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수상자 : 박정화
수상년도 : 2022년
수상작 : 내 삶의 궤적에 치유의 밑줄을
- 김용대의 『나도 낙엽인 것을』을 읽고
내 삶의 궤적에 치유의 밑줄을
처서를 지나고 있다. 벌써 수리산 굴참나무 가지엔 성급한 가을이 앉았다. 장마철의 그 많은 빗물을 껍질 속으로 가두었는지 나뭇잎의 색이 변해간다. 쓸쓸한 마음에 낙엽의 이야기가 담긴 수필 한 편을 읽는다.
「나도 낙엽인 것을!」 독백을 던지는 작가의 글이 왜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반문해본다. 글을 읽는 내내 참 편안하다는 느낌이다. 유속이 느린 강물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어느 가을 오후에 속내를 풀어 놓듯 조곤조곤 친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쓸쓸하고 서럽기도 한 낙엽이란 명제 앞에 단 한 줄의 슬픔도 쓰지 않는 작가의 문장 앞에서 뭐지? 물음표를 달아 보기도 했다. 슬픔을 비켜 간 흔적도 없이 담담하게 낙엽을 그려나간 작가의 내면을 본다.
삶의 길을 바꿔버린 집중호우나 어느 한 부분을 휩쓸어 가버린 큰 태풍 같은 건 만나지 못한 삶이었을까? 잔잔한 개울에 가끔 소낙비 퍼붓기도 했겠지만 비교적 평탄한 삶을 잘 살아온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하기에 구둣발에 밟힌 낙엽은 버둥거림이 없다고 긍정의 사고를 피력할 수 있었을 테다. 디스토피아 소설처럼 늘 어두웠던 내 사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평화로운 글이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적인 심리를 다스리며 원고지를 메웠다는 걸 인용하며 자신의 갈등을 표현한다. 자신에게 쌓인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겠다며 비움을 제시하기도 한다. 서랍을 정리하고 헌 옷을 수거함에 버리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이기적이고 집착이 집요해지는 나를 본다. 수학 문제면 열심히 배우기라도 하겠지만 살아온 사유가 남달라서 그런지 자꾸만 식탐처럼 느는 내 이기가 부끄럽다. 내 생각도 작가의 글처럼 담백하고 간결했으면 좋겠다. 나뭇가지 위로 흐르는 구름 두 조각을 바라보는 작가의 혜안이 부러울 따름이다.
양복 멋지게 입고 항상 젊은 여인들을 거느리며 시대의 첨단을 걷던 아버지는, 왜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이조의 여인으로 살게 하셨을까? ‘가시나가 공부 많이 하면 팔자가 기박하다. 조신하게 재봉틀이나 배우다가 시집이나 가거라’. 아버지의 호령으로 싹대 하나 올려보지 못하고 연두색 떡잎은 시들었다. 아버지의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늘 눈물을 매달고 사는 어머니를 보며 나의 정서는 우울로 변해갔다. 처연하게 피는 달맞이꽃과 겨울이 건너가는 대숲의 울음소리들을 온통 슬픔으로만 각인시키던 유년이었다. 스스로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슬픈 이야기만 쓰는 소녀였다. 아버지의 뜻대로 얌전한 과정을 거쳐 결혼이란 올무 속으로 갇혀버린, 꿈꾸던 한 영혼의 몸부림을 누가 이해했을까?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이름을 ‘잘난 년 똑똑한 년’으로 개명해버린 무서웠던 남편마저도 불혹의 중간쯤에 하늘로 가버렸다. 눈망울이 까만 나의 세 아이가 겁나던 참으로 막막했던 젊은 날이었다.
나는 쉼의 시간을 갈구하며 산 것 같다. 이번 생은 연습이야! 위로마저 사치였던 시간이었다. 너와 지붕처럼 거칠거칠한 심성으로 고통은 항상 내 것인 것처럼 굳어있었다. 퀵서비스처럼 배달된 불행은 내가 선택한 내 잘못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발송인이 없어 반송하지 못하는 택배 같은 것이었다고 투정을 부리며 살았다. 항상 트루먼 쇼 같은 인생이라고 부정하며 산 것 같다. 생각의 전환도 없이 치열하게만 살아왔던 나에게는 낙엽이라는 정서는 절망이라는 개념이었다. 낙엽이라는 정서가 이렇게도 편안하고 휴식 같은 느낌으로 다가설 줄은 몰랐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지독한 진통을 앓으며 산 나 자신과 지극한 평범의 삶을 살아온 작가와의 간극일 뿐이라고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초겨울 5시 59분에 접어든 작가는 삶을 반추한다. 색 좋은 단풍잎처럼 누구에게 빛을 남길 일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반문한다. 할 일 다 한 나뭇잎이 자연으로 돌아갈 옷을 입고 바람에게 팽개쳐졌어도 원망할 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작가의 평온한 현재의 모습이 아닐까 추념해 본다. 이제 추월하는 이에게는 길을 비켜주고 마음을 나누며 살 일이라 한다. 삶의 끝부분에 서 있다는 예시를 하면서 이리도 온온한 글을 쓸 수가 있을까? 제목이 명시한 통속적인 발상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을 내려놓는 편안함으로 낙엽을 아름다운 삶의 한 과정으로 그려 놓았다. 간결함과 쉬운 언어의 구사로 이렇게 고급스러운 수필이 될 수 있다는 게 머리에 박힌다.
