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시작되면서 다양한 목소리로 선교의 방향과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선교를 연구한다는 것은 실제를 전제로 하여 학문적인 접근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의 선교도 양이 늘어가는 만큼 질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선교계에 있는 자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선교의 이슈나 방향에 대하여 실제적이고 개방된 분위기 가운데 선교학자들과 선교사들 특히 교회 안에서 얼마나 논의되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아직은 좀 거리가 있는듯하다.
선교 역사를 몇 백 년이나 앞서 있는 서구 교회들도 이런 문제에 부딪혔고 지금도 그러한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 선교는 그들보다 훨씬 더 늦게 출발한 후발주자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도 서구 교회로부터 배워야할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서구교회가 잘 한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교현장에서 실수한 것을 분석하고 점검하므로 불필요한 희생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제 선교 현장의 문제를 개 교회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교회와 선교사, 선교학자와 선교학 연구자들과 함께 선교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선교현장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효율적인 전략을 세워나가는 기초가 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베풀어주신 은총과 사랑을 주셨으므로 이를 더 지혜롭게 세워나감으로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이러한 점에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주관하는 세미나는 나의 선교학적 수준보다 훨씬 더 깊은 학문적 역량을 요구할 뿐 아니라 예언적 은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예측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한 부분을 점검하고 실천해 나간다는 것은 발전적이다.
1. 연속 활동에서의 준비
선교 활동에 대한 이해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선교학을 연구하는 자들이 하는 연구 활동이란 새로운 문제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확장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문제를 끝내버리는 것은 좋게 들리기는 하지만 학문적으로 종결되어 버리면 가치가 없다. 선교사역을 위한 모든 연구는 연속적인 것이다. 이러한 활동에서 미래를 본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연장선을 그려보는 것으로서 과거를 잘 정리하면 미래가 보인다. 과거가 잘 보이면 또 정돈해 놓을 수 있다. 선교현장의 사역 리포트, 사역의 결과물에 대한 것들을 주관적인 해석에 의해서 과거가 달리 해석되기는 하지만 적어도 객관적인 사실들을 그대로 정돈하여 보관하여 이를 잘 활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첫 단계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열린다. 문제의 사역들은 환경과 종족 그리고 공동체 존재 방식의 근본적 변혁과 수백만의 인구 이동을 요구하는 정치 혁명을 넘어가는 사업이라도 연속적인 흐름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속적인 흐름을 정돈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사역의 효율성을 위해 일단락을 지을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 다음 단계에 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분주하거나 빠르게 변화에 대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면 미래는 보이게 된다. 예수님도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제자들과 함께 같이 걷고, 자고, 준비하셨다. 미래를 위한 준비는 효율성을 생각하면 환경과의 조화가 필요하다. 선교적 환경의 조화는 자신과 주위 환경과의 과도한 불일치가 만드는 마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선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확고한 선교환경 조성과 방향을 설정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연속선상의 선교적 미래를 개척한다 해도 교회는 성경적 가르침에 기초해서 세상을 인도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세속적인 다양한 비선교적 도전들 때문에 그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선교는 주변 환경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과거를 정리함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 최근의 선교 동향
2. 1. 선교국의 변화
최근 선교지에서 피선교국 지도자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선적으로 도시화되는 사회에서 복음화를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선교지의 문이 닫혀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 세계 국가의 2/3 이상이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으며 대다수의 이슬람권과 공산권에서는 선교사의 신분과 체제를 인정치 않고 있다. 실제적으로 선교사들이 선교사 비자를 받아 사역하는 나라는 많지 않으며, 이런 나라들은 선교적 영향력이 미미한 나라들이다. 선교사들의 설 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선교가 힘의 논리(제국주의, 자본주의)에 밀려나고 있다. 선교라는 참다운 의미와 본질이 선교의 주변 요소에 의해 아니면 잘못된 선교에 의해 왜곡되거나 쇠퇴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려한 교회 앞에서 교회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많다(중국의 신종교사무조례, 베트남의 종교법 등으로 제약).
