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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용서 하소서-1
“아빠~ 언제 집에 오실거예요?”
“선이야~ 사랑하는 우리 선이야. 아빠도 선이 보고싶어요. 선이 엄마도 보고싶고…”
“그러시길래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갔어요. 빨리 돌아 오세요. 새해는 엄마하고 선이랑 아빠하고 함께 보내기로 했었잖아요? 아빠! 보고 싶어요.”
“선이야. 아빠가 없더라도 엄마와 함께 씩씩하게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이 일을 끝내고 바로 집으로 갈께 응. 선이야 사랑한다.”
매년 1월1일이면 새해를 맞는다는 설레임이 있어야 하는데 이 형사는 벌써 4년째 매년 새해 일주일 전부터 초 비상이 걸린 이곳 강원도 황지시 두문동의 카지노부근 파출소에서 가족에게 안부전화를 하면서 긴장된 새해를 맞았다
12월 31일 오후 늦은 시간 한 남자가 황지에서 출발하여 마지막으로 두문동 뻐스 정류장에 도착한 푸른색 바탕에 중간을 가로지르는 노란색띠가 둘러쳐진 시외뻐스에서 내렸다.
졸음에 겨운듯 보이는 50대 중반의 운전사 위로 앞 유리창에 붙어있는 행선지 표지에는 장성 철암 황지가 적혀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말하는 직행뻐스일 것이다. 년 말의 겨울 해가 이미 져 버린, 어둠을 뚫고 앞자리에 앉았던 겨울 적색 패딩점퍼를 두툼하게 입은 남자들 3명이 내렸다. 그들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로 보였다. 그들은 휘파람을 불며 서로 년 말의 즐거움에 들떠있었다. 곧 이어 사십대 초반의 여성 승객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내렸고 선물상자를 든 사람들이 뒤를 이어 내렸다. 아마 부모님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일 것이다. 뒷좌석에 앉았든 마지막 승객이 내리자 운전사는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듯 차를 주차장 뒷편으로 움직였다. 마지막에 내린 승객은 혼자였다. 그는 30대 후반 쯤 혹은 사십대 초반 쯤이고 호리 호리한 체구가 그를 더욱 크게 보이도록 하였다. 아마도 한 180cm나 될까... 후줄건한 모습에 눈이 크고 맑은 얼굴의 선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발목을 덮은 검은 색 부츠를 신었으며 오래입어 색이 바랜 검정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깨에는 까만 롤백을 메고 걷는 모습이 흐트러짐이 없이 침착해 보였다. 무엇하나 이상하다거나 수상히 볼 이유는 없었다. 그 남자는 년말 년시 카지노의 바쁜 시즌에 몰려드는 수 천명 이상의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뻐스 정류장에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두문동 뻐스 정류장 부근에는 택시들이 카지노까지 가는 손님들을 기다리느라 줄을 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그 남자는 택시를 타지 않았다. 그 남자는 걸어서 택시 정류장을 지나 호텔들이 즐비한 카지노 앞 거리의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두문동 36번지의 삼거리 즉 카지노 건물이 대각선으로 보이는 삼류 모텔은 그 남자가 두문동에 왔을 때마다 하룻밤 묵는 숙소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 곳까지는 족히 1km는 되었고 그 곳에서 카지노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400m정도 되었으며, 카지노 건물 뒤 편에 있는, 이미 년말을 맞아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러 떠나고 휑한 겨울의 찬 바람만 몰아치고 있는 정선으로 왕복하는 시외뻐스 정류장까지는 역시 500m정도 되었다. 그는 매년 이 곳에 올 때마다 정류장에서 부터 걸어서 왔다.