‘낙엽을 쓴다’ 작가는 짧은 한 문장을 쓰고 줄을 바꾼다. 성급한 독자는 글을 쓴다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 밑 문장의 빗자루를 잡았다는 걸 서둘러 읽지 않았다면 낙엽을 쓸어 낸다는 의미를 미처 알지 못할 것이다. 잠시의 착각이지만 작가의 의도를 생각한다. 한 편의 수필에서 작가의 재치있는 감각을 엿보며 유쾌한 미소를 지어보기도 했다.
복잡한 내 안의 미로를 송두리째 들춰내어 하나씩 내려놓아야겠다. 당분간은 허전하겠지만, 머지않아 그 자리에 고운 이야기만 남겨 놓도록 하자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얼마나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일까? 생각한다. 내년 봄 낙엽을 뚫고 봄이 파랗게 올라온다는 것이리라. 낙서한 줄 속에도 우울과 부정적인 언어들이 난무하는 내 지성을 반성하며 닮아보고 싶은 작가의 심성이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스스로 돌아봐야겠다. 겨울의 중간쯤 7시의 저녁에 섰다. 나 역시 곧 떨어질 낙엽이 되어 있지 않는가! 곧 부토로 돌아갈 시간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색깔로 치장을 해보고 싶다. 바쁠 게 없다. 삶의 궤적에 밑줄 한 번 더 그으며 내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야 할 것 같다.
아파트 경비원의 짜증 섞인 빗자루에 쓸려가지 않고 어느 늙은 시인의 뒤란에서 낭만처럼 태워질 낙엽이 되기를 소망한다. 늦었지만 ‘나도 낙엽인 것을’이 글 한 편이 터닝포인트가 된 것같다. 좋은 글 한 편은 보약 같아서 이 가을은 조금 행복할 것 같다.
수상 소감
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습니다!
낙엽이 비처럼 흩뿌리는 철쭉동산에
고장 난 센서가 등불을 켜듯
때늦은 철쭉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성성한 은발 갈바람에 빗으며
이제사 꽃대 하나 올려보는 늦깎기 작가처럼….
그날에 도착한 수상통보 메시지는
황량한 가을 산에 철을 잊고 피어난 철쭉꽃이었습니다
다시 심장이 펌프질을 합니다
조금만 더 글 밭에서 놀아볼 용기가 생깁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
이 가을이 제겐 봄입니다.
박정화 parkjh0400@hanmail.net
『문파문학』 시 등단. 저서 : 수필집 『복사꽃 피는 소리』((주)좋은 글 2004). 시집 『에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갈꺼야』(문학과 사람 2022). 수상 : 경북일보 2019 문학 대전 입선(수필). 매일 신문 2020 시니어 문학상(수필). 경북일보 2020 문학 대전 입선(수필). 매일신문 2021 시니어 문학상(논픽션).
심사평
심사위원|유혜자ㆍ지연희ㆍ최원현
한국수필에서 독서문학상이라는 독창적인 상을 제정하여 시상한 지 다섯 번째를 맞았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독후감이나 독서감상문이 아니라 작가가 기존 작품을 소재로 또 하나의 문학작품을 탄생시킨다는 어려움에서인지 응모작의 숫자는 별로 늘지 않았으나 질적인 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낄 수있어서 기쁘다.
지정 작품이 많았음에도 9작품을 대상으로 11분의 작품이 응모해왔다. 대개 좋은 작품을 대상으로 한 독서감상문이 우수했다. 대상으로 선정된 문민순 님의 「솔개 꿈을 이루다」는 김선화 작가의 『솔개』를 읽고 쓴 독서문학이다. “새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솔개, 그래서 어른들도 쩔쩔매며 무서워했다는데,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그 웅장한 날갯짓이 부럽게 느껴졌다.”는 작가의 고백에 이끌려 여러 작품들을 감상한다. 삶도 생각도 자신과 닮은 듯 공감하며 작가와 교감을 나누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작가의 삶이 힘차게 창공 날개를 꿈꾸며 살아가듯 나 또한 읽고 느낀 만큼 꿈도, 글도 글에 대한 욕심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는 희망적인 결미이다. 최우수상의 박정화 님은 『나도 낙엽인 것을』(김용대 지음)을 읽고 「내 삶의 궤적에 치유의 밑줄을」이라는 독서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 낙엽이 편안하고 휴식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게 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진통을 앓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모습으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우수상은 『수필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서금복 지음)을 읽고 쓴 윤윤례 님의 「따뜻함과 향기가 흐르는 수필들」이 차지했다. 기쁨보다는 애달프고 힘든 삶의 내용으로 채워진 작품들에 연민하며 향기와 따뜻함이 흐름을 감지해낸다. 화려한 비유와 필력이 과장된 느낌이 있으나 읽는 이에게도 동참하게 하는 힘을 준다고 보겠다.
세 분의 입상자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 유혜자(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