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대사상 세미나 2026. 8. 22. 안현효 선생님 발표 동영상과 발제문입니다.
현대 민주주의 위기와 맑스
−아세모글루(Acemoglu)의 신제도주의적 진단과 그 비판적 확장−
안 현 효(대구대학교)
1. 문제의식
1991년 냉전의 해체와 함께 선언되었던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는, 불과 한 세대 만에 심각한 체제적 정통성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경제적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정체성 정치에 기반한 사회적 분열과 극우 파퓰리즘이 창궐하며, 기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시민적 신뢰는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정치적 선호의 변화가 아니라, 20세기 후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뒷받침했던 핵심 동력, 곧 ‘공유된 번영(shared prosperity)’의 경제적·제도적 메커니즘이 와해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이 글은 이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연구로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에 주목한다. 그는 최근 저작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What Happened to Liberal Democracy?)》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역사적·정치 경제학적·사상사적 맥락에서 다각도로 분석하여 서구 정치제도가 계급적 기반을 상실하고 고학력 엘리트 중심의 과두정치 및 극단적 자유주의(리버터리안)로 변질되면서 노동자 계층이 체제 외곽으로 소외되었다고 진단하며, 그 대안으로‘노동계층 자유주의(working-class liberalism)’의 복원을 제시한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설정한다. 첫째, 현대 자유민주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 근원은 무엇인가? 둘째, 아세모글루의 신제도주의적 진단은 이 위기를 어디까지 설명하며 어디에서 멈추는가? 셋째,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은 그 설명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가? 넷째, 21세기 민주주의의 재구성은 어떤 경로로 가능한가?
위 연구문제에 대한 잠정적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제도의 우연적 고장이 아니라 자본주의 축적 논리와 민주적 대의 체제 사이의 구조적 불일치가 임계점에 도달한 결과이다. 둘째, 아세모글루의 진단은 위기의 정치경제적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포착하지만, 그 원인을 엘리트의 정책적 오류와 노동의 정치적 약화로 환원함으로써 자본축적의 객관적 법칙을 시야에서 놓친다. 셋째, 아세모글루의 미시적·제도적 분석과 맑스의 거시적·구조적 비판을 통섭할 때 위기의 총체적 규명이 가능하다. 넷째, 위기의 극복은 세제 개편이나 교육 개혁과 같은 제도적 보완을 넘어, 기술의 진보 방향과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민주적으로 확보하는 정치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하 논의는 아세모글루의 초기 계량적 저작에서 최근의 정치사상적 저작에 이르는 신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궤적을 재구성하고(Ⅰ장), 자유민주주의 와해의 메커니즘을 그의 ‘역인과적 피드백 고리’로 정식화한 뒤(Ⅱ장), 그 진단의 이론적 한계와 그것을 둘러싼 학술적 논쟁을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Ⅲ장), 마지막으로 두 전통의 통섭에 기초한 21세기 민주주의의 재구성 방향을 제시한다(Ⅳ장).
II. 자유민주주의의 약속과 공유된 번영의 와해
1. 아세모글루의 정치경제학적 궤적과 자유민주주의의 재정의
아세모글루의 지적 여정은 국가의 성패를 결정짓는 제도적 조건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하여, 국가 권력과 시민사회의 균형, 기술 진보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계급적 재구성으로 이어진다. 그의 저작들은 개별적 주제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정치적 권력의 배분과 제도적 균형이 경제적 성과와 민주주의의 존속을 규정한다는 일관된 방법론적 기준을 공유한다.