선교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때에 따라서 필요할 뿐이다. 힘으로 하는 선교는 그보다 더 큰 힘에 의해 짓밟히게 된다. 제 3세계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서구 열강들이 기독교와 선교의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행한 제국주의 잔재이다. 십자군 전쟁의 허와 실을 최근에는 자본주의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선교는 교회의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다. 선교사가 스스로 자본주의의 노사관계, 주종관계에 들어가려 한다면 실패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선교는 거룩한 삼각관계(Holy Triangle)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하나님과 교회와 선교사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진다.
신학적으로 후기 기독교회 사회로 접어들면서 절대적 유일신앙보다는 상대적 신을 따르는 경향이 높아져 간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다원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진리(Text)가 아니라 상황(Context)이 기준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이 신으로 역사하며 돈이 사람을 지배한다.
대외적으로 선교의 도전이 있다면 대내적으로 도전도 있기 마련이다. 대내적인 선교에 대한 도전은
첫째, 선교사의 자질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사 되는 것이 목사가 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목사와 선교사의 양성과정이 많은 차이가 있다. 선교사의 경우는 관리체제가 매우 허술하고 검증과 제제 과정이 빈약하다.
둘째, 교회와 선교지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므로 부작용이 발생한다. 과거보다는 현대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손쉬운 선교 여행과 선교정보, 단기 선교가 때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셋째, 선교지의 리더십이 약화되고 있다. 베트남의 장완익 선교사는 최근의 선교지역을 가리켜 선교지 사사시대라고 비판한다. 선교사는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권위와 섬김의 리더십을 가져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사 스스로 이런 리더십보다는 사람의 인기와 유혹에 넘어지고 있다. 마치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에서처럼 활동하고 있어 안타깝다. 선교사 리더십의 원형은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잘 나타나 있다.
넷째, 선교의 비전문인이 선교를 대신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앙꼬없는 찐빵, 오아시스 없는 사막, 주름없는 번데기, 주님없는 선교가 성황중에 있다. 선교와 연관된 세가지 부류가 있는데 그것은 선교 브로커와 선교사역자 그리고 선교사이다. 앞의 두 부류가 많아지고 일을 많이 할 때 선교사는 외롭고 할 일이 적어지게 된다.
2.2. 선교단체 역할의 변화
미래 선교의 변화가 있다면 교회가 선교 단체를 싫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중간을(middleman)을 제거하기 위함과 신학적 불신임 때문이다. 월리암 캐리 이후 선교단체는 하나의 힘있는 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하는 일의 정당성을 교회에 확신시켜주어야한다. 바로 선교단체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2.3 단기 선교의 폭발적 증가
단기 선교의 역사는 OM과 예수 전도단에서 20여년 전에 시작했다. 단기선교는 20여년동안 폭발적인 증가를 하고 있다. 1979년에 2,200명에 불과했지만 1989년에는 25만명으로 증가했다. 1998년에는 45만명으로 증가하여 2000년대에는 전교회가 참여할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단기 선교의 유형은 두 주간부터 1년동안 사역으로 나누어진다. 단기 선교의 파송형태를 보면, 1992년에는 38,968명이었으나 1996년에는 63,995명으로 늘었으며, 1999년에는 100,386명으로 증가하였다(김연수, GBT).
단기 선교의 폭발적 증가는 선교의 새로운 변화이지만 부정적인면과 긍정적인 면도 있다. 부정적인 것은 매년 30억달러의 여행 경비와 장기 사역자들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피선교민과의 동일시가 불가능하고 그저 외국인으로 살다가 되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기 선교사들은 준비와 양육이 무시되어 사역의 효율성이 빈약할 뿐 아니라 재정과 재능을 탕진하고 있다.
긍정적으로는 선교사와 피선교국 지도자를 격려하고, 선교의 비전을 나눌 수 있으며, 선교사와 동역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단기 선교가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래 지향적인 전략과 연구가 지속되어야 한다.
