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대게>
1. 영덕대게와 방학중
운 좋게 귀한 영덕게를 먹게 되었다. 영덕대게는 꽃게와 달리 매우 크고 비싸므로 부담스러워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식재료다. 그동안 보기에도 귀물인 대게를 먹는 것이 너무 호사스러워 바라만 보아왔었다. 어렵게 귀한 음식 먹고 나니 기록의 나라 백성답게 몇 마디 기록을 남기고 싶어 몇 자 적는다.
영덕대게는 홍게와 많이 헷갈린다는데 운좋게 진짜 영덕대게를 만났다는 것을 한입에 알 수 있었다. 풍성하고 깊은 맛, 음미하고 싶은 맛이 특히 게딱지에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게살과 내장이 만나 갖가지 맛과 식감을 냈다. 흰살은 다리살보다 부드럽고, 껍질 가까이 둘러싼 막에 담긴 살은 쫄깃한 식감을 내고, 아가미 부근의 뻘같은 연회색의 내장맛은 맛의 본가처럼 풍성한 맛을 내는데 이 세 맛이 합쳐져 환상적인 맛으로 상승된다. 아무리 이덕무인들 대게를 만났으면 비벼먹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위 수율이라고 하는 게껍질 안의 살이 차있는 정도는 게 다리마다 실하고 높아서 자르고 살을 꺼내 먹는 맛이 또한 색다른 재미를 준다. 홍게와 달리 확실히 다리 껍질도 부드러워 가위로 자르니 세로도 종이처럼 잘라져 살이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며 오롯이 드러난다. 대게는 30분 정도 강한 불에서 찌고 5분 정도 뜸을 들이면 최적의 맛을 얻을 수 있다.
전라도에서는 꽃게를 주로 먹는데, 경상도는 영덕 대게를 먹으니 게에 대한 인식이 다른 거 같다. 꽃게는 주로 찌게나 게장으로 요리를 해서 먹는데 반해 대게는 식재료 자체가 너무 훌륭하므로 그냥 삶아서 먹는다. 경상도에서 많이 먹는 방어도 회로 주로 먹어 굴비로 먹는 전라도 조기와는 다르다. 동해바다의 해물은 주로 생물로, 혹은 식재료를 크게 가공하지 않고 먹으므로 요리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불운이 행운이고, 행운이 불운이다.
이리 맛있고 먹을 살이 많은데 요리할 필요나 여유가 있겠는가. 그대로 먹는 것은 더욱 신선하여야 할 것이므로 그대로 먹는 것이 최대의 사치일 것이다. 이런 사치를 누리는 행운을 얻었으니, 나랏님 부럽지 않은 날이다. 축산면 경정리에는 태조 왕건이 안동 근처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치고 영해 세력자들이 참전해준 데 감사하기 위해 이곳을 들러 경주로 가면서 대게를 맛보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순창에는 이성계가 순창 만일사에 가다 농가에서 먹은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후일 진상하라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음식에 임금 설화가 끼이면 관련 음식은 신분상승하고 진상품이 된다. 그 진상품을 먹을 수 있는 우리는 식생활에서는 모두 왕이 된 것인지 모른다.
영덕은 방학중의 고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방학중보다 대게의 고장이라고 기억할 거 같다. 영덕 대게는 강구에서 많이 잡히고 이곳에서 축제도 한다. 방학중도 강구면의 하저리 사람이다. 방학중은 봉이김선달형 인물인데, 도처에 이런 인물이 있다. 평양의 김선달, 서울의 정수동 백문선, 영일의 정만서, 전주의 이거두리 등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조동일, 인물전설의 의미와 기능 참조) 조동일 교수는 이 책에서 방학중 민담 51편을 소개하고 분석하여 세상에 알렸다.
방학중은 영덕의 역사적 구비적 자산이다. 이런 방학중과 영덕의 식품 자산인 대게를 연계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면 따로가 아니라 합쳐서 기억해 시너지 효과가 더 크게 날 거 같다.
*물 건너온 방학중
방학중이가 물을 건너오니, 건너갈라든 사람이 물었다.
물이 깊은가요?
모르겠소.
금방 건너오든데 모른다니 무슨 말이요?