첫 번째 저작 《독재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원(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아세모글루와 로빈슨, 2006)은 유혈 혁명의 위협에 직면한 지배 엘리트가 어떻게 권력을 대중에게 이양하는지를 합리적 선택 모형으로 설명하였다. 그 핵심 동학은‘신뢰할 수 있는 공약의 문제’에 있다. 대중은 경제위기나 사회적 소요의 시기에 한시적으로 강한 사실상의 권력(de facto power)을 보유하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그 권력은 소멸한다. 따라서 대중은 일시적 권력을 이용해 지속적인 법적 권력(de jure power)을 보장받고자 민주화를 요구하며, 엘리트는 혁명으로 인한 재산의 완전한 몰수를 피하기 위해 민주화를 수용하는 전략적 타협을 선택한다. 방법론적으로는 개인주의와 게임이론에 충실하였으되, 계급 간 부의 재분배 갈등을 분석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이 저작은 흔히 ‘유물사관의 게임이론적 정교화’로 평가된다. 아세모글루의 정치경제학이 애초부터 계급과 재분배의 문제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뒤에서 살필 후기 저작의 친노동적 전회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두 번째 저작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아세모글루와 로빈슨, 2012)은 국가의 번영과 빈곤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와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를 제시하였다. 광범위한 재산권 보호와 법치, 신규 진입의 자유를 보장하여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촉진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필수 조건이며, 그것은 권력이 분산되고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포용적 정치 제도에 의해서만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이 저작에서 아세모글루는 문화·지리 가설을 전면적으로 배격하고 사적 소유권과 시장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주창하는, 전형적인 신제도주의 경제학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세 번째 저작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아세모글루와 로빈슨, 2019)은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의 이분법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 역량과 시민사회 사이의 동태적 대립과 균형을 다루는 ‘좁은 회랑’ 개념을 도입하였다. 국가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면 사회를 압제하는 ‘전제적 리바이어던’이 되고, 사회의 힘만 강하면 무질서가 지배하는‘부재하는 리바이어던’이 된다. 자유와 번영은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가 끊임없이 견제하고 경쟁하는‘상쇄하는 권력(countervailing power)’의 영역, 곧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가 지속되는 좁은 회랑 안에서만 달성된다. 이 시기부터 아세모글루는 법적 제도뿐 아니라 사회운동·시민단체의 집단행동·규범의 동학을 이론 체계 안으로 본격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네 번째 저작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아세모글루와 존슨, 2023)은 이론적 지평을 가장 극적으로 전환한다. 지난 천년의 기술사(技術史)를 재해석하여 기술 진보가 자동으로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생산성 밴드왜건(productivity bandwagon)’ 신화를 해체하고, 기술의 발전 경로와 이익 분배가 시장의 자동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테크 엘리트의 비전과 정치적·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논증한다. 특히 노동을 대체하기만 하는‘그저 그런 자동화’를 비판하고 노동 역량을 강화하는 친노동적 기술로의 전환을 촉구하며, 그 수단으로 빅테크 해체, 자본 대비 노동 과세의 불균형 시정, 피구주의적 친노동 기술 보조금 등 국가의 과감한 시장 개입을 옹호한다.
가장 최근 저작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아세모글루(2026)는 이 논의를 정치사상사와 계급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그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뉴딜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극단적 자유주의와 권위주의를 모두 피한 바람직한 ‘좁은 회랑’으로 평가하되, 탈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좌파 진보진영이 하층 노동자를 외면하고 엘리트주의적 정체성 정치와 문화전(文化戰)에 몰두한 결과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그 대안으로 그는 노동자의 삶과 임금을 실제로 개선하는‘노동자 중심 자유민주주의’의 구축을 촉구한다.
<표1> 아세모글루 주요 저작의 이론적 궤적
| 독재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원(2006) | 민주화의 정량 모형, 신뢰할 수 있는 공약, de facto·de jure 권력 | 엘리트 자본가 대 다수 민중 | 제도적 제약을 통한 민주주의 공고화 |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 | 포용적 대 착취적 제도, 창조적 파괴 | 포용적 제도 대 특권 엘리트 | 재산권 보호, 법치, 시장 진입 자유 |
| 좁은 회랑(2019) | 국가 역량과 사회의 동학, 붉은 여왕 효과 | 리바이어던(국가) 대 사회 | 강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의 균형 |
| 권력과 진보(2023) | 기술 방향의 사회적 선택, ‘그저 그런 자동화’ | 빅테크 자본 대 노동 계층 | 빅테크 해체, 자본·노동 과세 균형, 친노동 기술 보조금 |
|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2026) | 정체성 정치 비판, 노동자 중심 민주주의 | 엘리트 정체성 정치 대 노동 계층 | 노동자AI 입법, 시민의회, 노동 존중형 경제 |
자료: 아세모글루·로빈슨(2006·2012·2019), 아세모글루·존슨(2023), 아세모글루(2026) 및 박경로(2026)
주목할 점은 아세모글루의 저작이 뒤로 갈수록 친노동·진보적 성향을 강하게 띤다는 평가와 관련하여, 그 전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이다. 연구들은 이 전환을 단순한 이념적 변심이 아니라 자신의 제도이론을 현실 변화에 맞추어 확장·정교화한 필연적 귀결로 해석한다. 박경로(2026)는 초기의 ‘제도의 사회적 선택’ 문제의식이 《권력과 진보》에 이르러 ‘기술 발전 경로의 사회적 선택’ 문제로 전환되면서 노동조합 조직화와 대항권력 복원이라는 친노동적 결론으로 수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Ekonomista(2024/2025)는 《권력과 진보》가 전작과 달리 분석 중심축을‘국가 대 사회’에서 ‘자본 대 노동’으로 옮기고 급진적 개입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강한 ‘맑스적 향취’를 띤다고 분석한다. 정준호(2023)는 이 저작을 기술결정론을 부정하고 친노동적 기술정책과 노동자의 결정 참여를 정당화한 진보적 사회정책의 경제학적 근거로 평가한다.
