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어 함께 전세버스를 탑승한 일행 중 한 친구에게서 아침에 전화가 왔다. 간단한 안부를 나누고 나니 본론은 어젯밤 대전에 도착하면서 버스를 하차할 때 깜박하여 안경과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내 핸드폰에 입력되어있는 행사 주최자의 전번을 찾아 알려 주었다. 30분이 지났을까 다시 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조금 전 전화에서는 조심스럽던 목소리였으나 이제 밝고 유쾌한 웃음이 담긴 음성이라서 그 상황이 짐작되었다. 운전기사와 통화를 하니 안경과 우산을 모두 보관하고 있어서 오후에 만나 물건을 전달받기로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친구가 자기 소지품을 잃고 밤새 상심했다가 물건을 되찾고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저지난해 대청호 오백리 21구간 트레킹 중 등산 배낭을 택시에 놓고 내렸던 사건이 불현듯 생각났다. 그 배낭에는 김밥이나 간식등 그날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도 있었지만 누이동생에게 받은 꽤 금액이 두툼한 촌지 봉투도 깊숙히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이태 전 5월 중순 화창한 봄날이었다. 대청댐 오백리 길 네 번째 구간 호반낭만길을 걷는 날이었다. 우리 일행중 세 명은 평상시처럼 판암동에서 10시에 시내버스로 4구간 시발지로 먼저 출발하였고, 나는 그 날 어느 기관을 방문하여 개인적으로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바삐 일을 마무리하고 11시 30분에야 판암동 전철역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기다리기엔 간격이 있었기에 택시를 잡아탔다. 오백리길 대장인 나는 트레킹 코스와 일정을 관리하면서 점심식사로 김밥까지 담당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기에 더욱 빨리 친구들을 만나야 했다.
비룡동 동신과학고등학교에서 신탄진으로 가는 대청 호반길은 호수와 전원마을을 끼고 있는 도로로 경치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차량 통행도 한적하여 드라이브하기에 쾌적한 길이어서 택시는 미끄러지듯 달려 마산동 삼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였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벤치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혼자 앉아 20 여분 후 상봉할 친구들을 그리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편안해서 허전한 어깨의 가벼운 무게감에 짐짓 놀랐다. 어깨에 밀착하여 항상 메고 다니던 등산 배낭을 택시를 타자 벗어 놓은 채 내릴 때 몸만 빠져나와 하차하였던 것이다. 택시는 종적도 없이 뒤돌아 간 상황이라 그저 허공만 바라볼 뿐 난감했다.
우선 김밥이 없으니 음식점을 찾아 매식할 수는 있다. 그런데 바쁜 중에도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그리며 oo당의 맛있는 단팥 튀김소보루 빵을 일부러 사왔는데 허사가 되고 말아 아쉬웠다. 그리고 친정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큰 오라버니가 부모님 마침이란 생각으로 지난 칠순 때부터 해마다 거금의 용돈을 챙겨주는 누이동생의 정성을 생각하니 볼 면목이 없어져 더욱 아쉬웠다. 아울러 잃어버리고 나니 소소하지만 소중하게 느껴지는 손익은 등산 소품들은 물론 십여 년째 근거리 등산할 때마다 나와 밀착 동행한 아담한 등산 배낭에 대한 애착을 생각하면 차분히 간수하지 못한 자책과 후회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이런 과오가 오늘 벼르던 업무처리가 바라는 대로 잘 이루어져 기분이 상쾌하여 잠깐 방심한 탓이 아닌가? 칠순이면 종심이라 마음 먹은대로 행동해도 순리에 어긋남이 없다는데 기분에 들떠 이런 실책을 저지르다니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다. 택시가 돌아간 그 길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흔적도 없으니 공허할 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생각했다. 무언가 찾을 궁리를 하며 일련의 과정을 떠올려 보니 택시요금을 카드로 결제한 것이 작은 단서로 생각났다. 그래서 얼른 카드사에 전화를 하여 택시조합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택시조합에 연락하여 탑승했던 개인택시 기사의 전번도 얻을 수 있었다. 모두가 순간적으로 착착 잘 진행된 셈이다. 그래서 희망을 갖고 택시 기사님에게 전화를 하니 참으로 다행히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십여 분 전쯤 택시를 탑승했던 승객이라며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혹시 뒷자리에 등산 배낭이 없던가 물으니 나는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는 너무나 반가워 한다.
택시 기사님의 첫 말 한마디가 "어르신을 만나려고 마산동 삼거리에서 갈만한 행선지 방향으로 3-4km나 더 갔다가 못 찾고 되돌아 나오는 길"이라 하니 참으로 고마웠다. 1-2분도 안돼 택시는 돌아왔고 기쁨으로 기사님을 만났다. 택시 뒷자리에는 벗어 놓았던 등산 배낭이 그대로 내 눈에 들어왔다. 택시 기사님이 나를 하차해주고 다시 시내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하려고 기사식당에 들어서 습관처럼 뒷좌석을 둘러보니 배낭이 있더란다. 손님이 배낭을 황당하게 찾을 생각을 하니 한시가 급해 되짚어 빨리 달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갈만 한 곳을 예상하며 더 앞을 주행하며 찾았단다. 그러나 그때 배낭을 잃은 나는 허전해서 의욕도 잃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사님은 걷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도로에서만 찾았던 것이다. 몇 번이고 고마움을 허리굽혀 인사하고 치하하며 감사의 뜻으로 점심 식사를 하라며 작은 성의를 내밀었더니 자기가 고객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한사코 거절하며 메타에 나온 동일한 요금만 받는다. 그리고 그 분은 오히려 잃은 물건을 되돌려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려 개인적으로 준비한 빵과 간식을 차에 넣어드리니 택시는 저만치 달려 가는데 그 뒷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일행을 반갑게 만나 그 전후 사정을 털어놓으니 참 다행이라며 각기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담이 터져 나온다. 기차에서 소지품을 놓고 내렸는데 철도청에 전화를 하니 여객전무가 물건을 확인하여 며칠 후 찾았던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전철이나 시내버스 분실물도 마찬가지로 거의 찾을 수 있는데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한다. 등산을 하다보면 눈에 잘 띄는 나뭇가지에 모자나 손수건 등이 걸려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한 친구는 동네 야외 체육시설에서 값나가는 모직 모자를 걸어 놓고 운동을 하다가 깜박했었는데 며칠이 지난 후 그곳을 지나다 보니 비슷한 모자가 있더란다. 옛날 우리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도덕적으로 성숙한 선진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으며 얼마나 그들을 선망하고 부러워했었던가? 이제 우리 국민들도 경제발전을 하면서 도덕적 의식 수준이 높아져 대한민국이 정직하고 선한 미담이 많은 선진국이 되었으니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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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이현세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편향된 정치지도자들의 선동과 부추김으로 공짜복지에 뇌동하여 자신의 영혼마져 팔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첫댓글 문학사랑 2022년 겨울호 수필부문 게재 작품입니다.
소지품 놓고 자리를 떠 당황한 경험이 생긴지 오래지 않다. 나이 텃인가보다. 정신을 다잡아 보아야 한다고 자기암시 해보나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자기 훈련에 집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