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hot
:intro
"이번 건은 전정국이랑 같이 맡아."
아무래도 너 혼자는 위험하니까. 팀장님의 낮은 목소리가 허공에 일렁였다. 그 목소리를 따르는 소리는 팀장님이 얄팍한 종이를 넒기는 것이 유일해, 더욱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팀장님의 손끝에 의해 겹겹이 쌓인 종이들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내 머릿속이 더욱 혼잡해져갔다. 전정국이라니.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온갖 파열음이 가득한 그곳에서, 날 집어삼킬 듯한 그 불길 속에서, 너에게 총을 겨눈 그때의 나. 그런 나에게 총을 겨눈 그때의 너의 모습. 조금의 흐릿함도 없이 선명했다. 타오르는 불길보다도 더 매섭던 너의 그 눈동자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가득 담아낸 채였다.
애써 그 기억을 지워낸 내가 다시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그 이름 하나에 내 기분이 푹 가라앉는다는 것을 잘 아는 듯이, 팀장님은 내게로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그에 미간을 잔뜩 좁혀 보인 내가 아무 말 없이 팀장님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고개를 들어 옅은 한숨을 내쉰 팀장님이 서류를 덮고선 자신의 옆으로 치워냈다. 내가 너한테 약하다 해도 어쩔 수 없어. 위험해. 제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팀장님의 두 눈동자가 나와 마주했다. 피곤에 절은 그 눈 속에서도 날 걱정하는 것을 보면 진심인 듯싶었으나, 역시 내 생각은 단호했다. 저 전정국 못 믿는 거 잘 아시잖아요. 제가 어떻게 믿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전정국을.
"알아, 네가 나 싫어하는 거."
팀장님이 해야 할 대답을 가로챈 전정국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이질적인 소리에 고개를 돌려내니, 역시나 한결같은 표정을 한 채 걸어오는 전정국이 내 시야에 가득 담겼다. 우리의 대화를 다 들었음에도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날과 다름없는 깔끔한 슈트 차림의 전정국을 마주하자 또다시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난 너와의 첫 만남을, 그 순간부터 시작된 너와의 인연을 부정하려 애쓰는데, 그런 나를 깔보듯 넌 여전한 그 걸음걸이와 옷차림,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며 내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에 인상을 구긴 내가 전정국의 대답을 무시하며 곧바로 팀장님을 바라보자, 팀장님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웃으며 내가 호출했어. 하고 답했다. 그걸 몰라서 쳐다보는 게 아니잖아요.
"반역자 주제 너랑 같은 위치에 있는 게 싫겠지."
"..........."
"네가 잡아온 반역자를 정부가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도 못마땅하고."
".............."
"더군다나 반역자를 처리하러 가는 임무인데 파트너가 반역자였던 사람이라니. 싫을 만도 하지."
"..................."
"우리 서로 총도 겨눴던 사이인데 말야. 그치?"
전정국의 입가에 흐릿하게 미소가 번졌다. 매서운 눈빛과는 달리 뭐든 다 알고 있다는 저 미소는, 이질적이다 못해 잔인했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쁘단 말이야, 저 미소. 그에 지지 않으려 전정국을 빤히 바라보자, 전정국은 나에게로 다다른 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큰 그림자가 나를 훑고서 지나가자, 느긋한 걸음으로 탁자로 가 걸터앉은 전정국이 비어있는 술잔에 투명하고도 붉은 술을 따라냈다. 기다란 다리가 굽혀지자 깔끔하게 정돈된 옷들에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하얀 와이셔츠 틈새로 간간이 하얀 살결도 보였고, 바지가 접히자 적나라하게 드러난 발목 위 은빛 체인이 내 시선을 잡아챘다. 내 시선이 제 몸에게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눈치챈 건지, 전정국은 이런 게 마음에 들어? 하고 묻듯 웃으며 주름진 셔츠를 펄럭였다. 재수 없게.
"전 못해요. 신뢰도 없는 파트너랑 일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안전은 보장되지."
"반역자였던 사람이 다시 반역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해요."
"반역자였던 파트너 덕에 길 헤매지 않고 무사히 돌아올 거란 생각은 왜 못해."
"..............."
"내가 큰 도움이 될 거란 말을 이렇게 돌려 말하네."
고맙게. 팀장님에게 내뱉은 말을 모두 대신 답한 전정국이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곤 나에게서 시선을 떼어내지 않은 채 술잔을 들어, 한 모금을 꿀꺽 삼켜냈다. 하얀 살결에 감춰진 목젖이 뚜렷이 일렁였다. 그런 전정국을 보고서 뒤늦게 피식. 웃어 보인 내가 품에 감춰든 총을 빼들어 전정국을 향해 겨누자, 자리에 앉아 있던 팀장님이 여주야. 하며 벌떡 일어나 나를 불렀다.
"날 보호해주는 척하다 뒤통수를 칠지 내가 어떻게 알아."
"..........."
"네가 안내해주는 길이 함정이 아닐 거란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데."
"........."
"애초에 반역자였던 놈을 반역자로 취급하는 게 정상이지."
"..........."
"내가 널 왜 믿어?"
뭘 믿고 파트너로 둬, 너 따위를. 팀장님의 부름을 완전히 무시한 채 전정국을 노려보며 말하자, 느긋하고 태연하기만 하던 그 나태한 표정이 그제서야 멎어들어갔다. 그리곤 잠시 표정을 굳히는 듯하다, 다시 피식 웃어 보인 전정국은 술잔을 손에 쥔 채 나에게로 빠르게 다가오며 나의 앞에 우뚝 서보였다. 또 한 번 커다란 그림자가 날 집어삼켰다. 그에 지지 않으려 전정국을 똑바로 올려다보자, 전정국이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손에 쥔 술잔으로 가볍게 제게 겨눈 총을 치워냈다.
"나 따위를 믿고 싶음 내 파트너 해."
"........."
"그럼 재밌는 거 많이 알려줄 테니까."
"........"
"내가 왜 재밌는지 알려줘?"
마지막 마디는 작게 중얼거리며 내 귓가에 속삭인 전정국이, 나에게서 멀어지며 팀장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오늘 타깃은 P4 맞죠? 본명은 김태형. 하며 나지막이 누군가의 이름을 읊었고, 그 이름을 들은 팀장님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갔다. 한눈에 봐도 웃고 있던 눈꼬리 하며 입꼬리까지 굳어가는 것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더욱 불을 지피듯 어, 꼭 생포해 와. 하며 목소리를 낮춘 팀장님은, 진득이 나를 한번 바라보고선 걸음을 옮겨 팀장실을 빠져나갔다. 낯설기만 한 팀장님의 모습이었다. 한 번도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본 적은 없었는데. 낯선 듯한 팀장님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내가 그저 팀장님의 빈자리만 바라보고 서있자,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 전정국이 내게 쥐고 있던 술잔을 건넸다.
"출발은 오후 3시 정각."
".............."
"저 인간 저러는거 처음 보지?
"........"
"왜 저러는지 알고 싶으면 늦지 말고 나와."
"............"
"사람 기다리게 하지 말고."
+24일날 잠들어서 27일날 일어났습니다 ㅎㅅㅎ
첫댓글 블로그에서도 보고 또 보니까 더 좋아요!! 정국이는 사랑입니다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1.24 0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