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자慈·비悲·희喜·사捨이다.
‘자’란 중생을 사랑으로 생각하여 늘 즐거운 일로 그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비’란 중생이 다섯 갈래 세계13)에서 괴로움 겪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늘 선법善法으로 고통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희’란 중생들이 모두 기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란 세 가지 마음14)을 버리고 다만 중생을 생각함에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다.
‘무량’이란 이 네 가지 마음이 친구나 원수, 가까운 사람이나 먼 사람이라는 차별 없이 시방에 두루 미쳐 평등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중생의 성내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자심을 닦고, 중생의 괴로운 느낌을 없애기 위해 비심을 닦으며, 중생의 즐겁지 않음을 없애기 위해 희심을 닦고, 중생의 증오와 사랑을 없애기 위해 사심을 닦는다.
13)다섯 갈래 세계(五道) : 지옥·축생·아귀·수라·인간·천상의 육도六道에서 천상 또는 아수라 세계를 제외한 중생세계 전체를 오도라 총칭한다.
14)세 가지 마음 : 앞서 설명한 자심慈心·희심喜心·비심悲心을 말한다.
어떻게 자무량심慈無量心을 닦는가?
선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먼저 “일체중생이 다 쾌락을 누리는 것을 내가 선정 가운데서 수·상·행·식을 통해 보리라.”라고 서원한다.
처음 닦을 때 염청정念淸淨의 마음을 써서 먼저 가장 가깝고 좋아하는 사람, 예를 들면 부모나 형제 중 한 사람을 선택해 그가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을 한마음으로 반연한다.
만일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거두어서 돌이키고, 다른 경계가 보이더라도 모두 취하지 않는다.
그저 한마음으로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관찰하여 확실하고 분명하게 상속하여 끊이지 않으면 삼매가 곧 발생하고, 삼매의 힘을 갖추기 때문에 곧 선정 가운데서 그가 즐거움을 누리며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고 얼굴색이 온화해지는 것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친한 사람을 보고 나서는 점점 확대하여 다음에는 그저 그런 관계의 사람들을 보고 나아가 원수에게까지 이른다. 또 열 사람, 백 사람, 한 나라, 한 천하까지 확대시킨다.
이렇게 시방 다섯 갈래 세계의 중생에 이르기까지 다들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봄으로써, 선정의 마음이 점차 깊어져 고요히 움직임이 없어지고 성냄과 원한 등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된다.
즐거운 일을 중생에게 주는 것은 중생을 반연한 자심(衆生緣慈)이고,
그들에게 법을 주는 것은 법을 반연한 자심(法緣慈)이며,
무위심無爲心으로 취하거나 버림이 없고 주체나 대상의 구분도 없어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면 반연이 없는 자심(無緣慈)이다.
비심·희심·사심 또한 이 경우와 같다.
어떻게 비무량심悲無量心을 닦는가?
수행자는 자심의 선정 가운데서 늘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생각하다가, 자심의 선정에서 깨어났을 때 여전히 중생들이 여러 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생각을 일으킨다.
“다섯 갈래 세계의 중생이 이런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나는 알 수 없었고 볼 수도 없었다. 긴 세월 게으름만 떨며 구제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았으니 눈 없는 장님과 같았구나. 바라건대 선정 가운데서 모두 알고 모두 보아 부지런히 구제하고 보호하리라.”
이와 같이 원을 세우고 곧 선정에 들어 자심의 관법과 같이 먼저 가깝고 좋아하는 한 사람을 선택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나아가 시방의 다섯 갈래 세계 일체중생까지 확대한다.
삼매의 힘으로 명료하게 보게 되면 비심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떻게 희무량심喜無量心을 닦는가?
수행자는 비심의 선정에서 고통으로 핍박받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떤 법으로 구제해야 저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고 모두 환희하게 될까?”
이때 다음과 같이 깊이 관찰한다.
“중생들이 비록 괴로움을 받으나 이 괴로움은 실체가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니 본래 이것은 망령된 법이다. 저 고통은 이미 실체가 아니므로 쉽게 없앨 수 있다. 내 마땅히 감로법을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 번뇌의 병을 없애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
자심과 비심의 관법에 의거하여 한 사람에서 열 사람까지 이르고, 나아가 한량없는 중생이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본다. 그 마음의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지만 마음에 동요가 없으면 선정이 점점 깊어진다.
어떻게 사무량심捨無量心을 닦는가?
