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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꽃 이야기∙23]
진달래
☸ 꽃말 : 절제, 사랑의 기쁨, 첫사랑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달래과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원래는 산척촉, 산철쭉, 참꽃나무 등으로 표기하다가 진달래, 두견화, 홍두견, 백두견, 영홍두견, 영산홍, 백화두견 등으로 불렀으며, 강원, 경남 지방에서는 진달래나무, 참꽃나무, 백두견화 등으로 불렀다. 그 밖의 지방에서는 보통 진달래라 부르는데 중국 등지에서는 지금도 산척촉, 두견화 등으로 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진달래라는 명칭이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 및 만주 지방의 산간 양지 바른 곳에 잘 자라는 진달래는 이른 봄부터 온 산을 붉게 수놓아 봄의 정취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꽃이다.
진달래를 두견 또는 두견화라고 부르는 것은 두견새가 울 때 피기 때문이지만, 진달래꽃의 빛깔이 두견새의 피와 입 속 빛깔 등이 닮은 데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전국 산야에 흔히 자란다. 이와 비슷한 식물도 많다. 일반인들은 철쭉, 영산홍 등을 모두 진달래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진달래의 꽃과 관련된 설화나 전설 등은 이와 비슷한 철쭉의 꽃으로 바꾸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설1. 두견새 이야기
봄이 되면 우리 야산에는 잎보다 먼저 진달래가 붉은 꽃을 피우는데 색깔이 핏빛과도 같이 짙어서 두견화라고도 한다.
먼 옛날 중국대륙의 촉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망제가 문산이라는 강가에 와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기이하게 생각되어 그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물으니,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물을 거슬러 여기가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자 망제는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 주신 것이라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과 전답을 주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의 모든 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릴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다. 이건을 본 별령은 은연중 불충한 마음을 품고 주위사람들을 매수하여 자기의 심복을 만들고 정권을 휘둘렸다.
그때 별령에게는 얼굴이 천하의 절색인 딸 하나가 있었는데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이에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 일을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나라에 관한 정사는 전연관여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세력이 커지자 여러 대신과 역모를 꾀하여 망제를 타국으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귀촉, 귀촉(고향 촉나라를 돌아가고 싶다)”하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두견새는 봄이 되면 밤낮으로 슬피 우는데 특히 핏빛갈이 붉은 진달래만 보면 더욱 우짖는다고 한다. 후일 사람들은 이를 귀촉도, 망제흔, 불여귀, 자규, 접동새라고도 하였다.어떤 이는 소쩍새라고 하는데 소쩍새는 올빼미와 비슷하고 두견이는 뻐꾹이와 비슷하다.
전설2. 달래 소녀 이야기
옛날 옛날 아주 멀고 먼 옛날에 천상계(하늘 세계)에서 한 아름다운 선녀가 옥황상제에게 큰 죄를 짓고 인간 세상으로 쫓겨났다. 선녀는 하염없이 울면서 이리저리 헤매던 끝에 한 젊은 나뭇군에게 발견되었고, 선녀를 보고 반한 나뭇꾼은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1년 후 선녀는 무척 귀여운 딸을 낳아 이름을 '달래'라고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뭇꾼과 선녀는 딸 달래를 십수년 동안 무척 곱게 키웠다. 또한 달래는 날이 갈수록 예쁜 소녀로 자라났다.
어느 날 달래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어머니 선녀는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달래 아버지, 저는 사실은 천상계에서 옥황상제께 큰 죄를 짓고 인간 세상으로 쫓겨난 선녀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달래를 낳아서 열 여섯 살의 아름다운 처녀로 키워냈습니다. 또 이제 저는 인간세계에서의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이제 천상계로 떠나야 합니다. 제가 다시 하늘나라로 가고 없더라도 달래를 훌륭히 키워 좋은 사람에게 시집보내기 바랍니다.”
선녀가 말을 마치고 나서 마당으로 나서더니 순간 등 뒤에서 날개가 생겨나서 다시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달래가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없어진 것이었다. 아버지는 달래에게 하늘로 올라간 어머니가 하늘나라의 선녀였음을 실토했다.
어머니가 떠나고 홀로 된 아버지는 달래를 더욱 아름다운 처녀로 키웠다. 그리고 달래도 아버지께 순종하는 착한 처녀로 열심히 살아갔다.
달래가 좀 더 자라서 스무살이 되었을 즈음의 어느 봄날, 들판에서 봄나물을 캐고 있던 달래를 멀리서 살펴본 욕심 사나운 고을 사또가 달려들었다.
“흐흐흐... 너처럼 아름다운 처녀는 처음 본다! 네가 나의 후처가 되어 준다면 나는 너를 무척 호강시켜줄 터이며 네 아버지에게 후한 상금을 내리겠다.”