내가 건너온 물은 저만치 내려갔으니 모를 수밖에.(위의 책 253면)
재미있는 얘기 한 편을 옮겨봤다. 이런 꾀보 방학중이는 가난하고 이름없는 백성이다. 많은 이야기 속에 식품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떡보리 이야기가 많다. 그것도 농사도 장사도 하지 않아 항상 얻어먹고 다니는데, 떡보리같은 서민 식품이 주류다. '잣이오' 하니 '자시오'로 들었다고 남의 잣을 먹어버렸다는 이야기는 귀한 식품은 이렇게 속여야만 겨우 천신할 수 있는 정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방학중이 대게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대게를 알았다면 방학중이는 어떻게 또 대게를 먹으려고 꾀를 냈을까. 방학중이 대게 얻어먹는 이야기를 만드는 대회를 만들면 어떨까.
영덕군에서는 2013년에 <천하잡보 방학중의 해학과 풍자>라는 학술대회를 열고 방학중 설화의 문화산업화를 기획하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강구 사람인 방학중이 대게를 못 먹어봤다면 그것도 큰일이다. 대게를 먹는 방학중은 어떤 모습일까. 같이 한번 만들어 보자.
영덕대게 먹은 날 : 2023.2.2.
1-1. 영덕대게 생산지
영덕과 삼척 사이의 동해, 특히 '무화잠'과 '왕돌잠'이라는 해저산맥에서 많이 잡힌다. '무화잠'과 '왕돌잠'은 전국에 있는 대게 음식점의 상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영덕대게는 강구항과 축산항 앞바다에서 잡히는 대게를 말한다. 앞바다 바닥이 깨끗한 모래로 이루어져 대게 서식에 좋은 환경이다.
2. 영덕(盈德)대게 소개
1) 영덕대게는 경상북도 영덕지방에서 잡히는 게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맛이 담백하여 구미를 돋우는 명물이다. 대게라는 이름은 그 발이 붙어나간 모양이 대나무의 마디와 같이 이어져 있는 데에서 연유하며, 한자로는 죽해(竹蟹)라고 한다.
서식처는 영덕군의 영해 대진(大津) 앞바다에서 감포(甘浦) 앞바다에 걸쳐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영덕군 일원의 앞바다가 주산지이다. 서식처의 수심은 150∼250m, 수온은 2.3∼10.3℃, 비중은 31.37∼33.53%가 가장 적합하다.
암케와 수케의 교미기간은 매년 3, 4월이며, 산란기는 그 다음해의 봄철인데 한마리의 암케가 대체로 7만 8000∼15만 개의 알을 낳게 된다. 산란 후 1년이 지나야 부화되어서 게로 된다.
어획기간은 12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이고 이 기간에 잡힌 것이 살이 많고 맛이 있으며, 6월에서 11월까지는 금획기간으로 되어 있다. 또한, 9㎝(몸너비) 이하의 새끼대게는 잡을 수 없으며, 그것을 남획하였을 때는 「수산물어획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게 된다.
1930년대는 무진장이라 할 만큼 많이 생산되었고, 1950년대만 하여도 그런대로 상당한 생산을 올렸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한 어선의 파손·유실과, 한류·난류의 심한 유동변화로 1960년대에 와서는 생산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어획고가 점점 감소하여 대게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영덕군은 매년 4월 초에 영덕대게축제를 주최하며,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참여해 영덕대게의 맛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죽해(竹蟹)인가, 대해(大蟹)인가?
대게를 한자어로 죽해(竹蟹)라 한다 하나 대는 아무래도 '대나무 게'(竹蟹)가 아니라 '큰 게'(大蟹)가 맞는 거 같다. '대'의 발음을 모두 장모음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경상도 방언은 성조와 장단음의 구분이 잘 살아 있어서 어휘간 변별력이 표준어보다 크다는 장점이 있다. 경북사람들은 영덕대게의 대를 길게 발음한다. 대다무 대(竹蟹)라면 짦고 높게 발음해야 하는데 언중이 길게 끌어 발음하고 있으니, 한자어는 아무래도 현지어나 일상에서 유리된 호사가들이 의미를 붙여 만들어낸 게 아닌가 한다.
