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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_9p/154p_33p
[영문판_9p, Everyone expected the train to head for some munitions factory, in which we would be employed as forced labor. We did not know whether we were still in Silesia or already in Poland. The engine's whistle had an uncanny sound, like a cry for help sent out in commiseration for the unhappy load which it was destined to lead into perdition. Then the train shunted, obviously nearing a main station. Suddenly a cry broke from the ranks of the anxious passengers, "There is a sign, Auschwitz!" Everyone's heart missed a beat at that moment. Auschwitz-the very name stood for all that was horrible: gas chambers, crematoriums, massacres. Slowly almost hesitatingly, the train moved on as if it wanted to spare its passengers the dreadful realization as long as possible: Auschwitz! 우리는 모두 군수공장으로 가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 곳에서는 강제노역이나마 여하튼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차가 아직 슐레지엔에 있는지 아니면 벌써 폴란드 안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겁먹은 듯한 기적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마치 파멸에 빠질 운명에 처해 있는 이 불행한 짐꾸러미들을 불쌍히 여겨 도움을 청하는 울부짖음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기차가 덜컹거리며 옆 선로로 들어갔다. 종착역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 때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우슈비츠야. 저기 팻말이 있어.”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수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아우슈비츠! 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불쌍한 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구해내고 싶다는 듯이. . .
With the progressive dawn, the outlines of an immense camp became visible: long stretches of several rows of barbed wire fences; watch towers; searchlights; and long columns of ragged human figures, grey in the greyness of dawn, trekking along the straight desolate roads, to what destination we did not know. There were isolated shouts and whistles of command. We did not know their meaning. My imagination led me to see gallows with people dangling on them. I was horrified, but this was just as well, because step by step we had to become accustomed to a terrible and immense horror. 새벽이 되지 거대한 수용소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길게 뻗어 있는 몇 겹의 철조망 담장, 감시탑 탐조등 그리고 희뿌연 새벽빛 속에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뻗어 있는 황량한 길을 따라 질질 끌려가고 있는 초라하고 누추한 행렬, 가끔 고함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일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몰했다. 나는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교수대를 상상해 보았다.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사실 이것만 해도 괜찮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점점 더 끔찍하고 엄청난 공포와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Eventually we moved into the station. The initial silence was interrupted by shouted commands. We were to there those rough, shrill tones from then on, over and over again in all the camps. Their souind was almost like the last cry oa f victim, and yet there was a difference. It had a rasping hoarseness, as if it came from the throat of a man who had to keep shouting like that, a man who was being murdered again and again. 마침내 우리는 역 안으로 들어갔다. 최초의 정적이 고함치는 명령 소리에 의해 깨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모든 수용소에서 그 거칠고 날카로운 고함 소리를 듣고 또 들어야 했다. 그 소리는 마치 희생양의 마지막 비명 소리와 같았다. 하기야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그들의 목엣 컥컥거리며 나오는 그 쉰 목소리는 칼에 찔리고 또 찔려서 죽어가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애 쓸 때 나오는 소리와 비슷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_10p/154p_35p
[영문판_10p, The carriage doors were flung open and a small detachment of prisoners stormed inside. They wore striped uniforms, their heads were shaved, but they looked well fed. They spoke in every possible European tongue, and all with a certain amount of humor, which sounded grotesque under the circumstances. Life a drowning man clutching a straw, my inborn optimism(which has often controlled my feelings even in the most desperate situations) clung to this thought: These prisoners look quite well, they seem to be in good spirits and even laugh. Who knows? I might manage to share their favorable position. 열차 문이 열리자 몇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모두 무늬 수의를 입고 머리를 깎았지만 영양 상태를 좋아 보였다. 그들은 유럽 여러 나라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우스개 소리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아주 기괴하게 느껴졌다. 본래 낙천적인 성격(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감정의 평온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을 가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신수가 훤하군. 괜찮은 사람들처럼 보여. 심지어는 웃고 있잖아. 누가 알아. 내가 저 사람들처럼 혜택 받는 처지에 있게 될지.