“사또 나리, 제발 고정하시옵소서. 저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지금 현재 홀로 계신 아버지를 봉양하고 있는 처지에 있습니다. 아무튼 나리의 청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사또는 부하들을 이끌고 달래의 집으로 불쑥 찾아와 달래를 마당으로 끌어내려 수레에 태우려 하였다.
“나리, 왜 이러십니까? 제가 가면 제 아버지는.....”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너는 나만 따라오면 돼!”
달래 아버지가 뛰쳐나와서 사또를 만류하려 하였으나 사또는 부하를 시켜서 무자비하게 달래 아버지를 밀쳐버렸다.
그때 하늘에서 달래의 생모인 선녀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쏜살같이 날아서 땅으로 내려오더니 달래를 안고 하늘로 다시 날아갔다.
달래를 후처로 삼으려던 사또는 실패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사죄하였고, 딸마저 잃은 아버지는 매일같이 뒷동산에 올라가서 하염없이 울어댔다.
결국 달래 아버지는 몸이 쇠약해진 탓에 몸져눕게 되었고, 마침내 병석에서 딸의 이름을 정신없이 불러대면서 죽고 말았다.
“달래야! 달래야! 내 귀여운 딸 달래야아~! 으으윽!”
사람들은 달래 아버지의 시신을 달래가 나물을 캐던 뒷동산에 묻어 주었으며, 그 후로 달래 아버지의 무덤가에서는 봄철이면 밝은 자줏빛의 화사한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그 꽃을 ‘진달래’라고 이름하였으니, 진달래에는 달래의 아름다움과 그의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한이 얽혀 있다고 전해진다. -<http://cafe.daum.net/bike0901/>
전설3. 헌화가獻花歌 이야기
다음은 <삼국유사> 2권에 실려 있는 [헌화가]의 이야기이다.
신라 성덕왕 때 미인 수로 부인은 강릉 태수로 부임해가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강원도 로 가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에 일행은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가는 것이 어느덧 한낮이 되자 냇가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
그때 절벽에 현란하게 핀 진달래를 보고 수로 부인은 따라온 하인에게 그 꽃 한 송이를 따오라고 명했으나 발을 디딜 곳이 없는 절벽이라서 누구도 엄두를 못냈다.
마침 암소를 끌 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 올라가 진달래를 꺾어다 주고 다음과 같은 [헌화가]를 지어바쳤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아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전설4. 두견화 이야기
진달래와 철쭉은 쌍둥이 형제입니다만 용모나 성격이 매우 달랐다. 진달래는 형인데도 왜소하고 허약했으며 동생인 철쭉은 딱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다리를 지닌 건장한 아이였다.
진달래는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라서 늘 신경질적이었으며 동생을 미워하고
싫어했다. 가령 학교에 갈 때도, “얘. 나는 네가 싫다. 같이 걷기도 싫으니 너는 멀리 뒤 떨어져서 따리 오너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철쭉은 불평하지 않고 형이 시키는 대로 했다. 너그럽고 온화한 성격일 뿐만 아니라 형에게 순종하는 착한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형이 무슨 일을 당하여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엔 곧 잘 도와주었다. 개울에 물이 불어서 징검다리가 물속에 잠기면 업어서 건네주었고, 친구들한테서 괴롭힘을 당하면 말려주기도 하고 숙제도 도와주고 심지어는 선생님께 잘못하여 벌을 받을 때에는 벌을 대신 받아주기도 했다. 어머니가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운명 하실 때에 두 형제에게 당부를 하셨다.
“너희 두 형제가 서로 돕고 아끼며 살아야하느니라.
진달래는 몸이 허약하니 철쭉이 늘 보호하고 도와주도록 하여라.”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철쭉은 몸이 튼튼하고 힘이 세었으므로 아버지 돕는 일을 했다. 소를 몰아 밭을 가는 들일도하고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들이기도 했다. 진달래는 빨래, 청소, 밥 짓기 등 어머니가 하시던 일들을 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진달래가 도시락을 챙겨가지고 철쭉이 일하는 산으로 소풍을 나갔다. 둘이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갓 피어난 진달래꽃을 보았다.
“진달래꽃이 피는구나...”
“그래 이제 완연한 봄이야. 곧 철쭉꽃도 필 테고, 농사철이 닥치겠지?”
그 얼마 후에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쳤습니다. 이웃나라와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곧, 그들 형제에게도 군대에 입대하여 전쟁에 참가하라는 통지서가 전달되어, 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하고 형제가 같이 전장으로 떠났다.두 형제는 전투 중에도 늘 같이 행동했다. 몸이 작고 힘이 약한 진달래를 철쭉이 늘 보살피고 거들어 줘야 했다.
