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p><p>    밥을 구하려 종각역에 내려 청계천 건너</p><p>    빌딩숲을 왔다가 갔다가 한 것이 이십 년이 넘었다</p><p>    그러는 동안 내 얼굴도</p><p>    도심의 흰 건물처럼 낡고 때가 끼었다</p><p>    인사동 낙원동 밥집과 술집으로 광화문 찻집으로</p><p>    이런 심심한 인생에</p><p>    늘어난 것은 주름과 뱃살과 흰 머리카락이다</p><p>    남 비위 맞추며 산 것이 반이 넘고</p><p>    나한테 거짓말한 것이 반이 넘는다</p><p>    그러니 나는 가짜다 껍데기다</p><p>    올 초파일 절에서 오후 내내 마신 막걸리가</p><p>    엄지발가락에 통풍을 데리고 와</p><p>    몸이 많이 기울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p><p>    어제는 사무실 가까이 와 저녁을 먹고 간 딸이</p><p>    아빠 얼굴이 폼페이 유적 같다고 하였다</p><p>    그러고 보니 내 나이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와 똑같다</p><p>    안구에 건조한 바람이 불고</p><p>    돋보기가 있어야 읽고 쓰는데 편하다</p><p>    맑은 날에도 별이 흐리다</p><p>    눈이 침침한 것은 밖을 보는 것을 적게 하라는</p><p>    몸의 뜻인지도 모르겠다</p><p>    광교 난간에 기대어 청계천을 내려다보는데</p><p>    얼굴 윤곽이 뭉개진 그림자가</p><p>    물살에 일그러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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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공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