한편 그의 정치경제학적 스탠스는 초기 연구부터 일관된 축을 유지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미 《독재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원》에서부터 그는 시장의 자율성이나 자본의 효율성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하지 않았으며, 정치적 권력의 배분이 경제 제도를 결정하고 그것이 최종적 성패를 가른다는 점을 규명해 왔다. 노벨상 수상 이후 그는 이 메시지를 한층 대중적 어조로 명확히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재정의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것이 극단적 자유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공동체적 유대와 숙의를 결합한 체제이며, ‘노동계층 자유주의’는 급진적 체제 변혁이 아니라 뉴딜과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개혁주의적 구상이다. 바로 이 개혁주의적 성격이야말로 본 연구가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핵심 지점이 된다.
2. 포디즘적 번영에서 디지털 탈산업 체제로
‘공유된 번영’의 물질적 기초는 20세기 중반의 생산체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자동차 산업으로 대표되는 포디즘 체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맞물리는 구조 속에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고용 창출과 실질임금 상승으로 연결되는 ‘공유된 번영’의 선순환을 이끌었다. 이 시기 노동조합의 조직된 힘과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은 생산성 증가의 과실을 노동과 자본이 비교적 균형 있게 분배하도록 조율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대규모 자동화의 도입은 생산 과정에서 육체노동과 단순 사무노동을 광범위하게 기계로 대체하였다. 이로 인해 비숙련 블루칼라 노동자의 입지가 급격히 약화된 반면, 고학력 전문직 계층은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향유하며 실질소득과 사회적 영향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생산성과 임금의 동반 상승이라는 전후(戰後)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생산성은 계속 상승하되 중위임금은 정체하는 이른바‘거대한 분리(great decoupling)’가 나타난 것이다.
아세모글루(2026)에게 이 이행은 단순한 기술적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다. 기술 변화 자체는 불평등의 충분조건이 아니며, 그것이 노동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귀결된 데에는 노동의 정치적 힘의 약화와 대의 구조의 변형이라는 제도적 매개가 개입하였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의 분석은 ‘생산력의 변동이 사회적 세력관계의 재편을 통해 상부구조의 변혁으로 이어진다’는 통찰과 만날 수 있다.
III. 노동 소외와 정치적 대의의 비틀림: 아세모글루의 피드백 고리
1. 경제적 양극화와 중도좌파 정당의 엘리트화
아세모글루가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체계화한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적 구조 변동과 정치적 대의의 와해, 그리고 기술적 소외가 상호작용하며 형성하는 구조적 피드백 고리에 기인한다.
그 첫 번째 국면은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대의 구조의 변질로 전이되는 과정이다.
과거 노동자 계급을 대의하던 미국 민주당을 비롯한 서구의 중도좌파 정당들은, 탈산업화의 진전과 함께 점차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닌 전문직 엘리트 중심 정당으로 개편되었다. 이들 정당의 핵심 지지 기반과 인적 구성이 도시의 고학력 전문직으로 이동하면서, 정당의 강령과 의제 설정 역시 그 계층의 이해와 감수성을 우선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다. 노동계급의 물질적 요구를 대변하던 정치적 통로가 구조적으로 협소해진 것이다.
