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연산군 묘를 지나며
도봉산 자락에 40년여를 살면서 틈이 생길 때마다 국립 4.19민주묘지, 애국선열 묘역, 그리고 연산군 묘를 찾는다. 이전에는 연산군 묘를 참배하지 않아 철조망 너머로 조금보이는 묘 끝자락으로 만족해야 했다. 길옆의 조선왕조 제 4대 세종대왕의 따님 정의공주 내외 묘도 물론 대상이다.
4.19묘지는 1960년 대학 3학년 때 혁명대열에 참여하였음으로 세상을 떠난 학우들을 추모하기 위함이요, 애국선열 묘역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고 그분들의 우국충정을 본받아 다소나마 애국심 고취를 위함이다. 연산군 묘는 너무나 파란 많은 인생을 보낸 폭군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둘로 나뉘어 긍전 부정으로 오락가락하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엾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동정심의 발로로 즐겨 찾는다.
정의공주 묘는 잔디가 잘 자라 윤기가 도는데 연산군 묘는 사적 제 362호로 지정된 문화재청 산하의 유물임에 틀림없는데도 부인 거창 신씨 묘, 의정궁 조씨묘, 연산군 사위 구문경 묘, 그리고 딸 이씨 묘가 초라한 모습으로 대비되고 있다.
엊그제 연산군 묘를 찾았다. 1000년 가까운 은행나무가 새싹을 보이며 반갑게 맞는다. 추운 겨울은 물론 시시때때 찾는 곳인데 어쩐지 봄날이 화사하지 않다. 방명록을 펼쳐보니 수원, 영등포, 마포 등 비교적 거리가 먼 주민들이 이름을 올렸다. 매주 월요일만 문을 닫고 참배객, 관광객에게 선을 보여 하루에 기백명을 넘진 않아도 전국방방곡곡에서 서명을 하여 지금은 연산군 묘가 개방이 되었음을 충분히 홍보한 셈이다.
젊은 날, 국회의원을 지낸 신영균씨가 연극, 영화배우로 활약했을 때 찍은 연산군 영화를 떠올렸다. 술과 안주, 그리고 여인들이 호위하면 향락에 빠진 장면이 스크린화하여 가슴에 닿는다. 함성 비슷한 목소리로 분노하는 장면도 떠오른다. 한마디로 무서운 존재였다. 고등학교 시절인가? 월탄 박종화 선생의 「금삼의 피」를 읽었다. 여타 작가와 영화감독이 연산군을 소재로 메가폰을 든 영화도 떠오르긴해도 박종화 선생의 작품과 신영균의 열연만 아직도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유야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긴 해도 아버지 성종의 비인 윤비 마마를, 나를 낳아 준 생모를 사약을 내려 생을 마감케 한 비극을 원한으로 승화시켜 엄청난 복수, 패륜으로 일관한 연산군의 폭정이 군으로 강등시키고 강화도로 추방하여 31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한 일생은 인과응보요, 권선징악이요, 사필귀정의 철학을 제시한 본보기가 아닌가? 뒷 날 광해군도 역사의 심판을 받았지만 연산군은 사사로운 감정이 충신들을 대량 학살하였고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한 죄상이 오늘날 국민에게 공개한 묘역이긴해도 산새가 짖는 소리가 어두운 비가로 비치는 건 정당한 당위성이 아닐런지?
박종화 소설은 1936년 선을 보인 장편소설로서 장안의 화제작으로 갑자사화의 불씨를 안겨준 분노와 치욕을 유발시키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인간 연산의 외로운 처지를 어느 정도 미화시켜 동정을 가게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폭군은 폭군이므로 묘를 훑어보며 이내 우이동 가는 길로 발을 옮기게 한다. 길을 걸으며, 산다는 게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후대에 오명을 남기지 않을까 등 철학자 같은 나름의 고뇌를 한다.
도선사 가는 길 까지 내려오며 솔밭 근린공원으로, 4.19묘지로, 아카데미하우스로 두 시간여 산책을 하며 현재의 나를 스스로 평가한다.
노인복지법 제 26조에 규정한 경로우대 대상자 신분으로 하루하루 주름살이 늘어나는 노인으로 평범한 시민이어도 욕되게 살지 않아야 된다는 윤리, 도덕적 인간임을 소망하며 허기가 질 때까지 걷는다.
연산군은 이씨 조선의 후예로 성종의 장남으로 왕위를 계승했는데 절대군주로서의 위상을 너무 무자비하게 흔들어 제 11대 중종의 탄생을 도모케 한 불행한 폐주, 저주받는 인물로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가? 수유리 큰 거리로 내려오면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겸손, 단아를 발견케 한다.
지난날, 인기 역사드라마 이신을 보며 정조왕의 정치를 엿보고 있다. 그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며 할아버지 영조의 총애를 받으며 영조 계비 정순왕후의 모함을 감내하며 선정으로 성군의 길을 걸으려 혼신을 다하지 않는가? 총애하는 홍국영의 배신을 참다못해 결국 제거하지만 당쟁을 완전히 뿌리뽑지 못해 승하 후 국정은 혼란스러운 경지로 되돌아가는 걸 감지케 한다.
오늘도 나는 먼 길을 산책하지만 시간을 내어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비록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살아온 길이 올바르지 않았다면 참회하고 바른 길로 걸어가야 하는 인간의 도리를 좇아야 할 것이다. 사방으로 뚫린 길을 걸으며 유독 연산군 묘를 보면 신명나다가도 우울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성군과 폭군의 양비론, 흑백논리에서 잠시 머무르게 하며 인생의 참뜻을 풀어보라는 과제가 아닌지? 1주일 후에는 소요산을 다녀와야겠다. 봄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도권 전철을 타면 고향으로 가는 기분이 든다. 겨울방학이 온다고하는 기특한 손자 손녀를 그리워하며 또 하루를 보낸다.
송병승(필명 송일운)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갈뫼동인, 대한민국예술발전공로대상
고등학교 교장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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