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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라(딤전3:15)
딤전 4:1-15절) 아름다운 가르침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포장한 사람들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인물이 좋고, 경력이 좋으면, 그를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선택한 후, 뜯어보면, 포장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결혼 상대(男.女)를 그럴듯해서 선택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경제적 능력이나,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엉터리 겉포장에 속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은 포장이 화려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우리 속에 부어지는 진리의 가치(價値)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 대하여 말하기를 *질그릇 안에 담긴 보화*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을 외모로 보면, 질그릇과 같이 초라하지만, 속에 담긴 진리는 어마어마한 보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굉장한 것을 담은 보물덩어리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마치 빈병과 같습니다.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빈 병에 간장을 담으면, 간장병이요, 꿀을 넣으면, 꿀병이 되고, 참기름을 넣으면, 참기름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장 아름답게 하고, 교인들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질(質)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가랴서는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금기름이 공급되는 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불순물이 조금도 들지 않은 순수한 금기름입니다. 이런 기름이 풍성하게 공급이 될 때, 교회는 아름다울 수 있고, 교인들은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이런 것의 가치(價値)를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가치(價値)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 이 세상의 케케묵은 가르침이 아니라, 순수한 하나님의 진리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가르침이 순수할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거짓된 유행을 피하라
요즘처럼 초대 교회 때도 교회가 유행을 많이 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재미있게 가르치고,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별로 검정도 해보지 않고, 그를 초청하거나, 아니면 찾아가서 배워오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극단적인 금욕주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 가르침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에게 결혼을 금지시키고, 어떤 특정한 음식 외는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금욕주의적 신앙이 교인들에게 상당히 어필되면서 따라가려고 했던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 바울은 4:1절)...미혹하는 영(靈)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4:1-3절)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靈)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성령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사실 하나는 교회에 거짓된 가르침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미혹하는 영(靈)과 귀신(鬼神)의 가르침* 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경적 가르침이 아닌,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지어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란 수학(修學)의 공식처럼 눈에 보이거나,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성령 받았다*고 떠들어 대거나, *능력 받았다*고 떠들어 댈 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가짜가 판칠 수 있는 영역이 곧 신앙의 영역이요, 종교의 영역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중(스님)이나, 도사(道士)가 자기 멋대로 지껄여도 사람들은 그것이 *진짠지? 아닌지?*검증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르치는 부분에 있어서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결국 교회는 성경을 가지고 가르쳐야만, 오류(誤謬)가 없고,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십니다.그런데 사람들은 귀가 가려워서 자기가 듣기 좋은 것만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미혹(迷惑)하는 영(靈)에게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등장했던 가르침은결혼하는 것은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음식물을 먹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당시 음식 중에서 고기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고기들을 도살하는 곳이 우상(偶像)의 신전(神殿)이었고, 대부분의 고기들은 우상의 제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기들을 먹어서는 안 된다 든지, 혹 건강 비법을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뜻은 채식(彩飾)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결혼을 금하는 것이나, 어떤 식물을 금하는 것이 굉장히 거룩한 것 같은데, 사도 바울은 귀신(鬼神)의 가르침은 위선(僞善)이요,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생각 할 것은 가르치는 자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일 경우, 가르침 자체가 율법적일 수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은혜 안에서 해방된 체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율법의 멍에를 메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죄이기 때문에 늘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극단적으로 신앙생활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도 몇 시간 이상씩 해야 하고, 특히 금요기도회에 빠지면, 사탄이 넘어지게 할 것이라든지, 혹 금식을 며칠씩 해야 하고, 심지어 하나님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결혼을 포기해야 한다고 식입니다.
앙드레 지드가 쓴<좁은 문>을 보면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배경은 프랑스의 천주교입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해 하는 것은 경건(敬虔)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男女)서로가 사랑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하고, 또 그렇게 살다가 병들어 죽는 것이 경건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너무나 거룩해지기 위해 모든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을 극단적으로 피하고, 거의 굶어 죽다시피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깨끗해지는 것은 먹는 것을 줄이거나, 잠자지 않거나, 결혼을 피하는 것으로 되지를 않습니다. 물론 한 순간으로는 내가 이만큼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위안이 될지 모르나, 실은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은 어쩌면 쉬운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담으면, 우리는 저절로 깨끗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119:9절)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청년의 때는 가장 육체적 정욕이 왕성할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속에 담으면, 새벽이슬과 같이 깨끗한 청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마음속에 담지 않고, 죄를 이기는 것은, 죄를 참는 것이지, 죄를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경건한 것처럼 자랑하지만, 이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것입니다. 폭탄이 일단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반드시 경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혼자 거룩해지려고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정욕이 얼마나 강한가 하면, 이런 규칙으로는 절대로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4:2절)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화인(火印)*이란 짐승 등에 낙인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목장 주인이 자기 목장의 소(牛) 등에 낙인(烙印)을 찍어 놓으면, 그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 이상, 그 목장의 소(牛)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양심에는 마귀(魔鬼)의 화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입으로는 아무리 경건을 떠들어도 결국 마귀(魔鬼)의 양심인 것입니다. 일단 마귀(魔鬼)의 화인을 맞은 양심은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마귀(魔鬼)에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야기를 해도 앵무새와 같이 자기 이야기만 가지고 떠듭니다. 마귀(魔鬼)의 도장 받은 사람을 빼내려면, 불로 한 번 더 지져야합니다. 즉 불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도 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마귀(魔鬼)의 도장이 찍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뜨거운 체험을 하면서 그 마귀(魔鬼)의 인(印)은 타버리고, 예수님의 도장이 찍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양심에 누구의 도장이 찍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장이 찍혀야 하고, 성령님의 도장이 찍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금지시키지 않은 것들을 자기 마음대로 지키면서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충만하면, 모든 것들도 거룩해 집니다. 그러나 신앙에 해로운 것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4:4-5절)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가 바른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버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아름답고 귀하게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교회는 예배당 장소가 없어서 절간으로 사용하던 집을 사서 교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무에 배어 있는 향(香)냄새를 없애는데, 애 먹었다는 것입니다.