그 남자는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그 모텔은 년 말과 연시에 관광 겸 카지노를 즐길 목적으로 온 부유한 사람들은 보다 더 고급스런 호텔에 숙박을 하고 이곳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잔돈 푼으로 대박을 기대하여 온 사람들이 방을 빌리는 모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굳이 예약을 하지 않아도 빈방 하나 쯤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두문동 낭만모텔. 이름과 달리 낭만이라고는 어느 구석에도 스며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박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는 젊은이들과 눈이 흐릿한 중년 남자들의 에너지 충전소 같았다. 그러나 그 에너지도 원천적으로 흐려있었다. 그 남자는 매년 12월 31일 이 때 쯤에는 이곳에 와서 하루를 묵었다 떠나곤 하였다. 객실 내부는 담배 냄새로 퀴퀴하였으나 그렇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침대나 시트도 깨끗하였다. 여름에는 러브모텔로 젊은이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잠시 방을 빌려 사랑을 나누고는 떠나는 그런 적당한 분위기이고 환경이였다. 다만 출입구로 사용되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 양쪽 옆으로 인조 삼나무가 변함없이 커다란 적색빛 화분에서 부터 더 이상 클 수 없을 만큼의 키로 서 있었고 그 뒷편으로 초록색 비닐커버를 한 4인용 쇼파가 있었다. 그 쇼파 바로 위 벽에는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정도의 사진틀에 이제는 폐광이 되어버린 어룡광업소와 좌측으로 일렬행대로 십 수줄 늘어서게 지어진 주택들과 그들을 에워 싼 메봉산이 여름 햇살 속에 밝게 사진되어 걸려있었다. 이러한 장식들이 추억의 석탄채굴로 번창했던 광산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손님을 맞는 카운트 뒷편에서 전화를 받고있는 주인은 40대 초반의 수수한 모습의 아주머니였고 그 옆에서 숙박부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남편은 50대 중반쯤 되었을 것 같은 호리 호리하고 허리가 좀 구부정한 말 없는 사람이었다. 특이한 것은 주인아저씨나 아주머니의 기억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아니면 일일이 손님들의 인상착의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영업상 룰을 충실히 지키는 것 때문인지 매년 와도 처음 오는 손님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이곳에 머무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모텔 라비는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지만, 요란스럽게 크리스마스나 년말 년시를 반긴다는 화려한 트리나 장식품은 없었다. 아마 이 모텔 주인들은 무신론자이리라. 그 남자는 체크인을 한 후 오늘과 내일 이틀치의 숙박료를 거침없이 바지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어서 지불하고는 롤백을 어깨에 맨채 3미터쯤 우측편에 방금 도착해서 문이 열려진 에리베이터로 소리없이 걸어가 4층 보턴을 눌렀다. 그 남자는 일년에 한번 아침부터 시작한 이 여행에서의 피로를 씻기 위하여 뜨거운 물에 몸을 담궈두고 잠시 명상을 한 후 샤워를 하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가방을 열고 짙은 붉은색 넥타이를 꺼집어 내어 청셔츠에 약간 느슨하게 매고 검은색 콤비 자켓을 걸쳐 입고 저녁을 먹으로 나갔다.
모텔에도 식사를 할 수 있는 소위 레스토랑이 있지만 그 남자는 굳이 두문동 뻐스 정류장 가는 길 주변에 늘어 선 길가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시켜 먹었다. 일 년에 한번 그렇게 따뜻하게 속을 채웠다. 그나마 이 우동도 그에게 스스로 허락한 유일한 식사에 대한 사치였고 즐거움이었다. 그 남자는 그 포장마차에 닿기 전 거리의 레스토랑 간판들을 가끔씩 보곤하였다. 스테잌을 전문으로 하는 고급 식당, 한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요정도 있었다. 그는 그런 곳을 지나 작년과 같은 이 포장마차에 왔다. 우동을 천천히 먹는 동안 이 여행의 목적이 희미해지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을 스스로 추서려 다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카지노에서 음탕하고 발광스러운 섹기로 번쩍이는 불빛의 화려함과 년 말의 아쉬움을 즐기는 사람들과 마지막 해에 대박을 터트리려는 사람들의 기대와 술렁임은 눈이내려서 추운 산중턱의 도시임에도 후끈거리게 하였다. 함께 온 여성들 또는 대박에 편승할 기회를 노리는 기타 여성들 등으로 법석거리며 흐느적거렸다. 다행이 바람은 불지 않아 나 다니기에는 아주 좋은 그 해의 말 일이었다. 누구든 이곳에서는 알지 못할 야릇한 흥분의 나락으로 스스로 빠져 버리고 말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를 바라보는 그 남자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빛나는 눈은 결전을 앞 둔 전사같이 싸늘하였다. 그 남자는 저녁을 마치고 인파로 번잡하고 흐느적거리는 도로변을 따라 모텔 낭만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차라리 치안이 염려될 정도였다.
