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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대 수 | 94 세대 |
인 구 | 남자; 107 명. 여자; 117명 (합계) 224 명 |
마을임원 | 이장: 황경천(010-3611-6247). 새마을지도자; (남)조용희. (여)이민자 |
◎ 마을의 지명 설명
• 동구바구: 마을 참나무골에 있으며 옥동자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 탕근바구/ 탕건바우: 탕건같이 생긴 바위로 참나무골에 있음.
• 마당바구: 갓마골에 있으며 마당처럼 넓게 생겼음.
• 북바구/ 북바우: 덕산마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같이 둥근 모양으로 그 아 래 흔들거리는 돌이 있는데 그 소리가 북소리와 비슷하며 멀리 들린다.
• 말바구: 마을 앞산에 있으며 말처럼 생겼음.
• 참나무골: 마을 동북편에 있으며 예부터 참나무가 무성함.
• 뒷골: 마을 뒤에 있는 골짜기.
• 막골: 토착민들이 이곳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함.
• 짚푼골: 골짜기가 깊어서 부르는 이름.
• 고집들: 덕산 서북쪽 당산 밑에 위치. 1900년대 곡식창고가 위치하였다 하여 곡 집들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고집들이라 부르고 있다.
• 대삽골: 대나무가 많은 골짜기.
• 한재: 덕도의 동-서편을 연결한 고갯길.
• 땅재: 당산으로 가는 고갯길.
• 뒷등: 마을 북편을 넘어가는 등.
• 당머리: 옛날 당산이 있던 곳으로 마을 서북방에 있는 산마루.
• 노두머리: 옛날 교통수단으로 돌 노도길 진입로를 말함. 한 때는 피난길로도 활 용. 덕산에서 관산, 장흥 5일장 길로도 활용.
• 나룻머리: 나룻배로 내왕하던 때 배가 닿던 곳. 덕산에서 선박을 이용하여 회진으 로 가던 교통수단.
• 덕산리(德山里): 본래 내덕면의 지역으로서 큰 산 밑이 되므로 덕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산리와 노력리를 병합하여 덕산리라 해서 대 덕면에 편입.
• 정성암/ 정성바위: 조선 고종 때 딸은 많으나 아들이 없어 걱정이던 어떤 집에서 바위 아래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남자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때부터 이 바위를 정성바위라 했다고 전한다.(구비전승)
• 국시댕이: 대리의 국시댕이
• 나루끝: 덕도나루터 가에 있는 부리.
• 넙개: 덕산 앞에 있는 넓은 개.
• 노딧목: 덕산 서쪽에 있는 들. 덕산리에서 회진리로 건너가는 노디(징검다리)를 놓았는데 그 뒤 간척하여 들이 되었음.
• 당산: 덕산 북쪽에 있는 산. 당산제를 지냈음.
• 당산등: 당산 위에 있는 등성이.
• 공동묘지: 덕산에서 장산 사이에 위치. 1890년대에 조성.
• 덕도 나루터: 회진리의 덕도나루터
• 복섬: 덕산 앞 들에 있는 섬. 풍수해나 질병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준다고 해서 위 했음.
• 부편: 큰막골 북편에 있는 들.
• 서당골: 큰막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음.
• 십리딸깍다리: 덕산 서쪽 갯벌에 있는 징검다리. 덕산리에서 회진리로 건너가는데 가까운 거리지만 꾸불꾸불하게 놓였음으로 십리나 되는 듯 함. 딸각다리(층 층다리)처럼 높고 낮은 돌을 드문드문 놓았음.
• 죽도선창: 대섬 앞에 있는 들. 선창이 있었음.• 참냉기맷골: 큰막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참냉기(참나무)가 많았음
• 큰막골: 덕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큰재: 덕산 동쪽 큰 산에 있는 고개. 덕산에서 신상리로 넘어감.
• 장군바위: 덕산리와 장산리 사이에 골짜기가 있는데 소나무가 무성하여 관군에게 쫓기던 동학농민군이 이 골짜기에 숨어들자 짙은 안개가 피어올라 위기를 면했 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골짜기에 있는 장군바위의 영험으로 믿었 다.(구비전승)
◎ 마을의 문화유산
□옛터
• 땅재: 임진왜란(1592) 당시 덕산의 땅재 끝에 조선(造船) 병창이 있어 회령진 만호의 지휘로 병선 12척을 건조, 수선하여 명량대첩의 훈공을 세웠다.
• 고집들(창고들): 조선 병창이 있었던 땅. 재 옆에 병사들의 식량창고가 있었던 곳.
• 덕산 전교실(천도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근간을 이루었던 천도교교당이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모두 허물어지고 빈 터만 남았다.
□십리도로(十里道路)
덕산과 관산을 잇는 바닷길이다. 썰물 때는 하루에 4시간 정도 뻘 판이 드러나는데 그 위에 수십 톤의 바위를 징검다리로 놓아 왕래하였다. 바위의 크기가 6척 이상, 무게는 1톤이 넘는 것이 대부분인데 삼국시대 때 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십리도로를 이용하여 동학농민운동과 기미삼일운동을 치루었던 역사 깊은 교통로였다. 그러나 1964년 이곳 간척사업이 완료되면서 이 돌다리는 형태가 없어지고 십리용수로와 농지배수 하단에 바위의 잔해만 남아 있다.
◎ 천연기념물
□사장나무(규목나무)
이 마을 앞 사장에 심어진 규목나무로 김처홍이 이장으로 재임하던 1921년에 심었다고 전한다.
□하느재(한재)
명덕의 교통로 중 유일한 통로였으며 동서를 잇는 지름길이다. 용암산과 대산동 허리에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고운 잔디로 형성돼 있는 광장이 있다. 이곳이 바로 한재 꼭대기이다. 잔디가 좋아서 젊은이들이 경기장과 놀이터로 이용해 왔으며 한양(서울)가는 길이라고 불린다. 인근 학교에서는 소풍코스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며 경관이 빼어나서 체력단련, 골프연습, 소싸움, 등산코스 등으로도 유명하다.
대리, 신상 사람이면 이 고개를 꼭 넘어야 했으며 시장날이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쉬어가는 자리이다. 지금은 차도가 개통되어 그런 정겨운 모습은 보기 어렵다.
할미꽃 공원으로 봄에 할미꽃이 공원을 뒤덮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덕산저수지
• 제방길이: 180.0m • 제방높이: 2.0m • 수혜면적: 9.1ha
• 설치년도: 1967년 • 관리청 ; 장흥군청 • 위 치 ; 회진면 덕산리
□북바위산
• 높이 : 214m • 위치 : 회진면 덕산마을 뒤에 있는 산
<북바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