Ⅱ.육체의 연습과 경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인들을 거룩하게 하려고, 자꾸만 닦달질 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잘 가르치면, 얼마든지 거룩하고, 경건(敬虔)한 자가 될 수 있다고 교훈합니다.
4:6절)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이것이 기독교 경건(敬虔)의 핵심(核心)입니다. 기독교 경건(敬虔)은 금욕주의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바른 진리(眞理)로 깨우치면, 결국 진리(眞理)가 그 사람을 바로 잡아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계속 먹지 못하면, 싸나워 집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변하지 않고,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즉 경건(敬虔)하려고 애를 쓰는데, 경건(練鍛)해지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걸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배우면, 진리(眞理)가 그를 깨끗하게 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다음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두 가지를 피하여 경건(練鍛)에 이르기를 연단(練鍛)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7-8절)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練鍛)하라. 육체의 연단(練鍛)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당시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좀 알아야 합니다. 당시 로마인 청소년들은 오전에는 논리학이나 수사학, 또는 역사나, 고대 문헌같은 것들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무조건 체육관에 가서 운동해서 체력을 연단(練鍛)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계통에서는 아마 로마 신화(神話)를 공부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호머(Homer)의 시(詩)같은 것을 외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학문을 완전히 등한시 할 순 없지만, 쓸데없는 신화(神話)같은 것을 많이 공부해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대학의 커리큘럼(curriculum)들이 많이 정비되어 학생들이 꼭 필요한 것만 배운다고 하지만, 사실 중.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과목을 배워야 하느냐? 는 데는 의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목을 뺄 수 없는 이유는 선생님들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중에 주역이라든지, 토정비결같은 과목이 있을 경우, 그런 과목까지 이수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너무 *죄악 된 이 세상에서 충성스럽게 쓸데없는 과목까지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좌우지간 당시는 그리스 신화(神話)를 모르면, 무식(無識)한 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은 고대의 음담패설(淫談悖說)같은 것이 많았고, 또 황당무계한 것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신앙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너무 공부를 잘 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육체의 연단(練鍛)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건강유지를 위해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육체의 연단(練鍛)은 거의 광적(狂的)으로 중독(中毒)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목사는 테니스를 너무나 좋아해서 *저 사람이 목사인지? 테니스 코치인지?* 구별되지 못할 정도라면, 지나친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너무나 낚시를 좋아해서 예배시간도 빼먹고, 낚시했다면, 그런 것은 덕이 될 수없는 것입니다. 바둑도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에 너무나 빠져서 그것이 하나의 파가 되거나, 혹 운동하면서 남을 흉보거나, 혹 세상 이야기에 푹 빠질 때, 덕 보다는 손해가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적당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나치지 않은 범위 안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의 연단(練鍛)은 참으로 유익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경건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내 영혼의 양식이요, 축복이요, 죄를 이기는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즉 육체의 연단(練鍛)이 취미 생활이라면, 경건의 연단(練鍛)은 본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육체는 기도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놀고, 세상일 하는데, 더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잘 길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연단(練鍛)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자기 스스로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에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소망(所望)을 이 세상에 두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 모든 소망(所望)의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경건의 능력입니다. 즉 죄를 이기고, 유혹(誘惑)을 이기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기도로 충만한 것이 곧 천국의 모든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진력을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Ⅲ.진리로 자신을 연단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말하지만, 그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도자기를 보면, 잘 만든 것 같지만, 전문가의 눈에는 많은 것들이 수준 미달일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보물(寶物)을 캐낸다고는 하지만, 그 수준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더욱 순수하고, 더욱 완전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캐내어 교인들에게 나눠 줄 수 있도록 자신을 성경보는 눈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4:11-13절)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결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4:12절)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사람들은 목회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 연령이나, 관계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 자식 또랜데 뭐...*라든지, 혹 *내 새카만 후배군*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眞理)로 다스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로 너무 얽히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목사는 인간관계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眞理)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특히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잘 가르치면, 각자 자기가 할 일을 알아서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목자는 양(羊)떼를 이끌고 갈 때, 줄을 매어 질질 끌고 가지 않습니다. 목자는 오직 목자의 소리로 양(羊)떼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자라고 하지만, 말씀에 능통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도 성경을 잘 모르면서 가르쳐야 할 때가 많습니다. 또 어느 때는 자기도 잘 소화하지 못한 말씀을 전하는 바람에 양(羊)떼들이 배탈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성경을 연구(硏究)하고, 이것을 설교로 만들어 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또 *전념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을 거기에만 완전히 바쳐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신경을 쓰면서 성경을 깊이 연구(硏究)하는 것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자에게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사람은 모든 일에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목회자가 만능박사(萬能博士)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능박사(萬能博士)는 가장 중요한 진리(眞理)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기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다시 강조합니다.
4:14-15절)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 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때는 장로회가 구성되어 있었고, 거기서 목사에게 안수를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장로들은 디모데에게 설교의 은사를 인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오직 한 권의 책만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길을 가면,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목회자가 영적(靈的)으로 성장한 만큼 자라기 때문입니다. 즉 목회자가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교인들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자기 영혼이 말씀으로 자라도록 진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4:16)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말씀을 연구(硏究)하고, 전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장 찬란한 보석상자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석이 될 수 있는 것은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축복된 삶이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교회* 각 셀(cell)공동체가 되어 주의 정예부대(精銳部隊)가 되기를 소원합니다.아-멘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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