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2], [마농의 샘], [희랍인 조르바] 그리고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의 공통점은? 영화광이라도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려울 텐데 모두 부항 뜨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 이 영화의 두 번째 공통점은? 이 질문 역시 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한의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항은 한의원에서 뜨기 때문에 부항 요법을 한의학만의 진료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2200여 년 전에 쓰인 [마왕퇴백서]에서 ‘각법(角法)’이라고 하여 부항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항 요법이 한의학의 진료 영역인 것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집트 벽화에도 부항 뜨는 것이 나오고, 짐승 뿔로 만든 고대 유물(부항)이 아프리카에서도 출토된다. 이것을 보면 부항 요법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자연 치료 요법’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몸에 좋은 부항
현대 의학에서도 부항 요법은 인기가 있는 치료법이었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도 부항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생리불순은 가슴 부위에, 월경 과다증에는 대퇴부와 가슴 아래쪽에 부항을 떠서 고친 기록이 있다. 서양에서는 부항 요법이 19세기까지도 계속 유지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기피하고 있으나 유럽 몇몇 지역에서는 민간요법 형태로 아직도 부항을 뜨고 있다. 위의 영화에서 부항을 뜨는 사람들이 모두 전문의가 아니고 일반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부항 (乾附缸)의 장점
1.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2. 배우기가 쉽다.
3. 효과가 좋다.
부항의 효과를 보는 증상
첫째, 목이 안 돌아가거나 어깨 또는 허리가 아플 때 아픈 부위에 부항을 뜨면 도움이 된다. 또한 아픈 부위의 반대편에 있는 곤륜혈(崑崙血)을 은단침 등으로 같이 자극해주면 좋다. 곤륜산은 산해경에 나오는 전설의 산 이름으로, 서 있을 때는 어깨 부위, 누워 있을 때는 등뼈 옆으로 도톰하게 올라오는 부위가 산에 해당한다.
곤륜혈. 바깥 복사뼈 중심과 아킬레스건 사이에 움푹 파인 곳에서 가장 중심인 곳
둘째, 혈액순환이 안 될 때 좋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경우 혈액순환이 안 되서 욕창이 생긴다. 욕창이 생기지 말라고 매트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쓰는데 이럴 때 정기적으로 등에 부항을 떠주면 욕창 예방에 도움이 된다. 부항이 겁나거나 어렵다고 여겨진다면 환자를 잘 주물러 주는 것이 곧 부항이다.
셋째, 같은 이유로 등 안선(방광경 1선)과 등 바깥선(방광경 2선)에 정기적으로 부항을 뜨기도 하는데, 이를 일컬어 ‘장수 부항’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혈액순환을 도와주기 때문인데 거동이 불편해서 운동을 잘 할 수 없을 때 좋다.
등 안선과 등 바깥선. 양쪽 무릎을 양팔로 감싸고 가슴으로 당겨 등을 둥글게 하면 어깻죽지 뼈가 보이는데 그 뼈의 가장 안쪽 부분을 수직으로 잇는 선이 등 바깥선(방광경2선)이고, 등 바깥선과 등뼈와의 사이가 등 안선(방광경 1선)이다.
부항 뜰 때 주의할 점
될 수 있으면 피를 빼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꼭 피를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부항 하면 피를 빼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부항을 써야 할 증상 열 가지 중에 하나 정도만 피를 빼고, 아홉은 피를 빼지 않아야 한다. 앞에서 소개한 영화에서도 피를 빼지 않는 건부항이 나오는 이유다.
부항의 개수는 10개를 넘지 않는다
부항을 많이 뜨면 빨리 나을 것이라는 건 오해다. 바둑의 맥(脈)이랄 수 있는 급소를 찾으면 부항을 1~2개 뜨고도 아픈 증상이 좋아진다. 급소를 찾기 위해서는 경혈과 경락에 대한 공부를 해두면 도움이 된다.
한의사들이 일반인과 다른 것은 혈자리(경혈)와 혈자리의 계통(경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는 혈자리가 있는데, 당나라 때 활동했던 약왕(藥王) 손사막은 이곳을 아시혈(阿是穴)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阿)는 ‘아!’ 하는 감탄사이고 시(是)는 ‘거기!’ 하는 지시 대명사이다. 치료하는 사람이 아픈 사람의 등이나 허리를 눌러 보았을 때 아픈 사람이 ‘아! 거기’ 하는 곳이 바로 아시혈이다. 즉 눌러봐서 평소 보다 아프면 그 자리가 모두 아시혈인 것이다.
