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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할머니
이귀란
“어흐 시끄러 증말, 사람이 살 수가 없네”
두루미 울음소리에 욕쟁이 할머니가 진저리를 냅니다.
“전쟁 날려나? 전쟁날 때 물고기가 떼거지로 죽었다드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웬 새 새끼가 저리 울어 울기를?”
욕쟁이 할머니가 산을 향하여 종주먹질을 해 대며 마구잡이로 퍼부어 댑니다. 때마침 고대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 손님들이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전쟁난데요?”
“어흐, 답답해 전쟁은 무슨, 귀때기 없어? 들으면 몰라?”
손두부 식당의 손님들은 이골이 나 있기에 할머니의 웬만한 욕에는 끄덕도 안합니다.
“아니, 할머니가 전쟁날 때 뭐라 그랬잖아요?”
“어흐, 내가 참. 어뜬 노인이 조 위 바닷가에 살았는데 전쟁 나든 해 말야, 물고기가 먼저 알드래잖아. 아, 떼를 지어 뭍으로 피난 와서는 허옇게 배를 내 놓고 죽드래잖아. 그래 맨 손으루 건져다 소금간 해 놓구 실컷 먹었대잖아.”
할머니의 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입은 거칠어도 할머니가 입을 열면 전설같은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시원스런 욕줄기를 양념처럼 품어 올리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신탄리역의 철로를 건너면 욕쟁이 할머니네 손두부집이 나지막하게 앉아 있습니다. 책가방이라고는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할머니는 고대산 속을 누비며 나무를 해다 팔아 연명하였습니다. 그러다 휴일이 하루 더 생기자 장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고기 드럼통 두루치기’의 찌끄둥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서면 훅 달려드는 비린내에 저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됩니다. 촉수 낮은 등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 어정어정 살피노라면 어느 샌가 다리깽이가 부러졌느냐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소문을 듣거나 혹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들른 손님들이 주섬주섬 자리에 앉아 눅눅히 젖어듭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주변을 살피다 정물화처럼 자신들도 그렇게 정물 속으로 들어 갑니다. 한 세기는 지났을 듯한 벽지에 파리똥이며 모기 죽은 자국이 즐비한 위로 그 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사연이 적혀있는 걸 보게 됩니다.
‘씨브럴 엄니 잘 먹고 갑니다, 욕쟁이 할머니 파이팅!’ 유명한 산악회는 다 다녀가고 전국의 매스컴은 다 와서 취재한 듯 피디와 작가들의 사인이 즐비합니다.
드럼통식탁 위의 철판이 달궈지면 비계덩이가 붙은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서 곰삭은 김치를 넣고 지지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손수 만들었다는 손두부를 넣고 설렁설렁 두루치기를 해 줍니다. 사람들의 젓가락질은 바쁘기만 합니다.
5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탄역을 지나 백마고지역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막차소리입니다. 어느 새 졸고 있었든지 퍼뜩 눈을 뜬 할머니가 뭐라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드십니다. 통나무를 잘라, 엉덩이에 꼭 맞는 의자며 그보다 작고 낮은 발판의 찌든 때는 여지없이 묵은 세월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혼자서 느지막이 들어서서 요기를 하던 노신사가 할머니에게 나지막이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어쩌다 그렇게 말이 거칠어 지셨수?”
남의 다리 긁듯 스쳐가는 수많은 손님들이 진담인 듯 농담인 듯 주고받던 말과 달리 정색을 하며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살짝 기가 눌린 듯합니다.
“아, 글쎄 술병을 감춰놓구 계산하는 거 아녜요? 배웠다는 인간들이, 내가 말유 배우질 못했잖아. 아무리 그렇다구 즈이들끼리 계산해서 즈이들끼리 놓구 가지를 않나말야.”
자기도 모르게 마구잡이로 말을 쏟아내던 할머니가 잠시 숨을 고루더니 사방을 둘러봅니다. 어둑한 식당 안에 몇 안 되는 손님들이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 내가 정직하게 장사하잖여. 조미료 하나 안 쓰구, 내가 농사지어서 고춧가루며 김치며 다 내 손으루 담가서 진실되게 해 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너무들 하잖아 배웠다는 인간들이.”
폭포수처럼 배웠다는 인간들을 뿜어냅니다.
할머니는 산비탈에 너와집에서 살았습니다. 지붕에는 봇돌을 얹어 바람을 피하고 사방으로 보이는 게 산이니 어려서부터 산을 오르내리며 놀았습니다. 여덟 살이 되자 아버지가 등에 꼭 맞는 지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여자 아이라 작게 만들어주었다며 신난다고 나무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검불까지 훑어다 불쏘시게 삼아 밥을 지어 먹고 집안일을 돕다, 열아홉 살에 고만고만한 사람을 만나 시집왔습니다.