2. 정체성 정치로의 편향과 노동계급의 정치적 이탈
엘리트화된 중도좌파 정당은 노동 현장의 실질적 고통과 소득 양극화라는 물질적 조건보다, 젠더·이민·환경 등 문화적 정체성 정치와 도덕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의제들이 그 자체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재분배의 의제가 문화적 인정의 의제로 대체되는 비대칭이 문제의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정당은 자신들의 가치를 사회 전체에 관철하려 하면서도, 정작 하층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는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치적·문화적으로 외면받은 노동자 계급은 기존 중도좌파 정당에서 이탈하여, 엘리트 기득권층을 공격하는 극우 파퓰리즘 세력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노동계급의‘우경화’라기보다, 자신을 대변하지 않게 된 제도정치에 대한 반발이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통로로 흘러든 결과에 가깝다. 이로 인해 전통적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이었던 숙의와 공동체적 타협의 메커니즘이 와해되고, 정치는 극단적 진영 대립으로 치닫게 되었다.
3. 노동 배제적 기술과 역인과적 피드백 고리의 완성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약화된 노동자 계급이 기술 혁신의 방향성을 견제할 정치적 수단마저 상실하였다는 점이다. 아세모글루·존슨(2023)이 강조하듯 기술의 방향은 사회적 세력관계의 산물이다. 권력을 독점한 테크 기업과 테크노크라시 엘리트는 인간 노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기술보다,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자본 집약적 AI 및 자동화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노동 배제적 기술의 확산은 노동자 계급을 더욱 불리한 위치로 몰아넣고, 이는 다시 노동의 정치적 권력의 부재를 강화하는 악순환의 피드백 고리를 완성시킨다. 요약하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가 대의 구조의 엘리트화를 낳고, 대의의 왜곡이 노동 배제적 기술 선택을 방임하며, 그 기술이 다시 불평등을 재심화하는 자기강화적 순환이 형성된다. 아세모글루가 포착한 이 고리는 위기의 ‘진행 논리’를 설명하는 데에는 매우 유효하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결정적 물음이 제기된다. 엘리트는 왜 노동 대체적 기술을 선택하는가? 아세모글루는 그 원인을 노동의 정치적 약화라는 세력관계의 공백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 설명은 세력관계가 복원되기만 하면 기술의 방향이 교정될 수 있다는 낙관을 함축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일종의 순환논리에 빠진다. 반면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노동 대체적 기술의 선택은 세력관계의 우연적 결과이기 이전에 자본축적의 객관적 법칙이 관철되는 필연적 형태이다. 아세모글루의 피드백 고리는 이 필연성의 층위를 포착하지 못한 채, 위기의 표면적 동학만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IV. 제도주의의 한계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개입
아세모글루의 분석은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과정을 정치경제학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하지만, 이론적 전제와 현실 진단의 측면에서 몇 가지 중대한 한계와 맹점을 드러낸다. 이하에서는 그의 후기 저작을 둘러싼 학술적 논쟁의 지형을 검토한 뒤, 신제도주의와 맑스주의가 공유하는 이론적 교차점과 그 통섭의 가능성을 논한다.
1. 현대 신권위주의 체제와의 성패 비교의 부재
첫째는 현존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비교 분석의 부재이다. 아세모글루는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경제적 성과와 인간의 자유를 담보하는 절대적 최적의 모델이라는 전제 위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는 냉전 시대의 명령통제형 권위주의와 21세기 신권위주의(예컨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싱가포르의 테크노크라시형 권위주의) 사이의 제도적 차이를 간과하는 결과를 낳는다.
현대 신권위주의 체제는 글로벌 가치사슬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국가 주도의 과감한 첨단기술R&D 투자를 감행하여 높은 경제적 성과와 기술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다. 이들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체와 양극화에 빠져 있는 동안, 유능한 행정력과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며 나름의 체제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 아세모글루는 권위주의를 단순히 자유민주주의에서 이탈한 착취적 체제로 단정함으로써, 왜 상당수의 대중이 신권위주의적 효율성에 이끌리는가라는 현실적 물음에 답할 수 없다.
2.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재적 동학에 대한 진단 부재
둘째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재적 동학에 대한 진단의 결여이다. 아세모글루는 노동 배제적 기술의 확산과 불평등의 심화를 엘리트의 정책적 오류나 문화적 오만, 그리고 노동의 정치적 영향력 부족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계 도입을 통한 노동 대체와 불변자본 비중의 확대는 개별 주체의 의도나 정책적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상대적 잉여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관철하지 않을 수 없는, 자본축적의 객관적 법칙이다. 개별 자본은 경쟁의 강제 아래에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계를 도입하며, 그 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된다. 노동 대체적 기술이 ‘선택’되는 것은 어느 엘리트가 노동에 적대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자본이 경쟁에서 도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력관계의 복원만으로 기술의 방향을 교정할 수 있다는 아세모글루의 함의는, 축적의 강제라는 구조적 층위를 우회한 채 성립하는 낙관이다.
