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을 읽은 어느 독자가 80세 가까운 노인이 어떻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느냐고 한다. 무슨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써야만 마음이 편해서 쓰는 일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은 글 쓰는 일뿐이라는 생각이다. 젊을 때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시간이 부족하고 아까웠다. 그때는 시간이 모자라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한 기억이다. 몸이 늙으니 아픈 곳도 늘어나고 삶을 되돌아보니 이룬 일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이 세상에 왔으면 남에게 도움이 되는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절박감만 느껴진다. 그저 편하게만 지내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각은 늙음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녹슬어가는 기억도 기름칠 먹이듯 바른 생각을 자주 찾으면 즐거움을 만드는 일이다. 나이로 보면 이미 죽을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나 다름없는 삶이다. 간간이 몸의 아픈 고통을 덜 느끼는 시간이 그래도 행복하다. 가벼운 걷기 운동과 글을 쓰기 위해 깊은 생각에 빠지면 죽을 날 기다림이 아니라 행복감 때문에 즐겁다.
주위 나무숲의 신선한 산소가 생각을 풍부하게 부추기는 듯하다. 집 주위가 온통 숲의 기능으로 방문을 열고 잠을 자도 풍요로운 산소 덕택에 잘 지낸다. 한여름 에어컨보다 창문을 열어두고 지내면 훨씬 상쾌한 나날을 느낀다. 식구가 아내와 둘뿐이므로 방이 저온 창고처럼 냉기를 흠뻑 담아내고 방에서는 땀 흘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래서 농촌의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생활의 크나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땀을 흘리는 작업이 아니다. 더울 때는 선풍기만으로도 해결이 쉬워서 에어컨은 삼복 가운데 중복의 짧은 기간에만 사용한다. 이런 환경에서 글을 쓰지 않고 놀아본들 삶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가 세상에 온 본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의지가 아니라도 삶에는 태어난 목적을 받았을 일이라는 믿음이다. 78세를 살아도 그런 인생의 목적을 달성했는가 하는 자책감이 다가온다. 걸어온 길에 그것도 못 이루었다면 삶의 보람을 말할 자격이 없는 일이다.
자기의 본분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인생이라면 가치가 없는 인생이다.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면 절박한 경황의 삶이라고도 경험으로 말할 수도 있다. 이런 마음에 어떻게 몸과 마음의 안위만 느끼며 게을러 가는 생각에 머물 수만 없는 일이다. 공자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도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일하는 즐거움이 먹지 않고 노는 괴로움과 비교될 말이다. 어느 선배 작가는 나에게 80대에 세계 명작이 많이 태어났다고 알려주었다. 문학의 역사적인 작품이 노년에 써지는 일을 교훈으로 받아들였다. 문학사에서 가끔 보고 듣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경험의 축적이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는 일로 알아차려야 하는지 모른다. 아마도 치매가 늦게 온다면 늙어가는 가운데도 풍부한 경험이 효과를 낼 수 있는 모양이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역사상 많은 독자를 가진 책이다. 1968년 신동아 별책부록 "세계를 움직인 백 권의 책"에 선정된 책이기도 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사리아르왕"은 왕비의 호색행각에 분노를 느껴서 처형해 버렸다. 그 후 3년간에 걸쳐 처녀를 매일 하나씩 왕비로 하룻밤 자고 죽여버렸다. 나라에 마땅한 처녀가 사라질 무렵 재상의 딸 "세라자아드"가 자진하여 하룻밤 왕비로 자청했다. "세라자아드"의 죽음을 무릅쓴 모험이기도 하다. "세라자아드"는 변화무쌍한 이야기로 왕의 마음을 이야기 속으로 녹이는 방법을 썼다. 왕은 다음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1천 밤을 왕비를 끝내 죽이지 못하는 이야기다. 흥미진진한 남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왕비를 하루 더 살려 두어야 했다. 독립된 이야기에서 또 다른 독립된 이야기로 줄줄이 교묘하게 이어져 나가는 흥미를 이어가는 재치다. 마치 왕비가 살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내는 심정은 인생의 자기 본분이나 마찬가지다.
목숨이 경각에 놓인 상황의 환경을 당하는 것처럼 인생은 그런 대처 심정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칼날이 천장에 걸려 자기를 위협하는 형벌이라면 움직이지 못할 몸이라도 방패를 손으로 잡고 머리 위에 들고 있어야 할 벌을 참아내야 한다. 늙어서 글을 쓰는 일도 자기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목숨을 지키는 일만큼 글 쓰는 일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일이 된다. 아라비안나이트가 목숨을 잇는 방법으로 살아내는 이야기 작성이 세계 명작을 완성한 일이라 하겠다. 고철이 썩도록 긴 세월에 산화되어 뼈만 남았다. 그 뼈처럼 남은 속 뼈 꼬챙이 쇠도 썩을 때가 너무 지나면 더 썩을 데 없도록 야문 부문이 탄생한다. 이걸 일본인들이 제품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인생도 늙으면 쇠처럼 썩고 남은 속 뼈 같은 몸과 생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쓰는 글에도 이런 속 뼈 같은 작품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일도 인생의 한 부분일 것이다. ( 글 : 박용 2022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