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당나무.
어렸을때(1960년대) 정월 대보름이면 이 당나무 밑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열마지기 논의 큰바위(지금의 원앞에서 호방쪽으로 들어오면 두번째 우측 길 주변.
기억에 봉고차만 했던 큰바위는 논 구획정리때 땅을 파고 묻었다.)
앞에 달불을 놓고 쥐불놀이를 한 후 원앞 아이들과 보름날밤 원거리 싸움을 했다.
자미산에서 대나무를 짤라 활을 만들고 활촉을 만들어 원앞을 보고 대충 쏘곤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화살이 사람을 맞혔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며 아무 생각 없던 철없던 시절을 생각 해 본다.
여름의 당나무.
이 때는 정자가 설치 되어 있지 않다.
윗사진과 아랫사진의 우하변 날짜를 비교해 보면 당나무 밑 좌측에 정자는 2009년도나 2010년도 설치했다.
이 정자의 현판은 호계정(虎溪停)으로 적혀 있다.
애양골 포구소
지금의 능소화 마을이 있는 곳.
어렸을 때 이곳은 동창천의 원줄기이다.
1990년대 초 운문댐이 만들어 지면서 동창천 제방을 만들게 되어 지금의 물줄기로 변했다.
운문댐 수몰지역민들을 이주 시키기 위해 옆산을 깍아 매립할려고 하여 수몰민에게 분양을 했는데
그당시 신청한 사람은 땅을 정부로부터 분양 받았고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두었다.
하여 지금 이 소(沼)의 반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그 외는 국가하천으로 남아 있다.
옛날 방학때이면 점심먹고 소를 몰고 지금의 청소년 야영장 있는 좌측산에 저녁까지 방목했다.
산을 내려와 이 애양꼴에서 소 찾으러 가는 저녁까지 아이들은 목욕을 했다.
저녁에 소 찾으로 산에 오를테면 간혹 한집소가 없을 때가 있어 동내 아이 전부가 밤이 되도록 찾으가면
소가 묘 옆에 앉아 되세김질하며 있 곤 했다.
어떤때는 그날 찾지 못해 다음날 찾기도 했다.
이 소(沼)는 깊이가 어렸을때 키의 두길반 깊이였다.
산쪽으로 큰바위 위에서 다이빙도 했다.
이곳은 고딩이,고기들이 한정 없었으며 고딩이 잡아가서 저녁 반찬도 해 먹었고
밤이면 그 귀한 경유 또는 등유로 솜방망이를 만들어 이름하여 불치기를 했다.
밤이면 뻥구리, 모래모지등은 물 가장 자리에 나와 잠을 잘 때 반도(고기잡는 그물)를 고기 앞에 치고
발로 고기 뒤 땅을 툭 치면 고기가 자다 놀라 앞으로 직진하여 운명의 그물을 만나게 된다.
그날 밤이나 다음날 점심때 고추,호박등을 서리 해서 강변에서 매운탕을 끼리 묵었다.
이를테면 동내 어장이였다.
지금도 이 소에는 낚시꾼들이 휴일이면 시끌벅적하다.
동창천 삼각주.
강이 흐르다 보면 강 폭이 넓은 곳이나 강어귀에 모래나 흙이쌓여 이루어진 땅을 삼각주라 한다.
대게는 삼각형으로 만들어 진다고 해서 삼각주로 붙혔는 모양이다.
한강으로 치면 여의도 같은 곳.
이곳은 호방에서 장싯골 가는 곳으로 둑이 생기기 전에는 이 강은 약 300 미터의 폭을 가지고 있었다.
2012년 환경청에서 100억의 예산이 확정되어 사진의 파란선 부근을 매입하여 장연생태공원을 만들게 되었다.
공원 99%의 땅이 호화리로 되어 있으며 일부 장연동 땅이 들어 와 있다.
계획을 잡을 시 기안(起案) 공무원이 이 땅이 장연동인 줄 알고 이름을 붙혔으나
그 이후 호화리 동민들이 개명을 요구하고 있다.