찾기 쉬운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소 닭 보듯 건성으로 대처하면 모든 자리가 아시혈이다. 그래서 뜰 필요가 없는 곳까지도 부항을 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작 아픈 곳의 통증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자리에 부항을 뜨면서 느끼는 통증까지 같이 견뎌 내야 한다.
부항 뜨는 시간은 3~5분 정도가 적당하다
가끔 부항을 30분 이상 오랫동안 뜨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피부에 물집이 많이 생긴다. 간혹 발포(發泡)요법이라고 해서 일부러 물집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법도 있으나 일반인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부항을 뜨면 몸에서 안 좋은 부분은 탁한 색이 나온다.
반드시 등뼈가 지나가는 독맥(督脈)부터 먼저 뜨고 나서 아픈 부위를 뜨자
중심(가운데)이 바로 서지 못하면 양옆은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고로 독맥 부위는 지금 아프지 않아도 바로 서게 한다는 의미로 가장 먼저 부항을 뜨는 것이다.
부항을 뜨면 몸에서 안 좋은 부분은 탁한 색이 나온다
색이 진하게 나올수록 그 부위가 더 안 좋다는 신호다. 탁한 색이 없어질 때쯤 다시 부항을 뜨면 예전보다 엷은 색을 띤다. 몸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피가 부족해서 순환이 안 될 때는 부항을 떠도 탁한 색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부항보다 잘 먹는 것이 필요하다.
식전, 운동 전, 목욕 전에 부항을 뜨는 것이 좋다
식후, 운동 후, 목욕 후에 부황을 뜨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 생리 전이나 후에는 부항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Q. 어깨통증이나 허리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은?
침낭에서 잠자기를 권한다. 침낭은 막혀 있어서 그 안에서 잠을 자면 몸이 따뜻해질 수밖에 없다. 몸이 따뜻하다는 것은 혈액순환이 잘된다는 것을 의미하니 어깨나 허리 아플 때 도움이 된다. 단 밖에서 자는 캠핑족은 예외다. 디스크와 같은 기질적인 병변이 있을 경우에도 침낭에서 잠자기가 도움이 된다. 절대 해로운 방법이 아니니 한번 실천해보기를 바란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평상시 이불을 잘 덮고 자거나 침낭에서 잠을 잔다면 혈액순환이 안 되서 고통받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어깨와 허리 양생법은 집에서 간단히 따라할 수 있다.
- 글
- 황인태 | 한의사
- 원광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신경정신과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산업의학을 공부했다. 한살림 자문위원, 전국농민회총연맹 진료부장, 귀농운동본부, 다솜건강교실 등에서 활동하며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건강강좌를 열어 한의학 지식을 이웃들과 나누려 애쓰고 있다. 최근에는 [허허 동의보감]을 감수하고 있으며, 저서로 [하늘, 땅, 그리고 우리들], [다솜건강교실]이 있다.
- 그림
- 허영만 | 만화가
- 1974년 [각시탈], 1981년 [무당거미], 1989년 [날아라 슈퍼보드], 1994년 [비트], 1999년 [타짜], 2003년 [식객] 등 40년간 수많은 히트작을 낸 허영만 화백은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손꼽힌다. 특히 철저한 사전조사와 취재를 통해 탄생한 콘텐츠의 힘 덕분에 허영만의 작품은 ‘믿고 보는’ 만화로 통한다.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을 정보와 재미를 섞어 교양 만화로 재해석한 [허허 동의보감] 1권을 출간했으며, 20권 완간을 목표로 2011년부터 매주 수요일 밤 과외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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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허허 동의보감2 기통차게 살자 2014.02.03
- 400년 전의 [동의보감]을 단순히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관점에서 완전히 풀어헤쳐 ‘실용’과 ‘재미’, ‘지식과 교양’, 이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가가호호 [동의보감]을 상비하며 건강을 지켰듯이 [허허 동의보감] 또한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2권 ‘기통차게 살자’에서는 정(精)과 기(氣)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