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우리는 소위 바흐를 두고 바로크 음악의 대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바로크 음악은 그와 함께 또 한 사람의 대가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그가 바로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이다. 바흐가 생전에 내가 만약 바흐 아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어야 했다면 바로 이 사람 헨델이 되고 싶다고 했을 만큼 헨델은 음악사에 빛나는 위대한 음악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흐와 헨델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과 많은 차이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먼저 태어난 시가가 1685년 2월(헨델)과 3월로 비슷하고 둘다 오르간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으며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북스테후데의 후임 자리를 노려 지원서를 냈다가 그의 못생긴 딸 안나를 떠맡아야 된다는 조건이 싫어 지원을 포기한 점 그리고 훗날 눈병에 걸려 고생한 것 등등이 운명의 장난 같은 공통점이다.
차이점으론 우선 출신성분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바흐의 가계는 대대로 교양이 높은 유능한 음악가 집안이었지만 헨델쪽에는 그만이 유일한 음악가였을 뿐 대부분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한 가문이었다. 그리고 바흐가 종교음악에 몰두하며 평생토록 독일에 머물러 있었던 데 비해 호탕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헨델은 세속적 성공에 마음을 두고 신앙과는 관계없는 대중영향적인 음악을 쓰면서 이탈리아를 거쳐 영국에 정착한 국제인이었다. 이처럼 현실적인 야욕을 지녔던 헨델은 자신의 주변에 항상 추기경, 후작, 백작 등과 같이 힘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로 붐비게 하고 지위를 얻거나 흥행과 같은 사업에도 능숙한 수완을 발휘했다고 한다.
영국에 자리를 잡은 헨델은 특히 오페라의 부흥에 큰 정력을 쏟았었다. 당시의 영국에선 오페라가 침체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국왕 조지1세의 허락을 얻어 왕립 음악원을 세우는 등 온갖 열정을 다 했다. 그 결과 영국에선 오페라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헨델은 줄리어스 시저, 로델린다와 같은 걸작들을 작곡키도 했다.
그러나 그 같은 부흥기도 잠깐, 영국에는 게이의 거지 오페라에서 비롯된 발라드 풍의 오페라가 갑자기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며 헨델이 추구한 이탈리아 오페라를 단번에 무색케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로써 헨델은 좌절하게 되고 전환, 이제는 오페라가 아닌 오라토리오를 가지고 승부를 걸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같은 변화의 초기는 아직도 헨델에게 실의를 강요하던 때였다. 60이 다된 헨델은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더블린의 필하모니아 협회에서 신작(新作)을 의뢰해왔고 이에 새로이 자극받은 헨델은 즉각 작곡에 착수, 그 최대의 걸작으로 기록된 오라토리오 메시야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는 정확히 1741년 8월 22일에 시작되어 불과 22일만인 그해 9월 14일에 탈고되었고 그 이듬해 더블린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며 헨델에게 다시한번 영예를 안겨주었다.
특히 런던에 초연될 때는 객석에 앉아있던 영국 황제 조지2세가 할렐루야 합창부분에서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이 측근은 물론 다른 관객들까지도 자리에서 기립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의 이같은 일화는 오늘날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져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될때면 온 청중이 기립한다고 한다.
오라토리오란 성서(聖書)에서 제재를 취해 독창, 합창,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노래되나, 예배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음악이다. 그리고 극적인 구성을 지니고는 있지만 오페라와는 달리 연기나 무대장치 등이 없이 연주된다. 연주시에는 주로 서곡으로 시작하여 그 뒤에 각종 성악곡과 기악곡이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주로 3부형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메시아 역시 전 3부로 진행된다. 제1부 예언과 탄생에선 그리스도가 태어나리라는 예언과 그의 성취를 노래한다. 전체적으로 매우 밝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
제2부 수난과 속죄는 극적인 긴장감이 고조되는 부분으로 할렐루야 합창이 그 마지막을 장식한다.
제3부 부활과 영생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로 일관하는데 특히 아멘 합창이 뛰어나다.
곡의 대본은 헨델의 친구인 제넨스키가 성서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메시아란 말은 히브리어로 성유(聖油)를 부어 받은 자를 뜻한다. 구약시대의 유대 나라에서는 예언자, 사제, 왕들은 모두 다 성유를 부어받는 관습이 있었고 특히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유를 부어받아 인류를 죄에서 구해내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온 자이므로 여기서의 메시아란 곧 구세주를 뜻한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 (1829년 멘델스죤이 발굴 초연)
바흐(1685~1750)의 마태 수난곡 배경 음악은 바흐의 대부분의 곡이 그렇듯이 잊혀졌던 곡인데 이 곡이 작곡된 지 백년만에 1829년 천재 음악가 멘델스죤(1809~1847)이 발굴하여 초연한 것입니다. 멘델스죤은 12살 때 우연히 바흐의 마태 수난곡 1725년에 작곡했던 악보를 발견하게 되었고 8년 동안 꾸준히 공부와 훈련을 한 후에 드디어 연주하게 되었는데.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날 접한 사람들은 크게 감명을 받게 되었고 바흐로 돌아가자는 흐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1절부터 27장 66절까지 성경구절을 그대로 사용하여 작곡하였는데 그리스도를 죽일 음모를 모의한 내용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는 내용을 음악화 한 것입니다.
바흐는 첫번째 아내와 사별하고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하였는데 이 음악과 관련하여 안나 막달레나는 바흐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방에 불쑥 들어갔을 때 마침 그는 마태 수난곡에 알토 아리아, 아! 골고다! 를 작곡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그의 평온한 안색과는 달리 눈물이 범벅이 되어 고통으로 가득한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와 그의 방문 옆의 계단에 앉아 울었습니다. 그는 내가 그의 비통해 하는 모습을 본 것을 모르는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하나님만이 보실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이 곡을 작곡할 때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불쌍한 영혼들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그 숭고한 비밀에 관하여 깊이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후 도마교회에서 마태 수난곡이 연주될 때 나는 영혼을 파고드는 감동으로 벅차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곡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의 음악은 너무 난해하고 상당히 많은 연습을 하지 않으면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음악을 천국에서 들을 수 있겠지요.
바흐는 1685년 같은 해 같은 나라인 독일에서 태어난 헨델(1685~1759)과 달리 살아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따라 기존 가톨릭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의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아 묵묵히 음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성도였습니다. 그리고 바흐는 말년에 27년간 도마교회에서 음악 감독으로 섬겼는데 지금도 독일에 있는 도마교회에서는 합창단이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1: 24- 25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아~멘~.
① 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2020.4.6~4.11), 약 300년전 바흐가 작곡한 마태 수난곡의 배경음악을 4.5.에 내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알고보니 바흐는 유명한 종교음악가이자 성실한 그리스도 교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