 더구나 덕유 3봉을 모두 오른 사실은 매우 특이한 일로서 3천자 남짓의 글자로 된 이 장문의 <등덕유산 향적봉기>는 우리나라의 산행 역사상 가장 귀중한 문헌이다.
구천동 33경의 빼어난 경관 지금은 구천동이 깊은 산중이 아니라 대전, 전주는 물론, 서울, 부산에서도 하루 관광권에 드는 절승지로 바뀌어 탐승객이 넘쳐흐르고 있다. 무주구천동의 대표적인 명소를 뽑아 33경이라 했는데 설천면 소천리의 제 1경 나제통문에서 긴긴 70리 계곡에 32경이 연달아 있고 33경 덕유산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33경의 이름들도 명승을 나타내는 가장 훌륭한 한자들로 되어 있어 더욱 재미있다. 1경 나제통문을 지나 2경 은구대(거북이 숨은 바위, 건너편에 운장대), 3경 거문고소리 들리는 청금대, 4경 수성대 아래 용이 하늘로 오르며 10년 공을 들이며 살았다는 와룡담, 5경 서벽정의 동쪽, 도화담의 아래에 학의 집이 있다는 학소대, 6경 일사 송병선이 즐긴 일사대, 7경 봄의 자주색 철쭉꽃이 개울물을 곱게 물들이는 함벽소, 8경 고승이 노인들의 뜻대로 바위를 반반하게 했다는 가의암, 9경 임란 때의 명장 김천일 장군의 장인 양도사가 가을밤 연못에 비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달을 보고 도를 깨쳤다는 추월담, 10경 낚시터로 유명한 여울 만조탄, 구천동의 구천스님이 밥 지을 쌀을 씻은 뜨물이 하얗게 흘렀다 해서 뜨물재, 듬재라고도 한다.
11경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돌아 쏟아지며 맴도는 파회, 그 아래 천년암 바위 위에 천년송(천년된 소나무)이 유명하다. 신라 때 일지대사가 소나무 가지를 꺾어 이 바위에 꽂은 것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전설이 있다. 12경 맑은 물 같은 깨끗한 마음이라는 뜻의 수심대, 수회 또는 근처의 경관이 금강산 같다 해서 소금강이라 하기도 한다. 13경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다는 세심대, 14경 물거울이라는 뜻이지만 신라때 방아타령으로 유명했던 수경선생이 소요한 곳이라 해서 수경대, 수경대 위에 달을 희롱하는 완월대가 있다. 15경 달빛 아래 쏟아지는 은빛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는 여울 월하탄, 16경 신라 때의 인월화상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곳 인월담, 17경 칠봉의 사자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사자담, 18경 바닥이 깨끗한 반석으로 깔려 있는 청류동, 19경 비파의 모양으로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비파를 뜯었다는 비파담, 20경 선인들이 차를 달여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는 다연대, 21경 구천동계곡과 월음암계곡(오수자굴 쪽 계곡)의 물이 만나는 곳 구월담, 22경 여울물 소리가 거문고 소리 같다는 금포탄, 23경 칠봉의 호랑이가 산신령 심부름을 가다가 안개 때문에 이곳에서 개울에 빠져 100일 동안 울부짖었다는 호탄암, 24경 호탄암에서 안심대까지의 맑은 개울인 청류계, 25경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어느 신하가 세조에게 쫓기다 여기까지 와서야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대, 26경 무성한 숲이 이어지다 이곳에서 하늘이 열려 새로운 태양을 볼 수 있다는 신양담, 27경 물이 맑아 거울 같다는 명경담, 28경 옛날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구천 폭포, 29경 백련사 스님들이 몸과 마음을 씻었다는 백련담, 30경 여러 개의 작은 폭포가 연꽃을 수놓은 것 같다는 연화담, 31경 속세를 멀리 떠난 이속대, 32경 백련선사가 창건한 천년 옛절 백련사, 33경 구천동 온 경관을 품에 안고 그 으뜸이 되는 덕유산으로 고스락이 향적봉이다. 향적봉을 동비날이라고 했다. 옛날 이성계가 왕이 된 뒤 산제를 올리고 구리로 된 비를 묻었다 해서 얻은 이름이다. (이상의 자료는 도서출판 산악문화에서 나온 한국 51명산록 1권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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