2012년 필자는 귀향한지 4년째 되는 해이며 우짜든동 묵고 살라꼬 감말랭이 공장을 구상하며
사진의 파란선 좌귀에 공장을 짖기 시작했다....ㅎ
장연생태공원
장연 생태공원이 국비70% 도비20% 군비 10%로 총 100억 사업 중 이곳 장연생태공원과 동곡 신지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장연 생태공원인 경우 2013년 첫삽을 뜨고 2015년 10월경 준공식을 가졌다.
혹자는 이런 곳에 무슨 공원이 생기냐 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있으니 좋지 않은가.
캠핑장 전경.
공원이 기폭제가 되어 외지인들이 주변에 눈길을 주기 시작하여
공원 주변은 급속히 환경 변화가 시작된다.
전과 비교해 보면 가옥들이 네다섯체가 지어 졌으며 감공장 및 대형 캠핑장이 생겼다.
캠프원 야영장은 약 15,000평으로 전국에서 제일 큰 야영장이며 청도군 캠핑장 허가 1호이다.
캠핑장 수영장.
이 캠핑장은 그 전 대성농원에서 만들어 놓은 수영장을 그대로 잘 이용하여
여름철 주말이면 약 250사이트 일천명이 성황을 이룬다.
특히 수영장이 있어 여름철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많이 온다.
꼴짝 시골길에 차가 밀릴 때도 있다.
지역발전을 위해 극히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본다.
홍수
2012년 한반도의 9월달엔 태풍3개가 친목계하 듯 몰아쳤다.
그중 마지막 태풍인 산바란 늠이 여수에 상륙해 밀양,청도를 관통했다.
그때 쯤부터 국지성폭우가 생겨나 청도에서 2,30키로쯤 동쪽 운문댐 상류인 경주 건천에 400미리 폭우가 내렸다.
여파로 운문댐에서 9월17일 오전 12시경에 초당 약 1,800톤의 물을 방류했다.
이 운문댐은 초당 700톤 방류 능력이 있는 시설인데 1,800톤의 물이 솓아 졌으니 계산상
초당 1,000톤이 댐을 월류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여 운문댐 건설후 처음으로 하류에 비피해가 발생 했다.
운문댐은 이후 초당 3,000톤을 방류할 수 있는 댐 주변에 수문을 산으로 터널을 뚫어 만들었다.
호화 잠수교 자리
마을 앞 잠수교가 위험해 다시 다리를 놓고 있다.
약 5년전부터 우리마을 주변에서 국가정책 자금 약 300억이 투자 되었다.
육화산 자락 청소년 야영장 100억, 장연 생태공원 100억, 명대에서 길명까지 2차선 도로 확장에 약 100억이 투자되었다.
시골 1,000명 안되게 사는 학구에 이렇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어
우리 매전학구는 오천년 역사이래 미증유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학구가 지속적인 발전이 거듭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능소화 마을
이 마을은 장연리와 호화리 경계에 지어져 2집은 장연리에 속해있고 13집은 호화리에 속해 있다.
십수년전 이른바 기획부동산에서 그 작업이 시작되어 시공자의
부도가 여러번의 반복과 공사가 병행 되어 근래에 와서야 마을이 정착 되었다.
그전에는 공사했던 사람들이 공사비 대신 집을 받아서 보유하고 있다가 이제 실수요자가
그 자리를 모두 체웠으니 마을 자체가 안정된 셈이다.
집이 언덕 높이 걸터져 앉아 있어 올라가 보면 산을 등에 업고 물은 가슴에 안은 집터로서 환경이 빼어 난 곳이다.
청도운석농장.
일년에 감 약 12,000 박스(240톤) 생산 능력이 있다.
통상 매년 10월부터 익년 1월까지 생산하며 그외에는 노는 공장이다.
필자가 지은 것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ㅎ
완성된 글이지만 생각나는대로 수정 보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늦게봐서 미안합니다.인자 봤네--상세하게도 잘도 올렸네요
능소화 마을터는 원래이름은 덕골.야씨디미라고도 했었고.포구소 먹갑고 놀던곳으로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인구대비 많은 지원은 열심인분들의 노고로 고향 발전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