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라(鄭, 기원전 806년 ~ 기원전 375년)의 역사
정나라(鄭, 기원전 806년 ~ 기원전 375년)는 서주 왕조와 춘추 시대에 걸친 주나라의 제후국 중 하나이다. 작위는 백작이었으며, 공실의 성씨는 희(姬)성으로 동성 제후국에 속했다. 한나라(韓)에 의해 기원전 375년에 멸망했다.
정나라는 기원전 806년, 주 여왕의 아들이자 주 선왕의 동생인 정 환공 우(友)가 서주의 기내에 있는 정(鄭, 현재의 섬서성 화현 서북쪽) 땅에 봉해짐으로써 세워졌다. 주 유왕의 정사가 어지러워지자 화를 피해 동쪽으로 옮겨 동괵(東虢)과 회(檜, 鄶)나라에서 열 읍을 받아 새로 나라를 세웠다. 환공은 서주 시대의 마지막 왕인 주 유왕의 숙부였으며 주 평왕의 종조부였으므로, 서주 말기와 춘추 시대 초기에 정나라와 주 왕실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정 환공은 주 유왕의 사도로 봉직했으며, 그 후임인 정 무공과 정 장공도 주 평왕과 주 환왕의 경사(卿士)로써 봉직했다.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나 왕실과 혈연관계가 멀어진 다른 동성 제후국과 달리 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으며, 왕실 근처에 자리잡고 있어 왕실을 대신해 태산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러한 주 왕실과의 관계로 인해 춘추 시대 초기에 정나라는 국가간 외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주 평왕 4년에 정 무공이 같은 동성 제후국인 동괵을 멸망시키고 이름을 신정(지금의 허난 성)으로 바꾸어 수도로 삼고, 주 평왕의 뒤를 이어 주 환왕이 즉위함으로써, 주 왕실과 정나라의 관계는 틀어졌다. 주 환왕은 오랫동안 왕실에 봉사하면서 동주 왕실의 핵심 세력이 된 정나라 공실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 반대급부로 다른 동성 제후인 괵나라를 중용했다.
이러한 왕실의 세력 변화로 인해 주 왕실에서 정나라의 세력이 약화되자 정 장공은 주 왕실의 권위를 무시하고 노나라와 상대방의 봉토 안에 있는 각자의 제사용 봉토를 교환했으며, 이에 분노한 주 환왕은 정나라의 영토 일부를 몰수하고 주변 제후국인 진(陳)나라, 채나라, 위(衛)나라의 군사를 소집해 정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정 장공의 반격으로 주 왕실과 그 연합군은 패배했으며, 주 환왕이 팔에 화살을 맞아 부상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주 왕실의 힘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었으며, 환왕이 정 장공에게 패배한 시기 근처가 바로 춘추 시대가 시작하는 때이다.
정 장공이 죽은 후에는 정 소공, 정 여공 및 다른 공자들의 공위 다툼으로 인해 국력이 급속히 약화되었으며, 주변 강국인 진 (晉), 초, 제의 사이에 끼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원전 607년 진(晉), 진(陳), 위, 송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정 간공(鄭簡公) 시기에 자산을 등용하여 법 체계를 정비하는 등 일정 이상의 국력을 유지했다.
전국시대 초기부터 한나라와 지속적으로 전쟁을 벌였고,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탄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기원전 375년에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