최근 선교지의 상황은 상황화 문제 즉 신학적 표류로 인해 혼돈이 야기되고 있다. 선교 현장에서 상황화와 혼합주의, 공격적 접근과 친화적 접근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다. 이러한 부분을 보다 효과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미래의 선교신학이 요청된다(박영환, 『미래의 선교신학』참조).
2.4. 최근의 선교동향과 응전
최근의 선교지의 바람직한 응전을 위해서는 첫째, 제 3세계를 동력화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중국교회와 싱가폴 교회, 인도네시아교회, 카작스탄 교회 등을 동력화함으로 선교의 극대화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제 3세계의 선교 동력화를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민족주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교회는 아시아 교회를 선교 동력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하나의 촛불보다는 여러개의 촛불이 더 밝다. 우리는 예루살렘에 해가 뜰 때까지 선교의 동력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의 축구 선교, 태권도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지도자를 훈련 파송하는 일이다.
둘째, 한인교회를 동력화하고 해외 한인 교회의 선교 네트웍을 구성하는 일이다. 아직도 대다수의 한인 교회 자원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은 실정이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복음의 용광로가 식으면 제대로 된 일군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선교는 목회의 한분야가 아니라 목회 전분야의 기초이자 뿌리임을 인식하고 선교 네트웍을 구성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셋째, 실력있는 지역 전문가로서 전략과 정책을 위한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그 지역과 종족, 국가의 역사와 문화, 영적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 현지언어의 구사력이 그 지역 영혼사랑의 척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영향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사람과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2004년 10월 방콕에서의 로잔대회 사례).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큰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구개발을 위해 현장에서의 기록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명석한 두뇌보다 흐릿한 잉크가 낫기 때문이다. 기록을 잘하게 되면 역사성과 공개성이라는 잇점도 있게 된다. 누군가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스스로 필요를 느끼는 자들이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실현하도록 개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3. 21세기 도전과 선교
3.1 세속화와 다원주의
21세기 세계선교의 도전은 세속화와 다원주의, 포스트모던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교회에 도전해 오는 세속화 신학은 믿음의 확신보다는 상황윤리적인 경향이 높아질 것이다. 교회의 세속화는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과 유일성이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도전받는 기독교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려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바로 그렇다(Timothy Freke & Peter Gandy).
다원주의와 세속화는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음신앙만이 미래 교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최근 인도에서는 종교 다원주의 신학자들이 기독교를 부정하며,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에 힘입어 다원화된 사회의 종교를 외치고 있는 추세이다. 종교 다원주의란, 이념이나 사상, 용어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이상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복잡다양하다. 한가지의 획일적인 것은 다양성으로 급변하는 형태이든지 아니면 병존하는 것이다. 한 가지 사상이나 문화 종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나 다원현상에 대한 동시적(同時的 )동가적(洞價的) 혹은 가치중립적 평가가 다원주의이다”라고 말한다.(이상규, 1992).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선교사들에게 머리 아픈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선교현장 사역을 어렵게 만들게 할 뿐 아니라 선교의 장애가 된다. 다원주의 사상은 기독교의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섭리를 반대하고 오히려 상대화시킴으로 종교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종교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사회에서는 기독교가 쇠퇴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종교들의 공격적인 전도가 활성화 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단들의 조직적인 선교활동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3.2 기존 기독교 지역의 기독교 쇠퇴
서구교회의 발전은 놀라웠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한 동안 발전했던 서구교회는 세속화와 다원주의 영향으로 기독교지역의 감소추세가 심해지고 있다. 특히 기독교 지역으로 공공기관 및 학교의 기독교적 요소를 배제하거나 금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종교로부터의 자유, 종정(宗政)분리, 기독교 유산의 폐기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교회의 급격한 쇠퇴와 선교의 후퇴는 기독교 쇠퇴를 가속화하고 있다. 서구교회들의 쇠퇴현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교회의 상황을 보면 1980년대 성인들의 교회 출석률은 10.2%이지만, 1995년도에는 8.1%, 2000년도에는 7.7% 노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호주의 경우도 1950년대 인구 40%가 적어도 한 달에 1회 교회에 출석을 하였으나 1990년대 들어 25%만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그것도 60세 이상이 40%나 차지한다.