수행자는 희심의 선정에서 나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자심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비심으로 괴로움을 없애 주며, 희심으로 크게 기뻐하게 했다고 해서 내가 이익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뛰어난 행이 아니다. 비유하면 자애로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익을 주어도 은덕을 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내가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주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부덕한 짓이다. 지금 마땅히 이 세 가지 마음을 버려야 한다. 바라건대 중생과 더불어 모두 묘한 사심으로 장엄하리라.”
이와 같이 선정에 들어 중생이 괴로워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는 모습을 낱낱이 보면 그 마음이 평등해져 좋아하거나 미워함이 없게 되며, 삼매가 점차 깊어져 견고하고 안온해진다.
사심 가운데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갖가지 일을 하면서도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니, 이것이 사심이다.
이 네 가지 마음을 닦으면 공덕이 넓고 커 현세에서는 뜻밖의 죽음을 당하는 일이 절대 없고 선신들이 옹호할 것이며, 내세에는 범왕梵王15)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그가 중생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15)범왕梵王(ⓢBrahma) : 몰라함마沒羅含摩·범마梵摩라고 하며 범천왕梵天王·대범천왕大梵天王이라고도 한다. 색계 초선천의 왕으로서 별명을 시기尸棄·세주世主 등이라 한다. 인도 신화에서는 겁초劫初에 광음천에서 내려와 만물을 창조했다고도 하며, 혹은 비쉬누의 배꼽에서 나온 천 잎 연꽃 가운데서 태어나 일체 만물의 근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제석과 함께 정법을 옹호하는 신神으로 여긴다.
四無量心第十三章
四無量心者。曰慈。曰悲。曰喜。曰捨也。
慈者。愛念衆生。常欲以樂事饒益之也。
悲者。愍念衆生之受五道中苦。常欲以
善法濟拔之也。喜者。欲令衆生。皆得
歡喜也。捨者。捨三種心。而但念衆
生。不憎不愛也。無量。謂此四心。無
親無怨。無近無遠。心徧十方。平等不
隔也。故爲除衆生瞋覺。而修慈心。爲
除衆生惱覺。而修悲心。爲除衆生不悅
樂。而修喜心。爲除衆生憎愛。而修捨
心也。
云何修慈無量心。欲入禪定時。先作誓
願。一切衆生。悉受快樂。我於定中。得
見受想行識。初修時。用念淸淨心。先
取最所親愛人。若父母兄弟中一人。受
樂之相。而一心緣之。若有異念。攝之
令還。若見他境界。亦皆不取。但以一
心。觀彼得樂之相。的的分明。相續不
斷。則三昧即發。以三昧力故。即於定
中。見彼受樂。身心悅䂊。顏色和適。了
了分明。如是見親人已。漸漸廣大。次
見中人。乃至怨人。又至十人百人一國
一天下。以至十方五道衆生。悉得受樂。
而定心轉深。湛然無動。離於瞋恨怨惱
也。以樂事與衆生。爲衆生緣慈。以法
與之。爲法緣慈。以無爲心。無取捨。無
能所。令衆生得益。爲無緣慈。悲喜捨
心。亦同此例也。
云何修悲無量心。行者。於慈定中。常
念欲與衆生樂。從慈定起。猶見衆生
受種種身苦心苦。心生憐愍曰。五道衆
生。受此大苦。而我不能知不能見。長
夜懈怠。不生救拔之心。是同無目。願
於定中。悉知悉見。勤加救護。如是立
願。即入禪定。依慈心觀法。先取一親
愛人受苦相。乃至十方五道。一切衆生。
以三昧力。得見明了。悲心轉深也。
云何修喜無量心。行者。於悲定中。憐
愍衆生受苦逼迫。我當以何法拔濟。
令彼衆生。脫苦得樂。皆生歡喜。爾時
深觀。衆生雖受苦惱。而此苦無實。應
無而有。本是妄法。彼旣非實。容易可
除。我當以甘露法。徧與衆生。除煩惱
病。得涅槃樂。依慈悲觀法。從一至十。
乃至無量受喜之相。了了分明。其心悅
䂊。不可備說。而心無動轉。定漸增深
也。
云何修捨無量心。行者。從喜定出。心
自思惟。若慈與衆生樂。悲欲拔苦。喜
令歡喜。而謂我能利益者。亦非勝行。
譬如慈父益子。不求恩德。若曰我能與
樂與喜。即是不德。今當捨此三心。願
與衆生。皆得妙捨莊嚴。如是入定。悉
見衆生。受不苦不樂之相。其心平等。
無有愛憎。三昧轉深。堅固安隱也。於
捨心中。能作種種利益衆生事。而不取
不着。是爲捨心也。
修此四心者。功德廣大。現世終不橫死。
善神擁護。來世多作梵王。以其攝衆生
故也。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900c01-c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