In psychiatry there is a certain condition known as "delusion of reprieve." The condemned man, immediately before his execution, gets the illusion that he might be reprieved at the very last minute. We, too, clung to shreds of hope and believed to the last moment that it would not be so bad. Just the sight of the red cheeks and round faces of those prisoners was a great encouragement. Little did we know then that they formed a specially chosen elite, who for years had been the receiving squad for new transports as they rolled into the station day after day. 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 망상(delusion of reprieve)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불그레한 빰과 통통한 얼굴을 한 그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크게 용기를 얻었다. 그 사람들이 수감자 중에서 특별히 뽑힌 사람들이라는 것과, 수년 동안 매일 같이 이 역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책임지는 접대반이라는 사실을 그 때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They took charge of the new arrivals and their luggage, including scarce items and smuggled jewelry. Auschwitz must have been a strange sort in this Europe of the last years of the year. There must have been unique treasures of gold and silver, platinum and diamonds, not only in the huge store houses but also in the hands of the SS. Fifteen hundred captives were cooped up in a shed built to accommodate probably two hundred at the most. We were cold land hungry and there was not enough room for everyone to squat on the bare ground, let alone to lie down. 그들은 새로 들어온 사람과 그들의 짐을 처리했다. 귀한 물건이나 몰래 가지고 들어온 보석도 압수했다. 전쟁 기간 중 마지막 몇 년 동안 아마도 아우슈비츠가 유럽에서 가장 희한한 곳이었을 것이다. 수용소의 대형창고는 물론 나치대원들의 수중에도 금, 은, 백금, 다이아몬드와 같은 값비싼 보석들이 흘러넘쳤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1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200명 정도밖에 들어 갈 수 없는 가축우리 같은 건물에 구겨 넣어졌다.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바닥에 드러눕기는커녕 쭈그려 앉아 있을 만한 자리조차 없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_11p/154p_37p
[영문판_11p, One five-ounce piece of bread was our only food in four days. Yet I heard the senior prisoners in chare of the shed bargain with one member of the receiving party about a tie-pin made of platinum and diamonds. Most of the profits would eventually be traded for liquor-schnapps. I do not remember any more just how many thousands of marks were needed to purchase the quantity of schnapps required for a "gay evening," but I do know that those long-term prisoners needed schnapps. Under such conditions, who could blame them for trying to dope themselves. There was another group of prisoners who got liquor supplied in almost unlimited quantities by the SS: these were the men who were employed in the gas chambers and crematoriums, and who knew very well that one day they would be relieved by a new shift of men, and that they would have to leave their enforced role of executioner and become victims themselves. 나흘 동안 우리가 받은 양식이라고는 5온스짜리 빵 한 개가 전부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이 건물을 책임지고 있는 고참 수감자가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된 넥타이핀을 놓고 한 접대반원과 흥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슈냅스라는 술을 사는 데 썼다. '즐거운 저녁 한 때‘를 위해 필요한 슈냅스를 사는 데 몇 천 마르크의 돈이 필요했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기수들에게 슈냅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술로 자기 자신을 마취시키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누가 비난을 하겠는가? 그런데 수용소 안에 있는 사람 중에는 나치대원으로부터 거의 무제한으로 술을 공급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스실이나 화장터에 배치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언젠가는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로 대치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요된 사형집행인의 역할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고, 다시 자기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Nearly everyone in our transport lived under the illusion that would be reprieved, that everything would yet be well. We did not realize the meaning behind the scene that was to follow presently. "We were told to leave our luggage in the train and to fall into two lines-women on one side, men on the other-in order to file past a senior SS officer. Surprisingly enough, I had the courage to hide my haversack under my coat. My line filed past the officer, man by man. I realized that it would be dangerous if the officer spotted my bag. He would at least knock me down; I knew that from previous experience. Instinctively, I straightened on approaching the officer, so that the would not notice my heavy load. Then I was face to face with him. He was a tall who looked slim and fit in his spotless uniform. 하지만 나와 함께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언젠가는 자기에게 집행유예가 내려질 것이며,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질 장면 뒤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를 몰랐다. 우리는 짐을 모두 열차 안에 두고 내린 다음 두 줄-한 줄은 남자, 한 줄은 여자-로 서라는 명령을 받았다. 친위대 장교에게 검열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나는 용감하게도 빵 봉지를 외투 속에 감추는 용기를 발휘했다. 내 줄에 있는 사람들이 한 명씩 장교 앞을 지나갔다. 만약 그 장교가 내 빵 봉지를 발견하는 날에는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그가 주먹을 날려 나를 쓰러뜨리기라도 할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드디어 장교와 마주보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장교는 군복이 꽤 잘 어울리는 마른 체격의 키가 큰 사람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_12p/154p_38p
[영문판_12p, What a contrast to us, who were untidy and grimy after our long journey! He had assumed an attitude of careless ease, supporting his right elbow with his left hand. His right hand was lifted, and with the forefinger of that hand he pointed very leisurely to the right or to the left. None of us had the slightest idea of the sinister meaning behind that little movement of a man's finger, pointing now to the right and now to the left, but far more frequently to the left. It was my turn. Somebody whispered to me that to be sent to the right side would mean work, the way to the left being for the sick and those incapable of work, who would be sent to a special camp. I just waited for things to take their course, the first of many such times to come. 그 말쑥함에 대비되어 오랜 여행에 지친 우리의 몰골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친 채 무심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른손을 들고 집게손가락으로 아주 느리게 오른쪽 혹은 왼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중에 손가락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대개는 왼쪽이지만)을 가리키는 이 행동의 이면에 어떤 무서운 의미가 깔려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누군가가 내게 귓속말로 오른쪽은 작업실 행이고, 왼쪽은 병자나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가는 특별 수용소 행이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일이 돌아가는 대로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앞으로 내가 통과해야 할 수많은 관문 중에서 첫 번째 관문이었다.
My haversack weighed me down a bit to the left, but I made an effort to walk upright. The SS man looked me over, appeared to hesitate, then put both his hands on my shoulders. I tried very hard to look smart, and he turned my shoulders very slowly until I faced right, and I moved over that side. The significance of the finger game was explained to us in the evening. It was the first selection, the first verdict made on oiur existence or non-existence. For the great majority of our transport, about 90 percent, it meant death. Their sentence was carried out within the next few hours. Those who were sent to the left were marched from the station straight to the crematorium. This building, as I was told by someone who worked there, had the word "bath" written over its doors in several European languages. On entering, each prisoner was handed a piece of soap, and then-but mercifully I do not need to describe the events which followed. Many accounts have been written about this horror. 외투 속에 감춘 빵 봉지가 몸을 왼쪽으로 약간 기울게 했다. 하지만 나는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했다. 친위대원은 나를 살펴보면서 약간 망설이는 듯했다. 그는 자기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그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민첩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그는 내가 오른쪽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그날 저녁에야 우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첫 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퍼세트는 죽음 행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채 몇 시간도 못 되어 집행되었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역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직행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그 화장터의 문에는 유럽 여러 나라 말로 ‘목욕탕’ 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비누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다음-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묘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 끔찍한 사건을 기록해 놓은 것은 너무나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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