뉴질랜드는 1950년대 인구의 40%가 월 1회 출석했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29%나 감소했다. 캐나다는 1957년 인구의 53%가 주일 아침예배 참석하였지만, 1990년대는 23%로 줄었다. 청년들의 교회 참석비율도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1980년대 초에는 23%였지만 1990년대 초에는 18%정도로 줄었다. 반대로 미국교회는 새들벡 교회와 알파전도 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형교회 출현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것은 대조적이다.
이러한 형태로 서구교회가 흘러간다면 2032년에는 서구교회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John and Sylvia Ronsvalle, "The End of Benvolence ? Alarming Trends in Church Giving", Christian Century(Octorber 23, 1996), 1012. )
서구교회의 출석인원의 감소와 헌금 감소의 두 가지 추세가 2020년까지 계속된다면 서구교회와 선교 사업은 오늘날의 그림자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
3.3. 가속되는 지구촌화
한국사회의 경우도 공식적인 외국인 근로자의 수가 40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생계를 목적으로 한국에 취업한 자들이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노동자들이지만 한국사회에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 사회를 이루는 주류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는 대규모 인구 이동이 예상된다. 전쟁과 기근, 인권유린, 직업의 선택 등으로 이민과 난민, 유학생이 많아질 예정이다. 유럽의 경우는 아프리카와 중동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이 가득 차고 있다. 유럽의 이민자들 가운데 1000만명이 무슬림들이다.
그리고 자연 재해와 전쟁을 통한 변화로 인해 가속화되는 현상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이라크 전쟁, 코소보 사태 등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은 지구촌화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 문제를 다룬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썼던 뉴욕타임즈의 칼럼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세계화 실태를 저서 ‘지구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그는 수십억 인구와 기업들이 지리적 위치나 거리, 언어, 문화에 상관없이 동시에 경쟁하는 무한 경쟁시대를 소개한다. 프리드먼은 2000년 이후 인터넷과 정보기술 발달로 전 세계 어디서든 개인 간 접속이 이뤄지는 ‘개인의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을 ‘세계화 3.0버전’시대라 부른다. 프리드먼은 이 평평한 지구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로 인도와 중국을 꼽는다. 그는 “인도는 우수한 공학자와 컴퓨터 기술자, 프로그램 개발자를 대량생산해 내는 공장 같다”고 묘사했다. 중국은 세계의 공급자가 됐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으로 볼 때 문제는 선교사역지이다. 선교사들의 사역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두려움과 선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보다 더 확실한 신학 교육, 더 강화된 전문성, 새로운 선교전략 습득,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타종교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 뿐이다.
