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마도로스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나 영화 『대부』 등에 출연한 배우 알 파치노는 입술이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거의 바나나 크기의 시가 담배를 줄곧 피웠다. 그걸 입에 문 채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거의 재주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이지 폼생폼사의 최고봉이다. 중국 작가 임어당은 담배를 인류 최대의 쾌락으로 예찬하며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하며 불안해 죽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소설 『모비딕』에 묘사된 피쿼드 호의 이등항해사인 스텁은 파이프 담배의 대가이다.
“어쩌면 다른 원인들과 더불어, 이등항해사인 스텁을 그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느긋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두들 자기들의 짐을 챙겨 지고 땅바닥에 고개 숙여 절하며 무덤을 팔고 다니는 행상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를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도 그처럼 유쾌하게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그의 거의 불경스러운 유머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인지. 그건 그의 담배 파이프였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코와 마찬가지로, 그의 짧고 검은 작은 담배 파이프가 그의 얼굴의 일반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지 않고 잠자리에서 굴러 나온다는 걸 예상하는 것은 그가 코가 없는 상태에서 침대에서 굴러 나오는 걸 예상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그는 여러 개의 미리 장전된 담배 파이프를 선반에 고정시켜 길게 줄지어 놓아두었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하나씩 불을 붙여가며 그 줄이 끝날 때까지 그것들을 연속해서 모두 피웠다. 그런 다음 그 파이프들을 다시 장전하여 새로 준비를 갖춰 놓았다. 왜냐면 스텁은 옷을 입을 때 바짓가랑이에 먼저 다리를 집어넣는 대신에, 그보다 우선해서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같은 계속적인 흡연이 적어도 그의 특이한 기질의 한 가지 원인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세속적인 공기가,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그 공기를 내쉬다가 죽은 수없이 많은 인간들의 알려지지 않은 불행으로 끔찍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장뇌(樟腦) 묻힌 손수건을 입에 대고 다니듯이, 마찬가지로, 모든 치명적인 고난에 맞서서, 스텁의 담배 연기는 일종의 소독제로 작용했을 것이다.”--『모비딕』 제27장
파이프 담배나 시가보다는 못하지만 궐련도 제법 폼 난다.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오른손에 들고 필터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하여 왼손 바닥에 톡톡 두세 번 쳐주어 갑 안에 든 담배 개비들이 단정해지도록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직육면체 담뱃갑의 윗면 한쪽을 조심스럽게 뜯어 개봉하여 오른손에 거꾸로 하여 쥐고 뜯기지 않은 반쪽 부분을 왼손바닥 모서리에 톡톡 치면 하얀 궐련 두어 개가 틈으로 삐져나온다. 그 중 하나를 집게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첫째와 둘째 마디 사이에 끼워 잡고 필터 부분을 입술에 살포시 꼬나물고, 성냥불이나 라이터 불을 켜서 입에 문 궐련의 끝을 불꽃에 살짝 갖다 대고 필터 부분을 세게 빨면 궐련 끝부분에서 붉은 불 꽃봉오리가 맺히고, 불꽃을 내지 않고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입에 문 궐련을 세차게 빨아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다음 그걸 후우 길게 내뱉으며 허공에 퍼져 사라지는 그 연기의 해방감을 심오한 표정을 지으며 응시한다. 멋지지 아니한가. 몇 번을 더 빨아 궐련 끝에 회색 재가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면 재떨이 위로 담배 잡은 손을 가져가 엄지와 가운데손가락 사이에 가볍게 끼고 집게손가락 끝으로 궐련 몸통을 톡톡 두드리면 재가 떨어져 나간다. 담뱃불의 그 열정이 덧없지 아니한가. 그리고 끌 때는 불이 붙은 담배 끝부분을 재떨이 바닥에 대고 문질러 불덩이를 해체하고 짓눌러 질식시켜 버린다. 그게 꽁초다.
예전에 담배 가게에는 “짧은 머리를 곱게 빗은” 예쁜 아가씨가 담배를 팔았다고 가수 송창식이 노래한다. “나를 보며 웃어주는 아가씨를 나는 정말 사랑해서 ... 아자 자자자자자자 자자 자자 자자 ... 나는 지금 담배 사러 간다”고 목청을 돋운다.
거기까지가 무지와 환상의 미학이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진실은 무섭다. 담배 연기에 40여 가지의 발암물질과 4천여 가지의 유해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이 과학적 사실이다. 오늘날 담배 갑에 게시된 무시무시한 경고 사진은 담배 가게의 예쁜 아가씨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예쁜 아가씨가 고운 손으로 그 무시무시한 그림을 전해 준다고 생각해 보라.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금연이라는 게 매우 특별한 사회적 규제였다. 단란한 가정의 안방에서든 사무실에서든 시내버스 안에서든 고속버스 안에서든 기차간에서든 비행기 안에서든 담배를 피워댔다. 물론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 중에 담배를 피우는 교수들도 더러 있었다. 그건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1988년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운 기억이 있다. 그전에는 광주에서 서울 가려고 ‘거북이 광주고속’ 버스에 오르면 자리에 앉자마자 우선 담배부터 한 대 피웠던 기억도 있다. 90년대부터 담배의 해악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급격하게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지금은 흡연이 거의 죄악시된다. 그와 더불어 새로 등장한 것이 전자담배라는 변종이다.
그러나 전자담배는 그 생김새에서부터 피우는 모습까지 어딘지 궁색하다. 전자 담배는 궐련에 비해 짤막하고 도톰한 플라스틱 막대나 둥글납작하고 조그만 플라스틱 용기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손아귀에 살포시 움켜쥐고 엄지와 검지 사이 공간으로 끝부분을 내밀게 하여 입에 갖다 대고 빤다. 어딘지 폼이 궁상스럽다. 멋이라고는 일도 없다. 재를 떨어내는 절차도, 빨며 미간을 찌푸리는 심오함도, 짓눌러 끄는 종결 의식도 없다. 그저 좀스럽게 빨아 희멀건 연기를 내뿜는 게 전부다. 어쨌든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몸에 덜 해롭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해로운 물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멋대가리가 없다.
하여튼 그라시아님의 부군께서 애연가라는, 생태위기종의 최후 보루를 굳게 지키고 계신 걸로 이전 어떤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요즘 흡연자는 판다곰만큼이나 (희)귀한 상태이다. 그라시아님의 부군께 존경의 포장지에 만류의 선물을 곱게 싸서 전해드리고 싶다.
첫댓글 ㅎㅎㅎ 남편에게 꼭 이 글을 읽게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담배 피우는 이의 묘사가 너무 훌륭합니다. 애연가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
모비딕을 읽어야 되는 이유, 폼 날거 같아요.
담배 냄세 때문에 퇴원한다는 여학생. 흡연선생님을 왜 감봉을 하지 않느냐는 학원 신출나기 샘. 담배를 줄인다고 말해 놓고는 일년 째 어정쩡하고 어색하게 도망가는 국어샘. 나중에는 전설이 될 것 같아요. ^^
탁월한 묘사에 감탄하며 놀라는 중입니다. 그만 놀라고 이제 잠의 신을 만나 흡연에 대해 토론을 해야겠습니다만, 쉽사리 오지 않는 잠의 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