그 남자는 4층의 자기 방에 돌아와서는 문을 잠그고 확인까지 한 후 창문 역시 잠그고 커텐마져 쳤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알람시계를 꺼내 다음날 새벽 3시로 알람을 맞추어 침대 옆 보조 탁자에 잘 놓았다. 그리고 검은 보자기에 싼 물건을 조심스럽게 꺼내어서 침대 위에 두고는 풀었다. 조각 조각 페치웤으로 만든 면으로 된 천에 쌓인 검은 색 소음기와 38구경 유효사거리 50m인 검정색 콜트 권총이 묵직하게 침대 위에 놓여졌다. 오래된듯 금속에서 나는 빛은 다 사라지고 무광의 몸체는 손잡이에 새겨진 희미한 원형속의 붉은 색 삼각형 표지만 선명하였다. 붉은색 삼각형은 그 총이 콜트 델타 엘리트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탄창을 확인하고 특별히 제작한 소음기를 조심스럽게 돌려 끼워 잘 조여졌음을 또 확인하고는 겨드랑이에 붙혀 착용할 수 있는 강력계 수사관들이나 가지고 다니는 역시 검정색 가죽 권총집에 넣어서 침대 밑에 잘 놓았다. 그리고 그 해의 마지막이 될 수면을 취하기 위하여 침대 시트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4시간은 잘 수 있으며 자고 일어나면 1월1일 이른 새벽일 것이다.
낭만모텔에서 700m 떨어진 곳에 있는 파출소에서는 강력계 특별팀이 구성되어 1월 1일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여 앉은 공간의 정면에 세워진 칠판에는 툭별 기동수사팀 이라고 큰 글씨로 쓰여져 있었으며, 그 특별팀 구성 멤버는 특별 기동수사팀(Special Task Force) 팀장 서울특별시경 강력계 수사반장 김인호를 위시하여 황지시경 강력계장 최진성, 황지시경 도로순찰대 2반장 정치호, 육군 수사대 황지시 지부장 오영기 상사를 비롯하여 태백시 도로순찰대장, 육군X사단 헌병대 황지 파견대장인 중사 이기성 등이며 최진성계장을 포함한 황지시경 강력계 형사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서울시경 권총강도 검거 베테랑인 강력계 계장 이상대 형사를 팀장 김인호가 상관 직권명령으로 4년째 동행하도록 하여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좁은 회의실안을 꽉채운 채 앉거나 서서 팀장인 김인호의 작전계획을 듣고 있었다.
“이미 협조 전문에 의하여 사건상황과 고급의 중요성을 알고 모였기 때문에 지금은 더 말 할 필요도 없지만…”
김인호 팀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것은 지역의 관활을 넘어선 군경합동 작전이다. 이 작전의 목적은 사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아무것도 전혀 모르고 있는 한 남자를 체포하여 국민들의 관심과 호기심 및 유사 범죄를 막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 남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행하게도 실체적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단지 우리가 추측하는 것은 그 남자는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여우처럼 교활하기까지 하다. 하여튼 머리가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년동안 그 해의 마지막 날 또는 새해의 첫 날 아주 일찍 이곳에 와서는 카지노를 습격하여 금품을 그것도 현금으로만 탈취해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러면 다시 정리한 개요를 설명하겠다.”