3.4. 기독교의 성장 정체/후퇴 및 타종교 급성장 (단위 천 명)
1997년중반
1998년중반
1999년중반
2000년중반
2001년중반
2025년중반
기독교
인구 비율
33.9%
33.2%
33.1%
33.0%
33.0%
33.4%
기독교
인구
1,955,026
1,965,993
1,990,018
1,999,566
2,024,929
2,616,670
이슬람인구
1,154,302
1,179,326
1,189,359
1,188,240
1,213,370
1,784,876
힌두교 인구
806,099
67,424
774,080
811,337
823,843
1,049,231
불교인구
328,233
356875
358,527
359,982
363,740
418,345
부족종교 인구
100,137
244,164
252,207
228,367
231,335
277,247
3.5. 세계적 경기 침체와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요청
1940년대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참패한 설움을 딛고 국민들이 단합하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 경제를 많이 성장시켰다. 그리고 일본은 50년대초에 우리나라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참전하여 자국의 경제를 살리는데 기회로 삼았다.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은 산업의 고도 발전으로 경제가 크게 좋아졌으며 돈만 모두 준다면 미국의 빌딩이라도 사겠다고 할만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과거에 승승장구하던 일본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부동산버블이 붕괴되는 바람에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졌다. 그리하여 일본은 현재 십수년 동안의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일본의 경제가 침체하게 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과거 1950-60년대의 공업화시대의 방식을 거의 그대로 고수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패러다임을 찾지 못하였다. 미국이 국가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뉴 밀레니엄 정보화시대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있을 때 일본은 구태의연하게 공업사회의 방식을 거의 개선시키지 않았던 것이 침체의 원인이었다. 일반기업에서도 현재의 성공의 안주하다가 쇠퇴한 곳이 있다. 코닥사는 1975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선보였지만 경쟁사들과 기술격차에 만족하면서 방심하다가 시장 선점기회를 놓쳤다. 한 때의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순간, 위기가 찾아 왔다.
둘째, 일본은 평준화된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일본은 겉으로는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일본사회는 개성과 다양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남이 하는대로 비슷비슷하게 평준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조금만 돌출된 행동을 해도 집단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다른 비전을 향한 연구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일본은 국제화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일본은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을 뽑을때에도 일본인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강하고 다른 나라에서 인재를 영입하는데 인색했다. 또한 외국인으로서 일본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일본에 귀화해야 할만큼 일본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었다.
넷째, 일본은 종신고용제로 인하여 기업문화가 경직되었다. 어떤 기업체에 한 번 입사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토록 그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이 미덕이고, 중도에 다른 회사로 옮겨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길 만큼 경직된 고용방식을 고수하였다. 이것이 일본의 유수한 기업이 무너져 가는 원인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경제가 쇠퇴한 이유를 언급했다. 그러나 2005년 들어 세계경제는 경제블럭을 통해 관세 및 비관세 등 모든 무역장벽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세계경제는 유럽연합, 미주자유무역지대,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의 3개의 거대한 경제 블럭으로 나누어질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경제 블록은 몇 가지 경제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첫째는 무역의 창출효과이다. 즉 경제 블럭 내 국가간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철폐는 무역자유화를 촉진시켜 교역량을 증가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무역의 전환효과이다. 셋째, 효율적인 자원이용과 상품생산의 가능을 들 수 있다. 다수 국가들의 무분별한 많은 자원의사용과 과잉생산으로부터 적정수준의 자원 사용과 적정생산체제로 전환됨에 따른 자원의 효율적 사용 효과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 정도까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 이유는 고임금과 소비위축 등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는 선교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세계 경제 침체는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하게 된다.
세계경제 침체 시대에는 저비용 고효율과 사도행전 선교 모델이 활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토착교회 자립 및 상호의존, 인적, 물적, 영적 자원의 공유 및 분담이 요구된다.
4. 교회의 선교적 사명(미래상황)
한국교회의 미래와 성장, 그리고 선교 현장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한국교회의 미래는 전통적인 교회로 남아 있어야 하느냐 아니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는 교회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시기에 우리는 사역하고 있다.
첫째, 미래 사회는 기독교 선교의 장애가 더 많을 것이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상황처럼 될 수 있다. 즉 기독교의 종주국과 선교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둘째, 진정한 선교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독교 정체성 확립과 신학적 정립이 필수적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기세장악과 다윗의 호언장담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시는 바른 마음과 영적권세가 필요한 때이다. 다윗의 호언장담과 다섯 개의 물맷돌(최소한의 조직과 기동성, 능숙함)이 필요하다.
셋째, 선교사의 멤버 케어가 필연적인 시대이다. 선교사의 자녀 교육과 복지, 노후문제, 건강관리 등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선교의 주요 이슈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멤버 케어는 낙심할 때에 더 큰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마태 14:13). 상한 심령은 선교사에게 선교의 가장 좋은 기회이다. 행정적인 보완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더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이 좋다.
