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생각해보니,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가을이 오려나 학수고대했었지요.
우리는 왜 그리도 가을을 가다렸던가요? 들녘이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풍경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돌담 아래서 감귤이 익어갑니다. 제주의 가을은 이맘때부터 분주합니다. 감귤수확의 계절이기 때문이죠. 지난 여름, 태풍과 폭우로 시름을 앓았던 농가들이 드디어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올해는 태풍으로 낙과가 심했고 병충해도 극성을 부려, 어느 해보다도 과일값이 고공행진을 했지요. 돌담위로 너울대는 감귤 열매는 이국적이 풍경을 자아내기도 하죠. '툭!'하고 하나 따서 껍질만 벗기면 제주 감귤의 새콤달콤한 맛을 볼 수 있지요.
가을이 익어가는 10월 16일, 극조생(가장 빨리 생산된) 감귤 첫 수확을 했습니다. 2천여평의 감귤농장을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서 농사짓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잦은 비와 태풍이로 작황은 그리좋지 않습니다. 우리집 감귤농장 역시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절반 정도 수준입니다.
더욱이, 주말농장으로 농사를 짓다보니 노동력은 따라가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다른 농가에서는 1년에 10번 정도 농약을 살포하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6번 정도 살포하거든요. 그렇다보니 때깔은 곱지 않지만... 맛은 일품입니다.
주말만을 이용해 2천여평의 감귤 농사를 짓다보니,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주말마다 힘들게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남들이 조금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 주말이나 휴일, 그 고소한 늦잠 한번 못 자고 새벽에 일어나 감귤원으로 향하곤 했지요. 뿐만 아니라 손수 풀을 뽑고, 잡초를 제거해야만 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봄이면 감귤가지에서 하얀 꽃망울이 터지고, 순백의 감귤꽃이 감귤향수를 풍길 때를 기억하면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특히 콩알 만한 열매가 자라서 노란 감귤로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순간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를 것입니다. 꼭 자식을 키우는 맛과 비슷합니다.
가장 큰 기쁨은 가을걷이때 찾아옵니다.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 열매를 수확하면서는 '이걸 팔면 부자가 되겠군'이란 생각보다, 오랫동안 내가 키워온 것을 수확한다는 기쁨이 더 큽니다.
첫 극조생 감귤을 수확하는 기분, 그저 행복하기만 합니다. 직장생활에 쫓기다가도 감귤원에만 오면 여유가 생깁니다.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감귤원에만 오면 확~ 사라지는 기분. 아마 그것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멩이 밭에 뿌리를 내리고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 첫 수확을 하는 주말농부 마음도 어느새 가을처럼 풍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