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시간에
ㅡ 최원현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 월간 한국수필 발행인
2023년 12월 31일에서 2024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의 경계에 선다. 그간 이런 경계를 넘은 것이 일흔 번도 넘었건만 왜 한 번도 그런 경계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그저 가는 시간이고 오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일까.
문득 세월의 속도가 궁금해진다. 지구의 지름이 12,000km라니 둘레를 계산하면 37,680km이고 이게 한 바퀴 스스로 도는 게 하루라면 그 속도는 초당 436m가 된다. 시속 100km인 승용차라면 초당 27m, 시속 300km인 KTX로는 초당 83m, 그렇다면 하루라는 지구의 자전 속도는 초당 436m이니 승용차보다 16배, KTX보다 5배의 속도가 된다. 시속 1,200km의 KTX를 탔다고 상상해 보자. 멀미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이게 세월의 속도쯤 된다 할 수 있고 우린 매일 그런 속도로 달리면서 세상에 살다 매년 한 번씩은 이 해와 저 해의 경계에 서곤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나도 느낌이 좀 다르다. 『한국수필』에서 등단하여 40년여 년을 함께하며 2002년 3월 23일 조경희 이사장님으로부터 이사 위촉을 받았다. 그 후 지연희 이사장님과 사무처장 3년, 장호병 이사장님과 편집주간 3년, 그리고 제7대 이사장으로 3년의 도합 9년간 한국수필 살림살이를 살고 짐을 벗는 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 지난해에 숫자 1을 더한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유한한 인간으로 생의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져 왔음을 말한다. 하지만 다시 새해는 새길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우리가 가는 것이다.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는 그 경계의 시간에 홀로 깨어 창문 밖으로 하늘을 본다. 조금씩 내려놓으며 빈 몸이 되기까지 가벼워져야 할 텐데 그래야 내 뒤를 달려오는 세대들이 줄여진 내 몸무게만큼 내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을 텐데 자칫 꾸물대다 걸림돌이 될까 봐 두려워진다.
경계의 시간, 그건 내가 비켜줘야 하는 시간임을 인정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내가 비켜주는 그 길에서 새로운 출발을 호기롭게 하는 다른 숨소리를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2024년 1월 우리에게 펼쳐질 한 해를 심호흡하며 가슴에 안아본다.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또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문학은 내 삶 속에서 얼마나 강하게 힘을 발휘해 줄 수 있을까. 돌아보면 수많은 도움들로 여기까지 온 것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도움이 없으면 가지 못할 길인데 나도 무엇으로든 누군가에게 도음이 되도록 펼치고 열고 낮춰야지 않을까. 경계의 시간에 다시 나를 돌아본다.
ㅡ 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