3. ‘노동계층 자유주의’ 처방의 한계
셋째는 ‘노동계층 자유주의’가 제시하는 처방의 한계다. 아세모글루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AI와 디지털 기술을 깊이 이해하고 경영진과의 협상을 통해 노동 친화적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산수단과 기술에 대한 소유 및 통제권이 자본가 계급에 집중되어 있는 현 자본주의 구조 아래에서, 단지 ‘기술에 대한 이해와 협상’만으로 자본의 노동 대체 경향을 반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없다.
협상은 언제나 협상 당사자들이 처한 구조적 위치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이 생산수단과 기술 지배권을 독점한 조건에서, 노동조합의 기술 이해도 제고나 노사 협상은 자본의 축적 전략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 생산수단과 기술 지배권이라는 근본적인 권력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제도적 개혁안은, 위기의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그 발생 원천을 제거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4. 후기 아세모글루를 둘러싼 학술적 논쟁: 두 방향의 비판
흥미롭게도 아세모글루의 후기 저작은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는 두 계열의 비판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 한편에는 그가 ‘너무 멀리 나갔다’고 보는 시장주의적 비판이, 다른 한편에는 그가 ‘충분히 멀리 나가지 못했다’고 보는 비판이 자리한다.
시장주의 진영의 대표적 비판은 카토연구소의 르미외(Lemieux)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세모글루·존슨이 권력을 지나치게 넓게 정의하여 국가의 강제력과 시장의 자발적 설득을 동일시하였으며, 관료가 기술의 방향을 사전에 ‘친노동적’으로 판단·유도하겠다는 발상이 하이에크적 ‘지식의 문제’를 부정하는 ‘철인왕’적 오만이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그는 저자들의 역사 서술이 산업혁명 초기 노동자의 실질소득 개선이나 진보주의 시대 국가 강제력의 어두운 이면을 축소하는 등 편향적이라고 지적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경제학자 노아 스미스(Smith)는 저자들의 실증적 사례 선택이 부적절하며, 존재하지 않는 기술의 분배 효과를 관료가 사전에 선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기술 개발은 자율에 맡기고 ‘사후적 재분배’로 대응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한편 헨리 패럴(Farrell)은 기술이 일단 노동 대체 방향으로 개발되면 분배 구조를‘고착(lock-in)’시키므로 사전적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재반박한다. 삭스(Sachs)와 게이츠(Gates) 등 정통 성장론자들은 아세모글루가 제도의 역할을 과장하고 지리·기술의 독립적 중요성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제시하고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아세모글루의 국가 개입주의를 과잉이라 우려하지만, 다른 한편 그의 처방이 자본주의적 소유관계 자체를 온존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흡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스미스의 ‘사후적 재분배’와 아세모글루의 ‘사전적 기술 개입’ 사이의 논쟁조차, 생산수단의 소유구조를 상수로 전제한 채 분배와 규제의 방식만을 다툰다는 점에서 동일한 지평 위에 있다. 패럴이 기술의 ‘고착’ 현상은, 맑스적 관점에서 보면 자본이 생산수단과 기술 지배권을 독점한 데서 비롯되는 구조적 귀결이다. 요컨대 후기 아세모글루를 둘러싼 논쟁은 자본주의의 분배적 표면에서 전개되며, 그 축적의 심층에는 좀처럼 이르지 못한다.
5. 신제도주의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교차와 시너지
맑스의 사적 유물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계급투쟁이라는 정치적 역학을 통해 해소되는 과정을 역사 발전의 동력으로 파악한다. 아세모글루의 제도주의 분석 역시 기술적 충격(생산력의 변동)이 사회적 집단 간의 사실상의(de facto) 정치적 권력 균형을 뒤흔들고, 이것이 정당 및 법제도(상부구조)의 변혁을 유발한다는 연쇄적 동학에 주목할 때 일정한 이론적 유사성이 있다.
