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투호(正心投壺) / 김석수
참 오랜만에 고등학교 교실에서 해 보는 수업이다. ‘찾아가는 학교 현장 선비문화 체험’으로 인성 교육 시간이다. 주제는 ‘정심투호’다. 화살을 하나씩 항아리에 던져 넣는 놀이다. 내게 세 시간이 배당됐다. 준비물은 귀가 달린 투호 항아리 두 개와 화살 열 개다. 화살은 합성수지에 고무를 덮어씌운 청화살과 홍화살 각각 다섯 개다.
준비물을 들고 2층 1학년 교실로 올라갔다. 학생들이 새내기라서 그런지 교실 분위기는 조용하다.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한 다음 ‘공수 인사’법을 가르쳤다. 남자는 왼손을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맞잡고 배에 가까이하고 인사한다. 익숙하지 않은 인사법이라 처음에는 어설프다. 시범을 보인 뒤 되풀이하니 잘한다. “공수 인사는 인성의 가장 기본적인 습관이다.”라고 강조했다.
투호는 전통 놀이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도자기나 청동으로 만든 병 안에 일정한 거리 밖에서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다. 본래 중국 당나라 때 성행했던 투호는 우리나라에서 일찍이 전해져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로 궁중과 조정의 고관들이 잔칫날 여흥으로 많이 즐겼다. 또한, 함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던 양반 부녀자도 집안에서 많이 했다.
퇴계(退溪) 선생은 투호를 ‘정신 집중 훈련 방법’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적극 권했다. 그를 찾아와서 제자가 되겠다고 하면, 먼저 투호 놀이를 시켜보고 인품과 덕성을 관찰했다고 한다. 온몸의 균형을 잡고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그 적중률이 높다. 몸이 흐트러지면 화살을 잘 넣을 수 없다. 잘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잡념이 생겨서 정신이 산란해지면 명중시키기 어렵다.
“투호 놀이에는 어떤 과학 원리가 숨겨져 있을까요?”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투호 병 구멍 지름은 놀이에 가장 이상적인 크기다. 병 속은 팥으로 채워 무게 중심을 아래로 두었다. 이는 병에 화살이 부딪치거나 들어올 때 넘어지지 않게 하고 들어온 화살이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균형과 작용, 반작용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아울러, 투호 놀이에는 ‘거리 측정 능력’, ‘포물선’, ‘던지는 각도’ 등 과학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화살을 던질 때 직선으로 던지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반대로 약간 위쪽으로 던져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게 했을 때는 잘 들어간다. 화살은 손을 떠나는 순간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되어 지구 중심, 즉 바닥으로 떨어진다. 화살의 진행 방향은 수평인데 중력 때문에 힘이 수직 방향으로 가해진다. 화살을 같은 힘으로 던진다고 가정했을 때 거리에 따라 각도를 알맞게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너무 낮게 던지면 구멍에 들어가지 않고 병의 몸체만 맞고 튕겨 나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조금 높은 각도로 던지는 것이 유리하다.
“여러분, 투호를 하려면 공간이 필요해요. 교실 가운데를 비워 주면 좋겠습니다. 항아리를 교탁 앞에 두세요. 2인 1조로 편을 나누어서 합니다. 투호는 정신이 흐트러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조급하게 던지면 화살 한 개도 안 들어가요. 화살을 잡고 집중해서 넣어야 해요. 먼저, 상호 간에 서로 공수 인사한 뒤 바른 자세로 항아리를 향하여 섭니다. 화살은 중간 부분을 수저 잡듯이 가볍게 잡고 팔을 어깨높이로 하고 귀까지 올려 직각이 되게 합니다. 항상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항아리 입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정조준해야 해요. 이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죠. 화살을 던질 때는 팔을 바로 뻗어서 포물선을 그려 항아리에 바로 꽂히게 해야 좋습니다. 화살이 들어갈 때까지 자세를 흩트리지 않아야 해요. 던진 화살이 정확히 들어갔는지 확인한 다음 던지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다시 하기 바랍니다. 다 던진 뒤 옆 친구가 모두 던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끝나고 다 던진 화살을 주워서 항아리에 가지런히 담아 놓고 상대방에게 공수 인사를 한 뒤 들어갑니다.”
20여 명의 학생이 아무도 병 안에 화살을 넣지 못했다. 한 학생만이 병 입구 양쪽에 달린 귀 구멍에 화살 한 개를 넣었을 뿐이다. “여러분, 오늘 수고 많았어요. 투호 놀이가 생각보다 쉽지 않죠?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이제 고등학생이 됐으니 마음 잡고 집중만 잘하면 공부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오늘 선생님하고 했던 ‘투호 놀이’를 생각하며 힘차게 새 학년을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수업 종료 벨이 울리자, 앞에 앉은 남학생이 질문이 있다고 손을 들었다. 그는 “선생님, 근데 마음이란 놈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놈 참 기특하구나! 그런 생각한다니.’ “좋아요. 수업이 끝났으니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 보는 숙제를 낼께요. 그 마음이란 놈 평생 동안 한번 찾아 보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수업을 끝냈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수업이라 어렵다.
첫댓글 대학 강의에 고등학교 수업까지. 고등학교도 인성수업이 외부에서 전문가가 들어가는군요.
고맙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을 것 같네요.
공수 인사는 초등학교 때 가르치지만 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다 잊었을 겁니다. 그것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유익한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전공을 제대로 살린 수업이었겠어요.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투호에 그렇게 많은 원리가 작용하는지 몰랐습니다. 접하게 되면
배운대로 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궁중이나 상류층에서 여성들이 많이 즐겼던 놀이로 알고 있었는데, 또 다른 것들이 있었네요. 제대로 배웠습니다.
투호에 이런 의미가 있다니 놀랍습니다. 다음엔 꼭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던져 봐야겠습니다.
고등학생에게 인성수업 정말 필요한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