남편은 소나무 껍질같은 발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산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해다 쟁여 놓아줍니다. 그러면 새댁은 나무를 아껴가며 불을 지펴 나물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흙과 돌을 이겨 만든 부뚜막에는 이빨 빠진 사기대접 세 개가 업어져 있었습니다. 옹색한 부엌에 세간살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라면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나물을 뜯어 장에 내다 팔으라고 우렁우렁 말해 주었습니다. 날이 새자마자 헛구역질을 하며 산으로 올랐습니다. 고사리며, 취나물들을 뜯어다 팔아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아이를 낳고도 쉬지 않고 나물을 뜯어 접시 하나 장만 하고, 수건 한 장 장만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장사를 시작하면서는 계산법을 모르니까 나름대로 나무 기둥에 한일자 표기를 하며 마음에 희망을 쌓았습니다. 혼자서 농삿일하랴, 살림하랴 애가 진하도록 집 안팎을 동동거리며 열심히 맴돌았습니다. 때가 되어 식당에 손님이 오면 음식 만들어 내고, 틈나는 대로 안채로 들어가 부모님 봉양하느라 종종걸음을 치며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다 또 잠이 들었던지, 누군가 신발 끄는 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십니다.
“제 새끼 떼 놓구 두 발 뻗구 자는 년 있으믄 나와보라 그래 쓰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한 차례 욕을 내 뱉더니 다시금 스르르 눈을 내리감으며 몸을 늘이십니다. 할머니가 조는 동안 손님들은 소리를 죽여 음식을 가져다 먹고, 술을 꺼내 마시며 자기들끼리 눈을 맞추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까지 나물을 뜯어다 돈으로 바꿔 생활에 필요를 채웠습니다. 겨울이면 양 볼이 빨갛게 부풀고 손등이 터져 피가 비춰도 틈만 나면 산에 올랐습니다.
“아, 내가 한 해에 껌정고무신을 두 켤레 해트렸어, 내가.”
문제는 마음 못난 손님들이 다 먹은 소주병이며 음료수 병을 원래의 박스로 가져다 놓기도 하고 슬쩍 숨기기도 하고, 복잡한 계산은 얼렁뚱땅 해 주고 가기도 하여 억분한 마음이 턱까지 차올랐던 것입니다.
“분명 손님은 바글거리는데 돈이 안 모여 으뜨케 된 게. 나무접시 놋접시 될 리 없다더니 모래 위에 물 쏟아버린 세월인 게지 내가. 하나같이 도둑놈들이구 사기꾼들이여. 아, 내 손으로 농사지어서 진실되게 해 주는데, 거기다 쐭여 쐭이기를 개 돼지만두 못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예의 그 노신사가 엉거주춤 일어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자 할머니는 그 신사를 향해 소리를 칩니다.
“아무리 으르렁 거려도 호랑이가 제 식구는 안 잡아먹는 법이라우, 내가 오죽하면 이리됐겠수, 느므럴놈의 인간들.”
할머니가 온갖 드난 고생을 하다 낳은 아들이 자라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탓은 오직 아내에게 돌린 남편은 놀음으로 밤을 지새우는가 하면 해가 지나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온 남편은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치고 시부모님은 또 그런 아들을 두둔하기만 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당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농사지으랴 아들 키우랴 맴돌아야 했습니다. 세월은 무심하게 가기만 하고 집 나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한바탕 욕이라도 퍼 부어야 속이 후련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람결에 들리는 이야기는 할머니를 더 아프게 하였습니다. 몇 다리 건너 사람이 찾아와서 남편이 북으로 갔으니, 돈을 좀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래저래 마음 고생이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래도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 통일이 되면 찾아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당최 내가 할 수 있는거이 있어야 말이지.”
통일은 꿩 궈 먹은 소식이고 할머니는 아들 손을 잡고 북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엄두를 낼 수가 없습니다.
“높은 데 있는 냥반들이 맹글어 놔야 되는 일이지. 대통령들이 만나기만 하면 뭣에 쓰는 거여 그게.”
그 때 누군가 뒷문을 열어 고개를 디밀며 소리칩니다.
“엄마, 배고파 밥 줘.”
순간 사람들의 눈이 그리로 쏠립니다. 할머니가 냉장고 구석에서 나무 막대기를 꺼내 휘두르자 까치머리가 쏙 들어갑니다.
어디선가 댕그랑, 댕그랑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어흐, 저놈의 종소리 울리면 뭐해, 다 소용없는 일야. 교회 다니는 것들 지겹도록 와서 불르는 노래두 김빠져 못 듣겠더라”
“까르륵 캬흑 -”
“어흐, 저놈의 새 잡아 죽이든지 궈 먹든지 무슨 생판을 내야지, 사람 속시끄러 살 수가 있나 증말.”
이제는 멍 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어느새 새카만 밤이 눈에 들어오면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지르며 안채로 들어가 몸을 누이는 것입니다. 늦잠을 자도 깨우는 사람 하나 없고 머리 위로 지나는 기차 소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득하기만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온 몸을 밀가루 반죽 늘이듯 늘어트리다 잠이 듭니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구렁이가 옥죄는 듯한 기운에 눌리다 눈을 떠 보면 머리 큰 아들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잠결에 버르적거리면 삼팔선을 넘으려고 허우적거리다 잠이 깨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날은 하도 피곤해서 옆에 달린 쪽마루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잠결에 자꾸만 귀를 긁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워낙 피곤했던지라 혼곤하게 잠에 취해 있는데, 헛간 뒤쪽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눈을 떠보니 시커먼 것이 서 있었습니다.