두 접근법은 모두 정치제도가 결코 중립적 아레나가 아니며, 당대의 계급 및 세력 간 권력관계의 반영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총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아세모글루가 제공하는 미시적·제도적 분석의 정교함과 맑스가 제공하는 거시적·구조적 비판의 시각을 통섭할 필요가 있다. 아세모글루의 연구는 특정 조세제도, 노동조합의 조직률, 정치제도가 기술R&D의 방향과 부의 분배에 미치는 미시적 메커니즘을 상세히 포착한다. 반면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왜 그러한 제도적 시도들이 자본의 끊임없는 저항에 직면하는지, 그리고 왜 기술 진보가 반복적으로 노동의 소외로 귀결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을 설명해 준다.
요컨대 아세모글루는 위기가‘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밝히고, 맑스는 위기가 ‘왜’ 반복되는가를 밝힌다. 전자가 없으면 비판은 추상에 머물고, 후자가 없으면 처방은 표면에 머문다. 다음 장은 이 통섭의 관점에서 21세기 민주주의의 재구성 방향을 제시한다.
<표2> 신제도주의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비교
| 아세모글루 | 맑스 | |
| 사회 변동의 원동력 | 기술 충격, 정치적 권력 균형, 제도적 균열 |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계급투쟁 |
| 권력의 근원 | 제도적 권력(de jure) 및 대중의 집단행동력(de facto) |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 및 자본 축적 구조 |
| 기술의 본질 | 사회적 선택의 대상, 노동 증대 대 노동 대체 | 자본의 가치증식 도구, 상대적 잉여가치 수탈 수단 |
| 민주주의의 성격 |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숙의가 결합된 최적 체제 |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은폐하는 정치적 상부구조 |
| 위기 극복의 대안 | 노동계층 자유주의, 노동 친화적AI, 세제·교육 개혁 | 생산수단·기술의 사회적 통제, 생산양식의 변혁 |
아세모글루·로빈슨(2012·2019), 아세모글루·존슨(2023), 아세모글루(2026) 및 마르크스(1867)에 기초하여 저자가 작성.
V. 21세기 민주주의의 재구성: 기술과 생산의 민주적 통제
1. 제도적 보완을 넘어: 생산수단·기술 통제권의 정치화
앞선 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가 제도의 기계적 고장이 아니라, 자본주의 축적 논리와 민주적 대의 체제 사이의 구조적 불일치가 한계점에 도달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 진단이 옳다면, 위기의 극복 또한 제도의 부분적 수리를 넘어서는 지점을 겨냥해야 한다. 세제 개편이나 AI 교육 확대와 같은 처방은 그 자체로 필요하고 유의미하지만, 노동 대체적 축적의 강제가 온존하는 한 위기의 재생산을 멈추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재구성의 핵심 과제는 기술의 진보 방향과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민주적 결정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 곧 지금까지 자본의 사적 영역에 유폐되어 있던 축적의 결정권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데 있다. 어떤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 것인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누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시장의 사후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숙의의 대상이 될 때, 비로소 아세모글루가 말한‘공유된 번영’은 구호를 넘어 제도적 실체를 얻는다. 아세모글루(2026) 자신이 제안하는‘노동자AI’ 법제화나 시민의회의 도입도 이 방향으로 읽을 때에만 실질적 의미를 얻는다.
2. 노동조합의 임금 협상을 넘어선 기술 개발 방향의 결정권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의 역할은 아세모글루가 제안하는‘노동 친화적 기술의 협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노동조합은 단순한 임금 협상의 주체를 넘어, 기술 개발의 방향성 자체에 대한 소유·결정권을 요구하는 주체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노동을 대체할 것인가 증대할 것인가라는 기술 선택의 분기점에서, 노동이 사후적 피해 보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전적 결정의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동결정(co-determination) 제도의 확장, 노동자 대표의 기술·투자 의사결정 참여, 공공R&D 방향에 대한 사회적 통제 등 다양한 제도적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들이 자본의 축적 전략이 허용하는 잔여적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축적의 방향 그 자체를 규율하는 수준으로 심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검토한 패럴의‘고착’ 논제가 시사하듯, 기술이 특정 방향으로 굳어지기 전의 사전적 개입만이 역인과적 피드백 고리를 끊어내는 정치적 힘을 회복시킬 수 있다.