어느 날, 적군과 큰 접전이 벌어졌다. 아군 병사들은 용감하게 항전했으나 결국 패배를 했으며, 많은 사상자를 남겨두고 사령부는 퇴각해버렸다. 전투 중에 많은 병사가 죽거나 다쳤는데, 철쭉도 다리를 다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진달래는 다치지 않았다. 적군이 사납게 쫓아오므로 살아남은 병사들은 황급히 피해야만 했다.
진달래도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평소에 자신한테 늘 구박을 받으면서도 반항하지 않고 순종만 했으며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도와주고 지켜주던 동생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생 곁에 남았다. 적군의 많은 병사들이 지나간 후에, 동생을 치료했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싸매어서 일으켜 세웠습니다만, 동생은 자기보다 몸이 더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업을 수는 없어서 어깨를 부축하여 끌었다.
철쭉이 말했다.
“나는 다리를 다쳐서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으니 남겨두고 너 혼자가거라.
고향에 가거든 아버지에게 내가 이 곳에서 죽었다고 말해 주렴.”
“아니야. 너를 부축하고 집에까지 가겠다. 나 혼자서 돌아가면 아버지가 매우 슬퍼하실 거야.”
그러나 힘이 약한 진달래가 철쭉을 부축하고 걷는 것은 무리였다. 숨을 헐떡이며 얼마 걷지를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나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서 다시 걷기를 계속하여 마침내 고향마을 가까이에 이르렀다.
“아~! 이제 저 산만 넘으면 고향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 곳을 지나가던 적군 병사들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우리를 죽이지 말아다오.
동생이 부상당하여 내가 어렵게 부축하고 여기까지 왔다.
저 산을 넘으면 나의 고향인데, 늙으신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진달래가 적군 병사에게 간곡히 사정을 했습니다만, 적군 병사는 매정하게도 진달래를 칼로 찌르고 말았다. 진달래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철쭉의 손을 잡았다.
“아~ 아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텐데...”
그러나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진달래가 숨을 거두자 철쭉도 이내 숨을 거두었다.
진달래는 죽어서 두견새(소쩍새)가 되었다. 그리고 철쭉에게 말했다.
“내가 아버지한테 날아가서
우리가 이곳에 있다고 말하고 올께.”
‘아~ 아 그리운 고향집.’
집 마당에 있는 팥배나무에 앉았다.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저 진달래예요.”
그러나 아버지의 귀에는 “소쩍 소쩍”하는 새의 울음소리로 들렸다. 진달래는 이제 사람이 아닌 새였다.
진달래가 다시 물면서 말했다.
“아버지. 동생이 다리에 부상을 당해서 제가 부축해 오다가
적병에게 들켜서 그만 살해되고 말았어요.”
그러나 아버지의 귀에는 역시 소쩍새의 울음소리로만 들렸다. 진달래가 날아가 아버지의 어깨위에 앉았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 오시라는 신호를 전달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그 뜻을 알아차렸다.
“이 놈의 두견새가 날 어디로 데려가려나?”
두견새가 되어버린 진달래가 아버지를 철쭉과 자신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 갔다. 아버지가 아들들의 시체를 보셨다.
“오~ 오 내 아들들아!
그 머나먼 전장에서 이곳까지 와서 죽어있구나.
그래 이 아비를 만나려고 이곳까지 왔었더냐?
그렇담 살아서 조금만 더 오지, 죽어서 이곳에 있느냐?“
아버지는 슬프게 울었다. 그리고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두견새를 보시면 말했다.
“그래! 두견새야. 네가 바로 내 아들 진달래의 넋(혼)이로 구나
그래서 날 이곳까지 데려오려고 내 집 마당 팥배나무 가지에서 울었었구나.”
한탄하시며 다시 눈물지었다.
그 후, 진달래의 넋(혼)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하며 진달래꽃은 두견화라고도 한다.
-<http://cafe.daum.net/navy24th/>에서
전설5. 두견주 이야기
진달래 꽃잎을 섞어 담는 향기나는 술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도 하므로 두견주라고 부른다.
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에 얽힌 전설이 있다. 그가 병이 들어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다.
신선이 나타나 이르기를 아미산에 활짝 핀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지금 면천초등학교 뒤에 있는 우물)의 물로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뜰에 2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려야만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딸이 그대로 하였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술의 색은 연한 황갈색이고 단맛이 나며 점성이 있는데 신맛과 누룩냄새가 거의 없고 진달래 향기가 일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21도 정도이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으며, 특히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어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달래꽃의 꽃술에는 독성분이 있으므로 술을 담글 때 꽃술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전통민속주 제조기능을 보존, 전승하도록 하기 위해 면천의 두견주 제조기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http://cafe.daum.net/navy24th/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