넷째, 선교사는 시계보다는 나침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의 시간에 기준을 두기 보다는 하나님의 시간에 기준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선교의 기회는 좀더 가까이 오게 될 것이다.
다섯째, 미래의 선교적 이슈는 이슬람교들의 확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 중심의 통전적 선교가 선행되어야 한다. 미래의 선교신학은 하나님 중심의 선교신학이라야 한다. 그래야만 이슬람의 확산 방지와 기독교적 선교를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의 미래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슬람지역의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에 대한 전략이 요청된다. 이슬람 국가 대부분은 여성 인권에 대하여 사각지대에 속한다. 여성 우주비행사가 지구 밖 여행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최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성 운전이 금지돼 있고, 가게 점원조차 모두 남성이어서 여성 소비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성들의 인권사각 지대의 대표적인 것들은 여성운전 허용이 되지 않으며, 여성들이 속옷을 살 때 점원 모두가 남성들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속옷을 사기가 어렵다는 점. 불임으로 입양을 원해도 교리위배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여성 인권과 해방을 위한 선교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미래의 선교 비전이다.
무엇보다 중앙아시아와 한국, 아프리카와 유럽지역에 확산되는 이슬람의 띠를 정지시키고 영적 휴전선을 지키면서 사역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선교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현지인을 감동시켜야 한다. 선교에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현지인들을 감동시키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는데 있다. 선교사가 자신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눔이 있을 때 무슬림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미래 선교의 주된 핵심은 이슬람확산 방지를 위한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방위선교 전략이 요청된다.
여섯째, 선교사들의 블로그 단속이 중요하다. 과거 선교사들의 활동과는 다르게 최근의 선교사들은 인터넷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사역하고 있는 곳에서 블로깅을 한다면 그의 블로그는 얼마나 개인적일 수 있을까. 선교사가 교회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선교사역 시간이 아닌 때만 블로깅을 하더라도 올린 글이나 사진이 문제가 됐을 때는 기독교까지 공격받기 일쑤이다.
최근 일반 회사들도 블로그 관련 사내방침(blogging policy)을 만들어 직원들을 단속하고 있다(IBM.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블로그 규정을 보면, 현명하게 처신하라. 사내 규정을 지켜라. 뉴스를 터뜨리지 말라(회사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것, 충고하는 것을 밝힐 때는 조심하라. 글이나 사진을 올리기 전에 내용이 불러일으킬 반응에 대해 생각해보라.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글이나 사진을 올리기 전에 내용이 불러일으킬 반응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선교사에게도 필요하다. 일반 기업체에서 규정하는 블로그도 중요하지만 선교사에게도 몇 가지 중요한 블로그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사역 현장에서 영혼구원을 위해 책임지고 복음을 전한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규정과 교회 헌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역의 전략과 사역계획의 비밀을 지키라. 그리고 선교사의 품위를 잃지 마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덟 번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극빈자 선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시아의 극빈층은 9억3600만명에 7억300만명으로 급감했으나, 아프리카의 극빈층은 2억2700만명에서 3억1300만명으로 늘어났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1990과 2001년을 비교한 내용이다(동아일보. 2005년 6.11). 가난과 관련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2005년 6월9일 유엔이 발표한 ‘밀레니엄 개발목표’ 중간보고에 따르면 아시아의 빈곤 상황은 대폭 개선된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오히려 악화돼 지역간 격차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하루 1달러(약 1000원)미만으로 생활하는 세계의 극빈층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이 비율이 44%에서 46%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이슬람이 중부를 거쳐 남아프리카로 이동하고 있기에 선교사들은 빈곤퇴치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보다 더 높은 선교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나오는 말
21세기 선교를 위해서는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 복음의 디자인으로 감성의 벽을 넘어야 한다. 복음의 효율적인 선포를 위해 0.6초 동안에 영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즉 상황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되 복음적이어야 한다. 벧후 3:11-13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