3. 자유주의적 기본권과 맑스적 계급해방의 유기적 결합
본 연구가 제시하는 재구성의 방향은 자유주의의 폐기가 아니라 그 완성이다. 개인의 자유, 법치, 공동체적 숙의라는 자유주의적 기본권은 그 자체로 포기될 수 없는 근대적 성취이다. 이 성취를 권위주의적 효율성과 맞바꾸는 것은 위기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파국이다. 그러나 이 기본권이 실질적 내용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떠받치는 물질적 조건, 곧 생산과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함께 확보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자유주의적 기본권과 맑스적 계급해방은 대립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형식적 자유가 실질적 자유로 전화하려면 계급적 예속의 물질적 기초가 해체되어야 하며, 계급해방이 전제적 리바이어던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자유주의적 견제 장치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는 아세모글루의 ‘좁은 회랑’을 계급적 차원에서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형이라는 회랑의 조건에, 자본과 노동의 세력균형이라는 또 하나의 축을 더해야 비로소 21세기의 자유는 지속 가능해진다.
4. 맺음말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순히 제도의 기계적 고장이 아니라, 자본주의 축적 논리와 민주적 대의 체제 사이의 구조적 불일치가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낸다. 아세모글루의 진단은 이 위기의 정치경제적 동학을 정교하게 그려낸다는 의미가 있고 그의 경고대로 노동자 계급의 주도성 회복 없이는 민주주의의 재건이 불가능하다. 그의 첫 저작에서부터 최근작에 이르는 궤적이 보여주듯, 정치적 권력의 배분이라는 문제는 그의 정치경제학을 관통하는 일관된 축이었으며, 후기의 친노동적 전회는 그 축이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우리 시대의 핵심 모순에 도달한 지점이다.
다만 본 연구가 주장하듯이 그 주도성은 기존 자유주의 체제 내에서의 소극적 타협을 넘어, 기술의 진보 방향과 자본의 축적 논리 자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맑스적 의미의 정치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재구성은 이 두 전통의 통섭을 요청한다.
참고문헌
마르크스, K. (1867). 『자본론Ⅰ』(김수행 역). 비봉
마르크스, K.·엥겔스, F. (1848). 『공산당 선언』(이진우 역). 책세상.
박경로(2026). 「제도와 기술의 사회적 선택: 성장과 분배에 관한 한 논의의 진화」. 경제발전연구, 32(1).
아세모글루, D.·로빈슨, J. A. (2012).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최완규 역). 시공사.
아세모글루, D.·로빈슨, J. A. (2019). 『좁은 회랑: 국가, 사회 그리고 자유의 운명』(장경덕 역). 시공사.
아세모글루, D.·존슨, S. (2023). 『권력과 진보: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김승진 역). 생각의힘.
정준호(2023). 「기술 진보에 관한 맹목적 낙관주의 깨기: 서평 『권력과 진보』」. 한국사회정책, 30(3).
Acemoglu, D. (2026). What Happened to Liberal Democracy? Remaking a Politics of Shared Prosperity. Penguin Press.
Acemoglu, D., & Johnson, S. (2023). Power and Progress: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PublicAffairs.
Acemoglu, D., & Restrepo, P. (2020). Robots and Jobs: Evidence from US Labor Market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28(6), 2188-2244.
Acemoglu, D., & Robinson, J. A. (2006).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Acemoglu, D., & Robinson, J. A. (2012). 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 Crown Business.
Acemoglu, D., & Robinson, J. A. (2019). The Narrow Corridor: States, Societies, and the Fate of Liberty. Penguin Press.
Farrell, H. (2023). The Political Economy of Technology: A Reply to Noah Smith. Programmable Mutter.
Griffin, E. (2013). Liberty’s Dawn: A People’s History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Yale University Press.
Lemieux, P. (2023). Book Review: Power and Progress. Regulation, 46(4), 46-49. Cato Institute.
Marx, K. (1990[1867]).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 I (B. Fowkes, Trans.). Penguin Classics.
Mishel, L., & Bivens, J. (2021). The Pay-Productivity Gap and the Role of Automation. Economic Policy Institute.
Smith, N. (2023). Book Review: Power and Progress by Acemoglu and Johnson. Noahpinion.
Zybertowicz, A. (2024). Review of the Book Power and Progress by Daron Acemoglu and Simon Johnson. Ekonomista, 2024(1).
|
|
