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입 내신 변별력 확보 위해
비교과활동․면접 비중 강화될 듯
글. 박찬균 기자
지난해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처음 적용한 지금의 중2가 고교입시를 치르는 2015학년도부터 내신이 학생 선발을 위한 변별력을 잃고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내신이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뀌면서 내신 상위등급 ‘인플레’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성취평가제란 현행 석차 9등급제 대신 교육과정에서 정한 성취·평가기준에 따라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을 평가하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기존 내신이 석차에 따라 상대적 위치를 평가하는 ‘상대평가’ 방식이었다면 학생의 과목별 내신 성취수준을 원점수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기존 1~9등급 표기 대신 A, B, C, D, E 5단계로 표기하고 과목평균․표준편차를 병기한다. 학년 내의 석차에 의한 상대적 서열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고, 과도한 경쟁보다는 자기 공부에 충실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겠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도입취지 제대로 살리고 있나
지난해 중학교 1학년에 도입됐던 성취평가제가 올해부터 중학교 1학년과 마이스터고, 특성화고에 도입됐다. 성취평가제는 2011년 12월 1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과거 1995년에 도입했던 절대평가와 유사하나 원점수와 과목평균 정보를 제공한다는 등의 차이가 있다. 이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 발전하는 디지털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 육성을 위한 교수·학습과 평가제도의 확립이 긴요하다는 책무성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사실은 성취평가제 운영 매뉴얼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성취평가제는 이미 모든 학교에서 시행중인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 실현과도 맞닿아 있다. 기존의 상대평가제는 학생 수와 비교 집단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는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 따라서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 진로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을 선택, 운영하는 데 무리가 따랐다.
상대평가제로는 교과교실제와 다양한 창의·인성 수업모델에서 산출된 결과물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수행평가나 서술형 평가를 도입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상대평가제의 지나친 객관성이 창의적인 수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상대평가제가 석차를 중시하다 보니 학업 성취수준을 진단하기 보다는 한 줄 세우기를 위한 평가에 급급한 부분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급우들 간에도 배타적 경쟁심을 조장해 함께 더불어 공부하는 협동학습의 정착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평가제에서는 각 교과의 성취기준을 제대로 제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취기준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니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성취수준을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 소통이나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확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성취평가제는 이와 같은 상대평가제의 제도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취평가제는 개인이 얻은 점수를 비교집단의 규준에 맞추어 서열에 의해 평가하지 않고, 사전에 정의된 준거에 비추어 특정 영역의 성취 여부나 정도에 따라 평가한다. 개인차에 따른 변별이나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하기보다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결국 성취평가제는 교육을 본래 목표를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식하고, 학생이 무엇을 성취하였는지,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대부분의 학생이 기대하는 성취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교육평가의 기능을 교수·학습의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시켜야 한다는 선언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성취평가제가 절대평가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성적 부풀리기를 답습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도 하다.
성취평가제=내신 무력화?
최근 교육정보공시 사이트 학교알리미에 공개된 지난해 서울지역 중학교 308곳의 중1 1학기 영어 내신 성적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소재 중학교 308곳의 1학년 성적을 분석한 결과, 영어 과목에서 A등급(90점 이상)을 받은 학생이 외국어고 및 국제고 모집정원의 13배였고, 국어 영어 수학 3개 과목의 평균이 A등급인 학생도 전체의 19.7%에 달했다. 외고와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의 ‘자기주도학습전형’ 합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내신의 영향력이 사실상 사라진 셈.
이에 따라 고입에서 변별력 확보를 위해 진로, 봉사, 독서 등 비교과 활동 서류평가와 면접의 비중이 강화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벌써 사교육 시장에는 이런 변화를 노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중1 때부터 3년간 ‘스펙’을 관리해주는 특별반과 100만 원이 넘는 자기주도학습전형 비교과 활동 컨설팅이 활개를 치는 등 고입시장이 과열될 조짐을 보인다.
서울의 경우 중1 1학기 영어 내신 성적에서 A등급을 받은 학생은 총 10만592명 중 2만5920명(25.8%)으로 서울지역 외고와 국제고의 2013학년도 모집 총정원 1976명의 13.1배에 달했다. 이들 학교는 영어 내신만으로 1단계 합격자를 결정한다. 특히 영어 내신 A등급 비율이 높은 상위 10위권 중학교 중 절반은 국제중과 서울 강남, 서초지역 중학교로 나타났다. 대원국제중이 87.1%, 진선여중이 58%, 영훈국제중이 55.6%로 각각 1∼3위였다.
한편 국어 영어 수학 3개 과목의 평균이 A등급인 학생의 비율도 서울지역 학생 전체의 19.7%로 나타나 하나고, 민사고 등 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자율형사립고 입시에서도 내신이 변별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졌다.【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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