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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기 현대 맑스주의(1) 안현효-현대 민주주의와 맑스
홍승용 추천 2 조회 195 26.08.21 23:4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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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9.06 18:29

    첫댓글 흥미로운 발표 였고 대체로 발표자 의견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약간의 논평과 질문을 더해본다.

  • 26.09.06 18:30


    첫째, 기술진보의 성격에 관한 문제이다. 발표자는 노동배제적 기술의 선택을 주로 자본축적의 객관적 강제에서 설명한다. 이 주장은 맑스의 자본축적론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발표자가 지적하듯이 노동의 정치적 힘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노동대체적 기술이 등장한다고만 설명한다면, 왜 자본주의가 반복적으로 노동절약적 기술을 추구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으로부터 아세모글루의 설명을 단순히 ‘표면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기술적 경향’과 ‘특정 역사적 시기에 선택되는 구체적인 기술적 궤적’을 구별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을 절약하려는 일반적 압력을 갖는다는 사실과, 그러한 압력이 언제나 동일한 기술 형태로 실현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 26.09.06 18:31

    특히 1990년대 이후의 기술변화를 고려하면 이 구별은 중요하다. 이 시기 기술은 단순히 인간 노동 전체를 기계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과업과 숙련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발생시켰다. 이른바 숙련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가 그러하다. 따라서 기술진보의 구체적인 방향을 설명하는 이론적 장치가 별도로 필요하다.
    여기서 아세모글루의 적극적인 함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세모글루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자본주의가 노동절약적 기술을 추구하는가 여부가 아니라, 동일한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이 존재할 때 왜 특정한 기술적 방향이 선택되는가라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맑스가 설명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기술진보에 내재하는 일반적 축적 압력이고, 아세모글루가 설명하는 것은 그 압력이 특정한 역사적 및 제도적 조건에서 어떤 기술적 궤적으로 구체화되는가라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 26.09.06 18:31

    이렇게 보면 양자의 관계는 반드시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맑스의 자본축적론과 아세모글루의 기술선택론을 결합할 경우 보다 풍부한 설명이 가능하다. 맑스는 왜 자본이 노동절약적 기술을 향해 지속적으로 압력을 받는지를 설명하고, 아세모글루는 그 노동절약 압력이 왜 특정한 형태의 자동화, 숙련편향적 기술, 노동보완적 기술 가운데 어느 방향으로 구체화되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따라서 발표자의 비판은 ‘아세모글루는 기술진보의 구조적 강제를 보지 못한다’는 방향으로만 제기되기보다, ‘아세모글루의 기술선택론을 자본축적의 구조적 강제와 결합할 때 비로소 그 설명력이 완성된다’는 방향으로 수정될 경우 더욱 생산적일 것이다.

  • 26.09.06 18:45

    둘째, 발표자는 자본이 생산수단과 기술에 대한 지배권을 독점하는 조건에서 노동조합의 기술 이해도 제고와 노사협상은 자본의 축적 전략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발표자는 동시에 노동조합이 단순한 임금협상의 주체를 넘어 기술개발의 방향성 자체에 대한 소유·결정권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을 자기모순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전자의 명제는 실증적 명제인 반면, 후자의 명제는 규범적 제안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발표자는 아세모글루의 대안과 자신의 맑스적 대안을 대비시키고 있다.

  • 26.09.06 18:41

    그러나 논의을 더욱 생산적으로 이끌기 위해 아세모글루와 맑스를 어느 한쪽의 우위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설명수준을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세모글루는 기술진보가 자동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며, 기술의 방향이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맑스는 그러한 선택이 이루어지는 구조 자체, 즉 경쟁과 자본축적의 강제를 분석한다. 전자가 ‘어떤 기술이 선택되는가’를 설명한다면, 후자는 ‘왜 자본주의에서 그러한 선택의 범위가 지속적으로 제약되는가’를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발표의 논의는 아세모글루의 제도주의와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결합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가능성을 갖는다. 아세모글루의 통찰을 맑스의 자본축적론에 의해 단순히 대체하기보다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축적 압력과 역사적으로 상이한 기술적 궤적의 선택을 하나의 분석틀 안에서 결합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방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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