더구나 죽해라면 대게와 발음이 모두 어긋난다. 대게(大蟹)라면 대해와 한 글자만 다르므로 현장의 일상언어와 유리감도 적다. 영덕대게는 모두들 생각하는 바와 같이 '큰 게'(大蟹)로 생각하고 쓰는 것이 오히려 민간의 쓰임을 제대로 쫓는 것이 아닌가 한다. 좋은 어휘는 언중 언어의 의미와 발음을 살려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렇다. (연경)
3) 영덕에서 전해지고 있는 대게 유래에 대하여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 하나는 예주 (지금의 영해지역)의 연역에서 나타나듯이 고려태조(왕건) 23년(서기 940년)에 지금의 영해지역을 처음 순시때 임금님의 주안상에 특별한 음식으로 올린 것과 그 이후 예주부사가 대게잡이로 알려져 온 이곳 마을을 초두 순시한 것을 바탕으로 마을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기인한다
다른 하나는 조선조 초기에 지방특산품을 중웅에 조공하여 임금님의 수랏상에 대게를 올려 맛보게 하였으나 당시 대게를 먹는 임금의 자태가 근엄하지 못하고 임금의 얼굴에 대게살이 묻어 있는 모습을 신하들이 보기에 너무도 흉칙하여 한동안 수랏상에 대게를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게의 특별한 맛이 생각난 임금이 신하에게 다시 대게를 찾아오라고 명하여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가 게를 찾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와 한참을 헤매던 끝에 지금의 동해 영덕군 축산면 죽도에서 한 어부가 잡은 게를 찾게 되었다.
그때 어부에게 그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으나 어부가 대답하지 못하여 크고 이상한 벌레라는 뜻으로 언기라고 이름지었다. 죽침 언기어 또는 대나무의 곧은 줄기와 같고 다리의 마디가 여섯 마디라는 뜻으로 죽육촌어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은 죽해(竹蟹)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그 뜻은 대나무 섬을 지나오면서 잡아온 게의 다리가 대나무 마디와 같이 길쭉하다는 의미이다.
하여튼 구설로 전하여지고 있지만 게가 크다는 뜻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으며 길쭉하고 곧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앞으로 영덕대게는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품질관리는 물론 자원보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그 위상을 높여가며 지역명품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덕 관광포털)
식당에서는 대체로 부위별로 잘라 내오므로 전체를 한꺼번에 보기 어렵다.
4) 영덕의 해안은 금모래 바닥으로 서해안의 갯벌과는 아주 다른 환경이라 바다 밑의 플랑크톤이나 대게의 먹이사슬이 다른 해역과 차별화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대게의 체질은 자연환경에 맞게 특징지어졌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영덕대게로 자리매김 하게된 것이다.
청정해역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덕의 해역은 바다 밑에서도 서식환경이 좋은 여건이어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각종 플랑크톤과 대게의 먹이감들도 그 품질이 우수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질의 먹이, 즉, 이러한 기본적인 고단백질 말고도 바다 밑의 각종 미네랄과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한 영덕대게를 통해 우리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그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영덕 대게마을 사이트)
5) 흔히 도시 소비자들은 홍게를 대게인양 사먹는 경우가 많은데, 영덕에서 생산되는 대게와 홍게는 외관상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덕대게는 영덕에서 생산되는 대게를 말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잡힌 대게들이 영덕대게로 둔갑하여 판매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영덕대게의 경우는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수산업법에서 일정기간(매년 6월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동안에 포획금지기간이 있다. 여름철에 피서차 왔다가 먹게되는 게는 붉은대게이던가 냉동보관된 영덕대게 일 것이다.
영덕대게의 몸통은 등쪽은 주황색에 가깝고 배쪽은 약간 노란빛도 있지만 흰색에 가깝다. 게의 갑각이나 다리에는 색소성분인 아스타크산틴(Astaxanthin)이 있기 때문에 원래는 붉은 색이나 조직 내에서 단백질과 결합하여 청록색을 띄며, 가열하면 단백질이 분리 변성되어 붉은 색인 아스타신(Astasin)으로 변하여 어떤 게라도 삶으면 붉은 색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같은 속의 대게와 영덕대게와의 구별이 쉽지 않은데 붉은 대게의 경우는 붉은 정도가 좀 더 진한 편이다. 특히 형태적인 특징을 구별의 기준으로 이해하면 쉽다. 한가지 구별은 붉은대게에서는 갑폭의 최대부근의 좌우에는 각 한개씩의 작은 가시가 있으나 대게의 경우에는 이 작은 가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껍질을 보더라도 영덕대게는 부드럽고 붉은대게는 딱딱하고 단단하다. 맛은 약간 단맛이며 담백하고 쫄깃쫄깃한 것이 영덕대게이고 짜고 육질이 약간 물렁한 것이 붉은대게이다.(영덕대게마을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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