저 고대산 자락에 괴물이 사는데, 그 괴물은 겨울만 되면 어슬렁거리며 내려와 사람을 물어다 야금야금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고대산은 나물은 물론 석청이며, 약초들이 실하고 좋아서 값을 잘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산을 오를 때 혼자 오르질 못 하구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낫이며 칼들을 쥐고 오르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괴물이 하필이면 우리집 헛간에 나타난 거 아녜요? 달빛에 놈의 그림자가 얼비치는데 아이구 내가 그 때 놀랜 생각하면 난 말예요, 이놈의 세상 누구라도 덤비기만 해봐라. 대갈빡 터지게 싸워보자, 벼르던 사람인데 이게 으트케 된 게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만 하는 거예요. 아, 산봉우리만한 머리통을 가진 괴물이 가랑이 사이에 우리집을 처억 끼구는 날 잡아먹으려구 수그리는데, 그냥 질리드라니까요. 아, 이놈이 눈을 까뒤집고 휘번득 거리는지 불까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거예요.”
어둑해진 실내에는 이제 몇 사람 남지 않고 처음에 이야기를 시작했던 노신사도 보이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혼자 손짓발짓 해 가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몸서리를 치며 놀라는 시늉을 할 때는 양 손을 허우적거려 몸빼바지가 흔들리기까지 합니다. 마지막 남은 손님이 자기들끼리 계산한 돈을 테이블에 올려둔 채, 찌끄둥 소리로 문을 열고 나가도 뒤통수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합니다.
“그놈의 손이 내 머리에 닿는 순간 화들짝 깨났지 뭐야. 아, 그런데 으트케 된 게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이, 이게 꿈인거 아녜요? 하이고 아랫도리가 젖어 있드래니까요? 멍 하니 앉았다 정신차리구 나가보니 느티나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를 그렇게 놀래키드래니까요. 내 참 드러워서.”
날이 어둑해졌습니다. 할머니는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앉아 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소주병들도 히끄무레 서 있습니다. 어둠이 소리없이 밀고 들어오자 할머니는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한숨을 뱉어 내십니다.
“새털처럼 살아온 인간들이 으뜨케 알아 쓰벌”
혼자서 중얼거리며 빨간 앙고라 모자를 벗어 던집니다. 그러고도 한참동안 멍하니 앉았다 또 까무룩 졸음에 빠져듭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득히 들려오는 두루미 울음소리에 허적허적 일어나 불을 켭니다. 숨죽이고 있던 소주잔이며 먹다 남은 반찬들이 소스라치며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방 벽으로는 그간 방송에 나갔던 사진이나 신문 기사가 액자에 담겨 있습니다. 세월을 고스란히 안은 괘종시계 옆으로는 비키니 입은 오래된 여배우의 사진이 늘어져 있습니다. ‘1억년 역사의 숨결 신비로운 고석바위와의 만남’ 표어 위로도 바스라질 것 같은 꼬물꼬물한 글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손자국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전자랜지며 냉장고, 숟가락통 등, 몇 안 되는 살림살이들은 만지면 끈적끈적 달라붙을 것만 같습니다.
“끄응”
손으로 무릎을 받치며 일어서는 할머니의 헐렁이는 바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립니다. 그래도 소주병을 들어다 나르고 빈 그릇을 치우는 손길이 아직은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바람도 불다불다 그친다드만 이 년의 팔자는 은제나 고운 날 오려나아.”
“카르르륵 -”
두루미의 울음소리에 할머니는 대차게 얼굴을 찌푸리더니 손사레를 치며 밖으로 나갑니다.
“더는 못 들어주겠다. 니가 나보다 더해서 울어제끼냐 제끼길.”
할머니는 문을 박차고 나가 문 앞의 손수레를 끌고 신탄리역의 철길로 허청허청 들어갑니다. 할머니 뒤로 노란색 입간판이 선명합니다. 간판 밑으로 야무지게 동여맨 쓰레기 봉지가 쌓여 있습니다. 할머니는 철로 부근의 자갈을 손수레에 담아 끌고 갑니다. 바로 고대산 자락 두루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손수레를 부립니다. 그러더니 돌을 하나씩 집어 어둠속을 향해 냅다 던지기 시작합니다.
“니가 나보다 더해서 내 앞에서 내 속을 뒤집냐 뒤집길, 이놈의 새 새끼야. 어여 저리 가지 못하느냐 어이?”
부지불식간에 새끼를 잃고 울기만 하던 두루미 부부는 할머니의 돌팔매질에 망연히 바라보기만 합니다. 할머니도 지쳤는지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새카매진 고대산을 향해 중얼거립니다.
“대체 통일이 언제 되는지 그거나 좀 알아다 다구 이놈의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