팀원 모두는 담당경찰이 칠판에 정리해 놓은 개요를 보았다. 칠판 중간에는 특별히 “1월 1일 강도” 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다시 1에서 부터 4까지 사건별로 정리를 해 놓은 사건의 특징들이 있었다. 황지시경 강력계장 최진성이 지휘봉으로 칠판을 가리키며 특징을 설명하였다.
"첫 해 첫 날 오후 2시, 투명한 연질 프라스틱 가면을 쓴 남자가 월계관 은행앞에서, ‘카지노
다이야몬드’에서 수금한 돈을 입금시키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중 습격당하여 1천 7백만원을
강탈 당했다. 그리고 범인은 아주 쉽게 도망쳤다. 어느 누구도 목격자로 나서지 않고 있다.
1년 후 같은 달 같은 날 아침 7시, ‘퀸로즈(장미의 여왕) 카지노’의 2층 사무실에서 침입한 범인에게 막 수금한 돈 2천만원을 강탈 당했다. 역시 범인은 연질 투명한 프라스틱 가면을 썻으며 소음기가 달린 38구경 권총으로 위협하였다. 그는 전화선과 휴대폰 호각등 모든 연락장비를 사용불능으로 만들고는 문을 잠그고 유유히 사라졌다.
2년 전 같은 달 같은 날 오후 7시, 동일인이라 추정되는 범인은 ‘카지노 라마’의 2층 별실까지 교묘히 침투했다. 게임 중이던 고객들이 당했으며, 고객들은 K그룹 G 상무 XX은행 지점장 석유회사 사장과 요트회사 부사장등 4명이었다. 그들은 따로 징계등을 당했지만 강탈당한 돈의 액수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날 판돈의 추정결과 약 2천 8백만원이다.
1년 전 같은 달 같은 날, 정오에 룰렛 하우스인 ‘럭키 세븐’ 카지노가 개장 직전에 당했다. 탈취당한 금액은 약 2천만원. 마지막으로 올해 같은 달 같은 날 오후 5시, ‘카지노 다이야몬드’의 3층 사무실에서 수금한 돈을 세고 있던 3명의 직원이 같은 범인일거라고 추정되는 남자에게 2천만원을 강탈 당했다. 두명의 경비원이 있었으나 모든 경보장치와 연락수단을 빼앗기고 권총에 협박당하여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였다.
이상 4건 모두 범인은 연질 회색빛 프라스틱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키는 182센티 정도 서울 말씨를 사용했어나 그 음성에 품위가 있음을 느꼈다고 보고되어 있다.”
최 계장의 설명이 끝나자 팀장은 앞의 책상에 걸터앉아 팀원들을 둘러보며 엑스포를 한가치 꺼집어 내어 불을 붙히고는 길게 연기를 빨아 한숨과 함께 허공에 뱉았다.
“이 사건은 동일 범인에 의한 연속사건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팀장은 계속 담배를 피며 말했다.
“그 놈이 왜 부산 서울 인천 광주 등을 두고 이곳을 택했는가? 왜 매년1월 1일을 범행일로 정하여 실행하는가? 이 모두가 수수께끼이다. 어쩌면 그 놈은 도박 반대론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과거에 도박을 하다 크게 빚진자 일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그 놈은 프로 보다는 아마츄어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왜 같은 달 같은 날에 같은 지역의 카지노를 습격하는가? 여기까지 의문을 정리하면 그는 이 지역의 불량배는 아닐 것이다. 타지에서 이곳까지 와서 범행을 한다?”
책상 앞줄 좌측 끝에 앉아있던 이상대 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왜 꼭 같은 달 같은 날 범행을 하는가? 크리스마스 때도 있고 구정 때도 있고
하는데… 그는 어떻게 이곳까지 오는가? 범행 후 언제 이곳을 떠나는가? 아니면 이곳에 잠적
해 있을건가? 아니면 가면을 벗고 도박을 하는가? 이러한 전반적인 의문들을 짧은 시간이지
만 풀어낸다면 이번이야 말로 그 놈은 독안의 쥐고 체포는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그 때 사복을 입은 다른 형사가 팀장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